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290)
재벌집 만렙 아들-290화(290/416)
< 이래 봬도 땅부자 >
궁금했다.
‘밀매왕이 뭘 보내왔을까?’
아주 꽁꽁 잘도 싸매 놨다.
서류 봉투에 테이프로 칭칭 감아서 밀랍을 해놓고, 노끈까지 둘러서 단단히 묶어놨다.
‘이거 그냥은 못 뜯겠는데?’
아무래도 칼이나 가위가 필요해 보였다.
외할아버지가 슬쩍 곁눈질을 보내왔다.
“크흠, 이건 뭔데 그렇게 좋아하는 게냐?”
“비밀이에요.”
“······!”
뭘 또 그렇게 충격받은 얼굴을 하세요, 외할아버지.
괜히 미안하게.
“여기 중정마크 보이시죠? 밀봉 상태 보이시죠? 이게 아주 중요한 물건이거든요.”
일일이 설명하려면 말이 엄청 길어지겠는데.
“쉿, 알면 다쳐요.”
“외국이라면······ 역시 중동의 일로······.”
“······.”
이놈의 마포구 중동!
이거 외할아버지께서 아시면 뒷목각이라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도 없고!
하지만 이게 웬걸?
막상 따지고 보니까 중동의 일도 맞긴 하네?
‘철구 아저씨가 김형원의 뒤를 캐다가 웬 사우디의 권리증을 하나 발견했다고 했거든.’
그래서 나는 딱히 부정하지 않기로 했다.
“어쩌면요?”
“뭐라고?”
외할아버지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는데.
어째서인지 이번엔 할아버지가 놀라셨다.
“아니, 미국에서 왜 중동의 물건이 왜 날아온단 말이냐?”
그렇죠?
상식적으로 말이 영 안 되는 것 같긴 하죠?
처음엔 저도 그랬거든요.
‘미국에 보낸 철구 아저씨가 김형원이 사둔 사우디의 권리증을 입수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이게 무슨 개소리인가 했죠.’
그런데 어쩌겠어요.
운 좋게 꼬리를 잡았다는데.
나는 시치미를 떼었다.
“밀매왕 몰라요?”
“알지. 밀수의 대가.”
할아버지가 무릎을 탁 쳤다.
“이거 밀수품이었구나!”
“······.”
밀매왕이 밀수의 대가인 것도 맞고,
철구 아저씨가 입수한 물건을 몰래 빼돌려서 보내주겠다고 약속한 것도 맞긴 한데요.
밀수라고 하기엔······ 어라?
그렇게 따지고 보니까 봉투에 크게 중정마크를 찍어놔서 검문검색에 안 걸렸다 뿐이지, 밀수가 맞긴 하네?
“어쩌면요?”
“아이고!”
“아이고!”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는 동시에 앓는 소리를 내었다.
할아버지가 내 등을 밀며 재촉했다.
“정혁아, 할애비랑 같이 방에 들어가서 아무도 모르게 슬쩍 뜯어보자!”
“좋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얼른 방에 들어가서 까봐야지!’
황금빛이 번쩍이는 게, 여간 구미가 당기는 게 아니거든.
내 모든 관심은 온통 이 황금빛 선물로 향했다.
두툼하고 묵직한 것이, 아무래도 확인해야 할 것이 아주 많아 보였다.
그만큼 궁금한 것도 많았다.
‘미국 글로벌 기업에 투자했던 지분도 적당히 정리해서 뺄 거 빼고 넣을 거 더 넣기로 했었고. 할리우드 영화 투자도 알아보라고 했었고. 그리고······.’
아우, 진짜 궁금해 죽겠네!
외할아버지가 ‘크흠!’ 헛기침했다.
“중요한 물건이라면서? 여긴 북적북적 시끄러워서 영 껄끄럽지 않나 싶은데.”
그야 잔칫집이니까요.
손님들이 많은 게 당연하죠.
확실히 보는 눈이 많다보니 보안상 취약하긴 하다.
“그렇긴 하네요.”
내가 왕년에 뒤통수를 워낙 많이 맞아봐서.
얽힌 것은 악연뿐이었던지라, 툭하면 배신당하기 일쑤였다.
“외할아버지네 집에 가자! 거기가 훨씬 조용하고 아늑하다.”
“여기 성준이 집이라며? 태성그룹 경호원들 불러다 문밖을 단단히 지키면 될 것 아니냐.”
“외할아버지네 집에는 수정과와 가래떡도 있다!”
“그거 가지고 되겠습니까?”
할아버지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내가 들고 있는 서류뭉치를 가리켰다.
대치동 천마아파트 4,500채에 관한 서류와 수서동 아파트 부지 땅문서였다.
“치사하게! 그런 식으로 애를 꾀어내다니!”
“그럼 사돈도 재주껏 꾀어내 보시든가요.”
“누가 재벌집 아니랄까 봐, 어린애한테 벌써부터 돈지랄을······!”
“돈지랄뿐이겠습니까? 난 우리 정혁이한테 각서도 썼습니다. 그것도 한 장이 아니라, ···몇 장이더라?”
“다섯 장이요.”
다들 화들짝 놀라 눈이 동그래졌다.
“다섯 장이나?”
“다섯 장이나?”
아니, 할아버지까지 놀라면 어떻게 해요.
나는 손가락을 꼽았다.
“지분 100%를 보장하겠다는 회사 인수에 관한 각서, 우광계열사의 지분과 경영권 보장에 관한 각서, 태성화학에 관한 각서, 차기 총수에 관한 각서, 태성그룹 지주회사인 태성전자 지분 상속에 관한 각서. 이렇게 다섯 장이요.”
“······!”
외할아버지는 입을 떡 벌렸다.
할아버지는 의기양양해져서 가슴을 쭉 내밀었다.
“이 정도는 되어야 우리 정혁이의 환심을 살 수 있다 아닙니까!”
“크윽!”
“전 우리 정혁이한테 뜯어낸 계열사도 통째로 내어줬습니다. 그게 모두 일곱 개!”
“계열사를 일곱 개나?”
“우리 며느리한테는 태성화학을 고이 넘겼단 얘기 못 들으셨습니까. 그거 300억짜리 회삽니다.”
“크흠!”
“정혁이는 우리 태성의 미래이자, 기둥이자, 대계의 포석이에요! 그렇게 줘도 하나도 안 아깝습니다!”
“으윽!”
할아버지는 승자의 미소를 뽐냈다.
할아버지를 경호하던 고 실장이 두툼한 손바닥으로 제 눈을 가렸다.
“아이고, 회장님. 작작 좀······.”
고 실장은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지금 그걸 자랑이라고, 그것도 사돈 되실 분 앞에서 초면에······.”
반면 김 비서는 몹시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잘하셨습니다, 회장님. 이러려고 각서 쓰는 거 아닙니까.”
“김 비서마저······.”
고 실장은 제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정혁이는 태성의 차기 총수가 될 겁니다.”
“차기 총수?”
외할아버지는 방금 뭘 잘못 들었나 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후계자라는 그룹 부회장 자리엔 우리 아버지가 떡하니 앉아 있으니까 말이다.
“태성전자 지분도 넘기는 판에, 각서 다섯 장이 대수겠습니까?”
“크윽!”
외할아버지는 패색이 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뿌듯하게 웃으며 손을 허리에 척 올렸다.
“어디서 우리 정혁이의 관심을 날로 먹으려고!”
“누가 날로 먹겠댔소?”
외할아버지는 발끈했다.
“나도 외손자 주려고 미리 챙겨놓은 것이 제법 된다 이거여!”
할아버지의 눈빛이 순간 번뜩했다.
먹잇감을 낚아챈 맹수의 그것과 같았다.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낚이셨구만.’
어째 할아버지가 초면에 노골적으로 땅문서부터 꺼내 들이밀더라니.
하지만 이게 웬걸?
“사돈, 그렇게 억지로 무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러실 분이 아닌데?
내 것이라면 어떻게든 날름 챙겨오시는 분이, 오늘따라 왜 이러신대?
설마 작심하고 왕창 뜯어낼 생각은······.
“농부에게 농지는 생명보다 중하다는 걸 아는데, 설마 그걸 떼어달라고 하겠습니다. 됐습니다. 마음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할아버지는 손사래를 쳤다.
“농사를 지어봐야 품삯이다, 비료값이다, 이것저것 다 빼면 손에 남는 것도 별반 없잖습니까.”
할아버지는 하하핫, 웃었다.
“우리는 많은 거 안 바랍니다. 그저 애들 결혼을 좋은 마음으로 허락해주시기만 바랄 뿐이지요.”
할아버지는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쓱쓱 쓸어내렸다.
“차씨 가문 핏줄은 제가 알아서 챙길 터이니, 사돈께서는 염려 놓으셔도 됩니다. 그저 가끔, 명절날에나 들렀을 때 반갑게 맞아주시는 것으로 족합니다.”
“명절날에나?”
외할아버지는 참지 못하고 버럭 외쳤다.
“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외손자도 손자요!”
“그럼요.”
“얘는 차씨 핏줄이기도 하지만, 우리 이씨 핏줄이기도 하다 이거여!”
“하지만 안타깝게도 말입니다. 우리 정혁이는 차기 총수감이라.”
할아버지는 빙그레 웃었다.
“배울 것이 많은 앱니다. 다른 보통 애들처럼 한가하게 놀러다닐 시간이 없지요. 우리가 잘 가르쳐 이 나라의 큰 재목으로 만들어 보렵니다.”
주말마다 날 옆에 끼고 가르치겠다는 선언이었다.
“나도 가르칠 거 많소이다!”
“알지요. 농사일이 어디 보통 일입니까? 전문 농사꾼으로 거듭나려면 족히 십 년은 배우고 익혀야 하는 것을 제가 왜 모르겠습니까.”
할아버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지만 우리 성준이를 겪어 보셨다면 견적 나오셨을 텐데요. 장차 태성을 이끌 애가 농사를 배워서 뭐에 쓴답니까?”
“크흠!”
외할아버지는 차마 반박하지 못했다.
아까 봤던 으깨진 옥수수만 생각해도 우길 수가 없는 일이었다.
“누가 농사를 가르치겠댔소?”
외할아버지는 고개를 홱 돌렸다.
“나는 땅을 가르칠 거요.”
“땅?”
“이래 봬도 내가 제법 땅부자 축에는 듭니다.”
“아, 그렇지요. 대대로 양반가에 이 지역 유지였다고요. 들어서 압니다.”
할아버지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농지가 꽤 많으시다면서요.”
“이거 다 팔아봤자 뭐 얼마나 한다고요. 여긴 똥값이니 제쳐두고, 대신 일본에 묻어놓은 부동산을 우리 정혁이 줄까 합니다.”
“······일본?”
끄덕이던 할아버지의 고개가 우뚝 멈췄다.
금시초문이라는 표정이었다.
“일본에 부동산을 사놓으셨습니까?”
“이래 봬도 내가 일본 유학을 꽤 오래 한 사람이올시다.”
외할아버지가 젊었을 땐 일본의 식민지 시절이었다.
“어차피 식민 수탈로 땅이고, 소고, 집이고 할 것 없이 다 빼앗길 판인지라, 어린 시절 두둑하게 챙겨 들고 일본으로 건너갔지요.”
그러고 보니 외할아버지 집안은 대대로 알아주는 땅부자 양반가라고 했었다.
“땅 판 돈, 소 판 돈, 집 판 돈을 들고 가서, 젊은 시절 호기롭게 이것저것 일을 많이 벌였었는데.”
“벌였었는데?”
“아는 것이 땅이라고, 결국 땅으로 돈을 제법 많이 벌게 되었더랬죠.”
외할아버지는 시큰둥하게 말했다.
“반은 뚝 떼어서 독립운동 군자금으로 보내고, 나머지 반은 원수의 땅을 빼앗는 격이라며 약이 바짝 올라서 마구 사들였더니. 크흠!”
“사들였더니?”
“땅값이······ 그간 꽤 많이 올랐더라고요.”
60년대 이후 일본은 30여 년간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어갔다.
1980년대엔 소련까지 제치고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자리매김했을 정도다.
이 시절 일본은 선진국에 진입할 정도로 크게 발전한 상태였다.
최빈국에서 이제야 개도국에 진입한 한국보다 땅값이 훨씬 비싼 것은 당연했다.
‘플라자 합의를 체결하기 전까지만 해도 일본의 땅값은 연일 미친 듯이 고공행진을 했더랬지.’
그게 바로 일본의 부동산 버블이다.
“나야 고국 땅에서 죽기로 결심했으니, 일본으로 다시 가서 살 생각도 없고. 뭐, 일본 땅은 우리 정혁이한테 주면 딱 좋겠다 싶습니다. 크흠!”
“그걸 우리 정혁이한테 주셔도 되겠습니까?”
“사업하는 사람이 회사 아깝다 하지 않고 계열사까지 홀랑 내어주는 판에, 땅 가진 사람이 땅 좀 쥐여주는 게 뭐 그리 대수라고! 크흠!”
할아버지는 얼떨떨한 표정이 되었다.
“일본에 묻어둔 땅이 얼마나 되는지 물어봐도 됩니까?”
“얼마 안 됩니다. 도쿄에 한 10만 평?”
“······예?”
거기 땅값 엄청 비싼 동네잖아요.
10만 평이면 생각보다 너무 많은데요?
할아버지가 입을 떡 벌렸다.
“땅값이 많이 올랐다기에 임대료나 벌자고 대출 끼고 빌딩도 여럿 올렸습지요.”
“빌딩을? 그것도 여럿이나?”
“한 삼사천 채 정도 되나?”
“······!”
당시 일본은 부동산 담보 은행대출이 많이 나오긴 하던 시절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빌딩이 한두 푼 하는 물건도 아니고.
생각보다 너무 많은데?
할아버지의 턱이 툭 떨어졌다.
“그것 말고도 일본 곳곳에 땅이 좀 흩어져 있긴 합니다.”
“땅이 더 있단 말입니까?”
“오사카, 나고야, 삿포로, 센다이, 히로시마, 후쿠오카에, 뭐 여기저기 적당히.”
“허?”
날 안고 있던 할아버지의 손에서 힘이 탁 풀렸다.
나는 미끄러지듯이 줄줄 흘러내려서 바닥에 착 내렸다.
외할아버지는 씩 웃었다.
“거기도 건물을 올려야 임대료가 나온다고 해서 몇 채씩 올려놓긴 했습니다.”
“거기까지 빌딩을 또 올려요?”
“거긴 도쿄만큼 높게는 안 올려도 되더이다. 적당히 맨션도 올리고, 상가도 올리고, 주택도 올리고, 뭐 이것저것 조금씩. 크흠!”
“허어?”
“뭐가 더 있기는 한데. 이것저것 하도 많이 올리다 보니까, 요즘엔 어디에 뭘 얼마나 올렸는지 기억이 영 가물가물해놔서.”
“······.”
할아버지는 동공에 지진이 난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지금 그걸 다 우리 정혁이를 주신다는······.”
“차기 총수 자리에 지분까지 준다는 판에, 부동산 회사 하나 주는 게 뭐 그리 대수라고! 크흠!”
“부동산 회사까지?”
“관리하기 편하려면 회사를 세우는 게 낫다데요?”
외할아버지는 코끝을 긁적였다.
“내가 평생 땅만 파고든 놈이라, 경영에 대해 뭘 알겄습니까.”
“······.”
“대충 적당히 싸고 좋은 땅이 나왔다 하면 가서 보고 사고, 대출 좀 넉넉히 껴서 쓸만하게 건물 올리라 이르고.”
“······.”
“농사지으면서 따박따박 돈 들어오는 거, 돈 내치는 거나 보고받고 삽니다.”
“······.”
할아버지는 넋이 나간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입을 떡 벌리고 있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게 다 얼마야?’
외할아버지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크흠! 외할아버지네 집에 가서 네가 받을 땅문서를 찬찬히, 조목조목, 뜯어보지 않으련?”
“네에!”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 이래 봬도 땅부자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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