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291)
재벌집 만렙 아들-291화(291/416)
< 웨이러 미닛! >
외할아버지는 안방 자개장에서 두툼한 서류뭉치를 꺼냈다.
‘우와!’
나는 크게 감탄했다.
딱 봐도 범상치 않게 화려한 빛깔!
‘어마어마하네.’
눈부셨다.
황홀했다.
사방에 폭죽처럼 황금빛이 터져나가고.
강한 빛에 홀려 눈이 멀 것만 같다.
‘어쩐지. 염라대왕이 이번 생엔 외가도 한번 찾아가 보라고 신신당부하더라니!’
나는 혀를 내둘렀다.
‘대통령의 친서도, 할아버지의 각서도, 후려쳐 가져온 대치동 천마아파트 4,500채도 이 정도로 밝게 빛나진 않았던 것 같은데.’
아, 그러고 보니 이만큼 눈부시게 빛나던 황금빛 문서가 딱 하나 있었다.
대통령의 비자금 50억 달러!
아마 그 외엔 없지 않나 싶다.
‘하기야. 도쿄 땅만 10만 평, 빌딩만 삼사천 채랬다.’
대충 계산기 때려봐도 입이 떡 벌어질 만한 금액이었다.
‘이것저것 대출을 엄청 많이 끼고 올렸다지만, 이게 다 얼마야?’
아직 일본의 부동산 버블은 정점에 달하지 않았다.
앞으로 더 오를 땅이고, 더 비싸질 빌딩이란 소리다.
이 시절 도쿄 땅값은 얼마나 비쌌던지, 도쿄를 팔면 미국을 살 수 있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흐음.’
하지만 딱 하나.
걸리는 게 있었다.
바로 이 범상치 않게 화려한 빛깔!
‘황금빛에, 검은빛, 붉은빛, 초록빛, 보랏빛까지. 많이도 섞였네.’
처음이었다.
‘황금빛에 검은빛이나 붉은빛이 불길하게 섞인 것이라면 본 적 있지만.’
우광건설 뇌물 장부에서는 위험 인물들의 서류가 이런 식으로 빛났었다.
육군보안사령관의 뇌물 명단은 황금빛에 붉은빛이,
중정부장의 뇌물 명단은 황금빛에 검은빛이 섞여서 불길하게 일렁거리고 있었다.
‘황금빛에 초록빛, 보랏빛이 섞인 건 또 처음 보는군.’
이런 색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려나.
‘황금빛에 총 네 가지나 되는 색이 섞였다는 건······ 암만 봐도 흔치 않은 일이야.’
신기했다.
그래서 더 궁금해졌다.
나는 턱을 괴었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으나, 두 가지만은 확실해 보인다.’
하나, 황금빛이 이토록 강한 만큼 상상 그 이상의 대박이라는 것.
둘, 색이 이렇게 복잡하게 섞인 만큼 쉽지 않은 일이 될 것이라는 것.
나는 씩 웃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아닌가? 돈 되는 일 중 쉽지 않은 일이 어디 있다고.’
돈 되는 일엔 똥파리가 꼬이는 법.
‘큰돈 되는 일엔 필연적으로 힘깨나 쓰는 놈들이 얽히기 마련이지.’
왕년에 맨손으로 밑바닥에서부터 사채왕 자리까지 기어올라갔었던 나다.
천벌 받은 탓에 허락된 건 검은돈뿐이었고, 얽히는 인연이라고는 죄다 악연뿐이었던 인생.
툭하면 배신당하고, 여차하면 뒤통수 맞고, 아차 하면 칼부림당하던 뒷골목 생활.
더러운 진창이라면 지긋지긋하게 겪었던 나다.
‘까짓것 못 할 것도 없다.’
나는 딱 한 가지만 따지고 들어갔었다.
이게 돈이 되는 일인가, 아닌가.
‘이만한 황금빛이라면 무조건 달려들어야지.’
계산은 끝났다.
결심도 섰다.
외할아버지는 두툼한 서류뭉치를 내게 건넸다.
“자, 받아라.”
“감사합니다.”
나는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아 들었다.
이건 외할아버지가 일본에서 일군 평생의 업적이었다.
외할아버지가 이걸 내게 준 이상, 남에게 빼앗길 생각도, 양보할 생각도 없다.
“너라면 왠지 꼼꼼하게 읽어보면서 이것저것 물어볼 줄 알았더니.”
맞는 말이다.
이게 웬만한 일이었으면 당장 그랬을 터였다.
“왜? 마음에 안 드냐?”
“마음에 들어요.”
“그러면 서류를 봐야지, 왜 날 보고만 있어?”
“서류를 보기 전에, 외할아버지께 들어야 할 이야기가 아주 많을 것 같아서요.”
“허?”
외할아버지는 뜨끔한 표정으로 흠칫했다.
“어떤 이야기?”
“이걸 왜 저한테 주기로 결심했는지에 관한 이야기요.”
“······.”
“어려운 결정이었을 것 같아서요.”
“······.”
외할아버지는 금붕어처럼 입술을 뻐끔거렸다.
그러더니 뒷머리를 긁적였다.
“크흠,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걸 너한테 줘야 할지 말지도 꽤 오랫동안 망설이긴 했다.”
“그럴 만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선뜻 주기엔 너무 많은 재산이잖아요. 당연히 아깝죠.”
“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내 새끼한테 주는 게 왜 아깝냐!”
“그러니까요.”
내 의문은 거기에서 시작되었다.
“왜 엄마나 이모가 아니라 저였어요? 저는 한 다리 건너잖아요.”
핏줄에도 순서가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그래요. 자식을 건너뛰고 외손자에게 집안 기둥뿌리를 뽑아주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거든요.”
외할아버지는 허를 찔린 표정으로 날 보았다.
이미 꺼낸 속내다.
작정하고 도발한 이상, 물러설 순 없었다.
“게다가 같은 한 다리 건너라고 해도 더 좋은 선택지가 따로 있는 상황에서 저를 택하셨으니까요.”
“나한테 외손자는 정혁이 너 하나뿐이야.”
“우리 아빠를 말하는 거예요.”
외할아버지가 보시기에 나는 고작 여덟 살짜리 어린애일 뿐일 터.
“우리 아빠는 태성그룹 부회장이며, 엄마의 든든한 방패막이가 되어줄 힘 있는 배우자니까요.”
힘없는 자에게 보물은 재앙과도 같다고 했다.
반대로 말하면, 힘 있는 자는 보물을 너끈히 지켜낼 수 있다는 뜻이다.
“설마 남들이 떠들던 말처럼, 우리 아빠가 외가의 재산을 노리고 뒤늦게 결혼 허락 받으러 왔다고 생각하세요?”
마을 사람들이 우리 아버지를 사기꾼 취급했을 때 그런 소리가 나왔었다.
우리 아버지가 태성그룹의 부회장이자, 재벌가 막내아들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끝났던 헤프닝이었다.
하지만 막상 패를 까놓고 봤더니, 사정이 달라지고 말았다.
외가의 재산이 어마어마했거든!
“솔직히 외할아버지 입장에서 보면 밑지는 혼사거든요.”
이건 일일이 회계 장부를 정리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할아버지가 찍 소리도 못 하고 날 외할아버지에게 빼앗긴 이유였다.
“우리 아빠가 재산만 홀랑 챙겨 먹고 엄마와 절 버릴까 봐 영 의심스러우세요?”
“그건 아니야.”
굳게 다물렸던 외할아버지의 입이 그제야 열렸다.
“솔직히 이 재산이 없다고 태성이 무너지는 것도 아니고.”
“그럼 이러시는 이유가 뭔데요?”
“크흠!”
외할아버지가 쓰게 헛기침했다.
“어린 너를 붙잡고 할 얘기가 아닌데······.”
“저한테 이걸 주신 순간부터 제 얘기가 된 거예요.”
나는 딱 잘라 말했다.
“어려도 알아야 할 건 알고 넘어가야죠.”
한참의 침묵 끝에, 외할아버지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래, 내 솔직하게 말하마.”
바라던 바였다.
“이걸 너한테 줘야 할지 말지 꽤 오랫동안 망설인 이유는 아까워서가 아니라, 여기엔 워낙 많은 일이 복잡하게 얽혀서 그렇다.”
그럴 만했다.
황금빛에 대체 몇 가지 색이 섞였냐.
그 속사정이 궁금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따져 묻지도 않았다!
“사실 일본 부동산은 네 엄마에게 넘겨줄 작정이었다.”
그럴 줄 알았다.
주변에서 다들 여자라고, 딸이라고, 시집이나 잘 보내지 공부시켜서 뭐 하겠냐고 쓴소리를 할 때도.
외할아버지는 개의치 않고 우리 어머니 공부 뒷바라지를 자처했다고 했었다.
뜻하는 바가 있지 않고서야 이 시절에 그러기 쉽지 않다.
“네 엄마가 물려받는 것으로 아주 오래전부터 약속이 되었던 일이었는데. 일이 이렇게 된 이상 그건 어렵게 된 것 같아서 말이다.”
의아했다.
“누구와 어떤 약속을 했는데요?”
“음, 동업자라고 해야 하나. 어려서 같이 유학했던 절친? 독립운동 동지? 뭐 그런 친구가 하나 있는데.”
나는 다른 단어보다 ‘동업자’란 단어가 귀에 콕 박혔다.
천벌 받았던 내 인생에서 동업은 곧 배신, 손해, 후회와 같이 취급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 녀석이 우리 수진이 뒤를 봐주기로 했었다.”
“그 사람이 왜 우리 엄마 뒤를 봐주는데요? 맨입으로?”
“크흠! 맨입이라고 하기엔 그게 또 조금 복잡한 것이······.”
외할아버지는 힐끔힐끔 내 눈치를 보았다.
“하나씩, 천천히, 차근차근 얘기해 보세요. 일단 그 친구는 뭐 하는 사람이에요?”
“사채업 한다.”
아니, 여기서 사채업이 왜 튀어나와요?
게다가 사채업자가 왜 우리 엄마 뒤를 봐주고요?
“혹시 우리 엄마를 볼모로 신체포기 각서라도 넘기셨어요?”
“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내가 그 정도로 돈이 없진 않어!”
외할아버지는 펄쩍 뛰었다.
“빌딩 올릴 때 대출을 많이 받으셨다기에. 난 또 혹시나 했죠.”
“뭐, 아예 안 빌렸던 건 아니다만······.”
“아이고.”
“그건 다 갚았어! 부동산 회사를 같이 굴리고 있으니까, 알아서 잘만 빼가더라.”
“그야 사채업자에겐 원금 회수가 생명이니까요.”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니, 엮여도 하필이면 사채업자랑······.”
“친구이자 동지였다니까. 일본인을 상대로 나는 땅으로, 그 친구는 사채로 돈을 벌어 독립운동 군자금을 지원했었다.”
외할아버지의 눈은 또 먼 옛날의 과거로 향한 듯했다.
“군자금을 나르는 일은 특히나 은밀해야 하는 일이었다. 여러 사람의 목숨이 걸린 일이었어.”
걸리면 죽는다.
일본에서 행하는 독립운동은 더욱 까다롭고 어려운 일이었을 터였다.
“나는 땅만 알지, 다른 건 영 몰랐다. 돈을 쪼개고, 사람을 매수하고, 흔적을 덮는 일 같은 건 섣불리 손댈 엄두조차 안 났었는데. 그 친구는 그쪽으로 아주 기가 막혔단 말이야?”
외할아버지의 목소리는 점점 낮아졌다.
“참 많은 일이 있었더랬다. 뜻하지 않은 배신도, 위험한 순간도 많았지.”
그랬었을 것이다.
“큰돈과 목숨이 걸린 일이라 더욱 그러했었다.”
돈 많고 땅 많은 한국인이란 먹음직스러운 먹잇감에 불과했을 터였다.
외할아버지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일제 말기엔 감시가 더욱 삼엄해졌고, 우리는 더욱 위험해졌는데. 그 어려움을 함께 겪으면서 죽을 때까지 배신하지 않았던 사람은 오직 그 녀석뿐이었다.”
외할아버지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감돌았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바로 사람을 믿는 일이었는데 말이다.”
신뢰와 우정이 가득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해방이 되고, 전쟁이 끝나고, 자식을 보고, 일본에서 벌인 부동산 사업 규모가 나 혼자로는 감당이 되지 않을 무렵, 그 친구가 제안을 하나 해왔다.”
“어떤 제안이었는데요?”
“동업 제안이라고 해야 하나? 그렇게 우리는 함께 부동산 회사를 세우게 되었다.”
“그럼 수익 분배 조건은 어떻게 돼요?”
“······.”
난 동업의 가장 중요한 사항을 물어봤을 뿐인데.
외할아버지는 퍽 곤란한 얼굴을 했다.
“경영은 누가 하고, 회계는 누가 하고, 개발은 누가 하고, 관리는 누가 해요?”
“그건 그쪽에서 맡기로 했고, 나는 땅과 건물만······.”
“물주가 되신 거네요? 이렇게 땅문서 집문서를 받고, 대출도 받고?”
“그게······ 그렇게 되나.”
“그럼 저쪽에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재산을 홀랑 날려도 할 말 없는 상황이네요?”
“뭐?”
아니, 왜 그렇게 놀란 눈으로 날 봐요?
“그렇잖아요. 중간에서 이것저것 빼돌려도 알 방법 있어요? 없잖아요.”
보고받는 게 다라면서요.
나는 혀를 찼다.
“얽힌 사람도 한둘이 아니겠죠. 일본의 공직원은 물론 부동산 개발과 관련된 온갖 업자와 은행까지.”
“크흠! 그래서 그 일은 그 친구 쪽에서 맡기로 했다.”
알 만하다.
어쩐지 색이 더럽게도 많이 섞였더라니!
“가야 할 일이 구만리네요.”
까짓것 못 할 것도 없지만, 문제는 또 있다.
“그쪽에서 권력을 잡으면서 저울이 크게 기울었단 말이죠. 이 일을 해결하려면 제법 복잡하겠는데요?”
땅문서와 집문서?
권력이 칼을 들이밀면 빼앗기는 건 순식간이다.
‘까치산 방 여사가 어떻게 죽었는데.’
전대 거물이라고 할 만큼 많은 땅과 돈을 가지고 있던 까치산 방여사.
그녀는 안기부에 끌려가 시체가 되어 나왔다.
그녀가 가지고 있던 많은 땅은 신도시 개발에 편입되었고.
권력자들은 주머니를 두둑하게 채우고 손을 털었다.
“돈 좀 있다고 세상사 뜻대로 움직일 수는 없잖아요.”
졸부와 재벌의 차이가 여기에서 나온다.
졸부는 돈만 많은 반면, 재벌은 돈은 물론 사회적인 영향력과 권력까지 많다.
그래서 재벌은 할 수 있는 게 많다.
‘태성이 나서도 쉽지 않겠는데.’
외할아버지는 태성보다 땅과 돈이 많을지 몰라도.
부동산 회사를 휘어잡지 못한 시점에서 돈 많은 사람, 즉 졸부에 불과하다.
일본에 끼치는 영향력이라면 태성이 단연 한 수 위다.
“그래서 그 친구라는 분과 우리 엄마를 두고 어떤 약속을 하셨는데요?”
“그게 말이다. 어, 음, 그러니까 거기 후계자랑 내 딸을, 그러니까 결혼을 시키기로 약속을 했었는데.”
맙소사.
나는 손으로 눈을 덮었다.
“아이고.”
재벌가 자식답게 우리 아버지는 우광과 혼사를 담보로 태성화학을 공동 설립했었는데.
인제 보니 우리 어머니도 있는 집 자식답게 같은 이유로 정략 결혼이 예정되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우리 엄마 결혼을 반대했던 거예요?”
“크흠! 그건 아니야.”
“혹시 이 혼사를 깨면 부동산이 전부 다 홀랑 그쪽으로 넘어가게 되는 건가요?”
“그것도 지금 참으로 복잡한 것이······.”
외할아버지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수진이와 결혼시키려고 했던 후계자는 가업을 안 물려받겠다고 뛰쳐나갔다고 하더라.”
“그럼 혼담은 파투 난 건가요?”
“뭐 결국 그렇게 됐다.”
“하지만 동업은 아직 계속이고요?”
“그게 문제다. 그 친구는 큰 병이 들어 오늘내일한다고 하고, 그 집안 남자들은 다 죽어서 씨가 말랐고, 후계자 자리를 노리는 인간들은 다섯이나 된다고 하니. 일이 제법 복잡해지고 말았지.”
잠깐. 웨이러 미닛.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리인데?
“혹시 그 친구라는 분, 정씨 성 쓰는 분 아니세요?”
< 웨이러 미닛!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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