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293)
재벌집 만렙 아들-293화(293/416)
293. < 이번 생은 다를걸? >
마을 잔치가 열리는 집 앞.
끼이익.
검은색 고급 세단이 한 대 정차했다.
운전기사가 뒷문을 열어주자, 빨간 하이힐을 신은 늘씬한 다리가 땅을 내디뎠다.
백화점 최신상 원피스에, 들고 있는 것은 최신상 명품백.
곱게 화장한 여자가 빨간 매니큐어가 반짝이는 손으로 선글라스를 추켜올렸다.
“양 비서, 여기예요?”
“예, 사모님.”
“후지기는.”
마을 잔치가 열리는 집을 대충 슥 둘러보았다.
여자는 비웃음이 가득한 입가를 씰룩였다.
“이런 집안과 사돈을 맺자고 우광을 걷어찼네요. 도련님도 참.”
“우리한테는 잘된 거 아닌가?”
반면 뒤이어 차에서 내린 남자는 실눈을 휘며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었다.
“성준이 외가 하나도 상대하기 버거운 마당에 처가까지 쟁쟁하면 골치 아프거든.”
“기준 씨.”
“좋게 생각해.”
“흥.”
차기준의 아내는 콧방귀를 뀌었다.
“누구 때문에 당신이 그룹 부회장 자리도 빼앗기고, 태성식품까지 내놓게 됐는데, 나더러 좋게 생각하란 소리가 나와요?”
“그건 아직 결판 안 난 일이야.”
차기준은 옷매무새를 고쳤다.
“태성그룹 총수는 여전히 아버지고, 태성그룹 부회장 자리는 언제든지 갈아 치울 수 있어.”
“성준 도련님이 제 밥그릇 얌전히 내어주겠대요?”
“이 바닥에 자기 밥그릇 빼앗기고 싶어서 빼앗기는 놈이 어디 있어? 힘 싸움에 밀려서 쪽박 차고 쫓겨나는 거지.”
차기준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결국은 지분 싸움으로 결판 지을 일 아닌가?”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속이 뒤집히는 거 아니에요. 성준 도련님 외가가 태성전자 지분을 잔뜩 움켜쥐었으니, 우리에겐 승산이 없잖아요.”
“승산이 없기는.”
“국화그룹의 힘만으로는 어려워요. 알잖아요.”
“성준이 외삼촌은 오늘내일하느라 업무에서 손 뗀 지 오래고, 정씨 집안 차기 후계자 후보 중 셋이나 내 손을 들어주기로 했고, 은행장들까지 내 쪽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어.”
차기준은 아내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러니 웃어.”
“나 지금 웃을 기분 아니에요.”
“어른답게 굴어. 웃을 기분이 아니어도 웃을 수 있어야 어른이야.”
차기준은 실눈을 휘며 웃었다.
“태성그룹이 달린 일이잖아. 당신의 처신에 따라 나도, 우리 애들의 미래도 달라질 수 있다는 거 명심해야지.”
“지금 날 협박하는 거예요?”
“협박이라니. 부부 사이에 그런 섭섭한 단어를 쓰면 되나.”
차기준은 아내를 끌어안은 손에 힘을 주었다.
아내를 내려다보는 눈은 지나치게 차가웠다.
“이건 그저 협조를 부탁하는 말이고.”
“하?”
“당신 때문에 일이 어그러지면 국천그룹도 멀쩡하진 못할 거야. 당신 친정까지 나랑 같이 사이좋게 침몰하는 꼴 보고 싶지 않으면 처신 똑바로 해.”
씨익.
“이런 게 협박이지.”
“당신 진짜 재수 없어. 알아요?”
탁.
그녀는 남편의 손을 쳐서 떨어뜨렸다.
대신 싸늘하게 웃었다.
“당신이나 처신 똑바로 해요. 내 걱정할 필요 없으니까.”
“훌륭한 어른의 얼굴이로군.”
차기준은 아내의 선글라스를 벗겼다.
짙게 화장한 눈매가 싸늘하게 노려보고 있었다.
표독스러운 눈초리의 끝은 남편의 얼굴을 지나쳐 왁자지껄 북적북적한 마을 잔칫집으로 향했다.
“하여간에 수준하고는. 난 시골 촌티 딱 질색인데.”
벌컥!
그때 예고도 없이 잔칫집 문이 열렸다.
차씨 일가 사람들이 우르르 튀어나왔다.
“다들 먼저 도착하셨군요. 저희가 조금 늦었나 봅니다.”
“아직 안 늦었어. 가자!”
“······예?”
가긴 어딜 갑니까?
잔칫집이 여긴데요.
“상견례 해야지.”
“예?”
“성준이 처가가 성준이 처음 정혼했던 그 집이랜다.”
“예?”
차기준은 입을 떡 벌렸다.
두 눈동자에는 지진이 났다.
너무 믿기지 않는 일이라, 되묻는 목소리도 잘게 떨렸다.
“혹시 정 씨 어르신이 직접 혼담을 주선했다던 그 집이······.”
“그래. 돌고 돌아 다시 우리 집 며느리가 되었다지 뭐냐. 하하하.”
“······.”
차기준은 입을 조개처럼 꾹 다물었다.
아니, 입술을 꽉 깨물었다.
두 주먹도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꽉 쥐었다.
분한 표정을 지워내기 위해서였다.
“네?”
그러니 이 물음은 차기준의 것이 아니었다.
그의 처, 둘째 며느리의 것이었다.
“아버님, 잔칫집은 이 집이잖아요.”
“여긴 성준이가 산 집이고, 막내 며느리의 친정집은 이쪽이야.”
“······.”
차 회장이 가리킨 곳은 고래등같이 으리으리한 기와집이었다.
“······.”
둘째 며느리도 떨리는 눈동자로 뼈대 굵은 양반가 집을 재빠르게 훑었다.
담벼락은 끝이 보이지 않았고, 우뚝 솟은 기와집 처마는 한두 채가 아니었다.
“그래 봤자 시골 농부의 딸. 땅 좀 있어 봐야······읍!”
“아니야.”
둘째 며느리의 입을 막은 사람은 차기준이었다.
차기준은 나지막하게 한숨처럼 탄식을 토해냈다.
“땅도 다 같은 땅이 아니라고. 이 집이 성준이 옛 정혼 집안이라면 일본에서 부동산을 아주 크게 하고 계신다고 들었어.”
“읍?”
“당신도 들어봤나 모르겠는데. 도쿄의 나까무라(中村) 부동산이라고.”
“으으읍?”
둘째 며느리의 눈이 커졌다.
차기준은 그제야 아내의 입을 틀어막았던 손을 내렸다.
둘째 며느리는 립스틱이 번진 줄도 모르게 입을 떡 벌렸다.
“친정이 일본의 부동산 재벌이라고?”
차 회장이 딱 잘라 말했다.
“길바닥에서 상견례 할 셈이야? 그쯤 했으면 됐다! 사돈 기다리시겠다.”
차 회장을 필두로 차씨 집안 사람들이 고래등 같은 기와집 대문 안으로 우르르 들어갔다.
“······.”
“······.”
차기준 부부는 대문 앞에서 망연자실한 채 남겨졌다.
* * *
상견례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결혼이란 인륜지대사엔 나 같은 어린애는 끼어들 틈이 없었다.
오롯이 어른들의 일이었기에.
나는 외갓집 앞마당에 놓인 평상에 털썩 걸터앉았다.
‘휴우, 이게 뭐라고 힘드냐.’
어른들의 이야기가 깊어지면서 어린애는 나가 놀라는 축객령을 받았다.
스르륵.
연기처럼 솟은 저승사자도 내 옆에 털썩 앉았다.
[힘들다는 건 말뿐인 것 같은데?]‘티 나냐?’
[많이. 표정 관리가 영 안 되고 있는 건 아냐?]우리 둘뿐인데 뭐 어때.
나는 싱글벙글 터지는 웃음을 감추지 않았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목청 높여 동네방네 외치고 싶은 기분이었다.
-동네 사람들, 우리 아버지 장가가요! 우리 어머니 시집가세요! 둘이 천생연분이래요!
담을 타고 들려오는 각양각색의 웃음소리도 즐겁기 짝이 없다.
어르신들은 주거니 받거니 술을 기울이고, 윷패를 던지며 웃는 소리.
어린애들은 신이 나서 저희들끼리 뛰어놀며 터지는 웃음소리.
잔칫집 일을 거들며 곁들이는 수다에 일제히 터지는 아줌마들 웃음소리까지.
‘좋네.’
나는 흐뭇하게 웃었다.
과거와 현재를 통틀어 봐도 내 인생에 몇 번 없을 경사였다.
‘우리 부모님의 결혼식에 참석해서 축하 인사를 건넬 수 있다니. 나 진짜 행운아잖아?’
전생에 나라를 구하길 잘했다.
살아 있길 잘했다.
회귀하길 잘했다.
귀에 걸린 내 입꼬리는 도무지 내려올 줄 몰랐다.
‘이렇게 잘 어울리는 두 분이셨는데. 참 멀리도 돌고 돌아왔네.’
지난 생에선 아버지와 어머니는 두 분 모두 너무 이른 나이에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내 나이 일곱에 연탄가스 중독으로, 아버지는 이듬해에 비행기 추락으로 유명을 달리하셨다.
그런 이유로 나는 평생 아버지는 물론 친가, 외가를 찾지 못했다.
‘그게 내 천벌이었으니까.’
저승사자가 순간 흠칫하더니 고개를 돌렸다.
‘그래, 부모님은 멀쩡하게 살아 계시고, 양가의 축복 속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되다니.’
이게 뭐라고 감격스럽냐.
해피엔딩은 언제나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나 늘 옳지!
나는 연신 흐뭇하게 웃었다.
‘부디 좋은 결과가 있어야 할 텐데.’
[상견례 자리에서 양가 어르신들도 다들 웃고 있지 않았나.]파투 날 가능성은 몹시 적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게 또 은근히 걱정된단 말이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거든. 우리 강우도 그랬어. 상견례장에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하하호호였어.’
[······.]아직도 눈을 감으면 그때의 일이 선명하게 떠오르곤 한다.
-신림동 다가구 주택에서 사신다면서요?
-그럼 빌라 전세금조차 도와줄 형편이 안 된단 소리인데. 커흠!
면전에서 쏟아지는 말은 칼끝보다 날카로웠다.
날 위아래로 훑어보며 견적을 매기는 눈빛은 뜨거웠다.
-먼지를 암만 모아 봤자 먼지밖에 더 돼요? 이딴 것도 통장이라고 들이밀다니. 내 참 기가 막혀서.
-얘, 너 진짜 이 결혼 꼭 해야겠니? 어떻게 남자를 골라도 꼭 고아보다 못한 애를 골라 와서는!
마치 내 인생을 평가하는 자리인 것처럼 긴장되던 순간이었다.
아들 가진 아비로서 나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제사며 명절이며 다 됐고 내다볼 필요도 없으니, 저는 없는 사람인 셈 치고.
-우리 애만 봐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아비만 떼고 보면 꽤 번듯한 앱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혹시나 싶어서 124평형 한강뷰 펜트하우스를 준비했었다.
룸 7개, 욕실 4개, 세대당 주차대수 4대, 매매가 149억 원짜리로.
거기에 두둑한 통장과 사돈이 될 사람들의 뒷조사를 했던 서류도 챙겨 갔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견례는 결국 파투 나고 말았다.
‘쉽지 않더라고.’
내가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추지 못하는 이유였다.
‘나도 그랬었고.’
[······.]정확히 말하자면 내 경우엔 상견례 근처에도 못 가고 파투 났었다.
-나랑 결혼해.
청혼했던 날, 그녀는 흔적도 없이 증발해버렸다.
무려 12년이나 전국 방방곡곡을 뒤져, 내 손가락까지 던져준 끝에야 간신히 그녀를 찾아 다시 마주했는데,
-한 번 더 물을게. 나랑 결혼해.
내 두 번째 청혼에도 그녀는 끝내 대답하지 않았다.
그렇게 파투가 났던 것이 내 부부의 천륜이었다.
말을 할 때마다 고개가 땅바닥 쪽으로 푹푹 숙여지던 저승사자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역시도 이번엔 다를걸?]‘그래야지.’
나는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이번엔 나도 서방 노릇 제대로 해 보려고!’
그래서 더 애가 닳았다.
‘우린 언제 자라서 상견례를 해 보나.’
[······.]내 나이 여덟 살, 예린이 나이 여섯 살.
성인이 되자마자 결혼을 한다고 해도 14년 후.
이거 까마득하구만!
더구나 내 경우엔 문제가 또 있었다.
-예린이는 나중에 커서 우리 정혁이랑 결혼할 거야? 정혁이 부인이 되어주는 거야?
-아뇨! 그건 절대 아니에요! 전 오빠의 애···, 애······, 그러니까 애······ 애첩이 될 거예요!
애첩은 무슨, 얼어죽을!
‘얘를 어떻게 꼬셔서 내 부인 자리에 앉히지?’
[······.]갈 길이 멀다!
천륜. 역시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우리 예린이, 보고 싶다.’
오래된 습관처럼 그녀를 떠올렸다.
날 보며 녹아내릴 것처럼 웃던 예린이의 미소가 그리웠다.
이럴 줄 알았으면 침대맡에 놓아두었던 액자라도 가져올걸 그랬다.
‘이따 집에 가는 길에 삼청동에 들러서 잠깐 얼굴이라도 보러 가야지.’
여기 태성호텔 양식팀 주방장이 만드는 디저트용 빵과 쿠기가 특히 예술이더라고.
달달한 거 좋아하는 애라, 간식거리 한 보따리 싸 들고 가면 엄청 좋아할 텐데.
‘안 그래도 예린이한테 꼭 물어보고 싶은 것도 있······ 어라?’
내가 지금 헛것을 보고 있는 건가?
눈을 비비고 다시 봤다.
그대로다.
환상이 아니었다.
“예린이 왔어요오오오!”
예린이가 활짝 웃으면서 다다다다 달려왔다.
두 팔을 벌리면서 대문 문턱을 넘었다.
“예린아!”
나도 모르게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났다.
홀린 듯이 두 팔을 벌렸다.
예린이가 내 품에 폭 안겼다.
“에헤헤.”
믿기지 않았다.
나는 따뜻하고 부드럽고 앙증맞게 작은 몸을 꼭 끌어안았다.
< 이번 생은 다를걸?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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