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294)
재벌집 만렙 아들-294화(294/416)
294. < 오빠 최고! >
예린이에게선 깨끗한 꽃비누 향기와 베이비 파우더 냄새가 솔솔 올라왔다.
나는 그 달고 포근한 향기에 취해 예린이의 정수리에 턱을 얹었다.
“여기까진 어떻게 왔어?”
삼청동에도 연락을 돌리긴 했었다.
행여 액막이하러 왔다가 헛걸음하지 않도록.
하지만 정확한 행선지까지는 알려주지 않았는데.
역시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애기 무당은 말하지 않아도 알······.
“헤헤, 저기 아저씨가 데려와 줬어!”
······몰랐구만!
예린이가 가리킨 사람은 양손 가득 태성백화점 쇼핑백을 들고 있는 유종태였다.
이 양반, 아까부터 안 보이기에 어디 갔나 했더니.
“이 유종태, 도련님께서 외할아버님과 함께 온 동네를 돌며 사방팔방에 눈도장 찍고 있다는 소리에 감 잡았습니다!”
유종태는 능글능글하게 웃었다.
“태성그룹 전 계열사 임원들에게 직접 전화를 돌린 게 바로 저 유종탭니다!”
유종태는 가슴을 쭉 내밀어 보였다.
“도련님께서 그리시는 큰 그림이라면 분명 그때 미리 상견례까지 내다보셨을 것이 확실하다고 판단!”
호오?
“결혼까지 일사천리로 밀어붙이려면 가장 걸리는 문제가 뭐다? 바로 혼삿날 정하기 아니겠습니까?”
유종태가 두 손으로 예린이를 가리키며 ‘짜잔~!’하고 웃었다.
“우리 아가씨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요즘 삼청동에서 알음알음 이름이 퍼지고 있는 용한 애기 무당!”
[삐약삐약!]투명한 주작이 몹시 자랑스러워하며 울부짖었다.
“그 말인즉, 혼삿날 택일의 전문가란 소리!”
[삐약삐약!]“바로 그런 이유로 특별히 모셔 오게 되었습니다. 이상 보고 끝!”
[삐약삐약!]“안 그래도 도련님께선 최근에 너무 바쁘신 바람에, 아가씨를 통 만나러 가지 못하시기도 했으니까요.”
[삐약삐약!]이런.
유종태에게 속을 꿰뚫리고 말다니.
“역시 유 팀장님!”
이거 엄지를 들어줄 수밖에 없구만!
나는 눈치 빠른 사내가 좋더라!
“안 그래도 같은 이유로 이따 예린이를 만나러 갈까 했거든요.”
“하하핫! 이 정도는 되어야 도련님의 넘버 투, 아니, 넘버 쓰리를 자처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유종태가 허리를 젖혀가며 크게 웃었다.
그러더니 이내 허리를 도로 굽혔다.
“전 아가씨 드실 간식거리를 챙기러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태성호텔 주방장님들이 만드신 디저트 빵과 쿠키로 부탁할게요.”
“디저트 빵이랑 쿠키······ 메모······.”
“음료는 흰 우유로.”
“흰 우유······ 메모······.”
꼬옥.
예린이가 내 옷자락을 꼭 쥐더니 작게 속삭였다.
“그거 말고 초코우유는 안 돼?”
“혈당 괜찮겠어?”
“······.”
아니, 왜 그런 눈으로 봐?
달콤한 주전부리를 먹을 땐 당관리가 필수거든.
“우리 할머니는 초코우유 살찐다고, 미숫가루만 타주시는데······.”
“예린이 것은 초코우유로 부탁드릴게요.”
가뜩이나 작고 마른 애가 백일치성 드린다고 고생하느라 뼈밖에 없구만!
“헤헤헤, 오빠 최고!”
예린이는 몹시 기뻐하며 내 품에 쏙 안겨 들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유종태는 한쪽 눈을 찡긋하며 도망치듯 사라졌다.
잔칫집까지 기껏해야 1분 컷인데, 넉넉하게 10분, 아니, 30분 이상 안 돌아올 것이 분명해 보이는 뒷모습이었다.
나는 예린이의 작고 동그란 머리통을 쓰다듬었다.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겠네.”
“아니야.”
“멀미 때문에 힘들진 않았어?”
“아니야.”
“자꾸 아니야 할래?”
“흐으으으응!”
예린이가 두 주먹을 꽉 쥐고 부르르 떨었다.
“고생 안 했고, 멀미 안 해서, 아니라고 한 건데, 자꾸 아니야 하지 말라고 하면, ‘이건 정말 아니야.’라고 할 수밖에 없는데에에.”
큰일이네.
이 곤란한 얼굴이 보고 싶어서 자꾸만 장난을 치게 된단 말이지.
나는 예린이 머리통을 슥슥슥슥 쓰다듬었다.
“그런 마음도 몰라주고. 우리 예린이 많이 억울했겠다.”
“아니······ 흐으응!”
“내가 나빴다, 그치?”
“그것도 아니······ 히이잉!”
예린이는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러더니 팔짱을 척 끼고 고개를 팩 돌렸다.
“씨이, 나 대답 안 할 거야!”
이런.
뾰로통하게 부풀린 볼, 이거 엄청 깜찍한데.
괜히 손가락으로 콕 찔러 보고 싶어지게.
“우리 예린이 화났어?”
“흥!”
“음, 어떻게 해야 우리 예린이 화가 풀릴까?”
“흥흥흥!”
“오늘은 아니야 금지하지 마?”
“······정말?”
예린이는 솔깃했는지, 한쪽 눈만 슬쩍 떠서 날 돌아보았다.
“진짜로 나 오늘 아니야 금지 아니야?”
“어.”
“뭐어어어?”
예린이가 입을 떡 벌리더니, 묘하게 눈을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꿍꿍이속이 생긴 모양인데?
“흐으응, 오빠는 맨날 나한테만 아니야 금지하고.”
“내가 너무했네.”
“그럼 오늘은 오빠가 아니야 금지다?”
“좋아.”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까짓 것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예린이는 새끼손가락을 슬쩍 움직여서 내 손가락에 걸어왔다.
“약속이야. 도장 꾹.”
나는 새끼손가락 약속 따윈 안 믿지만.
엄지로 지장까지 찍었으면 별수 없지 뭐.
“됐어?”
“헤헤헤.”
예린이는 뿌듯하게 웃으며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 자. 이거 받아.”
예린이는 비단으로 곱게 싼 한지를 내밀었다.
작성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먹물 냄새가 진하게 풍겨왔다.
“이게 뭔데?”
“할머니랑 내가 준비한 선물.”
나는 비단끈을 풀고 한지를 펼쳤다.
우리 부모님의 사주 궁합에 좋은, 결혼식 날짜가 적혀 있었다.
인왕산 선녀보살에게 우리 부모님의 사주 풀이를 부탁한 적 있었는데.
그때 건넸던 사주가 분명했다.
-정말 이상한 일이군요. 이분들이 아직 살아 있단 말입니까?
-어머니는 작년에, 아버지는 올해 정월에, 둘 다 인재로 객사하여 단명할 팔자인데.
그렇게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우리 부모님의 혼삿날을 직접 받아주셨을 줄이야.
“3주 후.”
나는 서찰을 탁 덮었다.
“딱 좋네.”
“그렇지? 3년 전후로 그만한 길일을 다시 찾긴 어려울 거야.”
좋아!
마음에 든다!
“오빠네 부모님 혼삿날은 내가 아까 할머니랑 같이 받아 왔으니까.”
예린이가 몹시 수줍어했다.
찰랑찰랑 윤기 나는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뱅뱅 꼬았다.
“이따 나랑 같이 꽃구경 안 갈래?”
요망한 데이트 신청이었다.
“그러니까 복채···?”
깜찍한 복채 요구였다.
예린이는 두 손을 꼭 모아 쥐며 눈을 깜빡였다.
“오늘은 오빠가 아니야 금지잖아. 응? 응응응?”
“그래.”
“우와아, 오빠 최고!”
나는 피식 웃었다.
“이러려고 아니야 금지한 거였어?”
“헤헤헤.”
“귀여우니까 봐줬다.”
꽃구경이라.
그거 가지고 되겠어?
“시장 구경은 가봤고?”
“아니? 나 아직 시장 안 가봤어!”
여섯 살 인생, 안 해 본 게 많을 나이지.
“읍내에 장이 선다던데, 갈래?”
“오빠 최고! 진짜 최고, 최고, 최고! 헤헤헤, 신난다! 나 갈래, 갈 거야!”
예린이는 신이 나서 폴짝폴짝 뛰었다.
나는 예린이가 건넨 택일 종이를 살짝 흔들어 보였다.
“그럼 이것만 전해 주고 가자.”
“응!”
예린이가 활짝 웃었다.
이제 아니야 안 하고 응이라는 대답도 잘하네.
착해.
“그럼 난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게. 헤헤헤.”
“얼마 안 걸려.”
“오빠, 3년 후는 절대로 안 돼. 알았지? 절대로 안 되는 거야.”
갑자기 웬 3년 후?
“3주 내로 해결 본다고 해. 안 그러면 어어어어어엄청 아까운 기회를 놓치게 된다구.”
[삐약삐약!]예린이의 어깨에 앉아서 투명한 주작도 날개를 퍼덕이며 크게 울었다.
예린이는 방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러니까 오빠, 파이팅!”
* * *
드르륵.
상견례가 열렸던 방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나왔다.
혼삿날에 대한 의견을 좀처럼 좁히지 못하자, 당사자를 제외한 다른 가족들에게 축객령을 내린 까닭이었다.
드르륵. 탁.
덕분에 지금 이 자리에는 차 회장 부부, 정혁이 외할아버지 부부, 정혁이 부모님.
이렇게 여섯 명만 남았다.
차 회장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일생에 한 번 있는 결혼, 신부는 5월의 신부가 최고라 하죠. 그래서 내년 봄에 식을 올리면 어떨까 합니다만.”
“애가 여덟 살입니다. 계속 혼외자에, 우리 딸을 동거녀로 두시려고요?”
“호적 정리는 이미 확실하고 깔끔하게 끝냈습니다.”
혼외자와 동거녀 소리는 면했다는 뜻이었다.
정혁이 외할아버지는 못마땅한 헛기침을 했다.
“동네잔치까지 연 마당에 질질 끌어서 뭐 좋을 게 있다고. 크흠!”
“인륜지대사가 아닙니까. 성준이가 그룹 부회장이 된 지 얼마 안 되어서 그렇습니다. 제대로 자리 잡으려니 지금 눈코 뜰 새 없이 바쁩니다.”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처자식도 건사 못 할 지경이면 일 때려치워야죠.”
정혁이 외할아버지는 둘러앉은 좌탁을 탕탕 쳤다.
“차 서방, 우리 부동산 회사로 오시게! 거긴 유능한 사람들이 제법 많아서 가족 돌볼 여유 시간은 넉넉할 게야.”
“허?”
“태성건설 키우는 거 보니까 부동산 개발과 운영에도 적성, 재능, 소질까지 아주 확실하더만!”
“그, 그건······!”
차마 아니라고는 말 못 하고.
차 회장은 앓는 소리만 내었다.
정혁이 외할아버지의 눈이 점점 가늘어졌다.
“듣자 하니 동진이가 사부인의 하나뿐인 남동생이라 하지 않으셨소?”
“맞습니다.”
“동진이 오늘내일한다면서요? 사부인의 하나뿐인 아들을 장가보내는 일 아닙니까.”
차 회장은 곤란한 듯 입을 다물었다.
“이러다 사부인 쪽은 일가친척 한 명 없이 외롭게 식을 올리게 생겼소이다.”
정혁이 외할아버지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하게 톡 까놓고 말해 봅시다. 사돈, 이러시는 진짜 이유가 뭡니까?”
“휴우.”
“무슨 꿍꿍이로 결혼식을 자꾸만 뒤로 미루냐는 겁니다. 이러다 정혁이 동생까지 결혼식에 부르게 생겼소이다.”
“뭐? 너희 혹시 둘째 가졌냐?”
차 회장은 막내아들 부부를 돌아보았다.
두 부부는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차 회장 부부는 아쉬운 듯 입맛을 쩝쩝 다셨다.
“아깝······ 흠흠!”
정혁이 외할아버지는 타는 속에 냉수를 벌컥벌컥 마셨다.
탁!
“혹시 동진이 때문에 그러십니까?”
차 회장은 흠칫했다.
“왜요? 동진이가 정혁이를 빼앗아 갈까 봐서요?”
“정혁이는 우리 태성의 동량이자, 미래이자, 희망입니다. 절대로 못 보냅니다.”
차 회장도 냉수를 벌컥벌컥 마셨다.
탁!
“거칠고 험한 일입니다. 성준이도 버티지 못하고 치를 떨면서 뛰쳐나온 곳입니다. 정혁이 이제 고작 여덟 살입니다.”
“차 서방은 여섯 살에 보냈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때는 처남이 건재할 때였고요. 지금은 다르지 않습니까.”
차 회장은 눈을 질끈 감았다.
“정혁이더러 후계자 자리를 맡으라고 하시면요? 이러다 처남이 덜컥 죽기라도 하면요? 그럼 우리 정혁이는 어찌 될 거 같습니까?”
차 회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정씨 집안 재산이 한두 푼입니까? 분명 최측근들이 피 튀기게 살벌한 전쟁을 벌일 겁니다.”
“으음.”
“정씨 집안을 휘어잡기엔 정혁이가 너무 어려요. 손도 못 써보고 당할 겁니다.”
“으으음.”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이거 단순하게 쉽게 여길 문제가 아니로군요.”
“제가 오죽하면 이때까지 정혁이를 쉬쉬하며 숨겼겠습니까.”
두 할아버지들은 동시에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차 회장은 고개를 푹 숙였다.
“비겁하다는 거 압니다. 치졸하다는 것도 압니다. 처남에게는 면목이 없습니다.”
“동진이가 죽으면 정씨 집안의 새로운 수장이 태성그룹에 넣었던 지분을 도로 회수하려고 할 텐데. 그건 어쩌실 겁니까?”
“감수해야죠. 그것까진 제가 어찌할 수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차 회장은 장탄식을 흘렸다.
“그래도 정혁이가 쥐도 새도 모르게 비참하게 죽어나가는 것보다는 이게 낫지 싶습니다.”
“후우우우.”
정혁이 외할아버지도 장탄식을 흘렸다.
“동진이가 그토록 바라던 우리 애들의 혼사였건만. 아무래도 안 되겠지요?”
“사람 목숨이 달린 일 아닙니까.”
두 할아버지가 상견례 당사자들을 보았다.
“들었지? 어쩔 수가 없구나.”
“결혼식, 좀 더 미루자.”
“내년 봄도 조금 이르다 싶다.”
“3년 후는 어떠냐?”
“이왕이면 3년 후 겨울 동지섣달 어떻습니까?”
드르륵. 탁!
장지문이 요란하게 열렸다.
정혁이가 못마땅한 듯이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3년 후우우우?”
그건 내가 반댈세!
정혁이는 들고 왔던 혼례 택일 서찰을 탁자에 탁 내려놓았다.
“인왕산 선녀보살께 받은 혼례 택일이에요.”
“어머나!”
“세상에!”
인왕산 선녀보살 소리에 두 분 할머니들은 입을 틀어막고 좋아하셨다.
인왕산 선녀보살은 고위 공직자와 정치인들은 물론 온갖 유명인사들이 문턱이 닳도록 찾아간다는 당대 최고의 무녀였다.
차 회장과 정혁이 외할아버지는 서찰을 펼쳐 보았다.
“3주 후?”
“아니, 무슨 혼사를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이 치러?”
“식은 태성호텔에서 치르면 되고, 청첩장 돌릴 시간도 충분한데, 뭐가 문제예요?”
정혁이도 속이 타서 단숨에 냉수를 마셨다.
벌컥벌컥! 탁!
“정동진이라는 어르신이 문제라면, 제가 직접 만나서 담판 지으면 되겠네요.”
정혁이는 문득 깨달았다.
예린이가 신신당부하던 3주 내 해결이 무슨 소리인가 했더니.
이거였구만.
< 오빠 최고!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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