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295)
재벌집 만렙 아들-295화(295/416)
295. < 할미만 믿어! >
당연하게도 어른들이 한목소리로 외쳤다.
“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안 된다! 절대로 안 된다!”
내 이럴 줄 알았지.
‘하여간에 걱정도 많으시다니까.’
나를 매번 어린애 보듯 하신단 말이지.
······물론 내 나이 여덟이긴 하지만!
“제가 사채를 썼어요, 그 집안 구역을 건드렸어요, 아니면 뒤통수를 쳤어요?”
아무리 뒷골목 세계라지만, 이 바닥에도 나름 룰이라는 게 있거든요.
나는 어른들을 스윽 돌아보았다.
다들 걱정이 가득해 보였다.
“전 아직 원한을 살 만한 일은 하지도 않았는데, 한집안 어르신을 만나 인사드리러 가는 게 이렇게까지 걱정을 살 일이에요?”
“그건······.”
“동종업계 종사자도 아닌데, 굳이 여덟 살짜리 일반인을 위협해서 뭐에 쓴다고요.”
“······.”
“인사만 하고 올게요, 인사만.”
물론 간 김에 확실하게 해결하고 올 생각이지만!
“정혁아, 이 일은 네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그래, 정혁아. 괜히 먼저 나섰다가 골치 아픈 일에 휘말릴 수가 있어.”
나는 코웃음을 쳤다.
“그게 우리 부모님이 결혼도 못 하고 어른들 눈치 보며 살아야 하는 이유예요?”
“······.”
두 할아버지는 입을 다물었다.
나는 콕 짚어 할머니를 돌아보았다.
“그분 아프시다면서요. 곧 돌아가실지도 모른다면서요. 시간이 없다면서요.”
할머니는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할머니는 그래도 괜찮아요? 제가 이렇게 있는데, 우리 아빠가 짝을 찾았는데, 끝까지 말 안 하고 모른 척하실 거예요?”
“······휴우.”
할머니는 괴로운 듯 손으로 눈을 가렸다.
그 모습에 차마 더는 들쑤실 수 없어서, 이번엔 할아버지를 돌아보았다.
“태성그룹이 확장할 때 그분께 신세 많이 졌다면서요.”
“그건 태성그룹 지분으로 갚았다.”
“그래서 그쪽 집안의 룰에 따라 연리 67.8% 꼬박꼬박 갚고, 원금 상환까지 끝내셨어요?”
“······.”
안 했구만!
“크흠, 하지만 이 바닥 룰에 따라 배당과 대주주 권리 행사는 확실하게 챙겨줬다.”
“배당이라고 해 봤자 뭐 얼마나 된다고요.”
연리 67.8%에 비하면 코딱지 아닌가?
“더구나 대주주 권리 행사라고 해도, 지금껏 태성에 우호적으로 움직여줬다면서요.”
“그, 그건······!”
“이만하면 사돈이라고 엄청 많이 봐줘서 양보한 것 같은데. 아니에요?”
할아버지는 목덜미가 붉게 달아올랐다.
양심의 색깔이었다.
할아버지는 아버지를 슬쩍 돌아보았다.
“양보는 우리도 했어. 성준이를 그쪽 집안 후계자로 내어주기로 했으니까.”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어땠죠?”
“······.”
우리 아버지, 중간에 못 견디고 뛰쳐나왔다면서요.
그래서 정씨 집안이 맺어준 혼담도 깨어지고, 태성건설에 들어가 태성을 위해 일했잖아요.
그 결과, 정씨 집안의 후계자 자리는 공석이 되었고, 최측근들의 전쟁이 예견된다면서요.
“상대가 의리를 다했을 땐 우리도 의리를 지켜야 하는 법이에요.”
난 그렇게 살아왔다.
아무리 더럽고 추잡한 뒷골목 세계라고 할지라도.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이고, 지켜야 하는 룰이라는 게 있었다.
“맺고 끊는 것은 확실하게 하자고요. 설사 그게 이쪽의 손해가 될지라도.”
어른들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입을 달싹였다.
하지만 그보다 한발 빠르게 내가 선수 쳤다.
“저에게 양심을 외면하고, 의리를 저버리는 일이 부모님을 축복하는 일보다 먼저라고 가르치실 셈이에요?”
어른들은 입을 딱 다물었다.
그저 앓는 소리만 낼 뿐이었다.
“사채업도 직업이고, 검은돈도 돈이에요. 여기서 그 어르신 도움 한번 안 받은 사람 있으면 손 들어봐요.”
외할머니가 슬그머니 손을 올리려다가, 눈치껏 도로 내렸다.
크흠!
“제 혈관에도 1/4이나마 정씨 집안의 피가 흘러요.”
할머니가 내게 물려주신 혈통이었다.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분이잖아요. 늦기 전에 찾아뵙고 인사드리고 싶어요.”
나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제가 우리 아빠 아들이라고, 우리 아빠 놓아줘서 고맙다고 할 거예요. 그럼 안 되는 거예요?”
“안 되는 게 어디 있어? 돼! 우리 정혁이 말이 다 맞지!”
할머니가 벌떡 일어났다.
할머니의 이 표정, 본 적 있다.
며느리들을 잡겠다고 작심했을 때에도 이런 얼굴을 하고 계셨다.
할머니의 두 눈은 그때처럼 이글이글 불타오르고 있었다.
“이 정도면 나도 참을 만큼 참았어요. 더는 못 참아!”
할머니가 좌탁을 움켜쥐자, 할아버지는 흠칫했다.
여차하면 상을 엎겠다는 소리!
할머니는 좌탁을 움켜쥐고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 할아버지를 야멸차게 노려보았다.
“우리 정혁이 데리고 친정에 다녀올 테니, 그런 줄 알아요.”
“여보!”
“우리 친정집 룰대로 원금 강제 회수하기 전에 그 입 닥쳐요.”
“임자!”
“사돈 우대 박탈당하고 도로 회장님 소리 듣고 싶거들랑 어디 한번 날 뜯어말려 보든가!”
“마누라!”
이혼도 불사하겠다는 뜻!
할아버지는 찍 소리도 못 하고 입을 다물었다.
우리 할머니의 협박, 역시 내 스타일이야!
“사돈도 마찬가지예요. 이러시면 섭섭하죠.”
할머니의 화살은 이번엔 외할아버지를 향했다.
“내 동생과 친구라면서요. 일본에서 어려서부터 같이 유학했고, 독립군에 같이 군자금 대던 동지라면서요. 목숨 걸고 의리를 지킨 유일한 혈맹이었다면서요.”
“크, 크흠!”
“내 동생이 제 핏줄을 잡아먹는 괴물로 보이시나 봐요?”
“어억!”
외할아버지도 찍소리도 못 하고 입을 다물었다.
정씨 집안 남자들은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을 거치며 전부 죽고 달랑 한 명만 남았더랬다.
그걸 알면서도 반박할 만큼 외할아버지는 모질지 못했다.
할머니는 이번엔 아버지와 어머니를 보았다.
“동진이가 수진이 뒤를 봐준 이유가 뭐겠어? 네가 가족이 될 거라고 여겼기 때문이야.”
“네.”
시어머니의 서슬에 어머니는 바로 백기투항했다.
“성준이 너도 그래. 네가 후계자 자리를 박차고 나왔어도 동진이는 의무 강제 이행을 요구하지 않았다.”
“예.”
“그 녀석 성질에 네 머리채를 잡고 청계산으로 끌고 가거나, 손가락 몇 개 잘랐어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다.”
“압니다.”
“지금껏 네가 멀쩡하게 숨 쉬며 태성그룹의 일원으로 사는 것도, 그 녀석의 관용이라는 것을 안다면.”
할머니는 딱 잘라 말했다.
“빚 갚는 셈 치자.”
“어머니, 그렇겐 못 합니다.”
평소엔 쓸데없이 고집을 부리는 법 없는 아버지였건만.
어째 이번엔 좀처럼 물러설 기색이 없었다.
“제가 진 빚이고, 제가 벌인 일이니,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어쩌려고? 네가 도로 정씨 집안에 들어가 가업을 잇겠다는 말이니?”
“예.”
“도저히 못 하겠다고 뛰쳐나올 때는 언제고.”
“그땐 어려서 뭘 잘 몰랐습니다.”
“죽으면 죽었지 평생 이렇게는 못 살겠다며? 거품 물고 날뛰었던 건 기억하니?”
“그러니까요. 그랬었으니까요.”
아버지의 각오는 흔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어떻게 정혁이를 팔아 제 빚을 갚겠습니까. 차라리 제가 전부 끌어안고 가겠습니다.”
“그때 썼던 혈서는 어쩌고? 진짜 죽고 싶어서 그래?”
모자의 언성이 더 높아지기 전에.
짝짝.
나는 손뼉을 쳐서 주의를 돌렸다.
“문제의 당사자는 아직 아무 말도 안 했거든요? 왜 여기서 열을 올리세요.”
“정혁아.”
아버지의 우려를 모른 척하기로 했다.
“정씨 가문 일은 전적으로 정씨 가문 수장의 뜻에 달린 거 아니겠어요?”
“그럼, 우리 정혁이 말이 다 맞지!”
할머니는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남의 집안일에 왈가왈부하는 것은 여기까지 하기로 해요.”
즉각 반발이 뒤따랐다.
“정혁이 차씨 집안 핏줄이야!”
“이씨 잡안 핏줄이기도 합니다! 커흠!”
“아니, 우리 정씨 집안이 뭐가 어때서요? 어린애 잡아먹는 마귀 소굴이라도 되는 줄 아세요?”
하여간에 상견례 자리.
집안을 따지기 시작하면 싸우잔 소리밖에 안 된다.
짝! 짝! 짝!
“이만하면 충분히 알아들었어요.”
“뭘?”
“이렇게 걱정하시는 것도 나름대로 피치 못할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거요. 분명 저를 걱정해서겠죠?”
어른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씩 웃었다.
“그렇다면 너무 걱정하실 것 없어요.”
제가 사채업자 한두 번 만나봅니까?
그 바닥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모르는 얼뜨기 애송이도 아니고.
······이걸 뭐라 설명할 방법이 없네?
“준비 단단히 하고 갈게요. 됐죠?”
다 죽어가는 집안 어르신 한 분 만나러 가는 게 이래야 할 일인가 싶긴 하다만.
어른들이 이렇게까지 걱정하시니 별수 없지.
‘솔직히 나도 궁금하긴 하거든.’
정씨 일가의 하수인 중 하나라는 동남쪽 스컹크가 일본을 떨쳐 울릴 거물이라는데.
어째 정씨 일가의 후계자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을 수 있지?
‘이상하잖아. 내가 이래 봬도 나름 사채왕이라 불리며 한가락 하던 지하금융계의 거물이었는데.’
내가 활동하던 시기 이전.
그러니까 대한민국 지하금융계를 주름잡던 전대(前代) 거물이라고 하면 명동 송골매, 종로 금이빨, 까치산 방 여사, 말죽거리 말대가리를 꼽을 수 있었다.
‘사채업은 거들떠도 안 보던 밀매왕까지 아는 마당에, 사채업으로 잔뼈가 굵었던 정씨 일가를 내가 몰랐다는 게 말이 되나?’
솔직히 정동진이라는 이름 석 자조차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거든.
호기심과 의구심이 물밀듯이 몰려왔다.
그게 내가 정동진 어르신을 꼭 한 번은 만나 뵈어야겠다 생각한 또 다른 이유였다.
“준비? 뭘 어쩌려고?”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랬어요. 할아버지, 김 비서님께 잠시 도움을 받고 싶은데요. 안 될까요?”
“안 될 것 있나. 고 실장도 붙여줄 테니까 데려가.”
“외할아버지, 일본 부동산 회사 회계 장부를 잠깐 빌려주실 수 있나요?”
“안 될 것도 없지. 이참에 일본 부동산 관련 권리증까지 다 가져가라.”
나는 씩 웃었다.
“그럼 만반의 준비를 하고 찾아가 인사드리는 것으로.”
“그래, 그건 이 할미만 믿어! 우리 정혁이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할머니는 이글이글 불타는 눈으로 좌중을 훑어봤다.
“여기에 있는 그 누구도 내 손자가 내 동생을 찾아가 인사하는 일에 왈가왈부할 수 없다. 정씨 집안 핏줄이 정씨 집안 어른에게 인사도 못 해요?”
탕!
“아무리 우리 집안이 사채업을 한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막돼먹은 집안으로 괄시받을 정도는 아니죠!”
할머니의 서슬이 퍼랬다.
“이래도 더 하시겠다면 우리 집안을 무시하는 것으로 간주하겠어요.”
상견례 자리에서 상대측 집안을 무시한다는 것은 곧 혼사를 파투 내겠다는 뜻!
그 누구도 할머니의 말에 토 달지 못했다.
“좋아, 대화 끝. 정혁아 가자!”
“네, 할머니.”
나는 할머니의 부름에 응해 할머니 손을 꼭 잡았다.
할아버지가 깜짝 놀라서 외쳤다.
“여보, 마누라! 상견례는 어쩌고?”
“알아서들 하고 계세요.”
“뭐야?”
“우리 정혁이가 대한민국에서 제일 용하다는 인왕산 선녀보살에게 길일을 받아 왔다잖아요. 그날에 식 올려요.”
“임자!”
할머니는 뒤도 안 돌아보고 걸어갔다.
당연히 나도 할머니의 손을 잡고 쫄래쫄래 따라갔다.
“이렇게 막무가내로 나갈 거야? 자네 혼주야!”
“난 뭐 손자 배웅도 못 해 줘요? 아우, 이 지긋지긋한 늙은이 잔소리!”
“······.”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13살 차이가 나는 재혼초혼 커플이었다.
그것으로 게임 끝.
할머니는 성질머리를 숨기지 않고 장지문을 냅다 열어젖혔다.
드르륵. 쾅!
장지문 닫는 것도 호쾌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툇마루로 나온 순간 할머니는 머리통부터 부여잡았다.
“아오, 이놈의 성질머리! 좀만 더 참을걸!”
아니죠.
참으시면 제가 섭섭했을 거예요.
그러라고 부추긴 일인데요.
“이러다 우리 성준이 혼사가 파투 나기라도 하면······ 아오!”
할머니가 힐끔힐끔 내 눈치를 살폈다.
“정혁아, 할미가 너무 눈치 없었지? 휴우, 미안해.”
“미안해하실 것 없어요. 이 정도로 파투 날 혼사 아니잖아요.”
우리 부모님은 하늘이 내린 천생연분이라고요?
심지어 사주단자까지 어려서부터 교환한 사이!
게다가 두 분 사이엔 저라는 사랑의 결실도 있거든요.
나는 파르르 떨리는 할머니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다 잘될 거예요.”
“결혼이야 걱정 안 한다. 시기가 문제지, 혼사 자체는 문제가 없어. 내가 걱정하는 건······.”
“할머니도 참. 제 걱정은 하지 말라니까요.”
나는 할머니를 꼭 끌어안았다.
“제 옆에는 할머니가 계신데, 뭐가 걱정이에요?”
“그럼, 우리 정혁이 말이 다 맞지! 이 할미만 믿어라!”
할머니는 시원하게 웃었다.
“동진이만 성질머리 있나? 나도 있어! 성질머리라면 나도 어디 가서 꿇리진 않는다?”
할머니는 한쪽 눈을 찡긋해 보였다.
“싸우면 내가 이겨. 끝.”
“······.”
설마 오늘내일한다는 중병 환자랑 머리채 잡고 싸우겠단 소리는 아니겠죠?
“그러니까 우리 애기는 걱정할 것 없어. 내가 책임지고 이 문제 해결하마! 할미 믿지?”
할머니가 나서서 해결될 일이었다면 진즉 정리된 지 오래일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나는 할머니에게 엄지를 들어주었다.
지금의 이 마음가짐, 아주 좋습니다!
“우리 할머니 최고!”
“뭐? 호호호. 그럼, 그럼!”
할머니는 나를 꼭 끌어안았다.
할머니에게서는 부드럽고 포근한 특유의 체취와, 시원하고 차분한 향수 향기가 났다.
“할머니, 제 편 들어줘서, 제 말에 힘 실어줘서 정말 고마웠어요.”
“고맙긴. 그건 내가 할 소리인데?”
할머니는 빙그레 웃었다.
“우리 동진이를 무섭다 피하지 않고 챙기는 건 너밖에 없더라. 정말 고맙다, 정혁아.”
할머니가 무릎을 굽히고 나와 눈높이를 맞췄다.
“내가 너를 데리고 동진이를 만나려는 데엔 사실 이유가 하나 더 있거든.”
“뭔데요?”
“다른 건 몰라도 정씨 집안 대대로 물려오는 가보. 그것만큼은 꼭 받아낼 생각이야.”
정씨 집안 가보?
그런 말도 들어본 적 없다.
솔깃했다.
< 할미만 믿어!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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