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297)
재벌집 만렙 아들-297화(297/416)
297. < 꽃반지 >
심란하다.
언덕배기 그늘 아래라 바람도 잘 들고, 온 지천이 이름 모를 꽃밭이라 향기도 좋은데.
나는 그저 한숨을 푹푹 내쉴 수밖에 없었다.
“하아아아······.”
예린이는 천진난만한 얼굴로 꽃을 한가득 안아 들며 방긋방긋 웃었다.
“시도 때도 없이 자꾸 한숨 쉬면 복 떨어지는 거야. 오빠 한숨 뚝!”
“난 미신 따윈 안 믿어.”
나무 그늘 아래서 강아지풀을 흔들며 뒹굴대던 저승사자가 불쑥 물었다.
[진짜로?] [삐약삐약?]투명한 주작도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내며 동조했다.
나는 또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진짜로 안 믿겠냐?’
내가 저승 가서 염라대왕과 전생까지 함께 보고 온 사람이야.
심지어 시간을 거슬러 회귀까지 했단 말이지.
‘염라대왕께서 최상급으로 골라 챙겨주신 오복인데. 그게 한숨 좀 쉰다고 떨어져 나가는 거였어?’
[······.] [······.]저승사자와 주작은 모른 척 손가락으로 땅바닥을 긁었다.
“오빠 손.”
“손.”
예린이는 고사리처럼 작은 손가락으로 열심히 내 손에 밀어넣는다.
꽃반지였다.
진짜 꽃으로 만든 꽃반지.
토끼풀 꽃반지가 하나, 강아지풀 꽃반지가 하나, 민들레 꽃반지가 하나 더.
“헤헤헤, 어때?”
“······고생했겠네.”
차마 안 예쁘단 소리는 못 하겠다.
“예쁘지?”
“······실력이 점점 일취월장하는걸?”
오늘은 아니야 금지하기로 예린이랑 약속했거든.
남아일언중천금인 법.
툭.
예린이가 내 손에 꾸역꾸역 밀어넣었던 토끼풀 반지가 풀려서 풀밭에 떨어졌다.
도미노처럼 강아지풀 꽃반지도, 민들레 꽃반지도 덩달아 풀렸다.
예린이는 두 손으로 제 얼굴을 부여잡고 비명을 질렀다.
“아니야아아아!”
벌써 스물두 번째 반복되고 있는 비극이었다.
찰칵!
그 모습을 유종태는 즉석 사진으로 박제했다.
예린이가 활짝 웃는 모습만 찍기엔 다른 표정들도 너무 귀엽다나 뭐라나.
챙겨왔던 즉석 사진 필름을 오늘 전부 동낼 작정인지, 유종태는 쉬지 않고 셔터를 눌렀다.
-사진 한 장에 오백 원.
-저 유종태에게 맡겨 주십시오, 도련님!
그렇게 합의된 뒷거래였다.
“괜찮아! 아직 실망하기엔 일러, 오빠.”
예린이는 제일 예쁜 토끼풀꽃을 고른다며 쪼그린 채 웃었다.
“또 만들면 되거든!”
씩씩하다, 우리 예린이.
“아직 꽃은 많아!”
끈기 있다, 우리 예린이.
굳이 안 그래도 되는데.
“내가 꽃반지 사준다니까.”
“어허, 오빠는 거기 얌전하게 앉아 있어!”
“······그래.”
아니야를 금지당한 이상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예린이는 각양각색의 꽃을 한 묶음이나 꺾었다.
민들레꽃, 능소화, 부처꽃, 원추리꽃, 어성초꽃, 패랭이꽃, 달개비꽃, 접시꽃, 채송화, 금송화까지.
시골 들판에 흔하게 피는 잡꽃들이었다.
“예린이는 장미꽃 좋아한다며.”
나는 싱싱하고 향긋한 붉은 장미 한 송이를 건넸다.
“유 팀장님이 한 다발이나 꺾어 왔는데, 이건 왜 거들떠도 안 봐?”
“장미꽃엔 가시가 있는걸.”
예린이는 방긋 웃었다.
“오빠 손에 끼워줄 꽃반지잖아. 찔리면 어떡해.”
“만드는 네 손 걱정은 안 하고?”
“아······!”
그걸 깜빡했다는 듯이 이마를 탁 치지 말라고!
우리 바보 예린이, 못 말리겠다.
“시장에 가면 더 화려하고 예쁜 꽃들이 가득한데?”
나는 이때다, 하고 은근슬쩍 물었다.
“백합은 어때?”
“좋지. 예쁘잖아.”
“해바라기는? 수선화는? 튤립은? 국화는? 안개꽃은? 이 중에 싫어하는 꽃 있어?”
“아니이이? 없는데? 다 내가 좋아하는 꽃들인데?”
내 이럴 줄 알았지!
꽃집에서도 눈을 못 떼더라니.
꽃다발 하나 사주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넌 계속 됐다고 고개만 저었잖아.
내 탓이었겠지.
가난한 사랑은 죄였다.
“예린이는 꽃 좋아하는구나.”
“응!”
예린이는 밉지 않게 눈을 흘겼다.
“나만 그런 거 아니다? 할머니랑 신당 언니들이 말했어. 세상에 꽃 싫어하는 여자는 없다고.”
역시 그렇지?
고사리처럼 작은 손으로 낑낑대며 꽃반지를 엮느라 바쁜 예린이 옆에 쭈그려 앉았다.
“꽃반지 사준다니까.”
“또, 또, 또!”
또 나왔다, 예린이 고집쟁이 타임!
나는 두둑한 동전지갑을 팡팡 쳤다.
보잘것없던 그 시절의 내 주머니 사정과는 차원이 달랐다.
“너한테 꽃반지 사줄 돈도 없을까 봐? 나 그 정도 능력은 돼.”
허세가 아니었다.
나 이제 재벌3세거든!
“왜 그렇게 싫은데? 너한테 꽃 사주고 밥 굶을까 봐?”
“금은방 다 털어주겠다며······.”
“그럼! 우리 예린이 다 가져!”
기뻐하는 네 얼굴이 보고 싶었거든.
“됐어, 됐어! 나 보석 따윈 딱 질색이야!”
“진짜로?”
“어, 으으음······.”
예린이는 오늘 아니야를 금지당한 것도 아닌데.
차마 아니야란 말을 내뱉지 못했다.
“그때 보니까 너 오로라공주 보석세트도 가지고 있더라?”
“그, 그건······!”
“할머니랑 신당 언니들이 그건 말 안 했어? 세상에 보석 싫어하는 여자가 어디 있다고.”
“으으으으!”
예린이는 벌떡 일어났다.
“씨이, 오빠는 바보야! 내 마음도 몰라주고!”
결려들었다!
“네 마음은 어떤데?”
“난 그냥······! 난 그냥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행복하고 즐거운데······.”
예린이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손가락을 꼬물거렸다.
“오빠가 나 때문에 혼나는 거 싫단 말이야······.”
“내가 왜 혼나는데?”
“사치했다고. 쓸데없이 돈 함부로 막 쓴다고. 여자 때문에 벌써부터 싹수가······. 흠흠, 하여튼!”
예린이는 말을 하다 말고 엄한 눈을 해 보였다.
“오빠가 나 때문에 그런 말 듣는 거 싫어.”
“내가 여자에 홀려서 가산을 탕진하는 개망나니 소리를 들을까 봐?”
“부모님이 힘들게 번 돈이잖아.”
“그럼 내가 번 돈이라면 괜찮다는 소리네?”
나는 예린이 손에서 민들레꽃을 가로챘다.
노란 게 황금색 같아서 딱 좋네.
반지는 역시 금반지지!
‘금은방 한 개 통째로 사줘봤자 티도 안 날 텐데.’
참 쓸데없는 걱정이라니까.
그래도 내 걱정해 준 거니까 봐줬다!
예린이가 종일 끙끙대면서 만들던 민들레 꽃반지를 이젠 내가 만들기 시작했다.
“우와아아······! 오빠 엄청 잘한다아아······!”
까짓것 별로 어렵지도 않구만!
“예린이 손.”
“손!”
“착해.”
나는 예린이 손에 민들레 꽃반지를 끼워주었다.
“우와아아! 딱 맞아!”
예린이는 두 손을 쫙 펼쳐서 반짝반짝한 눈으로 꽃반지를 내려다보았다.
그랬어?
널 위해 준비했던 그때의 그 결혼반지도 네 손가락에 딱 맞았을까?
그때의 너도 이런 얼굴로 결혼반지를 낀 네 손을 들여다보며 웃어줬을까.
궁금했다.
“그렇게 좋아?”
“응!”
나는 이번엔 흰 토끼풀꽃을 땄다.
“이 금반지가 네 금반지냐, 이 은반지가 네 은반지냐?”
한번 만들어 봤다고.
이번엔 더 빠르게 풀꽃반지를 만들 수 있었다.
“아니, 은반지는 너무 싸구려니까 백금반지가 좋겠다.”
“헤헤헤. 이 금반지도, 저 백금반지도 제 반지가 아닙니다. 제 반지는 풀꽃반지입니다.”
“예린이 정직해. 그럼 다 너 가져라.”
“꺄하하하.”
이게 뭐라고.
예린이는 배꼽 잡고 웃었다.
“그럼 내 풀꽃반지도 만들어주는 거야?”
“까짓것. 뭐로 만들어줄까?”
“이거, 이거 장미꽃!”
흐음?
“가시에 찔려서 안 된다며?”
“괜찮아. 내 손가락이니까. 좀 찔려도 돼.”
“그럼 꽃반지 만드는 내 손가락은?”
“아······!”
또 이마를 탁 치냐?
우리 바보 예린이, 내가 못 산다 정말.
“예린아, 이렇게 하면 어때?”
“뭘?”
“남아일언중천금이니까 장미꽃반지는 꼭 선물해야겠고, 나는 저걸 꽃반지로 만들 능력이 없으니,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보는 거야.”
“오! 좋아!”
나는 벌떡 일어났다.
“그럼 가자.”
“풀꽃반지 전문가가 어디 사는지 오빠는 알아?”
“그럼.”
“여기서 많이 멀어? 어디에 사는데?”
“금은방.”
“······.”
그렇게 속았다는 눈으로 보지 말아줄래?
“이 금반지, 저 백금반지, 이 장미꽃반지 다 예린이 꺼라며.”
나는 한쪽 눈을 찡긋했다.
“혼나지 않게, 남들 몰래 사주면 되겠네?”
“어어어?”
‘이게 아닌데?’ 하는 표정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딴 주머니 몰래 차기엔 역시 은닉자산이 최고지. 반지 맞추는 김에 금괴도 맞출까?”
“어억! 아니야!”
예린이는 허리에 손을 척 얹었다.
“오빠, 그러면 안 되는 거야.”
“왜 안 되는데?”
아하.
“몰래 산다고 다 검은돈은 아닌데. 영 꺼림칙하면 돈세탁 확실하게 해서 줄게.”
“아니야.”
“증여세나 세금 추적이 부담돼?”
“아니야.”
“차명으로 돌려줘? 아니면 가명으로?”
“아니라고!”
예린이는 머리를 짚었다.
“오빠가 자꾸 그러면 나 버릇 나빠진단 말이야.”
“괜찮아. 버릇 좀 나빠지면 어때?”
너 평생 참았었어.
말도 못 하고 혼자 속으로만 끙끙 앓고 살았어.
반지하 월세방에서는 이불을 뒤집어쓰고서.
삼청동 한옥집에서는 묵언수행하면서.
혼자 내 딸을 낳아 내 액막이를 자처하느라 머리도 하얗게 셌었다고, 너.
네 수명을 깎아가며 그 고생을 했으면서, 나한테 생색 한 번을 못 냈어.
“안 돼, 안 돼! 버릇없는 여자애는 아무도 안 좋아해.”
“괜찮아. 내가 좋아해.”
“아앗······!”
그렇게 한 방 먹었단 얼굴 할 것 없어.
아직 난 제대로 시작도 안 했거든.
“그러니까 딴 놈한테 갈 생각 하지 말고 나한테 와.”
예린이 손가락에 토끼풀 꽃반지를 끼워주었다.
“응이라고 대답해. 아니야라고 우길 수 있어도.”
예린이는 멍하니 날 올려다보았다.
나는 빙그레 웃었다.
“그래줄 거지?”
여름의 습한 바람에 예린이의 길고 부드러운 머리칼이 하늘하늘 흩날렸다.
나무 그늘 사이로 들어오는 여름의 햇살이 보석처럼 부서져 내렸다.
예린이의 품에 온갖 잡꽃을 꺾어 묶은 꽃다발을 한 아름 안겨주자.
빨개진 예린이가 그림처럼 웃었다.
“응!”
찰칵!
타이밍 좋게 터지는 즉석 사진기 플래시.
예린이는 온갖 예쁜 것들 사이에서 반짝반짝하게 빛났다.
나도 그 빛나는 순간에 함께 있었다.
“매해 꽃반지랑 꽃다발을 사줄까 해.”
진심이었다.
“올해는 네 뜻대로 풀꽃반지로 양보하겠지만, 내년부터는 네가 양보해.”
나는 고사리같이 자그만 손을 만지작거렸다.
“넌 해마다 자랄 테고, 손가락도 해마다 클 테니까.”
작은 옷에 몸을 궁색하게 끼워넣을 수 없으니 새 옷을 사잖아.
작은 손가락에 반지를 우겨 낄 수는 없으니까 새로 사줄게.
그러면 사치 아닌 거 맞지?
“더는 네 손가락이 크지 않아서 새로 반지를 맞출 필요가 없게 되면.”
나는 예린이의 손등에 입술 도장을 찍으며 올려다보았다.
“그땐 청혼 반지를 선물할게.”
나는 씩 웃었다.
“그때도 응이라고 대답하는 거야. 알았지?”
나는 벌떡 일어났다.
아침밥을 먹다 말고 불쑥 결혼하자 청혼하고 내뺐던 그때처럼.
아니야란 말을 듣고 싶지 않아서.
하지만 그때와는 다르게 내 옷자락을 꼭 붙잡는 작은 손이 있었다.
“응!”
예린이는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웃고 있었다.
솜사탕처럼 녹아내릴 것 같은 웃음이었다.
“약속했다?”
“좋아! 자, 여기 새끼손가락!”
“그거로 되겠어?”
어림없지!
나는 동전지갑을 팡팡 쳤다.
“난 말보단 문서를, 새끼손가락보단 지장을 더 믿거든?”
“아하, 눈에 보이는 증거! 이해했어.”
예린이는 내 손바닥 위에 민들레 꽃반지와 토끼풀 꽃반지를 조심스럽게 올렸다.
“망가지지 않게 잘 간직하고 있어야 해.”
“······.”
눈에 보이는 증거라더니. 이거였냐.
나더러 14년 동안이나 이걸 물증이랍시고 고이 간직하고 있으라고?
······이걸 드라이 플라워로 만들어, 말어?
“가자, 오빠.”
음?
“꽃반지 사러 가야지!”
예린이는 여자애용 크로스백을 팡팡 치며 말했다.
“오빠한테 꽃반지 사줄 돈도 없을까 봐? 나도 그 정도 능력은 돼.”
허세가 아니었다.
예린이로 말할 것 같으면 요즘 삼청동에서 알음알음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용한 애기무당!
복채로 받은 돈이 제법 두둑할 터였다.
“나만 해마다 크나? 오빠도 해마다 큰다?”
예린이는 온몸을 배배 꼬며 수줍게 웃었다.
“이왕에 반지 맞추는 거, 커플링은 어때?”
깜찍하게도 눈을 요망하게 깜빡거리면서.
내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달콤한 제안이었다.
“그러지 뭐.”
아니, 커플링이라잖아.
내가 그걸 한 번도 못 껴봤어!
전하지 못했던 결혼반지만 책상 서랍에 덩그러니.
평생 그걸 보면서 혼자 온갖 청승을 다 떨었다니까?
“헤헤헤. 오빠, 최고!”
오늘의 난 아니야란 대답이 금지되었기도 하고.
······흠흠, 남아일언중천금!
* * *
“예, 누님. 다른 이라면 몰라도 성준이 아들의 인사라면 꼭 받고 싶군요.”
달칵.
전화기를 내려놓는 남자.
그의 손등에 꽂은 링거줄 끝엔 크기도 색도 다른 링거병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링거줄만이 아니었다.
머리맡에 놓인 산소통에서 나온 줄,
침대 옆에 놓인 심박수 측정 기계와 연결된 줄,
침대 밑에 놓인 소변통으로 흘러드는 소변줄까지.
그 외에 용도를 한눈에 짐작할 수 없는 의료기에 달린 줄이 어지럽게 남자의 몸과 이어져 있었다.
“흐음. 정씨 집안의 피를 이은 사내아이라.”
남자는 턱을 쓰다듬었다.
대낮에도 암막 커튼을 쳐서 온 방 안이 어둠 속에 잠겼건만.
암막 커튼의 틈으로 비쳐 드는 한 줄기 햇살이 그의 얼굴을 비추었다.
한겨울의 마른 장작처럼 깡마른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이게 얼마 만에 보는 주인님의 웃음이란 말인가.’
옆에서 수발을 들던 남자가 놀란 눈을 크게 떴다.
“누님의 용건이라면 뻔하지.”
정씨 집안의 가보.
남자는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깡마른 손가락엔 동백꽃 문양 한가운데에 ‘定(정)’이란 글자가 새겨진 금반지가 헐렁하게 끼워져 있었다.
남자는 손을 들었다.
“연락 돌려.”
“설마 일본에 나가 있는 동남쪽 스컹크까지······.”
“물론이다.”
남자는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전원. 긴급 소집령 띄워.”
< 꽃반지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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