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299)
재벌집 만렙 아들-299화(299/416)
299. < 과거의 악연 >
스승님이 아버지를 ‘성준 도련님’이라 칭할 줄은 몰랐다.
“송 어르신께서는 정씨 집안의 청지기 출신으로, 후계자 경합 후보 중 한 명이십니다.”
김 비서는 눈치껏 부연 설명을 보탰다.
“아버님께서 정씨 집안에서 후계자 수업을 받을 때, 곁에서 보필하셨던 분이 바로 송 어르신이기도 합니다.”
솔직히 놀랐다.
스승님이 어린 아버지를 맡아 키워내셨을 줄이야.
‘하기야. 스승님은 어린애들에게 약하셨지.’
길바닥에 버려져 오갈 데 없는 애들을 주워다 키우셨을 정도로.
나도, 사형들도 그렇게 스승님과 연을 맺었다.
한여름의 어느 날, 너무 배가 고파서 쓰레기통을 뒤져 남이 먹다 버린 빵을 덥석 베어 물었을 때였다.
탁!
누군가 내 손을 쳐내고 강제로 입을 벌리게 만드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더니 다짜고짜 손가락을 내 목젖에 집어넣는 바람에.
난 닷새를 내리 굶다 겨우 먹게 된 음식을 게워내야만 했었다.
서러워서 악다구니가 치밀었다.
-씨이! 내 빵!
-눈깔이 참으로 형편없는 놈이로구나.
스승님은 혀를 찼다.
-딱 봐도 쥐약을 뿌려놓은 빵을 좋다고 주워 먹어? 너 그러다 쥐도 새도 모르게 뒈진다.
-쥐약 먹고 죽으나, 배곯아 죽으나!
-부모님은 너 이러고 다니는 거 아시냐?
-알 게 뭐예요! 이미 오래전에 돌아가셨거든요?
-쯧, 따라와라.
그게 우리의 첫 만남이었다.
<송골매 전당포>
-앞으로 여기서 일을 도와라. 내 삯은 넉넉히 주마.
길바닥 생활 2년 만에 처음 얻게 된 어른의 보호였다.
스승님 덕분에 배곯지 않는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스승님은 천벌 받아 박복했던 내 인생, 유일하게 잡을 수 있던 동아줄이었다.
나랑 적게는 네 살, 많게는 열한 살 차이가 나는 심술 맞은 사형들이 없었다면.
어쩌면 나도 꽤 평온하고 즐거운 시절 보낼 수도 있었을 텐데.
-쥐방울만 한 게 벌써부터 스승님 눈에 들려고 살랑살랑 꼬리나 쳐대고.
퍽!
다섯째 사형의 발길질에 난 바닥을 굴렀다.
-창놈 같은 새끼. 여자애들이 잘생겼다고 꺅꺅대니까 진짜 뭐라도 된 줄 알고. 퉷!
틈만 나면 날 때리던 다섯째 사형 때문에 난 온몸에 멍이 가실 날이 없었다.
-재수 없는 새끼. 똑똑하면 다냐? 너나 나나 부모 없는 건 다 똑같아!
내 실적이 좋으면 좋을수록 더욱더 견제가 거세졌다.
어떤 날은 주먹질, 어떤 날은 발길질, 어떤 날은 담배빵, 또 어떤 날엔······.
막내라고 봐주는 법이 없었다.
약했기에 온갖 궂은일을 떠맡아야 했다.
-손빨래 안 했냐? 감히 내 속옷을 세탁기로 돌려?
-잘못했어요. 물이 너무 차가워서······.
-이 새끼가 빠져가지고.
퍽!
그렇게 매일 맞고 살았다.
눈물 없이는 하루도 잠들지 못할 만큼.
그러던 어느 날, 그러니까 내 나이 15살 때 일이었다.
큰 사형의 명에 따라 한겨울 밤 뒤뜰에 나가 군고구마를 굽고 있었는데.
몰래 등 뒤로 살금살금 다가온 넷째 사형이 내 머리에 불을 놓았다.
-으아악!
촤악!
넷째 사형이 내게 끼얹은 건 등유였다.
그 일로 난 심한 화상을 입었다.
며칠 후, 스승님의 대질 심문 앞에서 넷째 사형은 시치미를 뚝 떼었다.
-억울합니다! 저 새끼가 혼자 화로 앞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다친 것을 왜 내 탓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맞습니다, 스승님. 제가 똑똑히 봤습니다! 쟤가 군고구마 몰래 훔쳐 먹으려다가 그만 머리에 불이 붙었다니까요?
자리에 없던 셋째 사형은 증인을 자처했었다.
두 사형은 죽이 잘 맞았다.
둘째 사형도 합세했다.
-저도 봤습니다. 제가 막내 병원에 데려간 거 기억하시죠? 틀림없습니다.
삼인성호(三人成虎)라 했었다.
세 명의 거짓말 앞에서 난 속수무책이 되었다.
-스승님, 정말 억울해요! 아니잖아요, 사형들 왜 거짓말해요!
내 편을 들어주는 이는 하나 없이.
-정혁아, 네가 이 일로도 교훈을 얻지 못했다면 나 역시 더는 할 말이 없다.
스승님은 그렇게 뜻 모를 말을 남기며 매정하게 돌아섰다.
-누구와 살지는 네 몫이 아니라지만, 어떻게 살아내느냐는 온전히 네 몫이다.
-스승님!
-실망이구나.
나는 흠칫했다.
-네 스스로 초래한 재앙이라 생각해라. 깨닫지 못한다면 벗어날 방법은 없다. 이 또한 다 네 탓이니라.
억울한 것 이상으로 혼란스러웠다.
-스승님······.
-쯧. 못난 것.
난 병실에 우두커니 남겨졌다.
망연자실하여 스승님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탁.
병실 문이 닫히자마자.
내내 조용히 지켜보던 큰 사형이 기다렸다는 듯 이죽거렸다.
-네가 스승님께 국천그룹 지분을 매각해서 최고반도체에 투자해야 한다고 읍소했냐?
내 조언에 따랐던 스승님은 어마어마한 수익률을 올릴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초대박.
그 일로 나는 스승님의 눈에 들어 일주일에 한 시간, 스승님과의 독대를 허락받았다.
-스승님이 눈길을 주니까 좋아 죽겠지? 이 상도덕도 없고, 의리도 없는 새끼.
반면 큰 사형이 골랐던 주식은 연일 하한가를 치고 있었다.
그러다가 상장 폐지, 즉 휴지조각이 된 게 바로 며칠 전이었다.
그 일로 스승님께 불려 가 크게 혼이 났다지.
-최고반도체가 초대박 난단 정보를 물었으면 바로 나한테 뛰어와서 보고했어야지!
큰 사형의 눈에는 시기와 질투, 증오와 분노가 이글거렸다.
-네 머리가 아니라 눈깔을 태워버렸어야 했다. 기고만장해서는 위아래도 못 알아보는 이 건방진 눈깔 따윈······!
그제서야 깨달았다.
내가 횡액을 당하게 된 진짜 이유 말이다.
-고작 수익률 때문에······.
-솔직하게 말해 봐. 정보통이 누구야?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당시 나는 고작 15살, 큰 사형은 26살이었다.
-어떻게 네가 고른 주식만 계속 올라? 말이 안 되잖아 이상하잖아! 무당도 아니고!
-무당을 찾기 전에 재무제표를 찾아보고, 주식을 고르기 전에 회사 돌아가는 사정부터 살폈을 뿐입니다만. 뭐가 이상합니까?
-허어?
-스승님이 여기저기 심부름시킬 때, 여직원들 얼굴 몸매 품평하며 수질 체크하기 전에, 제품 품평하고 회사 영업 실적을 체크했을 뿐입니다만.
-이 새끼가.
-그게 생사람 몸에 불을 놓을 만큼 죽을죄였습니까?
나는 피식 웃었다.
-어이가 없네.
-닥쳐!
퍼억!
둘째 사형은 내 얼굴을 주먹으로 내려쳤다.
화상 입은 곳을 무방비하게 얻어맞자 눈앞에서 별이 번쩍했다.
-하!
나는 손바닥으로 코피를 훔쳐냈다.
비릿한 피비린내와 선홍빛 강렬한 빛깔.
화상을 입은 상처에서 흘러나온 진물과 핏물로 손바닥이 진득해졌었다.
기분 더러웠다.
-이게 큰 사형의 상도덕이고, 의리야?
-아직도 정신 못 차렸네. 야, 이 새끼 눈깔 봤냐? 이걸 확!
-그렇게 싫으면 어디 한번 직접 뽑아보시든가!
퍼억!
나는 그대로 큰 사형을 들이받았다.
그 모습을 보고 나머지 사형들도 놀라서 합세했다.
-차정혁, 이 미친 새끼가!
-잡아! 막아!
-해 봐!
와장창! 쨍그랑!
나는 큰 사형을 병원 창문 밖으로 집어 던졌다.
고작해야 2층 높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밑에선 곡소리가 났다.
-아이고, 나 죽네! 내 다리! 부러졌나봐!
-큰 사형!
-이 건방진 새끼가 죽을라고!
사형들은 주머니에서 칼을 꺼냈다.
나는 링거대를 잡았다.
-그래, 누가 죽나 어디 한번 해 보자고!
부우웅!
-다 덤벼!
-이 새끼가 진짜 돌았나!
-그래, 돌았다! 그럼 어쩔래?
난 씨익 웃었다.
붕대가 풀려서 화상의 진물과 피고름이 묻어나는 얼굴로.
-어차피 죽을 거라면 난 죽어도 혼자 안 죽어!
-이 독한 새끼가!
-넌 혼자고 우리는 다섯, 아니, 넷이야!
큰 사형이 창문 밖으로 떨어져서 넷인 건가.
까짓것 넷이나 다섯이나!
와장창! 쿠당탕! 우지끈! 쨍그랑!
그날 밤 사형들은 병원에서, 나는 유치장에서 눈을 떴다.
제일 먼저 든 것은 후회였다.
-젠장. 이왕 빼 든 칼이라면 그 새끼들 손모가지나 발모가지 하나 정도는 썰어버렸어야 했는데!
나는 더는 사형들을 섬기지 않기로 했다.
오히려 스승님 앞에서 보란 듯이 내 실력을 뽐내기로 했다.
지금껏 사형들 눈치를 보느라 적당히 숨기고, 적당히 모른 척하던 태도를 싹 바꾸기로 했다.
-좋은 눈빛이다.
옆구리와 어깨에 칼자국 하나씩 새긴 것과 맞바꾼 깨달음이었다.
나는 스승님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앞으로 제게 실망하는 일, 더는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앞으로 어찌 살지는 깨달았더냐?
-예. 스승님의 전당포는 제가 물려받겠습니다.
-좋다. 그럼 지금부터 내 너에게 전당포 일 외에 다른 것을 가르쳐주마.
내 나이 열다섯.
나는 드디어 전당포 외에 또 다른 세상을 배울 수 있었다.
스승님께서 정식으로 날 후계자로 선언하기 5년 전의 일이었다.
“네가 차정혁이야?”
자신만만하게 내미는 손.
내 상념을 일깨운 두툼한 손은 다섯째 사형의 손이었다.
틈만 나면 죽도록 날 때렸던, 익숙해서 기분 더러운 손이었다
“스승님께 얘기 많이 들었어.”
나는 내다보지 않았다.
“너 성준 도련님의 아들이라지?”
다섯째 사형은 틈만 나면 ‘너나 나나 똑같은 고아다 이거야, 새끼야!’ 하고 버럭버럭 외치곤 했었는데.
내게 건네는 첫마디엔 호기심과 부러움이 잔뜩 배어 있었다.
“그런데 너 진짜 성준 도련님과 똑같이 생겼다.”
“나 어릴 때 성준 도련님 모셔봤거든. 진짜 무시무시한 분이셨지.”
“대체 왜 정씨 일가 후계자 자리를 박차고 나오셨대?”
호기심이 반짝거리는 눈엔 악의와 질투가 음습하게 빛나고 있었다.
어렸던 그 시절엔 깨닫지 못했던 본성이었다.
큰 사형이 열아홉, 다섯째 사형이 열둘.
나는 다섯 명의 사형들을 무감한 눈으로 바라봤다.
그들은 더러운 심보를 상당히 잘 포장하는 축에 속했다.
“너 안목이 그렇게 대단하다며? 스승님께서 혀를 내둘렀다는 게 정말이야?”
“전당포에서 경매판을 벌이더니, 물건 하나 맡기지 않고 2천만 원을 벌어 갔다며?”
“진짜? 대체 어떻게? 무슨 수로?”
“스승님께 송년의 밤 초대장을 보낸 것도 너였지?”
“지하철 2호선 역을 적은 쪽지라면, 나도 구경했거든.”
언제나 나를 노골적으로 못마땅해하던 사형들의 눈빛이었건만.
지금은 어떻게든 내 눈에 들기 위해서 호의를 가장한다.
“밀매왕이 네 밑에서 일한다는 거 진짜야?”
“성준 도련님이 거둬서 네 스승님으로 붙여준 거 맞지?”
“성준 도련님께선 왜 스승님이 아니라 밀매왕을 붙여주셨대? 뭐 들은 거 없어?”
상대할 가치도 없는 쓸데없는 질문들이었다.
나는 말없이 스승님을 돌아보았다.
스승님은 지금 이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평가하는 눈.
전당포를 보던 시절 지긋지긋하게 받았던 눈길이었다.
‘어떻게 나오는지 두고 보겠다 이거군.’
내가, 그리고 사형들이.
언제나 그러했듯이.
하지만 이번엔 스승님이 틀렸다.
‘난 이제 스승님의 평가를 받을 필요가 없거든.’
지금의 난 그 시절의 내가 아니다.
게다가 이미 많은 것이 그때와는 달라졌다.
나는 스승님을 똑바로 바라봤다.
“잔칫집에 아이들을 데려오는 것까진 나무랄 생각 없는데요.”
아무리 꼴 보기 싫은 사형들이라고 해도.
멀리서 우리 부모님의 결혼을 축하해주기 위해 찾아왔다면.
밥 한 끼 정도 거하게 먹이고 쫓아낼 용의는 있다.
“보호자가 되어서 끝까지 나 몰라라 수수방관하는 건 경우가 아닌 것 같네요.”
오랜 시절 가슴에 사무쳤던 서러움이었다.
전생에선 한 번도 따지지 못했던 원망이었다.
“정씨 집안에서는 그렇게 가르쳐요?”
그 한마디면 족했다.
스승님은 혀를 찼다.
“못난 것들. 썩 꺼져라.”
“스, 스승님?”
“언제 봤다고 초면에 대뜸 질문 세례나 퍼붓고 있어? 내가 여기에 청문회 하라고 데려온 줄 알아?”
“······죄송합니다.”
“나이가 어리면 다 너희들 손아랫사람이야? 내가 너희들을 그리 가르치더냐?”
스승님의 목소리에도, 눈빛에도 노기가 깃들었다.
“성준 도련님의 아드님이라는 걸 알면서도 처신을 이따위로 하다니.”
쿵!
스승님이 지팡이로 바닥을 찍었다.
“내 망신이나 시키라고 여기에 데려온 줄 아느냐?”
그제야 안색이 변한 사형들이 허리 숙여 외쳤다.
“잘못했습니다!”
“썩 꺼지지 못해?”
후다다닥!
그렇게 사형들은 대문 밖으로 쫓겨났다.
친절하게 손수 대문을 열어준 사람이 바로 김 비서였다.
“흐음.”
은테 안경 뒤에서 김 비서의 눈동자는 차갑게 빛났다.
“애들이 주둥이 간수를 제대로 못 하는 것 같던데. 저희 쪽 애들로 일대일 전담 마크 붙여서 스피킹 교육, 제대로 해 드립니까?”
사형들은 새파랗게 질려서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이래 봬도 제가 그쪽으로는 제법 일가견이 있어서 말입니다.”
김 비서가 싸늘한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는 건 사형들의 손모가지였다.
나는 귀찮은 똥파리들을 치워버린 후에야 스승님께 방긋 웃으며 두 손 모아 배꼽 인사했다.
“오랜만이에요, 어르신.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하하하, 오랜만입니다. 정혁 도련님.”
“오늘은 웬일로 꼬마 손님 대신 도련님 소리를 붙여주세요?”
“그야 오늘은 제가 전당포 주인 대신 정씨 집안의 청지기로 찾아뵈었기 때문입니다.”
스승님은 한쪽 무릎을 굽히며 나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어르신께서 다섯의 최측근들에게 소집령을 띄웠습니다.”
아버지가 비워둔 후계자 자리를 두고 다투는 사람들이었다.
스승님도 그들 중 한 명이었다.
“아하, 스승님을 지지해달라 청탁하러 오셨군요.”
“그 반대입니다.”
음?
“저는 정혁 도련님을 지지하겠다는 뜻을 밝히기 위해 찾아온 겁니다.”
문득 깨달았다.
스승님이 다섯의 제자들을 이곳까지 친히 데려온 진짜 이유를.
< 과거의 악연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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