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301)
재벌집 만렙 아들-301화(301/416)
301. < 이게 왜 아직도 황금빛이지? >
솔직히 조금 당혹스러웠다.
‘송년의 밤 초대장이 결정적인 계기였다고?’
이게 뭐라고.
정씨 집안의 핏줄이라는 것보다 이것을 더 우위에 놓을 줄은 몰랐다.
‘이게 그렇게까지 대단한 일이었나? 날 정씨 집안의 후계로 공개 지지할 만큼?’
스승님도 정씨 집안의 후계 후보 중 한 명이었기 때문에.
나는 얼떨떨하면서도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흐음.’
자연스럽게 송년의 밤 행사 초대장을 전하던 때가 떠올랐다.
초대장을 전했을 때, 스승님은 눈을 크게 떴었다.
-우리처럼 음지의 인사들에게 송년의 밤 초대장이 올 리가 없는데?
그러더니 신이 나서 바로 전화를 돌리셨다.
-어이, 말죽거리 말대가리! 나 명동 송골매다! 듣고 놀라지나 마라. 방금 나한테 송년의 밤 초대장이 왔지롱!
용건만 간단히!
그렇게 끊긴 전화통엔 불이 났었지.
말죽거리 말대가리에게도 예상치 못한 뜻밖의 이슈였다는 뜻이었다.
‘내가 초대장을 전했던 전대(前代) 거물들은 한 사람도 빠짐 없이 송년의 밤 행사에 참석했었지.’
이후 다시 만난 스승님은 전생과는 다른 행보를 보이셨다.
-은행을 세워볼까 한다.
-푸흡!
-네 덕분에 그리되었다.
-아니, 은행과 제가 무슨 상관이라고요?
-네가 초대장을 보내주었잖느냐?
스승님은 그때도 분명 송년의 밤 초대장 때문에 결심하신 것이라 밝혔었다.
나는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이상한데요?”
“뭐가 그리 이상하십니까?”
“어쩌다 마음에 드는 선물을 건넨 보답치고는 너무 과해서요.”
아까 스승님에게 경고했듯이.
주인의 뜻에 반해 후계 지지를 공언하는 것은 목숨을 내건 만용이었다.
“차라리 솔직하게 말씀하세요. 태성의 지지를 받고 싶다고. 정씨 집안의 차기 수장이 되고 싶다고.”
“도련님.”
“도와드릴게요.”
진심이었다.
나는 스승님께 아직 다 갚지 못한 목숨빚이 있거든.
“저를 지지하겠다는 뜻은, 결국 허수아비 수장으로 세워서 대리청정하고 싶단 소리잖아요.”
“아닙니다. 그건 오해이십니다.”
오해는 무슨.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거든요.”
스승님은 다급하게 고개를 저었다.
“어르신은 오랫동안 지하금융계의 유명하신 큰손이셨고, 이제는 거물은행의 은행장으로 입지를 다지셨지만.”
나는 검지로 내 가슴팍을 콕 찔렀다.
“전 이제 고작 여덟 살. 남들이 보기엔 쥐뿔도 모르는 애송이란 말이죠?”
어디 그뿐인가?
“정동진 어르신이 살아 계신다면 또 모를까. 어르신이 돌아가신 후에 정씨 집안 핏줄이란 게 다 무슨 소용이겠어요? 어리고, 돈도, 힘도 없는데.”
핏줄이나 명분 따윈 돈과 힘 앞에서 쪽도 못 쓴다.
남들의 눈이 쏠린 양지의 재벌 그룹도 아닌, 지하금융계의 음지 가문 일임에야.
더 말할 것도 없지.
“하지만 명분이라는 게 꼭 쓸데없지는 않아요. 특히 아군으로 두고, 경쟁자들을 누를 때에는.”
내세울 카드로는 썩 훌륭하다.
삼국지에서도 조조가 그랬다.
황제를 제 손아귀에 두고 명분을 외쳤기에 정당성을 거머쥘 수 있었다.
그건 경쟁자들을 압도할 수 있는 결정적인 수단이 되었다.
“원하신다면 제가 어르신 편이 되어드릴 수 있다니까요?”
이 또한 나의 미련이었다.
‘이번에도 스승님께서 살해당하는 꼴은 보고 싶지 않거든.’
전생에서도 10년이 넘도록 이어진 후계 전쟁이었다.
결국 그 기나긴 싸움의 승리자는 스승님이 아니었다.
패자는 비참한 죽음을 피할 길이 없었다.
“도련님께서 그렇게 생각하실 만도 하지요. 하지만 분명히 말씀드렸듯이, 아닙니다.”
그럴 리가.
“마침 말죽거리 말대가리한테도 비슷한 소리를 듣고 온 참입니다. ‘네놈이 돈에 눈이 멀어서 회까닥 돌았구나?’라더군요. 하하하.”
차마 고개를 끄덕이지는 못했다.
“하지만 내 인생에 수렴청정 따윈 없다고 못 박았더니, 바로 ‘네놈이 양지 물을 먹더니만 정말, 진짜로 회까닥 돌았구나?’라던데요?”
아, 자존심 상해.
날 지지하는 게 미친놈 소리를 들을 일······이니 더 열받는다!
여덟 살이 뭐가 어때서!
“녀석은 허무맹랑한 꿈이라며 콧방귀를 뀌었지만, 제게는 아주 큰 의미였습니다.”
왜?
“도련님, 전 평생 음지에서 살아온 사람입니다.”
일제강점기에서는 독립운동가로 군수품 납품을 맡아서.
해방 이후엔 사채로.
나이가 들어서는 전당포의 큰손으로.
“음지의 한이라면 이 가슴에 제 나이만큼 쌓였지요.”
스승님은 주먹으로 제 가슴을 탕탕 치셨다.
그 마음, 그 설움이라면 나도 알지.
나 또한 그랬었거든.
‘평생 뒷골목에서, 검은돈을 만지며, 피비린내 나는 배신과 음모의 진창 속에 살았었다.’
사채왕이 되고, 아무리 돈이 많고, 베풀고, 거두고, 유명해도 단지 그뿐이었다.
남들에게 손가락질받고,
돈 빌려주고도 욕을 먹으며,
유명인사들에게 무시받고,
공권력이 뜨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뒷골목의 쓰레기 취급을 받아야 했다.
‘염라대왕이 내게 예전의 뒷골목 인생을 다시 한번 살아내라 했다면 진짜로 심각하게 고민해 봤을지도?’
피할 길 없는 음지인의 숙명.
내 처자식에게도 어떤 위험이 닥칠지 뻔히 보였다.
“언제나 배신과 통수, 음모와 불안 속에 살았습니다. 찻잔 속의 태풍처럼 회오리치는 인생이었습니다.”
스승님의 목소리에도 착잡함이 짙게 배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주 많은 게 달라졌습니다.”
나는 재벌3세로, 스승님은 은행장으로.
번듯하게 양지에서 새 인생을 살고 있다.
“어차피 제게는 많은 재산을 물려줄 처자식도 없습니다.”
그들은 이미 오래전에 살해당했다고 들었다.
밀매왕의 아들 내외가 그러했듯이.
“그래서일까요? 저는 요즘 이 안락하고 평온하며 명예로운 노후가 매우 마음에 듭니다.”
그게 스승님이 후계자 경합을 마다하는 이유인가.
그런데 이게 웬걸?
“그래서 저는 도련님께서 만들어 나갈 정씨 집안의 새로운 미래가 기대됩니다.”
음?
이건 좀 황당한데?
“제가 뭘 어찌할 줄 알고요?”
“도련님께 묻지요. 저희들이 작심하여 송년의 밤 초대장을 구하고자 했다면, 정녕 구하지 못했을까요?”
그건 아니겠지.
다들 그 정도 수완도 없어서 쩔쩔매는 사람들은 아닐 테니까.
“송년의 밤이 나름 정재계에서 한가락 하는 인사들의 기부 모임이라고 해도 정씨 집안 사채 한 푼 안 빌려 쓴 작자는 드뭅니다.”
“그들의 초대장을 가로채면 아주 간단하게 뜻을 이룰 수 있었겠네요.”
“예. 하지만 도련님께서는 그러지 않으셨지요.”
스승님은 빙그레 웃었다.
“주최측과 협상을 해서, 당당하게 손님 대접을 받을 수 있도록 만드셨습니다.”
“그게 뭐 별거라고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겁니다.”
······쉽던데요?
수서동 아파트 부지 땅문서 하나에 홀랑 넘어오던데요?
유종태가 나서도 3분밖에 안 걸린 일이었다.
“그때 송년의 밤 행사에서 수행인들은 어떤 처지였는지, 혹시 기억하십니까?”
입장 자체가 불가능했다.
손님 취급은커녕 사람 취급도 못 받았다.
그들은 추운 날씨에 화로 하나 없는 문 앞 복도 구석에서 종종거리며 대기해야 했다.
그래서 내가 동전지갑을 열어 따끈한 음료와 간식거리를 나눠주도록 했었다.
“몰래 들어가려다가 들킨 놈들이 한둘이 아니었던지라.”
덕분에 멀쩡한 수행기사들과 경호원들이 그렇게 밖으로 내몰린 거였구나.
“우리 정도나 되는 거물들도 거기서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 혹시 기억하십니까?”
다들 싸늘한 눈으로 대놓고 불청객 취급을 했었다.
우광건설 사장이 대표로 나서서 모욕적인 언사를 쏟아냈었다.
-대체 누가 사채업자들을 이곳에 들였나! 언제부터 송년의 밤이 돈놀이하는 뒷골목 놈들까지 나대는 난장판으로 전락하게 된 거지?
-말 참 섭섭하게 하는군. 우리도 엄연히 초대받아서 온 건데 말이야. 여기 송년의 밤은 불우이웃 돕기 자선 바자회라며. 우리가 초대받지 못할 이유가 있나?
-돈놀이하는 놈들은 낄 데 안 낄 데 구분을 못 한다니까. 이거야 원. 도매금으로 우리까지 급 떨어지게 생겼군.
-초대장 받고 돈 내러 왔다는데, 왜 주인도 아닌 것들이 나서서 면박을 줄까? 누구 돈은 돈이고, 누구 돈은 똥이야?
종로의 금이빨과 까치산 방여사, 거기에 말죽거리 말대가리까지 발끈해서 싸움으로 번지기 일보직전이었다.
“우리라고 처음부터 그런 취급을 받았던 건 아니었습니다.”
오?
“그게 다 대통령이 8.3사채동결조치를 선포하고 지하금융을 탄압했던 이후 생겨난 풍조 때문이었지요.”
정씨 가문은 사채업으로 유명한 집안이었다.
사채업자를 정조준해 겨냥했던 정부의 규제 정책에 유독 큰 타격을 받았을 것이다.
“돈 빌리러 갈 때마다 자존심 다 버리고 무릎걸음으로 기어 오던 녀석들이, 어느새 우리를 공권력 앞에서는 찍소리도 못 하고 짓밟혀 뒈질 것들이라 낮잡아 보기 시작하더라고요.”
정부의 규제 선포로.
어마어마한 금액의 차용증은 하루아침에 휴지조각이 되고 말았다.
“제가 은행을 세웠던 이유가 뭐라고 했었지요?”
“규제가 발목을 잡기 전에. 좀 더 큰물에서 놀아봐야겠다고 하셨었죠.”
스승님이 염두에 둔 것은 8.8부동산 규제 이후의 금융개혁이었다.
“이에 대해 다른 녀석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그 또한 기억하십니까?”
“말대가리 어르신은 공권력에 치가 떨린다며 경마장에 은행을 입점시킬 거라 하셨어요.”
“종로 금이빨은?”
“꿈이 1순위가 외환은행, 2순위가 증권회사라고 했었죠.”
“그럼 까치산 방 여사는?”
“은행엔 관심 없댔었죠. 대신 부동산 개발 회사를 세우고 싶다고 하셨어요.”
스승님은 빙그레 웃었다.
“뒷골목 출신들의 연합. 그게 가능하리라곤 애초에 상상조차 한 적 없었습니다만.”
스승님은 품에서 송년의 밤 초대장을 꺼냈다.
이미 반년 전에 쓸모를 다한 종이.
당장 쓰레기통으로 직행해도 이상하지 않은 물건이건만.
‘이게 왜 아직도 황금빛이야?’
초대장은 여전히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도련님께서는 이것 한 장으로 그 어려운 일을 해내신 겁니다.”
스승님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회한에 찬 얼굴로.
“목숨 걸고 독립운동하던 때는 이와 같지 않았습니다. 한때는 서로의 등을 맡기며 한 몸처럼 움직이던 동지이자 전우였건만.”
하지만 번쩍 뜬 눈은 기세가 바뀌어 있었다.
열망과 희망이 이글거리는 눈빛이었다.
“도련님 휘하에서라면 우리도 예전처럼 한마음 한뜻으로 양지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보았습니다.”
그제야 깨달았다.
스승님께서 왜 송년의 밤 초대장을 운운했는지.
왜 나를 정씨 집안의 차기 후계로 지지할 결심을 하게 됐는지.
“명동 송골매, 종로 금이빨, 말죽거리 말대가리, 까치산 방 여사, 동남쪽 스컹크.”
역시. 그럴 줄 알았지!
이미 예상하고 있던 이름을 확인받은 순간이었다.
“정씨 집안의 충실한 수족이라 하면 이렇게 다섯을 꼽을 수 있습니다.”
그들이 바로 정씨 집안의 다섯 하수인들이라면.
길었던 후계 전쟁의 최종 승리자가 누구인지도 짐작할 수 있다.
‘동남쪽 스컹크.’
스승님은 말죽거리 말대가리와 남산 찰거머리 사제의 손에 살해당하셨다.
종로 금이빨은 조폭 간 세력 싸움에 휘말려 가리봉동 뒷골목 쓰레기통에서 싸늘한 시체로 발견됐다.
까치산 방 여사는 어느 날 안기부에 끌려가 시체가 되어 나왔다.
동남쪽 스컹크를 주인으로 모셨던 말죽거리 말대가리는 경마장 대신 카지노를 노리다가 마카오에서 총 맞아 죽었다.
“심지어 승산도 상당히 높습니다. 이미 도련님께서는 두 명의 지지를 얻어내신 것과 진배없거든요.”
······어라?
생각하고 보니 진짜 그러네?
나는 즉시 동전지갑을 열었다.
도박판을 휩쓸고서 말죽거리 말대가리에게서 받아낸 차용증.
이 또한 아직도 황금빛으로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말죽거리 말대가리의 생사가 제 손에 달렸네요?”
나는 차용증을 보란 듯이 팔랑팔랑 흔들었다.
이게 바로 말죽거리 말대가리의 목숨줄이었다.
< 이게 왜 아직도 황금빛이지?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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