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308)
재벌집 만렙 아들-308화(308/416)
308. 세상에, 이게 다 얼마야?
복덕방 가게 안쪽에 딸린 방.
촤악!
대충 막아놓은 커튼을 터프하게 걷으며 까치산 방 여사가 나타났다.
작은 키에 화려한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뽀글 머리 뚱뚱한 아줌마였다.
‘까치산 방 여사, 정재계 사모님들의 사모임을 한 손에 쥐고 흔든다는 여자.’
나는 다른 의미로 까치산 방 여사가 탐났다.
‘높으신 분들이 달려들어서 까치산 방 여사의 입을 막으려 들 정도로, 대단한 비밀을 쥐고 있던 모양인데.’
정씨 집안 다섯 하수인 중에서 까치산 방 여사만 안기부에 끌려가 죽었다.
까치산 방 여사의 땅으로 신도시를 개발해 정치자금으로 나눠 먹기 위해서?
그럼 시체가 되어 나올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욕심 때문에 뒤질 만큼 멍청한 여자가 아니었거든.
‘까치산 방 여사의 비망록.’
지난 생에서 내내 궁금했었다.
내가 부산에서 해운왕과 7년 동안 전쟁을 벌였을 때.
나는 해운왕의 칼잡이를 자처하던 국정원 101실장 한명호를 회유하려 했었다.
국정원 101실, 일명 판단기획실.
101실장이라 하면 대통령에게 올리는 보고서를 작성하는 요직 중의 요직이라 할 수 있었다.
-성의가 많이 모자라십니까?
-음, 이건 성의 문제가 아니지.
-그럼 왜 뒷골목 일에 국정원이 참견하는 겁니까?
나는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국정원에서 싸고돌 만큼 해운왕이 대단한 인물은 아닌 듯한데 말입니다.
-맞는 말이야. 사실 부산이 뒤집히든, 해운왕이 털리든, 내 알 바는 아니지.
한명호는 오히려 내게 제안했었다.
-신림동 개미지옥, 나와 거래를 하자. 까치산 방 여사의 비망록, 자네가 갖고 있지?
-없는데요?
황당했다.
-그런 걸 왜 나한테 묻습니까? 떴다방이나 복덕방을 파야지.
-좋은 말 할 때 건네줬으면 한다.
-잘못 짚었습니다. 저는 전당포 쪽 사람이라 까치산 방 여사와 그리 연이 깊지가 않아서 말입니다.
-이거 유감이로군.
한명호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교섭 결렬을 알리는 신호였다.
-그 비망록이 아니었으면 아무것도 없는 자네가 이렇게까지 빨리 클 수나 있었겠나?
-전 신장을 떼어 팔고, 그걸 종잣돈 삼아 여기까지 올라왔습니다만?
-자네가 사채왕의 후계자라며?
한명호가 말을 할수록 황당했다.
-사채왕이요?
전당포가 아니라?
아니, 내가 사채로 기업 투자를 하고 있는 게 맞긴 한데.
현재 사채왕이라 불리는 거물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만?
-까치산 방 여사의 비망록이라는 게 뭔지, 설명부터 제대로 해 주셔야죠. 그럼 제가 찾아봐 드리겠습니다.
-끝까지 시치미라니. 역시 쉽게 내놓지는 않겠다?
-사채왕의 후계자라는 것도…….
-됐어. 충분히 알아들었네.
드르륵. 탁.
아니, 갈 때 가더라도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보고 가야 하는 거 아닌가?
‘저 한명호 때문에 해운왕과 무려 7년이나 죽어라 싸웠단 말이지.’
공권력의 재앙을 온몸으로 쳐맞으면서!
어쩔 수 없이 국정원장과 그 윗선을 통째로 날려버리는 것으로 나는 7년 전쟁에서 승리했다.
또한 대한민국 지하금융계의 다섯 거물 중 한 명으로, 사채왕이라 불리게 되었다.
또각 또각.
까치산 방 여사가 코앞까지 다가오자, 퍼뜩 상념에서 벗어났다.
까치산 방 여사의 조선무 다리와 빨간 하이힐은 언제나처럼 영 안 어울렸다.
“그거 당장 내다 버려!”
“아이고, 우리 누님 여기에 뭐가 든 줄 아시고요?”
“말죽거리 말대가리가 들고 온 거라면 궁금하지도 않아. 야, 너 왜 또 슬금슬금 냉장고를 여니? 물통 안 내려놓니?”
까치산 방 여사가 신경질적으로 선글라스를 벗었다.
파란색 눈화장이 짙었는데, 눈이 너무 작아서 눈을 부릅뜬 건지 아닌지 헷갈렸다.
“냉수도 아니고 비싼 보리차를 꺼내서 대접하려고?”
“누님, 너무 그렇게 화내지 마세요. 이깟 보리차 좀 내어드리는 게 뭐 어때서요.”
“똥파리, 너 누구 편이니?”
“저야 늘 누님 편이지요. 하지만 말입니다, 지금은 상황이 좀 그렇잖아요?”
복덕방 아저씨는 멋쩍게 웃었다.
“가게를 찾아주신 손님께 이 정도 서비스는 응당 제공해 드려야죠.”
“어이구, 이 물러 터진 순둥이!”
까치산 방 여사가 가슴을 퍽퍽 치건 말건.
복덕방 아저씨는 헤벌쭉 웃으며 말죽거리 말대가리가 떠안긴 나무 궤짝을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더니 냉장고에서 갓 꺼낸 시원한 물통을 기울여 우리에게 보리차 한 잔씩 따라주었다.
“아하하, 제가 손님께 물 한 잔도 안 내놓고 부동산 문건부터 늘어놓았네요? 실례했습니다. 더운데 시원하게 한 잔씩들 쭉 들이켜세요.”
보리차 물병으로 쓰고 있는 건 유리로 된 주스병이었다.
“어으, 시원하다. 보리차 구수하게 잘 끓였네.”
“똥파리가 역시 준비성이 좋아. 지난번 옥수수차도 시원하더라고.”
“으악산 똥파리야, 미숫가루는 없고?”
“어이, 으악산 똥파리. 선풍기 좀 크게 틀어봐라. 더워 죽겠다.”
어르신들의 주문에도 복덕방 아저씨는 웃는 얼굴 한 번 구기지 않았다.
“보리차 차게 마셨는데 바로 미숫가루 드시면 배탈 나요. 선풍기 바람으론 부족하세요? 부채 빌려드릴까요?”
그 모습을 보고 까치산 방 여사는 또 가슴을 탕탕 쳤다.
“내가 증말 못 살아! 네가 자꾸 그렇게 물렁하게 구니까 이놈 저놈이 허구한 날 널 막 부려 먹는 거 아니니!”
“괜찮아요, 누님. 어르신들은 여기 와서 빈손으로 그냥 가시는 법이 없거든요.”
복덕방 아저씨는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손바닥을 마구 비볐다.
“송 어르신, 이번에는 어느 지역 땅으로 찾아드려요? 거기 지하철역이 들어가는 곳 맞지요?”
“…….”
“말 어르신, 도박장에서 나온 땅문서 있으면 내놔 보세요. 제가 웃돈 얹어서 잘 팔아드릴게요.”
“…….”
“아니면 제가 목 좋은 물건을 추천해 드려요? 돈세탁하기엔 딱 좋은 물건들로 골라봤습지요.”
복덕방 아저씨가 비비는 손바닥이 점점 더 빨라졌다.
“이 바닥에 공짜가 어디 있어요? 어르신들, 자판기도 공짜로 서비스를 제공하지는 않는답니다?”
복덕방 아저씨의 입가에 걸린 영업용 미소가 느물느물할 정도로 짙어졌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이래서 으악산 똥파리였구만.’
어째 돈 냄새가 나는 곳에 기가 막히게 들러붙는다!
영업용 미소와 쌈박하게 비비는 손바닥은 덤이었다.
‘시궁창 들쥐의 우상이자, 롤 모델이라더니.’
스승님과 말죽거리 말대가리는 이럴 줄 알았다는 듯이 웃었다.
어째 싫지 않은 표정이었다.
반면 까치산 방 여사는 크게 질색하며 펄쩍 뛰었다.
“으악산 똥파리 너, 어쩜 증말 이럴 수가 있니?”
까치산 방 여사가 으악산 똥파리의 손에서 보리차 물병을 낚아챘다.
“지하철역 근방 땅 정보를 공짜로 물어 오신 분께 보리차라니! 보리차라니이이이!”
“누, 누님?”
“지하철역 정보라잖아! 그거 하나당 5억짜리야!”
그 정보, 내가 팔았다.
스승님께는 개당 3억, 다른 전대 거물들에게는 개당 5억에!
까치산 방 여사는 잽싸게 미숫가루를 타기 시작했다.
설탕 듬뿍, 얼음 동동 띄워서.
“오라버니, 어디 땅 사시게? 말씀만 해 봐요. 오호호호홍~ 내가 땅주인들 만나서 헐값에 싸게 가져와 드릴게!”
“…….”
넘치도록 흐르는 애교였다.
스승님께 안기듯이 건넨 미숫가루도 철철 흘러넘쳤다.
“똥파리, 너 뭐 하고 있니? 부채가 웬 말이니? 옆집 선풍기를 훔쳐 오다 머리채를 잡히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 물건부터 구해 와야지!”
으악산 똥파리의 엉덩이를 냅다 걷어차서 쫓아낸 까치산 방 여사.
그녀는 말죽거리 말대가리를 향해 두 손을 모았다.
“오라버니도 갖고 온 땅문서 좀 내놔봐요. 오호호홍~ 내 헐값에 싸게, 아니, 내 특별히 비싸게 알아봐 드릴게!”
“야, 윙크를 하려면 선글라스부터 쓰고 해! 왜 갑자기 기습 테러야?”
“아잉, 오라버니도 차아아암. 나 귀여운 막둥이 까치사안~.”
“우욱!”
털썩.
까치산 방 여사는 생글생글 웃으며 소파에 앉았다.
짧고 통통한 다리를 꼬려고 해 봤으나 실패!
“나 요즘 실적이 너무 안 좋잖아. 이번에 불려 가면 어르신께 된통 혼나게 생겼단 말이야. 응? 오라버니들이 도와줄 거지?”
까치산 방 여사는 응접 테이블에 팔꿈치를 탁 얹고, 꽃받침을 해 보이며 웃었다.
“아하, 알았다. 두 오라버니들이 태성그룹 막내 손자님을 대동하고 우리 복덕방을 찾은 이유!”
까치산 방 여사는 작은 눈을 번뜩였다.
물론 워낙 티가 안 나서 육안으로 판별하긴 어렵지만, 느낌적인 느낌이란 것으로!
“태성이 요즘 건설주 파동이랑 미분양 아파트 때문에 자금이 영 안 돌겠네? 후원금이랑 태성전자 주식이랑 맞바꾸려고 온 거지?”
“까차신 방 여사야, 잘못 짚었다.”
“아하, 알았다! 그럼 지난번처럼 정보 팔려고 왔구나?”
까치산 방여사는 꽃받침을 한 채 눈을 빠르게 깜빡깜빡거렸다.
“단골이니까 재구매 할인도 적용해 줄 거지? 지하철역 하나당 1억씩. 어때?”
하여간에 이놈의 후려치기!
잘못 짚었다니까!
그래도 덥석 무는 걸 보면 지하철역 근방 땅을 팔아치워 제법 짭짤하게 이득을 본 모양이구만?
“우리 이래 봬도 후원 계약서 함께 쓴 동업자잖아. 어려울 때 서로 돕고 살아야지. 그런 의미로 이참에 속 시원하게 역 정보나 홀랑 까볼까?”
“까치산 방 여사야, 그게 아니라…….”
나는 손을 들어 스승님의 말을 막았다.
“그거 가지고 되겠어요?”
나는 씩 웃었다.
“지하철 2호선 공사는 앞으로 짧아도 4년 반이나 걸려요. 눈에 보이는 게 있어야 땅값이 훅훅 치솟지 않겠어요?”
“그렇지!”
“지금까지야 강남 부동산 투기 과열 덕분에 짭짤했지, 정부가 작정하고 부동산 투기꾼을 잡겠다고 나선 이상 당분간 손가락만 빨게 생겼잖아요?”
“내가 증말 미쳐!”
“심지어 압구정 현무 아파트 분양 특혜 사건 때문에 사모님들이랑 같이 돌리던 계까지 죄다 줄줄이 파투 났다면서요?”
“어휴, 말도 마.”
“부동산 규제 정책 때문에 떴다방도, 복덕방도 당분간 문 닫아야 하는 게 아닐까 위기감도 들죠?”
“맞아. 나 그래서 요즘 너무 힘들거든. 내 실적 증말 어떡하니?”
“그래서 가져와 봤어요. 김 비서님.”
나는 눈짓했다.
그러자 김 비서가 들고 왔던 서류가방을 응접 테이블 위에 턱 올렸다.
“어머, 그건 뭐니?”
“땅문서요.”
“지하철역 문서? 체비지 가져왔니?”
“아니요.”
“에이, 그게 아니라면 난 관심 없어.”
그렇게 대놓고 심드렁한 얼굴을 짓기엔 아직 이를 텐데요?
내 말 아직 다 안 끝났거든요.
탁.
나는 두둠한 황금빛 문서 뭉치를 내려놓았다.
“대치동 천마아파트 4,500채예요.”
“뭐라고?”
까치산 방 여사는 눈을 크게 떴다.
“천마그룹 전체가 사활을 걸고 투자했다던 그 대치동 천마아파트?”
“네.”
“그게 왜 네 손에 있어? 천마그룹 장 회장은 죽으면 죽었지, 절대로 그걸 내놓을 위인이 아닌데? 그 욕심 많은 인간이?”
“그렇게 됐어요.”
“대애애애애애박!”
까치산 방 여사는 혀를 내둘렀다.
“우리가 천마아파트를 프리미엄 잔뜩 붙여 팔아주겠다고 그렇게 사탕발림을 해도 끄떡없던 장 회장을! 대체 어떻게 꼬여냈니?”
“재주껏, 능력껏, 요령껏?”
“어머, 어머! 진짜 대애애박!”
“운이 좋았죠.”
“흐음, 글쎄에. 이 정도면 과연 운이랄 수 있을까 싶긴 하다만. 뭐 어때, 결과가 좋으면 됐지. 오호호홍!”
까치산 방 여사는 살집이 잡히는 이중 턱을 쓰다듬더니, 아줌마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까치산 방 여사는 또 금세 시큰둥한 얼굴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걸 어쩌니? 그건 아직 완공도 안 된 물건이잖니.”
까치산 방 여사는 천마아파트 문서 뭉치를 스윽 밀어냈다.
“요즘 미분양 아파트가 넘쳐 나서. 그런 하자 물건은 아예 취급하지 않기로 했어.”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태성건설에서 마저 완공하기로 했거든요.”
“흐음, 그러면 더 수지 안 맞을…….”
“수지가 안 맞긴 왜 안 맞아요?”
나는 황금빛으로 빛나는 계약서를 검지로 쿡 찔렀다.
“대치동 천마아파트 한 채당 500만 원, 4,500채를 총 225억에 가져왔거든요?”
“허억!”
까치산 방 여사가 경기를 일으킬 것처럼 뒤로 넘어갔다.
“말도 안 돼!”
까치산 방 여사는 눈이 찢어질 것처럼 부릅뜬 모양이나.
안타깝게도 단춧구멍만 한 눈이라 흰자 따위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요즘 강남 아파트 시세가 훅 꺾였다지만, 그 돈으로 어떻게 아파트를 사니? 채당 오백만 원? 그게 대체 언제 적 가격이야?”
까치산 방 여사는 복덕방을 직접 운영하고 있는 부동산 전문가!
“코딱지만 한 소형 아파트 한 채가 천만 원이 넘은 지 한참 오래야! 강남이라면 말할 것도 없고!”
나도 안다.
이미 반년 전에 천만 원을 훨씬 웃돌더라고.
주택복권 1등 천만 원으로도 내 집 마련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대치동 천마아파트 상류층과 중산층을 겨냥해서 만든 최고급 프리미엄 아파트거든! 심지어 기본 평수가 30평대로 널찍하게 빠졌단 말이야?”
시중 아파트와는 차별화된 점이었다.
이 시절엔 아파트를 닭장이라고 부르기 일쑤였다.
어떻게든 좁은 땅에, 작은 집을, 싸게, 잔뜩 지어서, 돈 없는 근로자들을 수용할 생각으로 도입한 건물이었으니까.
까치산 방 여사가 펄쩍 뛰었다.
“각 동마다 엘리베이터가 들어가고, 주차장도 엄청 넓게 뽑힌 데다, 세종대로 다음으로 큰 고속도로를 세 개나 휘감아 두를 정도로 공을 들인 아파트가 뭐? 채당 오백만 원?”
까치산 방여사가 작은 눈을 마구 비볐다.
눈을 비비고 다시 계약서를 들여다봐도 변하는 건 없었다.
“채당 2천만 원이라고 해도 불티나게 팔릴걸? 아무리 불경기라도 이건 무조건 팔려!”
까치산 방 여사의 눈에는 탐욕이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세상에, 미쳤다! 대체 시세 차익이 얼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