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31)
재벌집 만렙 아들-31화(31/416)
< 다 우리 정혁이 꺼! >
나는 손을 흔들어 할아버지를 배웅했다.
“할아버지, 잘 가요! 또 놀러 오세요!”
“오냐.”
할아버지는 웃으며 돌아섰다.
하지만 돌아선 뒷모습에선 웃음기 따윈 묻어나오지 않았다.
나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저렇게 돌아서는 할아버지의 속도 말이 아니겠군.’
씁쓸했다.
어린애들을 몰라도 된다는, 어른들의 사정이었다.
* * *
한남동 저택을 나와 주차된 차에 오르는 차 회장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고 실장이 운전대를 잡았다.
차 회장은 뒷좌석에 앉아 흐뭇하게 웃었다.
“성준이 그놈, 아들 하나는 정말 잘 얻었어!”
차 회장은 뜨끈한 히터 바람을 맞으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조약돌로 웅장하게 쌓아놓은 담벼락이 대단한 위용을 자랑했다.
철옹성 같은 철대문도, 화려한 정원도, 비싼 관상용 분재나 석재도, 집안 구조나 평수는 물론 인테리어 등.
하나같이 세심하게 공들여 지은 부잣집 저택이었다.
“우리 정혁이는 대체 어떻게 이런 집을 사들였지? 분명 예산은 단돈 천만 원밖에 없었다는데. 고놈 참 재주도 좋단 말이야? 하하하!”
고작 일곱 살에 이런 재주를 부리는 녀석이라면······.
‘대체 커서는 회사를 얼마나 크게 키울까? 이거 상상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르는군.’
이래서 자식 농사, 손주 농사라 하나 보다.
호부 밑의 견자란 말은 이 바닥에서 듣는 최악의 욕이었다.
‘아무리 회사를 열심히 키워 봤자 무능한 자식새끼가 말아먹기 시작하면 망하는 것도 한순간이지.’
차 회장은 그동안 흥망성쇠를 숱하게 봤다.
매해 새로 세워지는 회사가 몇이고, 매해 망하는 회사가 또 몇이던가.
이곳은 총칼 없는 전쟁터였다.
‘이수진, 그 애가 자식 교육은 아주 제대로 시켰어.’
이수진에 대한 차 회장의 평가가 조금 더 올라갔다.
금쪽같이 귀한 손자를 잘 키운 덕분이었다.
‘솔직히 정혁이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여자란 다 거기서 거기니, 집안 좋은 여자 중에 골라 짝지우는 게 최고의 뒷바라지라 여겼거늘.’
그래서 그런가?
손자 놈들 중에 정혁이만 한 놈이 없다.
차 회장은 손자가 내어준 갱지를 꺼냈다.
‘이런 것은 또 어디서 구해왔는지. 협상 실력은 또 어떻고? 암만 봐도 수완이 제법이야.”
곱게 접힌 갱지를 펴자, 친필로 적혀 있는 진술서가 나왔다.
차 회장은 읽으면 읽을수록 미간을 와락 구겼다.
“이런 빌어먹을!”
차 회장은 갱지를 와락 구기고 말았다.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차윤성!”
그는 차 회장의 막냇동생이었다.
“태성목재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던 무능한 놈도 동생이라고! 자식들 보기 부끄럽다며 제게도 번듯한 윗자리 하나만 달라고 그리 사정하기에 태성건설 사장 자리에 잠시 앉혀놨더니! 뭐가 어쩌고 저째? 이런 망할 새끼가!”
다다다다 쉬지 않고 욕이 쏟아졌다.
“내가 여태 능력도 없이 돈만 축내는 놈을 오냐오냐해 준 이유가 뭔데! 내 새끼가 벌어들이는 공사 자금을 뒤로 슬슬 빼돌리는 것을 애써 모른 척한 이유는 또 뭔데!”
차 회장도 모르는 바 아니었다.
“그놈도 가정이 있고, 챙길 측근이 있고, 보듬어야 할 직원이 있으니, 내 적당히 눈감아 준 거 아냐!”
이 녀석은 어째 적당히란 것을 몰라!
“빼돌린 돈으로 자기 사업을 따로 내든가! 아니면 다른 계열사로 옮겨 갈 준비를 하든가! 애초에 태성건설은 성준이 몫이라고 처음부터 못 박아 뒀거늘!”
차 회장은 씩씩댔다.
“감히 내 새끼의 밥그릇을 노려? 제 형의 뒤통수를 치고? 그것도 우광과 손을 잡아가면서?”
차 회장이 크게 노한 이유였다.
“못나도 핏줄이라고 오냐오냐해 줬더니, 이 새끼가 정말 보자 보자 하니까! 오냐, 네놈이 먼저 등 돌렸으니, 나를 매정하다 원망하지 말아라!”
배신감이 치밀어 올랐다.
갱지를 들고 있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술이 당기는군.”
입안이 씁쓸하고, 목구멍이 탁 막혔다.
“태성호텔로 간다. 오늘은 다 내려놓고 술 한잔해야겠다. 그놈 그래도 내 친동생이야!”
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놈 아기 때부터 55년을 돌봤다. 오늘 형제끼리 코 삐뚤어지게 마시고 정리해야지.”
“회장님······.”
“언제고 해야 할 일이었어. 윤성이 그놈이 제 측근이랍시고 일도 못하는 놈팽이들을 임원으로 데려와서 돈 잔치를 벌일 때부터 정해진 수순이었고.”
차 회장은 가죽시트를 팡팡 쳤다.
“고 실장, 빨리 출발하지 않고 뭐 하고 있어?”
“아직 김 비서가 타지 않았습니다.”
철컹.
마침 김 비서가 대문을 나섰다.
“빨리 타! 지금 당장 윤성이 놈 멱살잡이하러 갈 생각이다!”
“회장님, 이거 받으십시오. 정혁 도련님께서 회장님께 드리는 선물이라 하셨습니다.”
“내 새끼가 선물을 보냈어?”
차 회장은 잽싸게 종이봉투를 열었다.
“더덕주? 이 정도면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상등급품인데. 허어······.”
술병에는 작은 쪽지가 붙어 있었다.
삐뚤삐뚤한 어린애 글씨였다.
<할아버지, 속상하다고 술 많이 드시지 마세요. 하지만 오늘만큼은 어쩔 수 없겠죠? 꼭 술을 마셔야 한다면 속이 덜 상하는 약주로 드세요. -정혁이 올림->
태성건설 사장 때문에 붉으락푸르락하던 차 회장의 안색이 크게 누그러졌다.
구겨졌던 미간도 펴지고, 깨물었던 입술도 호선을 그렸다.
“그래도 내 속을 알아주는 건 우리 금쪽같은 내 새끼밖에 없구나.”
“정혁 도련님께서 당부하셨습니다. 태성건설 사장님께는 더덕주 단 한 잔도 내주지 말라고 하더군요.”
“내가 윤성이 놈이랑 술 마실 것까지 꿰뚫어 보았던가? 하하하!”
이게 뭐라고.
왜 이리 기특하고 흐뭇하단 말인가.
“자식 놈에게도 이런 마음이 담긴 선물은 받아본 적 없는데 말이야.”
귀한 손자가 벌써부터 눈에 밟혔다.
눈사람을 만들면서 활짝 웃던 귀여운 모습이 아른거렸다.
“다들 내게 손 벌리면서 돈 달란 소리만 해! 내 마음, 내 속을 생각해 주는 녀석이 어디 한 놈이라도 있던가? 자기 속은 왜 몰라주느냐며 섭섭하단 투정이나 부리지. 쯧!”
하지만 자기 속은 왜 몰라주냐며 투정하지 않던 자식이 딱 한 명 있었다.
과묵하고, 진중하고, 늘 한결같은 놈.
불평불만이 없으니 그만하면 다 괜찮은 거라 넘겨짚어 버렸다.
그래서였을까.
그놈의 속을 먼저 헤아려 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성준이한테 여자가 있는 줄 몰랐어.”
차 회장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함박눈이 펄펄 내렸다.
“성준이 눈만 봐도 알겠더라. 우광의 딸은 돌 보듯이 하는 놈이 이수진만 보면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져. 마음이 깊어.”
절로 긴 한숨이 뒤따랐다.
“후우······.”
차 회장의 얼굴은 오늘따라 시름이 깊어 보였다.
“이거 술을 마셔야 하는 이유가 또 하나 늘었구만.”
차 회장은 더덕주를 바라보았다.
노란 빛깔의 술이 찰랑찰랑했다.
“김 비서, 태성화학 말이야.”
“예, 회장님.”
“우리가 나서서 지분을 정리하면 손해는 얼마나 감수해야 하는지 한번 뽑아 봐.”
“우광과의 혼사를 정리하시겠다는 뜻입니까?”
“만약이란 게 있을 수도 있지.”
차 회장은 서늘한 눈을 하고 있었다.
“지금 태성화학을 정리하면 우리 쪽 손해가 많을 거라는 건 나도 알아. 아마 잡음도 끊이지 않을 것이고, 반발도 꽤 심하겠지. 구조조정도 감수해야 하고, 우광과도 얼굴을 붉힐 테고.”
차 회장은 팔짱을 꼈다.
눈을 감고 뒷좌석 시트에 몸을 깊숙이 묻었다.
“하지만 어쩌겠어. 내 아들이 좋다는데. 사랑하는 여자랑 결혼하고 싶다는데.”
이미 아들의 비장한 얼굴을 보고 만 후였다.
“세상에 자식 이기는 부모가 어디 있던가? 제 처자식을 버릴 수 없다잖아. 자기가 벌인 일은 자기가 책임지겠다잖아. 장하다 응원은 못 해줄지언정, 그걸 어찌 말리겠어.”
막내아들이 어느새 아버지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차 회장 역시 아버지로서 각오를 다지기로 했다.
“내 아들, 내 손자의 눈에서 피눈물을 보느니, 차라리 내가 출혈을 감수하는 게 낫겠지,”
운전대를 잡은 고 실장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회장님, 진심이십니까?”
‘처음부터 내가 성급하게 잘못 꿴 단추였어.’라는 말을 하는 대신.
차 회장은 모른 척, 보조석으로 고개를 돌렸다.
“김 비서, 윤성이 놈은 태성건설 주식을 얼마나 갖고 있었지?”
“회장님께서 4%를 주셨습니다. 거기에 몰래 차명으로 사들인 주식이 3% 정도 될 겁니다.”
“내 새끼가 발바닥에 불나도록 뛰어서 받은 공사대금을 빼돌려서, 태성건설이 보유한 아파트 부지까지 팔아치워서! 그렇게 사들인 주식이 고작 3%밖에 안 된 말이야? 무능에도 정도가 있지!”
차 회장은 으드득 이를 갈았다.
“도저히 안 되겠다! 지금부터 내가 윤성이 놈에게 뜯어내는 모든 것, 전부 정혁이 앞으로 돌려놔!”
“예, 회장님.”
김 비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고 실장은 기함할 수밖에 없었다.
“아드님이신 성준 도련님이 아니고, 손자이신 정혁 도련님께 주시겠다고요?”
“그래, 공을 세웠으면 그에 합당한 포상을 내려야지.”
차 회장은 갱지와 더덕주를 툭 건들었다.
“인생은 원래 기브 앤 테이크야!”
차 회장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윤성이 놈이 뒤로 빼돌린 돈이 총 얼마나 되지?”
“아직 장부를 다 살펴본 건 아니라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얼추 10억은 될 겁니다.”
“10억?”
들을수록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그 돈도 도로 토해내도록 만들어야겠군!”
고 실장은 아연실색했다.
“설마 그것까지 전부······?”
하지만 김 비서는 당연하다는 듯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참에 태성건설 임원진도 전부 조사해 올릴까요?”
“당연하지! 그 무능하고 염치없는 새끼들, 죄다 모가지 날리고 횡령한 돈도 도로 회수해!”
숙청 선언이었다.
“지금 당장 윤성이 놈더러 태성호텔 바(Bar)로 올라오라고 해! 못 오겠다면 끌고 와도 좋다!”
차 회장의 눈은 비정하게 빛났다.
피를 각오한 눈이었다.
“그래도 동생이니 마지막 변명 정도는 들어줘야지. 작별 인사로 술 한 잔 따라줄 정도의 의리는 있어!”
차 회장은 손자가 챙겨준 더덕주를 흘끔 보았다.
“하지만 더덕주는 단 한 모금도 허락할 수 없다. 그놈 몫으로는 깡소주나 준비시켜!”
차 회장이 탄 차는 태성호텔로 향했다.
* * *
나는 따끈따끈한 물이 찰랑찰랑했던 아기 욕조에서 나왔다.
뽀송뽀송하게 몸을 닦고, 질 좋은 새 옷을 입었다.
욕실 밖으로 나오자, 문밖에서 기다리던 태성그룹 경호원들이 뭔가를 잔뜩 내밀었다.
“도련님, 여기 달달한 코코아 좀 드십시오.”
“쿠키와 사탕도 있습니다.”
“초콜릿을 좋아하신다면서요? 그래서 조각 케잌도 초코로 사왔습니다.”
죄다 어린애들이라면 환장할 법한 군것질거리였다.
보기만 해도 당뇨에 걸릴 것 같다.
그만큼 달콤하고 따뜻한 호의였다.
나는 두 손을 모으고 꾸벅, 배꼽 인사를 했다.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
태성그룹 경호원들은 몹시 뿌듯한 표정으로 웃었다.
그 뒤에서 철구 아저씨가 한쪽 눈을 연신 찡긋거렸다.
딱 봐도 지금 이 사달의 원흉이었다.
“이런, 이런. 도련님, 제가 준비한 것들은 이 녀석들의 것과는 조금 다릅니다.”
반면 눈치 빠른 태성 경호원, 자칭 넘버 투는 남달랐다.
“쌍화차에 계란 2개 동동 띄워 왔습니다. 곁들임 간식은 뻥튀기, 입가심은 역시 은단이죠.”
“역시!”
나는 엄지를 들어 올렸다.
태성그룹 경호원들은 충격받은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아니, 코코아가 아니라 쌍화차였어?”
“쿠키를 마다하고 뻥튀기를 택할 줄이야!”
“조각 케잌 대신 은단이라니!”
눈치 빠른 경호원, 자칭 넘버 투, 내 수족을 자처한 유종태는 몹시 의기양양한 얼굴로 웃었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역시 회장님의 핏줄이십니다!”
“이, 이럴 수가!”
철구 아저씨는 하늘이 무너진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들고 있던 막대 사탕들이 바닥으로 후두둑 떨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고개를 돌렸다.
아버지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채, 크리스마스트리를 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 다 우리 정혁이 꺼! > 끝
ⓒ 오소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