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313)
재벌집 만렙 아들-313화(313/416)
313. 마음에 드는 선전포고
이제 갓 40대에 들어선 남자치고는 옆머리 두 줄만 새하얗다.
동남쪽 스컹크는 스컹크 꼬리를 연상시키는 꽁지머리를 하고 있었다.
그가 정중하게 안내했다.
“안으로 드실까요?”
나와 할머니는 동남쪽 스컹크의 안내에 따랐다.
어디에선가 남자의 비명 소리가 작게 바람에 실렸다 흩어졌다.
바람을 타고 훅 끼쳐 오는 피비린내까지.
칙칙칙!
동남쪽 스컹크가 품에서 향수를 꺼내 양복에 분사했다.
독한 향수 냄새로 피비린내를 숨긴다.
하지만 동남쪽 스컹크의 와이셔츠에 튄 핏방울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할머니는 대문을 넘으며 툴툴댔다.
“여기 있던 애들은 다 어디 가고, 네가 직접 우릴 안내해?”
“어쩌다 보니. 안내를 맡던 놈들을 다 끌어내서요. 이쪽으로.”
“걔들을 네가 왜 끌어내?”
“초인종을 누르니까 바로 문을 열더라고요.”
“…….”
할머니는 황당하다는 듯이 동남쪽 스컹크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동남쪽 스컹크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죽을죄죠.”
동남쪽 스컹크가 정원으로 통하는 길에 서 있던 부하를 손끝으로 불렀다.
손목 안쪽에 동백꽃 문신을 새기고 있는, 험악한 남자였다.
둘은 일본어로 대화했다.
“ボス、どのように処理しますか? (보스, 어떻게 처리할까요?)”
“殺す. (죽여.)”
동남쪽 스컹크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그가 안내한 곳은 후원의 별채였다.
백합과 능소화가 특히 곱게 피어 있는, 일본식 건물이었다.
“여기서 잠깐 기다리고 계십시오. 간단하게 먹을 것을…… 내올 사람이 없군.”
동남쪽 스컹크는 냉수를 내밀었다.
할머니는 응접실 테이블에 내밀어진 냉수컵을 못마땅한 듯이 노려보았다.
“여기서 일하는 사람이 몇인데. 이젠 다과를 내어 올 사람도 없다고?”
“주인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하던 놈들이었습니다. 먹을 것에 관해서라면 특히 더 주의해야지요.”
“음식에 약이라도 탔나 보지?”
“주인어른께 올리는 전복죽에 신김치를 내왔더라고요.”
“…….”
“이 또한 죽을죄 아닙니까.”
동남쪽 스컹크는 다다미방을 둘러보다 난처한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이거 방석을 내올 사람도 없으니.”
“왜? 그놈들 역시 주인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했다고 내쳤니? 혹시 빨래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뭐 이런 이유는 아니겠지?”
“어떻게 아셨습니까?”
동남쪽 스컹크는 응접실 창틀을 손가락으로 스윽 닦아냈다.
손끝에 묻어나는 먼지를 후 불며 차가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것 보십시오. 역시 죽을죄.”
할머니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을 토했지만.
나는 피식 웃었다.
“그게 일본에서 귀국하자마자 집안을 장악한 명분이 되나요?”
“명분이란 필요할 때 덧붙이는 선동 문구에 불과합니다.”
“재밌네요. 그 선동 문구란 거. 그건 정동진 어르신께서 직접 붙이신 건가요?”
멈칫.
나를 돌아보는 동남쪽 스컹크.
입매는 정중하게 웃고 있었지만, 눈빛은 싸늘했다.
“주인어른께선 굳이 그런 귀찮은 일을 감수하셔야 할 필요가 없으십니다.”
“그래서 당신이 귀찮은 일을 자청하여 떠맡았나 봐요?”
“물론입니다. 그럼 주인어른께 위협이 되는 놈들을 제가 가만히 두고 봐야 합니까?”
“확실하게 대답해 보겠어요? 정동진 어르신의 명이 떨어지기도 전에 움직였나요?”
“이런, 곤란한 질문이군요.”
동남쪽 스컹크는 옷매무새를 고쳤다.
“거동도 제대로 못 할 만큼 아프신 분을, 이런 사소한 일로 귀찮게 해드릴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건 수하 된 도리가 아니지요.”
그가 넥타이까지 고쳐 맨 후 싱긋 웃었다.
“주인어른께선 특별히 두 분을 정중히 맞이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그게 그가 직접 대문까지 나가 최대한 정중하게 맞이한 이유라는 소리였다.
할머니가 눈을 사납게 치켜떴다.
“이게 네놈의 정중함이냐?”
“그러니 지하실이 아니라 응접실로. 이렇게.”
동남쪽 스컹크는 손톱 끝을 후 불었다.
“얌전히 기다리고 계십시오. 주인어른께서 면담을 허락하실 때까지.”
손톱 사이에는 미처 닦아내지 못한 핏물이 때처럼 굳어 있었다.
“어쩌면 오래 기다리셔야 할 수도 있습니다.”
“뭐야? 너 지금……!”
주먹을 쥐고 파르르 떠는 할머니에게 나는 냉수를 내밀었다.
“그건 어르신의 건강 때문인가요, 오늘 우리가 방문한 용건 때문인가요? 그도 아니면 당신의 사정 때문일까요?”
“호오.”
동남쪽 스컹크가 눈을 빛냈다.
“도련님은 정성준보다 어르신을 더 많이 닮은 것 같군요.”
“우리 아빠 이름은 정성준이 아니라 차성준이에요.”
나는 싱긋 웃었다.
“아시면서.”
“확실히 정성준이랑은 여러모로 다르시군.”
“됐고. 이참에 우리 아빠가 작성했다는 그 혈서나 찾아두세요.”
나는 씩 웃었다.
“싹 다 태워버리게.”
“재밌는 분이시네.”
동남쪽 스컹크는 웃었다.
“방문 용건은 그게 아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겸사겸사죠. 온 김에 회수해야 할 물건도 있고요.”
“회수? 정성준에게 정씨 집안 가보를 물려준 적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건 받아 가야 할 물건이고요. 그리고 우리 아빠 이름은 차성준이라니까요. 두 번째예요.”
“인제 보니 용건이 세 가지나 되시는군요.”
“어쩌면 그 이상이 될 수도 있고요.”
“호오.”
사람을 평가하는 눈이었다.
물론 평가는 스컹크 혼자만 내리는 게 아니다.
“어르신께 전해 주세요. 전 그리 오래 기다릴 생각 없다고요.”
“이대로 돌아가셔도 무방합니다. 주인어른께는 제가 그리 전하겠습니다.”
“30분 드리겠어요.”
나는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아프신 분이니까 평소보다 10배는 더 넉넉하게 쳐드리는 거예요.”
“확실히 재밌어.”
“딱히 재밌지도 않을걸요? 제가 공손하게 말을 전하는 건 여기까지거든요.”
“내가 말을 전하지 않겠다면?”
“어쩔 수 없이 제가 직접 어르신을 불러오는 수밖에요.”
“직접? 어떻게?”
“요령껏, 재주껏, 능력껏?”
흥미로워 보이는 눈이었다.
“기대하겠습니다.”
“감당하실 수 있으시겠어요?”
“그럴 일은 없을 테지만, 그 또한 기대합지요.”
드르륵. 탁.
동남쪽 스컹크는 유쾌하게 웃으며 응접실을 나섰다.
* * *
“이 일을 어찌하면 좋으니.”
할머니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집안 돌아가는 꼴이 아무래도 영 심상치 않구나. 동진이가 건재했을 때엔 상상도 못 했던 일이야.”
할머니가 기척을 죽여가며 일어나 응접실 창문벽에 붙었다.
마치 스파이라도 되는 것처럼.
“여기에 오는 동안 마주친 녀석들은 도합 스물한 명. 그들 대부분은 일어를 쓰고 있었어. 난 모르는 녀석들이고.”
놈들은 손목 안쪽에 똑같은 문신을 새기고 있었다.
동백꽃 문신 말이다.
“평소 이 집안에서 일을 하던 녀석들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아. 놈들에게 풍겨 나오던 피냄새까지 생각하면…….”
할머니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정말로 동남아 스컹크가 무력으로 이곳을 점거했다면…… 상황이 이런 줄도 모르고 제 발로 호랑이 굴에 기어 들어온 모양이다.”
할머니는 잔뜩 긴장한 채 창밖의 동태를 살폈다.
“동진이가 중병이 걸려 오늘내일하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이빨 빠진 호랑이 신세가 되었던 줄은 몰랐지. 아무래도 안 되겠다.”
할머니는 굳은 표정으로 날 돌아보았다.
“정혁아, 튀자!”
워워워.
나는 손을 들어 만류했다.
“할머니, 너무 그렇게 걱정할 것 없어요.”
“이 할미, 완전 심각해. 진지하게 하는 말이야. 보아하니 정씨 집안 가보 찾는 것도 그른 것 같다. 그러니 튀자, 정혁아.”
“정씨 집안 가보는 물론 어르신도 건재하신 것 같은데요?”
“뭐?”
할머니는 고개를 저었다.
“집안 돌아가는 분위기가 평소와는 완전히 다르다니까. 아무래도 동진이는…….”
“할머니가 그렇게 느끼셨다면 나머지 네 명의 최측근들도 당연히 그렇게 느끼겠죠?”
정동진 어르신이라는 분, 상당히 재밌는 분이시네.
권모술수는 물론 정보와 눈치까지 상당하군.
‘그게 아니라면 전대 거물 4인방이 아닌, 동남쪽 스컹크더러 날 맞이하라 이르진 않았을 테니까.’
중병에 들어 오늘내일한다는 사람이 준비한 뜻밖의 무대였다.
이 일로 하나는 분명해졌다.
“정동진 어르신이 동남쪽 스컹크에게 흥미로운 제안을 하신 것 같네요.”
“제안?”
내가 미리 전대 거물 4인방에게 제안했듯이.
‘마음에 드는 선전포고로군.’
그렇다면 나도 사양하지 않고 응해드리는 것이 도리.
나는 할머니에게 방긋 웃어 보였다.
“할머니, 아무래도 제가 장난 좀 쳐야 할 것 같은데요. 괜찮으실까요?”
“여덟 살짜리 어린애가 장난 좀 치는 게 대수겠니?”
“이번만 봐주기예요?”
“우리 정혁이 마음대로 해. 이 할미가 다 이겨!”
할머니는 콧방귀를 뀌었다.
“제 집안 단속 하나 못 하는 못난 놈! 만나기만 해 봐. 아주 머리채를 다 뜯어놓는다!”
할머니는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이 할미만 믿어!”
우리 할머니 최고!
그럼 사양하지 않고.
* * *
어두침침한 방 안.
온갖 의료기기가 달려 있는 깡마른 사내는 웃었다.
“널 상대로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고?”
“예, 주인어른.”
동남쪽 스컹크는 공손하게 머리를 숙였다.
“오히려 깜찍한 협박까지 해오더군요.”
“협박? 그 상황에?”
“성준이가 쓴 혈서를 태워버리겠답니다.”
“하하하, 재밌는 녀석이군.”
깡마른 사내는 턱을 쓸었다.
그럴수록 동남쪽 스컹크의 허리가 더욱 깊이 숙여졌다.
“받아낼 것이 하나, 회수할 것이 하나, 그렇게 용건이 세 가지, 어쩌면 그 이상이 될 것이라 했습니다.”
“그래, 직접 만나 본 소감은?”
“묘합니다.”
“구체적으로.”
“머리서부터 발끝까지. 눈빛부터 행동거지까지. 하나같이 범상치가 않은 것이…….”
“흐음.”
계속해 보라는 무언의 재촉.
동남쪽 스컹크는 몇 번이나 말을 골랐다.
하지만 끝내 한숨처럼 한마디를 꺼내는 것 외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판단 불가라고 할 수밖에.”
“판단 불가?”
앙상한 나뭇가지처럼 가늘어진 손가락에 동백꽃 문양의 반지가 헐렁하게 걸려 있었다.
한가운데에 ‘定(정)’이라고 적힌 반지를 돌리며 그가 중얼거렸다.
“네가 그런 말을 했던 건 야마모토 외엔 없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럼 그 녀석이 두 번째인가?”
“세 번째입니다.”
“세 번째?”
“저의 첫 번째, 주인어른이 계시잖습니까.”
“하하하, 나는 빼고 논해야지.”
입꼬리를 끌어 올렸던 깡마른 사내는 턱을 들었다.
“그 애가 올해 몇 살이라고?”
“여덟 살이라는 것 같더군요.”
“흐음. 판단 불가를 언급하기엔 너무 어린 나이인 듯한데.”
“그래서 의아합니다. 이런 경우는 여지껏 없었습니다만.”
동남쪽 스컹크는 허리를 깊이 숙였다.
“죄송합니다. 시간을 더 내어주시면 제가 어떻게든…….”
“간단하게 생각해 보자고.”
깡마른 사내는 등베개에 몸을 깊이 묻었다.
“성준이와 비교하면?”
“비교 불가합니다.”
“성준이가 어디 보통 애였나.”
깡마른 사내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 녀석이 나를 불러들이겠노라고 단언했다지?”
“예.”
“성준이었다면 어땠을까?”
“30분이란 유예시간을 두지 않고 행동에 나섰을 겁니다.”
동남쪽 스컹크는 즉시 대답했다.
“엄포를 듣는 순간 별채를 박차고 나와 온 집안을 헤집을 겁니다. 문이란 문은 전부 다 열어젖혀 가며 주인어른을 찾았겠지요.”
과거 깡마른 사내의 입가에 곧잘 걸리던 흐뭇한 웃음이 잠시 걸렸다.
“주인어른을 찾아낸 후엔 직접 담판을 지었을 겁니다. 그게 성준이의 방식이니까요.”
한때 양자로 들이려고 했던 하나뿐인 외조카이자.
“사내가 그 정도는 되어야지.”
그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물려주어도 좋다고 생각했던 오직 한 명.
헌데 그 아들은 어떤가?
“얌전히 기다리랬다고 순순히 따라?”
“질문이나 항변도 없었습니다.”
“물러 터졌군.”
깡마른 사내는 아쉬운 입맛을 다셨다.
“만일 그 애가 성준이만큼만 되었다면…….”
그때였다.
동남쪽 스컹크의 부하가 문을 박차고 뛰어들었다.
“大変だった! (큰일 났습니다!)”
“何が起こるのですか? (무슨 일로 이리 소란이냐?)”
“火……! (불이……!)”
“火? (불?)”
깜짝 놀란 동남쪽 스컹크는 자리를 박차고 달려 나갔다.
드르륵 탁!
복도를 가로질러 다급하게 내달렸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마주한 건 활활 타오르는 별채 건물이었다.
“맙소사……!”
동남쪽 스컹크는 입을 떡 벌렸다.
불타오르는 별채를 앞에 두고.
꼬마의 손짓에 따라 말죽거리 말대가리가 헥헥대며 열심히 휘발유를 끼얹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