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317)
재벌집 만렙 아들-317화(317/416)
317. 날로 먹겠다고?
솔직히 예상 밖이었다.
‘유언장에 차기 후계자에 관한 것을 제대로 적어놓지 않았을 줄 알았는데.’
하지만 유언장에는 내 이름 석 자가 박혀 있었다.
우리 아버지와 나란히.
이 유언장이 황금빛으로 반짝거리는 이유였다.
‘흐음, 이렇게 분명하게 후계자를 지목해 놓았을 줄은 몰랐는데.’
그래서 뜻밖이었다.
유언장에서 정식으로 지목한 후계자는 나.
거기에 우리 아버지를 후견인으로 지정해 놓았다.
‘분명 유언장에 후계자 관련 대목이 빠져 있어야 했어. 그렇지 않고서야 전대 거물들이 서로를 의심하며 그리 오랫동안 죽자고 싸울 리 없었을 테니까.’
정씨 집안 후계 전쟁에 대해 알게 된 이래로.
내 의심과 추론은 늘 같은 결과를 도출해 냈었다.
그게 아니라면 저 피 튀기는 전쟁을 설명하지 못한다.
하지만 알고 보니 변수가 있었다.
‘시체 도둑.’
그는 정동진 어르신 곁에 붙어 호시탐탐 때를 노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놈이 중간에 끼어들어 개판을 만들어 놓으려면…….’
머릿속이 바쁘게 팽팽 굴러갔다.
조합 가능한 퍼즐들이 흩어졌다 짜 맞추기를 반복했다.
나는 쓴웃음을 머금을 수밖에 없었다.
스윽.
나는 유언장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모로 기울였던 고개도 반듯하게 돌렸다.
“여기 있는 그 누구도 어르신의 유언장에 관해 제대로 아는 놈이 없었을 것이라고 하셨죠?”
“그랬지.”
“흑룡 문신을 새겼던 그 배신자도 몰랐을까요?”
“밀사(密使) 말이냐? 물론이다.”
정동진 어르신은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유언장을 썼던 변호사까지 죽은 마당이다. 그놈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유언장을 바꿔치기한다면요?”
“바꿔치기?”
정동진 어르신은 코웃음을 쳤다.
“작성한 이후 단 한 번도 꺼내본 적이 없는 것을, 그놈이 어디에 숨겨뒀는지 무슨 수로 알고?”
“혈서도 바꿔치기하는 마당에 유언장 바꿔치기하는 게 무슨 대수라고요.”
“허?”
“알 게 뭐예요? 유언장에 관련된 사람은 이미 다 죽고 없는 마당에, 누가 유언장의 진위를 증명할 수 있는데요?”
“…….”
정동진 어르신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유언장 공개는 사후(死後)에 이뤄지거든요?”
나는 작게 혀를 찼다.
“작성한 이후 단 한 번도 꺼내본 적이 없던, 아무도 모르게 꽁꽁 숨겨둔, 정씨 집안 후계 관련 일이라고 극비에 부쳤던 유언장?”
코웃음은 덤이었다.
“그런 수고를 들이는 것보다 훨씬 더 쉽고, 빠르고, 확실하게 일을 도모할 방법이 있는데, 굳이?”
“……바꿔치기.”
그렇다니까요.
“스컹크!”
“예, 주인어른.”
“찾아 와.”
“예, 알겠습니다.”
동남쪽 스컹크가 찹쌀떡 접시를 내려놓다가 몸을 돌렸다.
드르륵. 탁!
“裏切り者の居所を捜索する!遺言状を探す! (배신자들의 거처를 뒤진다! 유언장을 찾는다!)”
“はい! (예!)”
“地下室に連れて行った奴を尋問する! (지하실에 끌고 간 녀석을 심문해라!)”
“はい! (예!)”
아까 동남쪽 스컹크가 시체 도둑을 잡았을 때.
일부러 단단히 당부해두었다.
시체 도둑은 응접실이 아닌 지하실로 끌고 가라고.
‘열한 살의 내 조악한 솜씨보다야 저쪽이 훨씬 낫겠지.’
전당포 지하실에도, 이곳 지하실에도 흑룡 문신을 새긴 놈이 한 명씩 잡혀 있는 셈이니.
아마 캐낸 정보를 교차 검증할 수 있을 것이다.
동남쪽 스컹크가 그대로 나가기 전에.
“잠깐만요. 아까 무엇이든 필요한 게 있다면 말하라고 하셨죠?”
“예, 도련님. 무엇이 필요하십니까?”
“명동 송골매, 종로 금이빨, 까치산 방 여사, 말죽거리 말대가리를 이리로 불러주세요.”
“…….”
동남쪽 스컹크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슬쩍 제 주인을 바라보자, 정동진 어르신은 흔쾌히 손을 흔들었다.
“불러와.”
“주인어른, 괜찮으시겠습니까?”
“안 괜찮을 건 또 뭐야?”
“혈서와 유언장에 관한 밀담입니다. 정씨 집안 후계에 관한 중대한 사안을 논하는 자리가 아닙니까.”
“그러니까.”
“……알겠습니다.”
드르륵. 탁!
동남쪽 스컹크가 장지문을 열고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전대 거물 4인방이 이 방에 들어왔다.
정동진 어르신은 웃었다.
“너희들이 이 자리에 참석하게 된 이유는 오직 하나, 정혁이의 청이 있었기 때문이다.”
“알고 있습니다, 어르신.”
“본디 정혁이와 나, 단둘이 논해야 할 일이건만, 너희들의 참관을 허락하는 이유는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후계 문제를 매듭짓기 위해서다.”
“예, 어르신.”
“이게 무슨 뜻인지 알지?”
“예, 압니다.”
전대 거물들은 한목소리로 말했다.
그제야 정동진 어르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참에 내 억울함도 같이 풀어야겠군. 난 시시한 장난질 따윈 취급하지 않는다.”
“어르신, 이것 좀 보십시오.”
동남쪽 스컹크가 달려와서 종이를 내려놓았다.
“과연 놈이 위조한 유언장을 숨겨놓고 있었습니다. 필체부터 인장까지 주인어른의 그것과 똑같습니다.”
짙은 똥빛에 더해 검은색과 붉은색이 일렁거리는 불길한 문서였다.
정동진 어르신은 그것을 받아 읽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진짜였군.”
정동진 어르신은 으드득 이를 갈았다.
“정말 이 유언장에는 후계자에 관한 대목이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았어.”
그뿐만이 아니었다.
“내 뒤를 이을 자라면 응당 그만한 능력이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그것이 내가 정씨 집안 재산을 쪼개어 관리시킨 것이라고? 하!”
정동진 어르신은 치미는 짜증을 이기지 못하고 유언장을 와락 구겼다.
“이깟 유언장에, 네놈들은 눈이 뒤집혀서 개싸움을 벌였겠어?”
“그것이 어르신의 뜻이라면…….”
“그러라고 네놈들에게 정씨 집안의 권한을 나눠준 줄 아느냐? 성준이 뒤를 받쳐주라고 준 거야!”
전대 거물 4인방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기가 차는군.”
정동진 어르신은 나를 돌아보았다.
“넌 또 그걸 어찌 알았고?”
그야 전생에 돌아가는 꼴을 봤으니까 알죠.
이걸 뭐라고 설명할 방법이 없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데 한발 빠르게 정동진 어르신이 말을 가로챘다.
“눈치껏, 요령껏, 능력껏, 재주껏 때려 맞혔다는 개소리는 하지 말고.”
“자신의 무능으로 상대의 유능함을 덮으려 하지 말라면서요?”
나는 툴툴댔다.
“저놈이 꼬리가 밟혔거나, 제가 그만한 정보원과 접촉했거나. 아니면 둘 다?”
“허.”
정동진 어르신은 턱을 쓸었다.
“이거야 원, 찔러볼 틈도 안 주니. 대체 이런 물건이 어디서 뚝 떨어졌지?”
아니, 그냥 전 어르신이 한 말로 돌려 막기를 했을 뿐인데요.
그렇게 혀를 내두를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확실히 넌 성준이보다는 나를 많이 닮았구나.”
왜 다들 나만 보면 자기를 닮았대?
일없거든요?
* * *
정동진 어르신은 등베개에 몸을 깊숙이 파묻으며 웃었다.
“내게 묻고 싶은 말이 아주 많아 보이는구나.”
“그보다는 따지고 싶은 말이 더 많죠.”
나는 못마땅함을 숨기지 않았다.
“아까와는 말이 영 다르신데요?”
“글쎄. 나는 모르겠는데? 무엇이 다르다는 거지?”
“어르신 뒤를 이을 사람은 오직 한 명뿐이라고. 무려 20년도 더 전부터 누누이 일러왔다면서요?”
“그랬지.”
“그럼 왜 저를 우리 아빠와 함께 정씨 집안 후계로 이름을 올려놓으셨대요?”
나는 검지로 유언장을 딱딱 짚었다.
“심보가 너무 고약하잖아요.”
“하하하.”
정동진 어르신은 시원하게 웃었지만, 최측근 5인방은 안절부절하지 못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어르신이 저를 후계자로 지목하고 돌아가시면 어떻게 될 것 같아요?”
“이 녀석들이라면 널 곱게 두고 봤을 리 없겠지.”
정동진 어르신은 뻔뻔하게 웃었다.
“뼈도 못 추렸을 거다. 어느 날 갑자기 야산에 파묻혀 죽어도 모르지 싶은데.”
“그걸 알면서도 제 이름을 여기에 박아놓았다 이거죠?”
“네 후견인으로 성준이를 지정해 주었으면 된 거지. 뭐가 문제야?”
“문제가 없긴 왜 없어요?”
나는 유언장 옆에 나란히 올려진 빛바랜 혈서를 콕 짚었다.
“우리 아빠는 이 집안과 연을 끊겠다고 혈서 쓰셨거든요?”
쌍으로 황금빛이 번쩍거리는 것이, 아주 요망한 혈서였다.
“정성준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정씨 집안의 양자 입적도 사양하며, 다시는 이 집안의 일에 참견하지 않는 대신 모든 권리 또한 주장하지 않겠다잖아요.”
“그건 성준이 생각이고. 그 혈서 어디에 내 서명 날인이 들어 있지?”
그게 문제였구만!
이 혈서에는 정동진 어르신의 것은 눈을 씻고 봐도 없었다.
“그러니 이건 계약서가 아니라 각서라고 봐야 하지. 그리고 상속 포기 각서는…….”
“어르신이 살아 있을 당시에 작성하면 법적 효력이 없고요.”
“바로 그렇다.”
우리 아버지의 진심이 농락당한 셈이었다.
스스로 피를 내어 작성한 혈서는 한 글자 한 글자가 비장했었는데도.
“어르신, 되게 못돼 처먹은 거 알아요?”
“하하하.”
“됐고. 이거나 태워주세요. 약속은 약속이니까요.”
정동진 어르신의 웃음이 점점 더 짙어졌다.
“의미가 없는 일이라고 해도?”
“그게 왜 의미가 없어요? 법적 효력과 별개로 우리 아빠 마음의 족쇄를 푸는 일인데요.”
“만일 족쇄에서 풀려난 성준이가 재산을 탐내어 이 집안을 틀어쥐고 꿀꺽한다면, 넌 어찌할 테냐?”
“어쩌긴 뭘 어째요? 전 ‘우리 아빠 하고 싶은 대로 다 해요!’ 할 건데요? 달라면 주죠, 뭐.”
“…….”
“전 우리 엄마 아빠를 위해서라면 못 할 일이 없거든요.”
나는 팔짱을 척 끼고 삐딱하게 웃었다.
“그게 설사 많은 것을 감수해야 하는 전쟁이라고 해도요.”
“흑룡 문신을 새기고 있는 곳이 어딘지는 알고 하는 말이냐?”
“흑사회잖아요.”
“그럼 어려운 싸움이 될 거란 것도 알고 있겠지?”
“먼저 피하는 새끼가 쫄보인 거죠. 전 걸어오는 싸움은 피하지 않는다는 주의라서요.”
그건 시체 도둑을 잡아냈을 때, 이미 각오한 일이기도 했다.
아직 다 못 따졌다!
“어르신이 우리 아빠 숨통을 막았기 때문에 우리 아빠는 중동에서 7년이나 굴러야 했어요.”
“멍청하게 스스로 자초한 일이다. 그 전에 나를 찾아왔어야지.”
“우리 외할아버지가 우리 엄마를 못 찾고 7년이나 속을 끓이셨고요.”
“제멋대로 가출한 건 네 엄마였다.”
“우리 외할아버지가 아신다면 뺨을 맞아도 하실 말 없는 소리거든요?”
“그건 칼을 맞아도 할 수 없지. 각오한 일이다.”
후우, 한숨이 절로 나왔다.
똑똑한 줄 알았는데, 참 미련하기도 하고.
그런 미련을 부릴 수밖에 없을 만큼 외로워 보이기도 해서.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없었잖아요.”
“그렇게까지 안 한다면 성준이가 맹세를 번복하고 스스로 이곳에 발붙이려 할까?”
“저를 미끼로 우리 아빠를 이 집안에 붙들어둔다 한들, 그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데요?”
“세 가지, 아주 큰 의미가 있지.”
정동진 어르신은 느긋하게 웃었다.
“난 말을 번복하지 않는 것이고, 두 발 뻗고 편안하게 눈감을 수 있음은 물론, 정씨 집안의 명맥 또한 제대로 이을 수 있을 테니까.”
어르신, 전생에 말이에요.
어르신은 예상하지 못했겠지만, 어르신의 욕심 때문에 아주 많은 비극이 벌어졌었어요.
아버지를 잃고 태성가도 난리가 났었고요.
어머니를 잃고 우리 외가도 피눈물을 흘리셨을 거예요.
길바닥에 버려졌던 나는 또 어떻고요.
어르신의 최측근들은 서로를 의심하면서 전쟁 끝에 죽고 죽였어요.
“성준이는 능력만큼이나 그릇도 큰 애다. 고작 태성으로 성에 찰 리 없지.”
정동진 어르신은 자신만만했다.
“내가 갖고 있는 태성그룹 지분만 휘둘러도 태풍이 몰아칠 텐데. 태성은 경영권 방어나 제대로 할 수 있으려고.”
그게 내 용건이었다.
“그래서 왔어요. 겸사겸사 태성전자 지분도 회수할까 해서요.”
“맨입으로?”
“네. 맨입으로.”
“날로 먹겠다고?”
“안 될 것 있나요?”
“…….”
그렇게 황당하다는 눈으로 볼 것 없어요.
나는 동전지갑에서 곱게 접은 네 장의 연판장을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