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318)
재벌집 만렙 아들-318화(318/416)
318. 정씨 집안의 가보
‘승부수를 띄우자.’
나는 곱게 접은 연판장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정동진 어르신이 가져오란 뜻을 보이자, 동남쪽 스컹크가 움직였다.
탁.
나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연판장을 손바닥으로 누른 채 고개를 들었다.
“아직 가져가라 한 적 없거든요?”
“그게 네 비장의 카드인 거로군.”
“정확히 말하자면 제가 어르신을 만난 용건이죠.”
“태울 것은 혈서, 회수할 것은 태성그룹 지분이라면 이건 받아 가야 할 것이로구나.”
“맞아요.”
“정씨 집안의 재산목록인가?”
정동진 어르신은 보란 듯이 손가락에 낀 동백꽃 문양의 반지를 돌렸다.
“암만 봐도 내 유언장 하나만 못한 듯한데.”
“그것까진 제가 어쩔 수 없고요.”
나는 씩 웃었다.
“원래 유언장은 쓰는 사람 마음이니까요.”
“그거야 내 유언장에 뭐가 적혔는지 몰랐을 때 얘기고.”
정동진 어르신도 씩 웃었다.
“그러니 이건 도로 가져가면 될 것 같군.”
“그럼 사양하지 않고.”
나는 테이블 위에 올렸던 네 장의 연판장을 야무지게 회수했다.
‘운이 좋군. 내용부터 확인하고 따지고 들었다면 퍽 귀찮았을 텐데.’
어쨌거나 최측근이라는 네 사람을 내가 홀랑 먹어버렸으니까.
“이래서야 태성그룹 지분을 날로 먹을 수 있겠나?”
“아마도요?”
“내 유언장을 믿고 막 나가겠다는 거로구나. 너만 쏙 빼고 고쳐 쓰면 어찌할 테냐?”
“태어나서 지금껏 단 한 번도 말을 번복해 본 적 없다면서요?”
“…….”
정동진 어르신은 말문이 턱 막힌 듯 입을 다물었다.
제 입으로 꺼냈던 말을 번복할 수 없어서.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협상 테이블 위에 하나를 더 올렸다.
“이것도 추가할게요.”
스승님이 눈치껏 서류 가방을 통째로 테이블 위에 올렸다.
쿵, 소리가 날 정도로 묵직했다.
“외할아버지가 내게 주신 일본 부동산 관련 장부와 문서들이에요.”
“그건 내 알 바 아니지. 스컹크와 해결해.”
“안 그래도 그럴 작정으로 꺼낸 말이에요.”
좋았어! 이렇게 또 한 명 더 주인의 허락을 받아 갑니다!
나는 동남쪽 스컹크를 보면서 씩 웃었다.
“우리 아빠가 걸린 문제인 걸 몰랐다면 또 모를까. 알게 된 이상 담판은 이쪽과도 한번 치러야 할 것 같거든요.”
“용건은 그게 다인가?”
“아니요. 이것도 마저 올릴게요.”
탁.
나는 혈서와 유언장도 테이블 위에 나란히 올렸다.
“음?”
정동진 어르신은 물론이거니와 이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다들 똑같은 얼굴로 날 돌아보았다.
이건 웬 미친 짓이냐고 따져 묻는 표정이었다.
“그건 왜 올려놔? 내 것을 두고 나랑 협상을 벌이자는 뜻이냐?”
“안 될 것도 없죠.”
“허?”
“그러게 태워 달라 부탁할 때 태워주셨으면 이럴 일 없잖아요.”
나는 콧방귀를 뀌었다.
“청탁엔 성의가 수반되는 법인데, 성의만 받아먹고 청탁은 나 몰라라 하시잖아요? 어쩔 수 없이 제 수고비는 따로 받아내는 수밖에요.”
“수고비?”
“배신자 색출과 집안 정리.”
나는 일부러 동남쪽 스컹크를 돌아보았다.
“어르신이 당신에게 건넸던 그 모종의 제안 말이에요.”
“음?”
“우리 아빠 혈서와 관련된 거 맞죠?”
“허어?”
“덕분에 귀국을 허락받고, 기꺼이 이 연극에 동참하기로 하신 것 아닌가요?”
“……!”
입을 떡 벌린 동남쪽 스컹크가 반쯤 넋이 나간 얼굴로 헛웃음을 흘렸다.
즉시 제 주인을 돌아보았다.
“주인어른, 이 집안에 도청기가 설치되어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도청기?”
“그렇지 않고서야 주인어른과 저 사이에 오간 밀담이 밖으로 유출될 리 없잖습니까.”
“쯧. 정신머리 똑바로 챙겨라, 스컹크.”
정동진 어르신은 가볍게 혀를 찼다.
“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인지가 영 안 되나?”
“주인어른의 와병을 기회 삼아, 밀사가 그만큼 철저하게 어르신의 정보를 통제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 말은 지금 정혁이가 흑사회와 내통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동남쪽 스컹크는 즉시 허리를 굽혔다.
“스컹크, 스스로의 발언에 책임질 수 있겠나?”
“실언했습니다.”
“흠? 이건 스컹크답지 않은데.”
“물증 확보가 선행되지 않는 상황에서 섣부른 문제 제기는 명백한 제 불찰입니다.”
“하하하. 그러면 그렇지.”
곧 죽어도 잘못 짚었다는 소리는 하지 않는다.
“당장 내 방을 뒤져 도청기를 찾아낼 셈이냐?”
“흑사회와 내통하고 있는 배신자를 잡았습니다. 반드시 필요한 후속 조치를 취해야지요.”
나를 의심하고 있다는 소리였다.
“이 집안을 팔아넘긴 죄라면, 용서할 수 없는 큰일이 아닙니까.”
정동진 어르신은 즐겁다는 얼굴로 나를 돌아봤다.
“정혁아, 어찌해 줄까? 내 너를 위해 이번 한 번은 모른 척 눈감아줄 수도 있다만?”
“되도 않는 빚을 지우려고요? 그것도 누명을 뒤집어씌워서? 사양할게요.”
나는 코웃음 쳤다.
“도청기를 찾는다 해도 그건 시체 도둑의 죄지, 제가 흑사회와 내통했다는 혐의의 증거는 될 수 없어요.”
“하하하.”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잖아요. 고작 여덟 살짜리가 밀사를 부려 도청기를 설치하고, 극비 정보를 보고받는다고요?”
“하지만 넌 우리가 사전에 밀담을 나눴다는 것도, 밀사가 흑사회 간부라는 것도 알고 있었지.”
“머리만 조금 굴리면 때려 맞힐 수 있는 것 가지고, 자꾸 심통맞게 구실 거예요?”
정동진 어르신은 즐거워 죽겠다는 얼굴로 등베개에 몸을 묻었다.
“정혁아, 스컹크와 나의 밀담은 고작해야 4시간 전이었다.”
정동진 어르신은 손깍지를 꼈다.
깡마른 손가락에 헐렁하게 끼워진 동백꽃 문양의 반지가 유난히 반짝거렸다.
“주위를 모두 물리고 진행한 일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밀사조차 몰랐을 정도였는데.”
“그랬겠죠. 그러니 함정인 줄도 모르고, 제 손으로 집안 정리를 도왔겠죠.”
“밀사도 눈치채지 못한 낌새를 어린 네가 꿰뚫어 보았을…….”
말을 하다 말고, 정동진 어르신이 눈을 가늘게 뜨며 웃었다.
“스컹크. 뒤져라.”
“예, 주인어른!”
허락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동남쪽 스컹크는 우렁차게 대답했다.
“그럼 우리 물증을 두고 다시 논하기로 할까?”
그놈의 물증은 참 쓸데없다 싶지만.
도청기의 설치 여부는 나도 궁금하니까 기다려 본다!
“그러죠 뭐.”
호로록.
이 집 쌍화차, 거참 더럽게 맛없네!
퉤퉤퉷!
* * *
스컹크의 부하들이 속속 뛰어들었다.
이곳을 찾을 때마다 그들의 손에는 피가 번진 보고서가 한 장씩 들려 있었다.
지하실에 끌고 갔던, 미리 손보고 있던 놈들을 족쳐서 얻어낸 것일 터였다.
“주인어른, 그 빌어먹을 놈들이 작정하고 일을 벌였군요.”
동남쪽 스컹크는 씁쓸하게 웃으며 보고서를 내밀었다.
“주인어른의 침실, 응접실, 화장실, 서재, 거실. 이렇게 총 다섯 곳에서 도청기를 찾았습니다.”
“수신한 곳은?”
“본채 지하실입니다.”
“등잔 밑이 어두웠군.”
정동진 어르신은 중병에 걸려 와병한 지 오래였다.
험악한 일에 쓰곤 하는 지하실까지 내려갈 일이 없다는 소리.
“놈들이 실토했습니다. 흑사회의 밀명을 받아 잠입, 혹은 매수되었다고 합니다.”
“목적은?”
“정씨 세력의 공중분해.”
“하!”
“후계자 자리가 공석인 것을 이용해, 후계 전쟁을 벌여 와해시키란 명이었다는군요.”
동남쪽 스컹크는 날 힐끔 바라보았다.
“그 일환으로 도련님과 연관된 모든 밀정들을 갈아 치우고, 도련님의 존재 자체를 엄폐하였으며.”
“하!”
“이후 도련님 모자(母子)를 확보, 혹은 제거할 작정이었다 합니다.”
“제거? 확보?”
“아쉽게도 실패하여 차후 납치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고.”
“납치?”
정동진 어르신은 피 묻은 보고서를 와락 구겼다.
동남쪽 스컹크는 마른침을 삼키며 말을 골랐다.
“태성그룹 경호원들이 투입된 이후 경호가 너무 단단하여 뚫지 못하자, 어쩔 수 없이 교란 작전으로 방향을 틀게 되었는데, 그것이…….”
“새로운 타깃은?”
“정혁 도련님의 외가, 이수진 씨의 가족들입니다.”
“이런 빌어먹을!”
정동진 어르신이 구겨진 보고서를 내던졌다.
반쯤 구겨진 쓰레기가 팔랑팔랑 낙엽처럼 바닥에 떨어졌다.
“이거 단순하게 볼 문제가 아니었군.”
정동진 어르신은 쓰게 웃었다.
“자칫했다면 친구의 외손주와 딸이 납치, 살해되었을 뻔한 데다, 친구네 식구들까지 비명횡사하게 생겼었다니.”
정동진 어르신은 연거푸 마른세수를 했다.
“딸의 행방을 불문에 부친 것과는 차원이 다른 민폐를 끼칠 뻔했군. 이 정도면 칼 맞아주는 것으로도 속죄하기 어렵겠는데?”
내 말이!
어르신 욕심 때문에 전생에선 여러 집안이 풍비박산 났었다니까요.
정동진 어르신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봐요. 누명이죠?”
어떤 미친놈이 남의 집안 망하라고 자기와 자기 가족을 두고 납치, 제거, 살해하란 의뢰를 해요.
그것도 중국 마피아한테.
정동진 어르신은 몇 번이나 입술을 달싹대기는 했지만 그뿐이었다.
정동진 어르신은 눈을 돌려 차가운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흑사회와 우리 사이엔 큰 원한이 없는 것으로 아는데.”
“일본 측에서 비밀리에 어마어마한 착수금과 함께 일본산 마약 유통권을 내걸고 의뢰를 해왔답니다.”
마약 유통은 돈이 된다.
중국 마피아라 부르는 흑사회라면 눈에 불을 켜고 탐낼 만한 먹이였을 터.
“일본이라.”
정동진 어르신의 눈이 살벌하게 번뜩거렸다.
“짚이는 놈이 너무 많군.”
“케케묵은 원한이 워낙 깊으니까요.”
정동진 어르신은 독립운동을 하던 시절에 일본인을 대상으로 사채와 고리대금, 기업 장사 등을 하여 거부가 된 사람이다.
그렇게 되기까지 얽힌 원한과 이해관계가 참으로 복잡하고 더러웠을 터였다.
이 바닥은 원래 타인의 피눈물을 돈으로 바꾸는 곳이다.
“일본 쪽 일은 제게 맡겨주십시오. 지옥 끝까지라도 낱낱이 파헤치겠습니다.”
“좋다.”
정동진 어르신은 나를 돌아보았다.
“이 집안에 스며든 배신자를 알아봤을 뿐 아니라, 그놈이 내 유언장을 어떻게 위조하여 바꿔치기할지도 꿰뚫어 봤고, 향후 정씨 집안이 남의 손에 어찌 놀아날지 뻔히 내다봤다…….”
정동진 어르신이 생각에 잠기자, 무거운 침묵이 흐르기 시작했다.
이 자리에 참관을 허락받은 전대 거물들에게는 애초에 발언권이 허락되지 않았다.
오죽하면 동남쪽 스컹크마저 전대 거물들 옆에서 열중쉬어 자세로 기다리고 있을까.
“호부 밑에 견자 없다더니. 물건은 물건이야.”
정동진 어르신은 뜨거운 눈으로 한참이나 나를 응시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호로록.
에라이!
나는 마시던 쌍화차를 내려놓았다.
어째 이 집은 찹쌀떡까지 더럽게 맛이 없냐! 퉤퉤퉷!
“정혁아, 너라면 이 문제를 어찌 처리할 거냐?”
“지금 저한테 해결책을 구하신 거예요?”
나를 정씨 집안의 후계자감으로 평가하고 싶으시단 뜻은 알겠는데.
난 딱히 그 기대에 부응해 주고 싶은 마음이 안 들거든요?
“맨입으로?”
“하하하! 맞지. 청탁에는 성의를 수반하는 법이라 했던가.”
정동진 어르신의 웃음은 점점 더 만족스럽게 바뀌었다.
“그래, 내가 뭘 해 주면 될까?”
“정씨 집안의 가보를 정씨 집안 사람에게 물려주셨으면 좋겠어요.”
“정씨 집안 사람? 누구, 네 아비?”
“우리 아빠 이름은 차성준이라니까요. 왜 우리 할머니는 쏙 빼놓으세요? 여자는 정씨 성도 못 써요?”
나는 정씨 집안 가보에 지대한 관심과 욕심과 애착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함께 왔다.
“정씨 집안 가보를? 누님께?”
“갖고 싶으시대요.”
우리 할머니가 갖고 싶어 하지 않았다면 정씨 집안 가보고 나발이고, 난 쳐다도 안 봤다!
“누님은 출가외인이라…….”
“그럼 우리 할머니가 시집갈 때 정씨 성 떼어버리고 보내셨어야죠.”
외국에서 하듯이.
“지금이 조선시대인 줄 알아요? 20세기 대한민국에서는 여자도 투표권과 재산권, 상속권이 보장되어 있거든요?”
“정씨 집안 가법은…….”
“어차피 초면인데 정씨 집안 가법 따위 내가 알 게 뭐예요?”
나는 팔짱을 꼈다.
“싫으면 마시든가요. 어르신이 돌아가신 뒤에 이 집구석이 개판 나든가 말든가. 내 알 바도 아닌데요.”
“좋다. 받아라.”
정동진 어르신이 흔쾌히 끼고 있던 반지를 빼어냈다.
그러더니 날 향해 휙 던졌다.
나는 공중에서 가볍게 낚아챘다.
“그게 바로 우리 정씨 집안 가보다.”
나는 손바닥을 펴서 물건을 확인했다.
‘아니, 이게 왜 정씨 집안 가보야?’
아무리 봐도 맞는 것 같은데.
동백꽃 문양 한가운데 박힌 ‘定(정)’이란 글자 하며, 반지 안쪽에 새겨진 뜻 모를 숫자와 묘한 홈까지 완전히 똑같다.
‘이 반지, 내 건데?’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 나이 스물이 되던 해.
날 자신의 후계자라 선언하며 스승님께서 내게 주셨던 반지다.
“또한 정씨 집안 수장이 사용하는 인장이기도 하지.”
뭐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