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319)
재벌집 만렙 아들-319화(319/416)
319. 반지의 주인
홀린 듯이 반지를 내려다보았다.
스승님이 나를 후계자라 선언하며 내게 이 반지를 주었을 때, 나는 세상을 다 얻은 것만 같았다.
-스승님, 감사합니다.
-감사할 것 없다. 이제 그것은 네 것이다.
-내 것……. 이게 제 인장이란 거죠?
나는 씩 웃으며 손가락을 쫙 펴 보였다.
-저도 이제부터는 서명 날인할 때 이걸로 찍어야겠네요?
스무 살.
성인이 되었다고 축하해 주는 것만 같아서 가슴이 벅찼다.
나는 말보다는 문서를, 그것도 지장이나 인감도장이 찍힌 것만 취급하거든.
그건 내 생에 처음으로 갖게 된 인장 반지였다.
-그렇게 좋으냐?
-그럼요. 스승님 것보다 생활 기스도 훨씬 많고, 낡고, 남자한테 웬 꽃반지냐 싶고, 전당포 창고 구석에 처박혀 굴러다닐 법한 구닥다리 유물 같긴 하지만.
-…….
-스승님이 챙겨주신 건데요. 마음에 쏙 들어요.
-마음에 들었다니 되었다. 겉보기에는 그리 대단할 것 없어 보여도, 알고 보면 엄청 좋은 것이니라.
-어련하시겠어요.
공짜 좋아하시는 스승님은 푼돈에도 벌벌 떠는 인색한 분이신지라.
금은방 가서 새 반지를 맞추려면 목돈이 드니까, 이건 내가 감안해야지.
-이거 맨입으로 이렇게 귀한 선물을 꿀꺽 받아 챙길 수도 없고.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짜잔!
-오!
나는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온 것을 슬쩍 내밀었다.
-스승님이 좋아하는 파전에 막걸리예요.
-오, 파전에 막걸리!
-머리 고기에 소주도 있으니까 땡기는 것으로 드시죠.
-오오오!
스승님은 꽁술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분이셨다.
-아이고, 좋다! 내가 파전에 막걸리, 소주에 머리 고기 좋아하는 건 또 어떻게 알고!
스승님은 매우 기뻐하셨다.
그날 밤 우리 사제는 전당포 한구석에서 술잔을 기울였다.
밤늦도록 주거니 받거니.
우리는 얼큰하게 취해서 연신 웃음을 터뜨렸다.
-누가 시비를 걸면 그 반지를 딱 내밀어. 그럼 이제 어디 가서 맞고 다니진 않을 게다.
-스승님도 참. 제가 어디 가서 맞고 다닐 사람이에요?
술기운이 얼큰하게 오른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이마를 까고 얼굴을 덮은 흉터를 가리키며 웃었다.
-스승님의 조언 덕분에 서열 정리 확실하게 했잖아요. 사형들도 저만 보면 벌벌 떠는데요.
사형들은 포악하기로 이 근방에서 아주 유명했다.
성질도 못되고, 손속도 잔악하고, 뒤끝이 긴 데다, 수법이 지저분했거든.
뒷골목 건달패는 물론 웬만한 해결사들도 사형들에게는 한 수 접어줄 정도였다.
-앞으로 누가 널 건들거들랑 이걸로 이렇게, 요렇게, 으차차차, 후려쳐 버려!
-누가 후계자 반지를 너클처럼 사용해서 사람을 패요?
-못 팰 것도 없지! 남산 찰거머리, 그 자식이 또 성질 건들거들랑 턱주가리에 요렇게, 이렇게, 어퍼컷을 날려버려!
나는 혀를 찼다.
-말죽거리 말대가리랑 또 내기 바둑 두셨구만! 또 탈탈 털리셨어요?
-누가 내기 바둑을 뒀대? 내기 장기야!
-그쪽은 도박왕이잖아요! 이기지도 못할 도박, 왜 자꾸 덤비시나 몰라.
-쫄? 이러잖아!
스승님은 씩씩댔다.
-설욕전 가자!
-삼세판은 너무 귀찮은데…….
-그 자식이 내기 바둑 두다가 열받아서 바둑판 들어 엎는 꼴을 내 꼭 보고 싶어 그런다!
-까짓것, 가시죠!
그 길로 거하게 취한 우리 사제는 말죽거리 말대가리의 하우스 도박장을 찾았다.
-너 그 반지……!
말죽거리 말대가리는 내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보고 눈을 부릅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그 반지까지 판돈으로 올라오나 안 올라오나, 어디 한번 붙어보자!
그렇게 삼세판이 끝난 후, 말죽거리 말대가리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내 반지를 걸겠다! 그러니 딱 한 판만 더 해!
도박쟁이들이 다 그렇지 뭐.
나는 언제나처럼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비적 팠었다.
-일없거든요?
-너 그 반지가 어떤 반지인지 알고 있었냐?
-내가 왜 몰라요?
나는 보란 듯이 동백꽃 반지를 돌리며 웃었다.
-후계자의 증표!
-아무렴! 허튼수작 부릴 생각하지 마라, 말죽거리 말대가리.
스승님이 의미심장한 눈으로 말죽거리 말대가리를 보았었다.
-이건 우리 정혁이 꺼다.
-명동 송골매, 너 지금 그걸…….
말죽거리 말대가리의 말은 뜻하지 않은 불청객으로 인해 끊겼다.
-큰일 났습니다, 보스! 종로 금이빨이 뒷골목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답니다!
-뭐야?
-아무래도 조폭들의 구역싸움에 휘말려서 변을 당한 것 같다는데…….
-어느 병원이야? 어디로 옮겼어?
-태성병원이랍니다.
-가자!
내가 이 반지를 받았던 날, 종로 금이빨은 죽었다.
비참한 죽음이었다.
그 일이 있고 한 달 반 뒤, 나는 중환자실에서 깨어났다.
열흘 만에 정신을 차린 것이라고 했다.
12시간의 수술 끝에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고.
-쯧쯧쯧, 못난 놈.
그런 나를 스승님은 차가운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네놈의 짓이라지? 조폭들의 전쟁을 조장하여 종로 금이빨을 살해하도록 사주했더냐?
-아닙니다, 아니에요…….
산소 호흡기를 꼈는데도 숨이 가빴다.
온몸이 난도질당한 것처럼 극심한 고통이 몰려들었다.
그런데도 나는 필사적으로 외쳤다.
-제가 안 그랬어요, 스승님.
잔뜩 쉬고 갈라져서 탁해진 목소리가 힘없이 흘러나왔다.
-후계자의 지위를 이용해 장부를 조작하고, 몰래 마약을 유통해 딴 주머니를 찼다지?
-마약 유통이요? 장부 조작?
-흑사회와 내통하여 기밀을 팔아먹고, 정치권 인사들의 돈세탁까지 맡았을 줄이야.
-예?
할 말은 많고, 억울한 것도 많았다.
이해가 안 가는 부분도 수두룩했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했다.
-누명입니다. 전 그러지 않았어요.
-듣기 싫다. 증거는 물론 증언까지 명확한 상황에 네 아직도 나를 기만하려 드느냐?
스승님의 목소리는 서릿발처럼 차가웠다.
-넌 내 뒤를 이을 자격이 없다. 넌 내 명예를 더럽혔어.
-억울합니다. 저는……!
-앞으로 이 바닥에는 발도 붙이지 말도록.
-스승님!
-스승님이라 부르지도 마라! 지금부터 너와 난 모르는 사이다.
스승님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몸을 돌렸다.
스승님이 지팡이를 짚고 중환자실을 떠나려 하자, 나는 필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회복되지 않은 몸이 비명을 질러댔지만, 그런 건 아랑곳하지 않았다.
-스승님, 아닙니다! 결백을 증명하라면 할게요! 전 진짜 안 그랬어요!
쿠당탕탕!
힘이 들어가지 않는 내 몸뚱이는 침대 밑으로 요란하게 굴러떨어졌다.
-스승님, 제발……!
그러자 스승님의 발걸음도 순간 우뚝 멈췄다.
그것도 잠시, 스승님은 여전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중환자실을 걸어 나갔다.
-저 물건 지방 요양원으로 내려보내.
스승님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저 몸뚱이로 다시 여기까지 기어 올라오는 일 없게. 흔적조차 없애버리는 거 잊지 말고.
-예, 스승님! 그건 제게 맡겨 주십시오!
그런 스승님 뒤에서 사형들은 음흉하게 웃었다.
승리자의 웃음이었다.
-스승님, 저 새끼 주머니를 뒤져 먼지 하나 없이 탈탈 털어내겠습니다!
-이 일에 관련된 놈들을 전부 족치고, 저놈이 빼돌렸던 물건을 남김없이 회수해 오겠습니다!
-스승님, 제가 더 잘할 수 있어요! 아, 먼저 저 반지부터……!
큰사형이 내 손에 끼워졌던 동백꽃 반지를 억지로 빼내려 할 때였다.
-그만!
스승님은 지팡이를 쿵 찍으며 버럭 외쳤다.
-그건 내버려 둬라!
-스승님?
-명심해라! 앞으로 정혁이 외에 저 반지를 들고 오는 놈들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적으로 간주하여 족쳐!
-오!
-가족은 물론 사돈에 팔촌과 엮인 지인까지 모조리!
처음이었다.
스승님이 저렇게 단호하게 보복을 천명한 것은.
사형들은 매우 만족스럽다는 듯 비열하게 웃었다.
-그러니까 앞으로 정혁이를 도와주는 놈들은 확실하게 뭉개라, 이 말이네요?
-아무것도 가진 거 없는 놈이 저 반지라도 팔아서 도움을 요청하더라도 응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고립시키자. 맞지요?
-이 바닥에 다시는 발붙이지 못하도록, 제가 스승님의 이름으로 엄포를 쫙 돌려 놓겠습니다.
-앞으로 차정혁을 돕는 놈은 명동 송골매와 척을 지는 것으로 간주하겠다. 어떻습니까?
막 중환자실을 빠져나가려던 스승님은 잠시 발을 멈추었다.
나는 그 찰나의 망설임에 기대를 가졌다.
우리가 지금껏 함께 산 정이 있는데, 아무리 오해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렇게까지 야박하게 날 내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하지만 그 기대는 무참하게 짓밟혔다.
-그렇게 해라. 허락하마.
그렇게 나는 병실 바닥에 덩그러니 남겨졌다.
나는 필사적이었다.
바닥을 질질 기어가면서 울부짖었다.
-스승님, 한 번만, 제발 딱 한 번만……!
-정혁아, 나는 이 앞으로 더는 네게 해 줄 말이 없다. 우리의 인연은 여기까지라 하지 않더냐.
스승님은 중환자실 문을 활짝 열었다.
-누명이라고? 억울하다고? 결백을 증명할 수 있다고? 그럼 어디 보란 듯이 살아남아 봐라.
스승님의 등은 무정했다.
-요령껏, 능력껏, 재주껏. 결과로 증명해야지.
-요령껏, 능력껏, 재주껏…….
그 말이 내 심장에 깊이 새겨지는 순간이었다.
-네가 옳고, 내가 틀렸다고. 어디 한번 그렇게 따져 봐.
탁!
스승님은 떠났다.
나와 사형들을 남겨두고.
-잘난 척하더니 꼴좋다. 흐흐흐.
-그 반지, 앞으로 내놓고 다니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스승님의 이름으로 엄포를 돌릴 때 한마디 슬쩍 추가할 생각이거든.
-이 반지를 낀 자를 죽인다면 막대한 포상금을 지급하겠노라고. 어때, 재밌지?
사형들의 매타작에 수술 부위가 도로 터져 나갈 때도.
그 모습을 본 태성병원 의료진들이 기함하여 사형들을 막아설 때도.
앞으로 태성병원은 사형들이 실려 와도 치료해 주지 않겠다는 엄포를 놓아 쫓아버릴 때도.
내 머릿속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으로 가득했을 뿐이었다.
-내 이 억울한 누명을 꼭 벗고 만다! 내 손으로 내 결백을 증명해 보일 테다!
나는 동백꽃 반지에 대고 맹세했다.
-언제고 반드시! 스승님이 틀렸고, 제가 옳았다고 따지러 갈 겁니다!
내 인생에 단 한 사람.
외롭고 처절했던 내 어린 시절에 기꺼이 내 보호자를 자처했던 사람.
기적처럼 내 인생에 믿음이란 동아줄을 드리워줬던 사람이었는데.
-전 결코 스승님의 명예를 더럽힐 일은 한 적이 없습니다!
스승님은 한마디의 변명도 들어주지 않고, 보란 듯이 날 버렸다.
-이 반지는 그때까지만 끼고 있겠습니다.
이후 나는 사람을 믿지 않았다.
그것이 바로 스승님이 마지막 순간 내 뼈에 새겨준 교훈이었다.
-내 결백을 증명하고, 스승님께 보란 듯이 반납하지요.
이 반지는 내가 한때 스승님의 유일한 후계자였다는 증표였으니.
스승님과의 악연을 내 손으로 잘라낼 때, 그때 돌려드리는 게 맞지요.
-살 때는 금값이어도 팔 때는 똥값이겠으나, 뭐 어쩌겠습니까. 전당포가 다 그런 것을.
전당포 후계자 자리, 줘도 안 갖겠다.
-내 모든 것을 걸고서라도. 반드시.
나는 그렇게 이를 악물고 칼을 갈았었다.
내 인생을 건 맹세였다.
그리고 나는 단 한 번도 내 입으로 한 맹세를 어겨본 적 없었다.
‘그랬던 반지가 돌고 돌아 다시 내 손바닥 위에 올려졌군.’
이것은 운명인가, 필연인가.
아니면 악연의 잔재인가.
이 반지가 내게 어떤 의미인지, 이 사람들은 알 리가 없건만.
“막상 받아보니 어떤가? 탐나지 않나? 쿨럭쿨럭! 커흑!”
정동진 어르신의 요란한 기침 소리가 날 상념에서 깨웠다.
흰 손수건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 반지의 주인이 곧 이 집안의 주인이다. 내가 그동안 쌓았던 재물과 수하, 인맥, 권력까지 전부 다 이어받게 되겠지.”
정동진 어르신은 아무렇지 않게 피 묻은 입가를 훔치며 씩 웃었다.
입술은 닦아냈지만 이빨에는 피가 진득하게 껴 있었다.
“누님이 탐냈다고? 당연히 그렇겠지. 그 반지의 의미를 알고 있으니만큼 더욱더. 쿨럭, 쿨럭! 다른 놈들에겐 내어주기 아까웠겠지.”
이 자리에 함께한 최측근들이 숨을 멈추고 우리를 바라봤다.
그들은 모두 정씨 집안의 후계에 관한 증인이 될 것이었다.
“정혁아, 내 후계자가 되어라.”
정동진 어르신은 내가 협상 테이블 위에 올렸던 모든 물건들을 힐끔 바라봤다.
“그럼 네가 내민 모든 조건.”
제대로 된 협상안은 꺼내지도 않았는데.
내가 준비한 카드는 까보지도 않았는데.
“내 기꺼이 받아들이지.”
상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올인으로 응수했다.
“거절할게요.”
나는 딱 잘라 말했다.
“뭐?”
내 대답이 뜻밖이었는지.
다들 입을 떡 벌렸다.
정동진 어르신은 큰 충격을 받은 사람처럼 눈을 크게 떴다.
“처음부터 이걸 받으러 온 게 아니었다고?”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예상치 못한 일격을 먹은 사람처럼.
“누님이…, 그러니까 매형이 그리 꽁꽁 숨겼던 너를 내 앞에 데려왔을 적엔 당연히…….”
“그 반지를 갖고 싶어 한 사람은 제가 아니라 할머니라니까요.”
아까 분명히 밝힌 것 같은데.
어린애 말이라고 허투루 들으시나.
“누님은 이 반지가 네 몫이라고 하던데.”
“어떻게든 우리 아빠를 엮어서 이 집구석에 묶어놓겠다는 그 고약한 심보, 마음에 안 든다고 했죠?”
나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전 우리 아빠한테 해가 되는 일이라면 거들떠도 안 봐요. 그런 의미로 저 유언장이나 가보 반지? 됐거든요?”
“이 많은 재산, 정씨 집안에 얽힌 인맥, 권력, 정보력, 이 모든 것을…… 이렇게 쉽게 내다 버리겠다고?”
“내가 언제 내다 버리겠다고 했어요?”
난 그런 말 한 적 없거든요?
우리 아빠 숨통을 막는 저 조건이 못마땅하다는 거지, 정씨 집안 재산을 날로 먹기 싫다는 건 또 아니라서요.
“제 몫은 제가 알아서 챙겨야죠.”
“어떻게?”
“요령껏, 재주껏, 능력껏?”
“호오.”
정동진 어르신의 눈이 반짝 빛났다.
몹시 흥미로워 보이는 눈이었다.
그건 전대 거물 4인방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단 한 사람, 동남쪽 스컹크만은 핼쑥해져서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맙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