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326)
재벌집 만렙 아들-326화(326/416)
326. 이건 꿈이야
저승사자가 스르륵 움직여서 정동진 어르신께 다가갈 때였다.
탕!
누가 이렇게 문을 걷어차듯 열었나 했더니.
할머니가 무시무시한 눈을 한 채 달려왔다.
“이 너구리 같은 새끼가! 그게 말이야, 방구야?”
“누님?”
“우리 어무니 아부지가 널 그렇게 키우시디?”
“컥!”
할머니가 와락 달려들어 정동진 어르신의 멱살을 잡았다.
누가 말릴 새도 없이 정동진 어르신이 덜컥덜컥 앞뒤로 흔들렸다.
“너 때문에 내가 쪽팔려서 엿듣고 있을 수가 없어! 우리 정혁이 말이 다 맞지!”
“누, 누님!
“닥쳐, 이 너구리 같은 새끼야! 뭘 잘했다고 이제 와서 누님이래?”
할머니가 딸딸딸 흔들어 제낄 때마다, 정동진 어르신과 함께 온갖 의료기기 줄과 대롱대롱 매달린 색색깔의 링거가 요란하게 흔들렸다.
“너, 우리 정혁이랑 며늘아가 소식을 다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며!”
할머니가 이글이글한 눈으로 분노를 불태우신 까닭이었다.
“네가 우리 성준이 혼약을 밀어붙인 개새끼였어?”
“켁!”
“아, 놔! 난 그런 줄도 모르고 김 비서 편으로 돈 봉투 보냈잖아!”
덜컥덜컥!
“내가 그 일로, 성준이한테 미움을 단단히 사서 7년간 눈치만 보고 살았어!”
어디 그뿐이던가?
“내가 너 때문에 며느리 볼 면목이 없어! 돈 봉투는 미안했다고 사과만 89번이나 했어!”
어라?
언제 또 그렇게 카운트가 늘어났지?
할머니가 집안 정리한다고 계모 노릇을 천명하셨을 땐, 우리 어머니가 사과만 8번째라며 ‘사과 압수, 돈 봉투 압수’라고 하셨는데.
“애들 어릴 때 혼담을 맺은 것도 너라면서, 왜 우광과의 혼사에까지 끼어들어서 이 사달을 만들어!”
할머니는 씩씩대며 매섭게 멱살을 잡아 흔들었다.
“천생연분인 애들끼리 서로 좋아 죽는다는데, 좀 맺어주면 어디가 어때서! 왜 며느리 소식을 끊어서 이 난장을 만들어!”
“누님!”
“닥쳐, 이 개자식아! 내 자식 혼사에 네가 끼어들었다는 것부터가 문제였으니까!”
할머니의 분노가 거세질수록 멱살을 흔드는 속도도 더 빨라졌다.
저러다 목이 꺾이지 않나 걱정될 정도로 대단한 패악질이었다.
“그러니까 나한테도 사과해, 이 개자식아!”
“큽!”
할머니가 씩씩대면서 흔들어대던 것을 멈추었다.
미라처럼 깡말라서 정신없이 흔들리던 정동진 어르신은 반쯤 혼이 나간 상태였다.
하지만 고집처럼 입술을 꽉 깨물었다.
“아무리 누님이라도 내게 사과를 강요할 순 없습니다.”
“뭐가 어쩌고 어째? 그래서 네가 잘했다는 소리야?”
“피해를 입었으면 보상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정동진 어르신은 차가운 눈으로 날 돌아보았다.
“태성그룹 지분이라면 충분한 보상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이 새끼가 보자 보자 하니까!”
빠악!
할머니는 정동진 어르신의 멱살을 잡은 채 이마를 이마로 들이받았다.
엄청난 소리와 함께 둘 다 휘청거렸다.
하지만 할머니는 이를 악물며 멱살 잡은 손에 힘을 더 주었다.
“내가 언제 돈을 달래, 지분을 달래? 사과를 하랬지!”
“전 그런 거 못 합니다!”
“덜 맞았지?”
빠악!
박치기 소리 한번 살벌했다.
오죽하면 저승사자가 아연실색하여 나지막한 감탄을 토했을까.
[오우, 화끈하신데?]주르륵.
정동진 어르신의 코에서 흐르는 시뻘건 저것, 쌍코피였다.
“이익!”
“어쭈? 놔, 안 놔?”
정신을 차려 보니 남매가 머리채를 잡고 흔들고 있었다.
미라처럼 깡마른 데다, 온몸에 의료기기와 링거 줄이 달린 중병 환자에게는 달리 선택권이 없었다.
남은 건 개싸움뿐이었다.
-제 집안 단속 하나 못 하는 못난 놈! 만나기만 해 봐. 아주 머리채를 다 뜯어놓는다!
-동진이만 성질머리 있나? 나도 있어! 성질머리라면 나도 어디 가서 꿀리진 않는다?
-싸우면 내가 이겨. 끝.
설마 진짜로 오늘내일한다는 중병 환자랑 머리채를 잡고 싸울 줄이야.
“여, 여사님, 진정하세요!”
“어르신도 이 손 놓으시고요!”
깜짝 놀란 전대 거물 4인방이 달려들어 둘을 뜯어말렸다.
“아오, 이거 안 놔? 놔!”
할머니는 허리가 잡혀 들어 올려졌는데도 냅다 발길질을 퍼부었다.
빠악!
기어이 남동생의 턱주가리를 올려 차고서야, 할머니는 승리자의 미소를 지었다.
나를 돌아보는 얼굴은 참으로 의기양양했다.
“정혁아, 봤냐? 할미가 이겼지?”
“…….”
남매의 진흙탕 싸움이었다.
대롱대롱 들려서 멀어지는 할머니는 끝까지 남동생을 노려보며 악을 썼다.
“내가 나중에 성묘할 때 우리 엄마, 아빠한테 다 일러바칠 거야!”
“……고자질이라면 누나보다 내가 더 빠를걸?”
정동진 어르신은 손바닥으로 대충 코피를 훔쳤다.
“누나는 성묘지만, 나는 저승 면담이라서.”
“일찍 죽는 게 자랑이다, 이 자식아!”
내가 지금 몇 살짜리 남매의 대화를 듣고 있는 거지?
구로동 판자촌에 살 때 철수와 영희 남매가 딱 저렇게 싸웠던 것 같은데.
나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사과할 마음이 없는 사람한테 억지 사과를 받아내서 뭐 하겠어요?”
“정혁아…….”
할머니, 그런 얼굴 하실 것 없어요.
“말마따나 피해 보상이라도 확실하게 실컷 챙겨 가죠, 뭐.”
나는 전대 거물 4인방에게 말했다.
“제 물건들, 하나도 빠짐없이 도로 가져오세요.”
“예, 도련님.”
“밖에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 불러서 짐 싸라고 해요.”
“짐을 싸요?”
“비싸겠다 싶은 물건은 싹 다 챙겨 갈 생각이라서요.”
“예?”
“텅 비어가는 곳간을 보면서 피눈물을 흘리시든가, 진심 어린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으시든가!”
“아……, 예!”
당장 이곳에 있는 것만 챙겨도 이게 다 얼마야?
벽에 걸린 그림 액자는 세계 미술품 경매에 내놓는 즉시 억 소리 나는 금액대로 낙찰받을 명작이다.
12폭의 병풍은 조선시대 왕실 하사품이요, 장식장에 올려진 도자기들은 죄다 최상등품 이조백자 아니면 고려청자다.
전부 문화재급 예술 작품인 것이다.
“트럭도 부르시고, 창고도 비우시고, 물건 나를 사람도 부르시고요.”
“예!”
“지하실에 묶어놓은 흑사회 간부도 챙겨 가야죠.”
“예!”
전대 거물 4인방은 큰 소리로 대답했다.
말죽거리 말대가리가 슬쩍 물었다.
“주인님, 이 금고 안에는…….”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싹 다 챙겨요.”
“하하하, 옙!”
통쇠 금고 안에서 왜 이렇게 황금빛이 번쩍거리나 싶더니만.
‘우와.’
엄청난 크기의 다이아몬드부터 온갖 귀중품이 쏟아져 나왔다.
‘유일하게 황금빛인 장부까지!’
황홀할 지경이었다.
그 모습에 정동진 어르신은 몹시 황당해하며 버럭 외쳤다.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이야?”
“보면 몰라요? 털어 가고 있는 거죠.”
“난 허락한 적 없다!”
“내 알 바 아닌데요?”
나는 일부러 삐딱하게 고개를 모로 꺾었다.
“책임은 사과가 아니라, 힘으로 해결하는 거라면서요?”
“……!”
“어르신께 책임을 물으려면 그만한 능력이 있어야 한다면서요?”
“……!”
정동진 어르신은 말문이 막힌 듯 입을 다물었다.
“누구에게나 사정은 있고, 변명거리가 있고, 빠져나갈 구멍이 있댔죠? 그러니 그런 것을 일일이 헤아리지 말라 하셨죠? 그래서 저도 어르신의 사정 따윈 안 봐드리려고요.”
이게 바로 정동진 어르신의 가르침이었다.
당연하게도 처음으로 약자이자, 피해자가 된 정동진 어르신은 이내 분통을 터뜨렸다.
“감히……!”
미라처럼 깡마른 몸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보기 힘들 만큼.
온몸으로 뿜어내는 분노가 상당히 날카롭고 서늘했다.
“송골매!”
정동진 어르신의 불같은 호명에 스승님이 즉시 허리를 숙였다.
“당장 저것들 막아!”
“죄송합니다, 어르신. 그 명은 따를 수가 없군요.”
“왜?”
스승님은 정동진 어르신이 들고 있던 내 물건들을 독수리가 낚아채듯 가로챘다.
“저는 정씨 집안의 청지기. 가주 인장을 소유한 분의 명을 최우선으로 두고 움직여서 말입니다.”
“뭐?”
정동진 어르신은 뒤통수를 얻어맞았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깡마른 손가락엔 정씨 집안 가보라는 동백꽃 반지는 없고, 반지가 자리했던 흔적만 남았다.
“말대가리!”
“아이고, 어르신. 아까 보셨으니 아시잖아요.”
말죽거리 말대가리는 시큰둥하게 대답하면서 가져온 여행 가방에 금고 속 물건을 꽉꽉 눌러 담았다.
“지난번에 하우스를 탈탈 털려서 태성가에 전적으로 협조하기로 약조한 거.”
“허?”
“사채까지 왕창 당겨 썼는데, 그럼 어쩝니까? 돈이 웬수죠.”
“…….”
“제가 이 나이에 막내 취급받으면서 주인님 소리 내는 것까지 다 보셨으면서.”
말죽거리 말대가리는 모른 척 고개를 돌렸다.
정동진 어르신은 더욱 다급하게 외쳤다.
“까치산!”
“성준 도련님이 왜 이 집구석을 박차고 나갔는지 이해하게 될 줄은 몰랐거든요.”
까치산 방 여사는 책상 서랍을 뒤져가며 땅문서와 집문서 따위를 골라 챙겼다.
“그분은 정말 어려서부터 명석하시더니 현명한 결단을 일찍 내리셨네요.”
“까치산, 너까지…….”
“전 이 독립이 그런 독립인 줄도 몰랐지 뭐예요? 호호호, 아유, 멍청해라.”
까치산 방 여사는 심드렁하게 귀를 틀어막았다.
“너무 멍청해서 그런가. 지금 어르신이 하는 말은 도통 알아먹기가 힘들어서 말이에요.”
“금이빨!”
“칼 맞아 죽다 겨우 살아난 환자까지 부려 먹으려고요? 웃겨, 증말.”
종로 금이빨이 대답하기도 전에, 까치산 방 여사가 종로 금이빨이 탄 휠체어를 밀며 나갔다.
“금이빨!”
“정혁 도련님께 먼저 연판장을 썼다는 죄책감이 아주 컸습니다만, 이렇게 마음의 짐을 덜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종로 금이빨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어르신이 알던 금이빨은 뒈지라 명하셨을 때, 이미 죽고 없다고 생각하십시오.”
방문턱에서 휠체어가 덜컥 걸리는가 싶을 때, 까치산 방 여사가 뒤를 돌아보았다.
“도련님, 비망록에 관해 말씀하셨었죠?”
까치산 방 여사의 비망록!
윗선에서 탐을 내어 그녀를 안기부로 끌고 갔었다.
“어디에 있는지 왠지 알 것 같아요. 지금 바로 챙길게요!”
“서둘러야 할 거예요.”
의아한 얼굴로 돌아보는 사람들을 향해 나는 씩 웃어주었다.
“이 집구석 싹 다 태워버릴 작정이라니까요.”
“예! 알겠습니다, 도련님!”
“현명하십니다, 도련님!”
“탁월한 결단이십니다, 도련님!”
“제가 책임지고 아주 싹 다 태워버리렵니다, 주인님!”
아까와 달리 전대 거물 4인방은 한목소리로 씩씩하게 대답했다.
정동진 어르신이 길바닥에 나앉든 말든 미련 없다는 듯 돌리는 등은 매몰찼다.
“이놈들이……!”
“지금까지 어르신께 입은 은혜가 큽니다. 하지만 이로써 그간의 빚은 없었던 셈으로 치겠습니다.”
“정혁 도련님은 저희가 잘 보필하겠습니다!”
“어르신, 그럼 이것으로 이만 작별 인사 드릴게요!”
“다음엔 어르신 장례식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전대 거물 4인방은 동시에 90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모쪼록 가내 평안하시고 무사 무탈하게 만수무강하시길!”
가내 평안과 만수무강이라는 대목에서 정동진 어르신은 얼굴을 와락 구겼다.
주인 허락도 없이 눈앞에서 귀중품이 싹 다 털리고 있는 상황에서 가내 평안이 웬 말이며.
수하들은 중정에 끌려가고, 별채부터 본채까지 방화가 예정되었는데 무사 무탈은 또 무엇이며.
중병 들어 오늘내일하는 몸에 만수무강이 가당키나 한가.
“마지막으로 물을게요. 이래도 사과할 마음이 안 드세요?”
“난 단 한 번도 내 말을 번복한 적 없다.”
말죽거리 말대가리가 밖을 향해 외쳤다.
“얘들아, 휘발유 탈탈 들이부어라! 오늘 여기 모조리 불 싸질러야겠다!”
탕!
모두가 등을 돌려 떠나고.
썰렁한 적막이 감도는 이 방에는 정동진 한 사람만 남았다.
눈에 띄게 휑해진, 마구잡이로 털어 가느라 엉망이 된 방에서 정동진은 눈을 감았다.
“피곤하군.”
[아직 멀었다.]저승사자가 연기처럼 솟아올라 도포 자락을 떨쳤다.
탁!
저승사자의 손가락이 정동진의 이마를 탁 쳤을 때.
정동진은 눈을 뜬 채 아득해짐을 느꼈다.
* * *
정동진은 말로만 듣던 주마등을 보았다.
제 인생의 주마등이 아니었다.
정혁이의 천벌 받았던 전생이었다.
“맙소사……!”
믿기 힘들었다.
아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정동진은 탄식처럼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이건 꿈이야…….”
여러 가지 의미로.
정동진이 눈을 떴을 때 바라본 건 뻥 뚫린 하늘이었으니까.
땡그랑.
낯선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자, 엄마 손을 잡고 있는 웬 어린애가 측은한 얼굴로 정동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엄마, 저 꼬질꼬질한 거지 할아버지가 많이 아픈가 봐. 아까부터 계속 울어.”
“안 되겠다. 여기 200원 더 드려. 그럼 짜장면 한 그릇은 사 드실 수 있겠지.”
“헤헤헤. 네!”
땡그랑. 땡그랑!
정동진은 다시 한번 깊이 탄식했다.
“이건 꿈이야…….”
천하의 사채왕, 나 정동진이가.
맨몸으로 길바닥에 버려진 채 적선이나 받고 있다니.
정동진은 제 몸에 연결된 의료기기 줄과 링거 줄을 확인하고 헛웃음을 흘려야 했다.
“심지어 내 집으로 들어가는 전기를 훔쳐 쓰는 꼴로…….”
그러니 날 길바닥에 버려진 거렁뱅이로 취급하지.
정동진은 좀처럼 힘이 들어가지 않는 몸을 일으키려고 애썼다.
제집이 있던 자리, 대문 안을 슬쩍 들여다보기 위해서.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한두 번 태워본 솜씨가 아니군.”
기가 막혔다.
예술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옆집 담벼락엔 그을음 하나 안 묻게, 어떻게 이 집구석만 깔끔히 태워놓았지?”
정동진은 흙먼지 묻은 손으로 물기 젖은 눈가를 대충 쓸어냈다.
그럴수록 얼굴은 더 꼬질꼬질, 얼룩덜룩해지고 있건만, 대신 물수건으로 얼굴을 훔쳐주던 사람은 이제 어디에도 없었다.
담벼락에 기대자 연신 쓴웃음만 흘러나올 뿐이었다.
“맹랑한 놈.”
“그건 접니까, 아니면 제 아들을 말하시는 겁니까?”
흠칫.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나지막해서 듣기 좋은 동굴 같은 저음.
정동진은 신음처럼 똑같은 소리를 흘릴 수밖에 없었다.
“이건 꿈인가…….”
너무 믿기지 않아서.
아니, 좀처럼 믿을 수가 없어서.
대각선 방향의 가로등 그늘 아래, 담벼락에 등을 기댄 채 담배를 태우고 있던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성준아…….”
정동진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