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329)
재벌집 만렙 아들-329화(329/416)
329. 마침 잘 왔다!
내가 일부러 청와대의 눈과 귀를 막은 두 번째 이유.
내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사채왕 정동진 어르신의 위명이 예상보다 더 쟁쟁하더라고.
“주인님, 어르신의 사망 소식을 듣고 조문객들이 장례식 참석 의사를 밝혀오고 있습니다.”
나를 조용히 뒷마당으로 데려간 스승님이 보고했다.
어느새 도련님이란 호칭 대신 주인님이라는 이름을 쓰면서.
“정재계와 방송계, 검경과 고위 행정관료 및 군에서도 사람을 보냈고.”
인제 보니 정동진 어르신, 양지 인사들의 코를 단단히 꿰고 있던 모양이다.
“거기에 이 바닥에서 방귀깨나 뀐다는 놈들까지 서울과 지방을 막론하고 속속 몰려들었더군요.”
물론 음지 인사들에게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고.
“정씨 저택의 전소 소식에 유감을 표하며, 장례식 장소 및 차기 수장에 대한 정보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각오했던 일이었다.
“또한 직접 장례식에 참석하고 싶단 뜻을 강하게 내비치고 있습니다.”
돈 빌린 사람도 그쪽, 정치자금 얻어 쓴 것도 그쪽, 후원을 받은 쪽도, 눈도장을 찍고 싶은 것도 그쪽이니까.
아쉬운 건 내가 아니라는 말씀.
“목적은 분명합니다. 정씨 집안의 새로운 수장이 누구인지 확인하고, 확실하게 줄을 대고 싶다는 거죠.”
“무시하세요.”
그래서 귀찮은 똥파리 떼였다.
“제가 지금 한가롭게 그 사람들을 일일이 상대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서요.”
정씨 집안의 수장으로서 인수인계를 제대로 받지 못한 상황이다.
장부와 서류 등을 챙겨 오자마자 장례를 치르게 되었거든.
그 사람들에게 시간과 노고를 할애해야 할 이유도, 친분도, 바라는 바도 없기 때문에.
“조문객들의 장례식 참석 요청은 정중하게 거절했습니다. 대신 주인님의 명대로 방명록은 받아두었습니다.”
스승님은 다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방명록이라며 개별 카드를 작성하여 제출하도록 했더니, 상당히 특이하단 반응을 보이더군요.”
“그럴 수밖에요. 점조직 방명록이니까요.”
일반적인 방명록은 통장부를 쓰는 데 반해 이번 방명록은 개별 카드로 받았다.
일종의 명함 대신으로, 따로 연락받을 개인 회선도 기재하도록 했다.
여차하면 내가 은밀하게 개인별로 접촉할 수 있도록.
“방명록 받는 놈들마다 곡소리를 낸답니다. 당분간 조문객을 상대하느라 기존의 업무가 마비될 지경입니다.”
그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쯤 되니 괜히 어르신 사망 소식을 흘렸나 싶기도 한데…….”
“아니죠.”
나는 검지를 좌우로 흔들었다.
“제가 왜 딱 세 군데에만 은밀하게 정보를 풀었는데요.”
내가 정동진 어르신의 사망 소식을 흘린 곳은 딱 세 군데였다.
정재계 사모님들의 단골 미용실, 정재계 유명인사들의 단골 룸살롱, 그리고 사채시장.
“미끼를 흘렸으니 반응을 확인해야 할 것 아니에요.”
나는 손가락을 꼽았다.
“누가 얼마나 발 빠르게 움직이는지, 어떤 방식으로 대응하는지, 누구와 함께 손을 잡아서, 어디까지 파고들고, 어떤 루트를 애용하는지까지. 이게 다 귀한 정보거든요.”
접을 손가락이 없어진 나는 주먹을 흔들며 씩 웃었다.
“비상사태에서 옥석이 판가름 나는 법이에요. 특출나게 민첩하고, 눈치 빠르고, 머리 써서,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자를 눈여겨볼 생각이라서요.”
“역시……!”
스승님은 크게 감탄했다.
“그런 의미로 방명록 작성 순서도 잘 달아두시고요.”
“예!”
“카드 뒷면에 이와 관련한 사안을 꼼꼼하게 기록해 첨부하도록 하세요.”
“예!”
스승님은 상기된 얼굴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수첩을 펴서 볼펜으로 빠르게 지시사항을 받아 적었다.
반면 말죽거리 말대가리는 입술을 씰룩댔다.
“작작 좀 부려 먹으십쇼. 그러니까 애들이 종일 곡소리를 내는 거 아닙니까!”
말죽거리 말대가리는 무척이나 퀭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우스 도박장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을 상대하느라 밤새 열심히 뛰었는데, 조문객은 낮에도 끊임없이 몰려왔을 것이다.
“주인님, 이러다 진짜 과로사로 죽겠습니다.”
저리 퀭한 얼굴로 울상을 한 채 하소연을 하게 된 이유였다.
“조문객 받으랴, 뒷조사하랴, 애들 건사하랴, 몸이 열두 개라도 모자라겠어요!”
“뒤로는 중정 요원들이 커버해 주고, 앞에서는 태성그룹 사람들이 돕고 있는데, 왜 과로사 소리가 나와요?”
내가 왜 중정부장에게 청와대 경호실장의 비리 장부를 넘기면서 정보 교란 및 혼선을 부탁했는데.
덕분에 우리끼리 조용히 장례를 치를 수 있게 되었으니 남는 장사인 셈이긴 하지만, 이유는 또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중정부장에게 청와대의 눈과 귀를 막은 세 번째 이유, 그 틈에 은밀하게 움직일 생각이거든.
“뒷골목 사람들은 뒀다 국 끓여 드시게요?”
“……여기서 뒷골목 사람들 얘기가 왜 나옵니까?”
말죽거리 말대가리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을 느리게 꿈뻑거렸다.
“제가 왜 정재계 사교 모임이나 대선 캠프, 은행권 대신 미용실, 룸살롱, 사채시장에 정보를 풀었는데요.”
“그러니까 왜요?”
“…….”
알면서도 떠보는 건가, 진짜 몰라서 묻는 건가?
“굳이 그럴 필요는 없지 않았나 하는 개인적인 생각이…….”
몰랐구만!
“뒷골목 사람들의 협조를 얻기 위해서.”
나는 작게 혀를 찼다.
“휘하 부하들을 굴려서 직접 조사하는 것보다 뒷골목 사람들의 협조를 얻는 게 양적인 면에서나, 질적인 면에서나, 시간적인 면에서나, 효율적인 면에서나 훨씬 쉽고 빠르고 확실하잖아요.”
“자, 보세요. 그놈들 천둥벌거숭이 같은 놈들이란 말이죠? 그리 열심히 정보를 물어다 줄 놈들이 아니란…….”
“정씨 집안 차기 수장이 일 잘하는 놈을 골라 우대하겠노라 전해요. 수수료도 팍팍 깎아주고.”
“그 자식들, 죽기 살기로 존나 열심히 뛰어다니겠는데요?”
말죽거리 말대가리가 헛웃음을 흘렸다.
“주인님께 눈도장 찍고 싶은 뒷골목 애들이라면 차고 넘치죠. 눈 까뒤집고 달려들겠는데요?”
“해 볼 만하다 뿐입니까.”
스승님도 헛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참에 뒷골목 애들 중에 쓸 만한 놈들을 골라내서 거두기 딱 좋겠군요.”
옥석 가리기가 양지 사람들에만 해당되는 일인 줄 아시나.
“이번 기회에 뒷골목 출신들 중에서도 특출나게 민첩하고, 눈치 빠르고, 머리 써서,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자를 눈여겨보겠습니다!”
“단순히 조문객 상대하기 귀찮아서 튀었다고 생각했었는데…….”
말죽거리 말대가리는 혀를 내둘렀다.
“알고 보니 이런 큰 그림을 그리고 계셨다는……!”
“기가 막히는군요. 대체 주인님께선 이번 한 수로 몇 가지나 얻어 가시는지……!”
스승님은 크게 탄복한 얼굴로 대뜸 엄지를 척 들어 올렸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허, 이 작은 머리통엔 대체 뭐가 들었기에……, 크으!”
말죽거리 말대가리도 똑같은 얼굴로 양손으로 엄지를 연거푸 척척척척 내밀고 또 내밀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악착같이 이득을 챙기시는구만!”
“……욕이냐?”
“무슨 소리야? 당연히 극찬이지!”
말죽거리 말대가리는 진심 어린 감탄사를 토했다.
“판을 벌일 때마다 악착같이 이득을 챙기는 게 어디 쉬운 줄 알아? 매번 이기는 게 장난 같냐? 이건 도신(賭神)의 경지야!”
하여간에 이 양반은 무슨 말만 했다 하면 도박 얘기다.
“수고비 넉넉히 쥐여주시고요.”
“오, 개평!”
“먹을 것도 입에 잔뜩 물려주셔야 해요.”
“도박장 인심 서비스!”
개소리는 무시하고, 나는 스승님께 신신당부했다.
“소도 잘 먹이고 잘 재우면서 부린다고 했어요. 하물며 사람 쓰는 일인데, 절대로 인색하게 굴면 안 돼요.”
“그럼요. 그래야지요.”
“역시 우리 주인님!”
말죽거리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고, 스승님은 흐뭇한 얼굴로 헤벌쭉 웃었다.
말죽거리 말대가리는 제 허벅지를 탁 쳤다.
“종로 금이빨과 까치산 방 여사도 이 모습을 봤어야 하는 건데!”
“금이빨 환자야. 그리고 까치산은 지금 정신없다.”
“왜? 조문객 받는 일은 너도, 나도 하고 있는데?”
“까치산 혼자 해외 조문객 상대하느라 지금 진땀 빼고 있거든.”
“뭔 소리야? 해외에는 소식도 안 전했는데, 어떻게 알고 벌써 조문객을 보내?”
“보냈더라. 귀신같이 알고.”
“허어?”
말죽거리 말대가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르신 돌아가셨단 소식을 흘린 지 며칠이나 됐다고!”
“그러게나 말이다. 하지만 주인님 표정을 보아하니, 이 또한 예상하셨던 일인 모양이다.”
나는 쓰게 웃었다.
“흑사회 간부가 침투한 시점에서 이미 예정된 일이었어요.”
전하지도 않은 소식에 즉각 대응했다는 게 무엇을 뜻하겠어.
이미 국내에 정보원을 쫙 깔아놨다는 소리다.
“흑사회 놈들 움직이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 했더니…….”
“문제는 흑사회만 움직인 게 아니라는 거죠.”
“맞습니다. 현재까지 중국, 대만, 홍콩, 베트남, 러시아, 일본에서 속속 들어오고 있습니다.”
정동진 어르신의 동향에 이토록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던 건가.
“해외 쪽 반응도 꼼꼼하게 기록해 주세요.”
“물론입니다. 단지 국내 주요 인사들과 다른 특이사항이 있다면…….”
스승님은 주변을 힐끔 둘러봤다.
정동진 어르신의 장례를 치르고 있는 곳은 한남동 우리 집.
가족과 최측근들만 장례를 치르고 있기에 그리 북적대지 않았다.
“흑사회 간부 포함 해외 조문객들은 전원 어르신의 저택을 제일 먼저 방문했다는 겁니다.”
“어르신의 저택 위치가 만천하에 노출되었다고?”
말죽거리 말대가리는 깜짝 놀라 물었다.
스승님은 쓰게 웃었다.
“해외 조문객들은 어르신의 저택이 전소된 것을 보며 몹시 놀라워하더군요. 그런 까닭에 까치산이 그곳에 남아 방명록을 받기로 했습니다.”
스승님은 묘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해외 조문객들도 하나같이 주인님을 직접 만나고 싶어 합니다만, 흔적이 완전히 끊겼기 때문에…….”
“그러라고 싹 다 태운 거예요.”
스승님과 말죽거리 말대가리는 입을 떡 벌렸다.
“설마 주인님께서 이미 그때 이것까지 내다보신 겁니까……!”
“대체 몇 수 앞을 예상하시고……!”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해외 조문객들과 정씨 집안은 교류가 많은 편이었나요?”
“일본과는 여러 가지 의미로 얽힌 인연이 복잡하다 할 수 있지만, 다른 나라와는 동맹 혹은 인맥에 가깝습니다.”
정동진 어르신은 일제 시대부터 일본에서 일본인들을 상대로 사채를 놓으셨다고 했었지.
그럼 그럴 만하지.
“나름 그 나라에서 힘깨나 쓴다는 굵직한 인사들이 대거 사람을 보내왔는데…….”
“잠깐만요.”
나는 손을 들었다.
“그들 중에 제가 반드시 알아둬야 할 인물, 혹은 접대를 해야 할 거물들이 있을까요?”
“없습니다.”
스승님은 딱 잘라 말했다.
하지만 말죽거리 말대가리의 눈동자는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크게 흔들렸다.
“그럴 리가 없는데?”
말도 안 된다는 듯, 기가 찬다는 듯.
“타국 소식에 이 정도로 발 빠르게 대응하는 고급 정보원들을 부리는 놈들인데, 어떻게 거물이 아닐 수 있겠냐, 어?”
“그래 봤자 주인님께서 신경 쓰셔야 할 축에는 못 든다!”
“넌 눈이 똥구멍에 달렸냐? 그 명단, 이리 줘 봐!”
말죽거리 말대가리가 스승님의 수첩을 가로챘다.
수첩을 넘길수록 말죽거리 말대가리의 턱이 툭 떨어졌다.
“일본 3대 야쿠자 간부들에, 일본경제단체연합회 간부들, 일본 대사관 사람들에, 일본 자민당 당수와 간부급 의원들…….”
좋은데?
‘외할아버지가 주신 나까무라 부동산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려면 한 번쯤은 만나야 할 인사들인데. 알아서 제 발로 찾아오셨군.’
스승님은 말죽거리 말대가리의 손에서 도로 수첩을 빼앗았다.
“무시하셔도 되는 인사들입니다.”
스승님은 보란 듯이 수첩을 탁 덮었다.
“주인님께서 굽히고 들어가야 할 이유도 없거니와, 그놈들과 엮여서 좋은 꼴 보기도 어렵습니다.”
스승님은 못마땅한 소리를 내뱉었다.
“어르신께 돈 맡겨놓은 것도 아니면서, 어찌나 집요하게 뜯어 가려고만 드는지. 하여간에 쪽바리 새끼들이란!”
“빌어먹을 거지새끼들이 조문을 핑계로 또 구걸하러 왔대냐? 어휴, 지겹다 진짜!”
말죽거리 말대가리의 입에서도 좋은 소리는 안 나왔다.
그러고 보니 이분들, 왕년에 독립운동하셨던 분들이지.
하지만 나는 구미가 당겨서 말이야.
“일본 쪽 조문객들한테는 개별 방명록을 확실하게 받아두세요.”
“주인님!”
“왕창 뜯어내야 할 게 있어서 그래요.”
“오오오오!”
스승님과 말죽거리 말대가리의 눈이 번쩍 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