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334)
재벌집 만렙 아들-334화(334/416)
334. 아주 좋습니다
이 인간이 왜 나한테 다짜고짜 목숨 구걸을 해?
“번지수 틀렸는데요?”
내가 아니라 우리 아버지한테 무릎 꿇고 빌었어야지.
하지만 아버지는 고개를 저었다.
“나도 내 아들 눈 밖에 난 놈을 거둘 생각은 없어서.”
“하지만 이 사람은…….”
“정씨 집안을 박차고 나왔을 때 이미 끊어진 인연이다.”
아버지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혈서까지 정혁이 네가 태웠다며. 그러니 더욱 우리 사이의 은원을 논할 필요는 없겠지.”
“그래도 괜찮으시겠어요?”
아버지와 의형제까지 맺으며 친하게 지냈던 사람이라면서요.
“태성그룹에 걸맞은 인재랄 수도 없으니, 내 곁에 두고 쓸 일은 없을 것 같다.”
아버지는 툭 하고 한마디를 더 보탰다.
“정씨 집안을 네가 잇겠다고 했다며. 아빠는 네가 굳이 그런 험한 일에 발 들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입맛이 써 보였다.
“정씨 집안 사정에 관해 들었다. 일본 놈들이 먹어 치우려고 작정했다는 것도. 일본 야쿠자들의 마약 스캔들을 터뜨린 경위도.”
아버지는 옆구리에 끼고 있던 검은색 서류철 하나를 내밀었다.
중정 마크가 떡하니 찍혀 있는 서류철이었다.
‘이건 또 왜 황금빛이냐?’
나는 홀린 듯이 서류철을 넘겼다.
‘중정에서 일본 야쿠자들에게 받아놓은 취조일지라.’
서류를 읽어 내려갈수록 작게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야, 어떻게 내가 터트리려는 노스콥 게이트랑 이렇게 얽혀 있냐?’
어쩐지 황금빛이더라!
운이 좋아!
“정혁아, 정씨 집안 재산에 일본 야쿠자와 경제인들은 물론 정계 유명 인사들까지 눈독 들인 것 같다.”
아버지의 얼굴에 근심이 서렸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다. 네가 그 재산을 지켜보겠다고 아득바득 애써 봤자 속수무책으로 빼앗기게 되겠지. 그러니 그냥 없는 셈 치고 말자.”
그럴 순 없다.
“정동진 어르신께 약속했어요. 집안 정리와 채무 관계까지 해결하겠다고. 외할아버지가 물려주신 부동산 회사도 나 몰라라 할 생각 없고요.”
나는 한쪽 눈을 찡긋했다.
“어차피 더럽게 얽혀 있는 일이라면 한번은 제대로 풀고 가야죠.”
“일본에서 분탕을 치고 싶으십니까?”
무릎 꿇은 채 동남쪽 스컹크가 대뜸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제 목숨값 이상으로 확실하게 분탕질 칠 것을 약속드리겠습니다.”
“당신 목숨값은 얼마짜리인데요?”
“여덟 살짜리 어린애가 일본 야쿠자들에게 목숨을 위협당하는 일이 없도록 막아줄 정도는 됩니다.”
방패막이, 화살받이를 자처하겠다는 뜻이었다.
‘내 대신 전면에 나서서 돌격대장을 맡겠다는데, 굳이 거절할 필요는 없지.’
동남쪽 스컹크는 대한민국을 비롯해 세계 여러 나라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본 지하금융계의 일곱 거물 중 하나였다.
대범하고, 똑똑하고, 잔인하리만치 손속이 독하나, 맺고 끊음이 분명하고 은원이 확실하다고 정평이 난 자였다.
그 정도의 인물이 앞장서 준다면 일이 훨씬 수월해질 것은 자명했다.
다만 걸리는 게 있다면.
“목숨 구걸하는 사람치곤 너무 뻣뻣하게 군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제가 충성 맹세를 한 사람은 따로 있는지라.”
동남쪽 스컹크가 아버지를 힐끔 바라보았다.
“중정에서 절 빼준 은혜까지 모를 정도로 철면피는 아닙니다. 앞으로 제가 성준이의 뒤통수를 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이로써 아버지와 스컹크 간에 해묵은 은원은 정리된 듯하다.
“독립까지 한 마당에 구질구질하게 굴 생각 없습니다. 대신 저와 제 부하의 목숨값은 확실하게 치르겠습니다.”
“그러니까 충성 맹세 대신 목숨값 거래를 제안하겠다는 거네요?”
“뭘 어떻게 하면 됩니까?”
“뭘 어떻게 할 수 있는데요?”
“웬만한 것은 전부 제 선에서 처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말씀만 하십시오.”
나는 콧방귀를 뀌었다.
“계약서만 봐도 일 처리 개판이던데요?”
“그렇게 개판을 만들어 놔야 얽힌 놈들도 곤란해지거든요.”
동남쪽 스컹크는 옷매무새를 정돈하며 제 몸에 향수를 칙칙칙 뿌렸다.
서빙고 물고문실에서 몸에 배인 물비린내를 지우기 위해서.
“대마불사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이해관계의 그물은 더럽고 촘촘할수록 거물들도 쉽게 몸을 빼기 어려워집니다.”
대마불사.
밀매왕도 즐겨 쓰던 전략이었다.
실제로 잘 먹히기도 했다.
‘밀매왕이 오랫동안 부산의 패자를 자처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였고, 정동진 어르신도 중병이 들어 오늘내일할 때에도 일본 놈들이 쉽사리 건드리지 못했던 것을 보면 대마불사의 위력이란 알 만하지.’
문득 눈앞의 이 남자의 미래가 떠올랐다.
동남쪽 스컹크는 중국 흑사회와 일본 야쿠자들의 견제를 물리치면서 기어이 일본 지하금융계의 일곱 거물 중 하나가 되는 남자였다.
‘이 남자가 십 년 넘게 공들여 만들어둔 대마불사의 그물이라.’
그러니 외할아버지가 주신 일본 부동산 관련 장부들이 그처럼 복잡하고 화려한 빛을 띠게 된 것이겠지.
솔직히 꽤 구미가 당긴다.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해드리면 됩니까?”
동남쪽 스컹크의 눈이 번뜩 빛났다.
열의와 자신감이 가득했다.
“도련님께서 지키고 싶으신 것들, 제가 지켜드릴 수 있습니다. 일본은 물론 해외 쪽 정보 차단에 공들이면 되겠습니까?”
“어떻게요?”
“도련님의 수법을 참고할까 합니다.”
내 수법?
“정보를 차단하는 대신 사람들의 시선을 돌리거나, 거짓 정보를 섞어 노골적으로 교란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거, 이번 일로 확실하게 배웠습니다.”
동남쪽 스컹크는 은근하게 말했다.
“중국 흑사회나 러시아 마피아, 홍콩의 삼합련, 대만의 사해방에 각기 다른 정보를 흘려 보내죠. 짐작하셨다시피 제겐 그쪽 루트의 끄나풀들이 제법 있어서.”
혹하는 제안이었다.
“도쿄 일대의 임대인들을 움직여 여론을 형성하는 것도 자신 있습니다. 그쪽이야말로 제 전문 분야라 할 수 있지요.”
동남쪽 스컹크는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도련님의 정체를 꽁꽁 숨겨드리겠습니다. 도련님의 존재조차 예상하지 못하도록.”
음지에서 암약하는 이들은 하나같이 이름과 별명만 알려졌을 뿐, 자세한 신상명세는 늘 극비에 부쳤다.
그게 이 바닥의 불문율처럼 내려오는 관례이자, 생존 전략이기도 했다.
“전 그럴 생각 없는데요?”
“……예?”
뭘 그리 놀라시나.
“고기는 뜯어야 맛이고, 힘은 써야 맛이거든요?”
전생에 사채왕이던 시절에는 꿈도 꿔보지 못한 일이긴 하다.
양아들인 강우가 납치당할 뻔했을 때, 나는 지레 겁을 먹고 몸을 사렸다.
내게 원한을 갖고 있는 놈들이 내 아들을 타깃 삼는 것을 원치 않아서.
나란 존재가 강우의 평범한 삶을 방해하는 걸림돌이 되고 싶지 않아서.
강우는 떳떳하게 제 이름자 걸고 행복하게 살길 바라서.
그렇게 나는 신림동 개미지옥이라는 별명 뒤로 숨어 내 정체와 신상 지우기에 공을 들였었다.
하지만 이번 생에서는 좀 다르게 살아 보려고.
“제가 돈이 없어요, 힘이 없어요, 능력이 없어요?”
뒷골목 세계 사람으로 숨어 지내기엔 내가 가진 배경이란 것부터가 워낙 화려해서 말이야.
“어차피 명함 까며 살아야 하는 인생이에요. 그렇게 살 바엔 좀 더 큰물에서 놀아볼까 해요.”
“주인어른의 뒤를 이어 사채왕, 아니, 일본 제일의 사채왕이라도 되어보시렵니까?”
“그거 가지고 되겠어요?”
인제 보니 꿈이 소박하고, 포부가 작으신 양반이구만.
난 또 일본 지하금융계의 일곱 거물 중 하나라기에 굉장한 야심가인 줄 알았지.
“일본 제일의 사채왕보다는 일본 최고의 투자 기업가가 더 낫잖아요.”
참 이상한 일이지.
어차피 내 돈 들여서 기업 투자한다는 결과는 똑같은데, 누구는 음지의 지하금융 기생충이고 누구는 대단한 투자 재벌 소리를 듣고.
대한민국 지하금융계의 거물 소리 듣던 사채왕 시절에도 내 주특기는 기업 투자였다.
돈 되는 기업을 골라 밀어주고 끌어주고, 돈 안 되는 기업을 사들여 갈아내고 쪼개서 되팔아 부를 일구었다.
그런데 이번 생에서는 선택지가 하나 더 늘었다.
“제가 이래 봬도 재벌3세, 태성그룹 차기 총수 예정자거든요.”
재벌이 왜 재벌인가.
졸부와 달리 사회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어서 그렇다.
“지분 놀이, 돈놀이만으로는 성에 안 차요.”
사채업자와 전문 투자가의 차이점은 합법과 불법에 달렸다.
이자 놀이 대신 기업 지분을 틀어쥐고 사업이라는 걸 제대로 해 볼 생각이거든.
“일본에서 십 년 넘게 굴렀고, 정동진 어르신의 기업 사채 투자를 맡아왔으면 그쪽 기업 속사정은 빠삭하게 알고 있겠죠?”
“물론입니다.”
“이참에 될성부른 일본 기업으로 골라 몇 개 먹어 치울까 해요.”
“일본 기업을요? 그게 되겠습니까?”
“안 될 건 또 뭐예요?”
사실 1980년대는 일본 기업의 독주로 점철된 시대였다.
세계시장 시가 총액 순위에 일본 기업이 몇이나 될까?
20위까지 총 16개 일본 기업이, 50위까지 33개의 일본 기업이 이름을 올렸다.
세계 시총 1위인 일본 기업 NTT(일본전신전화 주식회사)는 혼자서 시총 2위인 IBM의 3배가 넘는 기록을 세운 바 있었다.
“대마불사라면서요. 그럼 한국 재벌의 문어발식 경영에 관해선 들어보셨겠죠?”
동남쪽 스컹크, 이건 당신이 하는 수작질과 비슷하면서도 그 결이 조금 다르지.
“대마불사 전략을 좀 더 세련되게 다듬어 남들 눈에도 보기 좋게 포장한 게 바로 재벌그룹들의 계열사 늘리기거든요.”
나는 검지로 내 가슴팍을 콕 찔렀다.
“마침 제가 또 미국에 본사를 둔 투자회사를 운영하고 있단 말이죠?”
나는 한쪽 눈을 찡긋했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일본 진출, 까짓것 한번 화끈하게 해 보죠 뭐.”
“태성을 다 털어봤자 일본의 대기업 하나 사기 어려울 듯싶습니다만.”
“제겐 정동진 어르신이 일제 시대부터 집어넣은 투자금과 지분이란 게 있잖아요?”
그게 아니라면 일본경제단체연합회 간부들이 왜 야쿠자와 자민당 의원들까지 끌고 한국에 들어왔겠어?
그놈들이 내게 전한 협박만 봐도 견적이 딱 나온다.
외국인 사채 동결 조치.
그 말인 즉, 기업 지분에서 정동진 어르신의 사채를 어떻게든 치워버렸으면 하고 간절히 바란다는 뜻이었다.
내가 처음부터 맨땅에서 헤딩하며 기업을 잡아먹는 것에 비하면 아주 쉬운 일이 될 것이다.
“두고 봐요. 내가 일본 기업들을 어떻게 똥값에 먹어 치우나.”
“그거 몹시 구미 당기는 목표로군요.”
동남쪽 스컹크는 흥미와 호기심, 분노와 울분이 가득한 눈을 하고 있었다.
“돈 필요할 때는 무릎걸음으로 기어 와서 주인어른 바짓가랑이를 잡고 사정하던 놈들이 세계시장에서 힘 좀 쓴다면서 어찌나 고깝게 굴며 사람을 무시하던지. 그놈의 조센징 소리, 더러운 고리대 소리도 지긋지긋합니다.”
동남쪽 스컹크는 치를 떨었다.
“번듯한 사업체로서 양지에 진출하는 일이라면 주인어른도 오래도록 갈망했던 대업입니다. 기꺼이 저도 한 힘 보태겠습니다.”
“좋아요. 각오가 그렇다면 저도 사양하지 않겠어요.”
“그럼 저도 연판장을…….”
“맡겨뒀어요?”
내가 아무한테나 연판장 받아주는 X으로 보이시나.
전생 내 어릴 적에 빚을 진 건 전대 거물 4인방이지, 그쪽은 아니거든.
“내 수하로서 확실하게 보호받고 싶어요? 그럼 행동으로 충심을 증명하는 게 먼저죠.”
“보호? 그러니까 제가 도련님께 말입니까?”
“그럼 그 반대일 것 같아요? 나 원 참 어처구니가 없어서.”
“…….”
그렇게 황당하단 얼굴을 할 것 없다.
“지금 살려 달라고 무릎 꿇고 있는 게 누구인데요?”
“…….”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든 모양.
“됐고. 거기 장부나 챙겨서 따라오세요.”
“예? 설마 이대로 바로 일본으로 출국하실 생각은…….”
“내가 언제 일본 간댔어요?”
나는 혀를 찼다.
“이번 일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했고, 해 안 떨어졌고, 숨 붙어 있으면 일해야죠.”
나는 바로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신호음 몇 번 울리기도 전에 전화가 연결되었다.
“심 사장님, 장부 정리시킬 일꾼들 데려갈게요.”
-아니, 헬프 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일꾼들을 구하셨답니까?
전화기 너머에서 심 사장의 얼떨떨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일본 기업 전문 회계사라고 해도 별 도움은 안 될 것 같습니다.
아니, 왜?
-워낙 조잡하게 주먹구구식으로 작성해 놔서 말이죠. 이거야 원 뒷골목 건달 새끼들이 외상 장부를 적어놓은 것도 아니고.
동남쪽 스컹크를 보는 내 눈은 저절로 가늘어졌다.
“나까무라 부동산 회계 관리 장부를 직접 작성한 장본인들을 데려갈 거예요.”
-아니, 대체 그놈들은 무슨 수로 잡아 오셨답니까?
대충 요령껏, 재주껏, 능력껏?
“제 밑에서 일하고 싶다는데요?”
-아주 좋습니다.
심 사장이 최후의 결전을 마주한 장수처럼 비장하게 외쳤다.
-이참에 그 새끼들한테 JH투자의 일 처리 방식이란 어떤 것인지 뼛속까지 새겨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