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335)
재벌집 만렙 아들-335화(335/416)
335. 도련님의 괴물 수하들
명동에 위치한 JH투자회사.
위이이잉.
타다다닥.
복사기 돌아가는 소리와 타자기 치는 소리가 끊기는 법이 없었다.
“크흐흐흑.”
덩치가 유난히 큰 근육질의 사내들, 화려한 꽃남방을 입은 일본인들이 머리통을 부여잡았다.
“이러다 과로사로 죽겠습니다. 이건 사람이 처리할 수 있는 업무량이 아니에요!”
“도쿄 지역 4,890채 빌딩의 회계와 관리 장부 15년 치를 어떻게 한꺼번에 정리하냐고요!”
“항목별로 일일이 읊어주느라 목 다 쉰 것 같아요. 장부를 읽는 것만 해도 끝이 없다니까요?”
마흔 명이 넘는 일본인들은 다크서클이 진해진 눈으로 하소연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일이 너무 많은 거 아닙니까? 집에 가고 싶습니다. 흐흐흑.”
“서류 냄새가, 잉크 냄새가 코끝에서 떠나질 않습니다.”
“이래 봬도 제가 엘리트 간부 아닙니까. 그런데 돌대가리도 이렇게는 장부 작성 안 한다고 대차게 까더라니까요?”
“차라리 중정의 서빙고 물고문실에서 취조받는 게 더 나았습니다. 이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에요!”
따르릉. 따르릉.
시끄럽게 전화벨이 울렸다.
일본인들은 치를 떨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여기 대체 뭐 하는 곳입니까? 무슨 연구소라고 하는 곳에서 전화가 3분에 한 번꼴로 온다니까요!”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그 자식들, 뭘 또 계속 쉬지 않고 물어봅니다!”
“일본에서 엔진 잘 만드는 회사는 어디냐, 부품 잘 만드는 회사는 어디냐, 금속 가공 잘하는 회사는 어디냐. 내가 그것까지 다 어떻게 아냐고요!”
따르릉. 따르릉!
일본인들은 비장한 표정으로 서로를 돌아보았다.
“어쩔 수 없겠군요. 전화선 뽑을까요?”
그러자 정혁이 과외 하러 왔다가 어느덧 이 회사의 팀장급 업무를 처리하게 된 과외 선생이 손을 들었다.
“동작 그만. 뭐요? 전화선을 뽑아요? 회사원의 기본자세가 글러먹었구만?”
완벽한 일본어였다.
“영업 안 할 겁니까? 문의 안 받을 겁니까? 업무 안 할 겁니까?”
그들도 처음 JH투자에 입사하고 부려봤던 잔꾀였기에.
과외 선생은 옛 생각을 떠올리며 혀를 찼다.
“장부 읽고 정리하는 것 정도의 잡무밖에 안 하는 주제에 엄살은!”
다른 과외 선생 출신들과 우광 출신 엘리트 실무진들도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체력도 좋아 보이는데 그깟 일 가지고 죽겠다고 징징대기는.”
“옛날에 계열사 12곳을 통폐합하던 업무량에 비하면 이건 똥 싸면서도 해치울 양이구만.”
“남이 만든 장부도 아니고, 제가 만든 장부를 정리하는 것도 제대로 못 해서야. 쯧.”
과외 선생과 우광 출신 엘리트 실무진의 책상에는 서류가 두툼하게 쌓여 있었다.
어림짐작해 봐도 일본인들의 책상에 쌓인 장부보다 열 배는 족히 높은 듯싶었다.
“하, 일본 기업 중에서 인수 대상으로 검토해야 할 기업 리스트만 8만 곳이 넘습니다.”
“그 장부는 내가 정리할 테니까, 인수 기업 리스트 검토는 그쪽이 해 주면 안 될까……. 당연히 안 되겠지.”
그때 사장실 문이 벌컥 열리면서 산뜻한 표정의 심 사장이 걸어 나왔다.
“자자, 커피 마실 시간에 보약 마시고, 노닥거릴 시간에 손 놀려서 일해야지!”
심 사장이 사무실 냉장고에서 갓 꺼낸 보약을 상자째 들고 날랐다.
“종류별로 있으니까 보약은 어떻게 고르라고?”
“체질에 맞게, 컨디션에 맞게, 업무 강도에 맞게!”
“좋아. 자기 것은 자기가 골라서 챙겨 먹읍시다!”
심 사장 뒤에서 다크서클이 턱 끝까지 내려온 동남쪽 스컹크가 따라 나왔다.
사장실에서 1대1 면담하듯 잡혀 달달달 볶였다.
앞으로의 임대료 인상 수준 결정과 도쿄 지역 임대인들의 단합을 촉구하는 여론 선동전에 관한 논의를 한다고.
심 사장은 싱긋 웃으며 보약 한 팩을 동남쪽 스컹크에게 던졌다.
“일단 한번 잡숴 봐. 직장인은 도핑으로 업무를 버티는 거야.”
동남쪽 스컹크는 푸석푸석해진 얼굴 피부를 쓸어내렸다.
거칠어진 피부만큼이나 온 얼굴에 피로가 덕지덕지 눌어붙어 있었다.
퀭한 눈과 말라 터진 입술, 진한 다크서클까지.
“저는 마약 따윈 취급하지 않습니다만.”
“마약이 아니고 보약.”
심 사장은 특별히 최고급 녹용 엑기스와 공진단을 함께 챙겨주었다.
“남자한테 좋은데, 참 좋은데, 뭐라 설명할 방법이 없네?”
“…….”
동남쪽 스컹크는 대거리할 힘도 없어서 주는 대로 일단 받아 들었다.
나흘 동안이나 사장실에 잡혀서 일본 부동산 버블 기획서를 작성하고 까이고, 또 작성하고, 까이고.
그렇게 날밤을 새우며 일했더니 얼이 반쯤 나간 상태라, 별생각 없이 녹용 엑기스를 순순히 쪽쪽 빨아 마셨는데.
“오!”
동남쪽 스컹크는 눈이 번쩍 떠졌다.
“어떻습니까? 혈관을 타고 흐르는 영약의 기운이 느껴집니까?”
“이 맛에 보약 마시는 거군요.”
그간 안 먹고 버티던 지난 나흘간의 고집은 쓸데없는 것이었다!
동남쪽 스컹크는 크게 감탄했다.
“역시 보약…….”
“명동에서 제일 잘나가는 한의원에서 공수해 오는 최고급 보약입니다. 하하하!”
심 사장은 뿌듯하다는 얼굴로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더니 사무실 식구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짝. 짝. 짝.
단번에 모두의 이목이 집중됐다.
타자기 치던 소리도, 복사기 돌리던 소리도, 장부 넘기는 소리도 일제히 멈췄다.
“나까무라 부동산 회계 관리 장부 진행 현황은?”
“현재까지 2년 치 정리 완료했습니다.”
“겨우 2년 치? 굼벵이가 장부 정리했습니까? 놀아도 너무 심하게 놀았잖습니까?”
놀았다는 소리에 일본인들은 얼굴을 와락 구겼다.
과로사 직전까지 몰려 헥헥대면서도 이 악물고 악착같이 해치운 일이었건만!
심 사장은 혀를 찼고, JH사무실 식구들은 면목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신입이잖아요. 기본기부터 하나씩 가르쳐 쓰려다 보니 진도를 영 못 뺐어요.”
“우리도 인수할 일본 기업들 리스트를 검토하느라 바빠서 이런 잡무까진 신경 쓸 겨를이 없었습니다.”
“저놈들도 얼추 적응 끝낸 것 같으니, 앞으로 기어 확실하게 올리겠습니다.”
심 사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내일까지 신주쿠, 시부야, 긴자 구역 먼저 15년 치 장부 정리 끝냅시다.”
내일까지?
일본인들은 사색이 되어 동남쪽 스컹크를 향해 고개를 홱 돌렸다.
동공에서는 1830년 교토 대지진이 나고 있었다.
“무리, 무리입니다!”
“여기까지만 해도 이미 한계!”
“도저히 못 해요! 그러다 죽어요!”
넋이 반쯤 나간 것은 동남쪽 스컹크도 마찬가지였다.
“가능할 리 없습니다. 지난 4일 동안 우리 애들이 마흔 명이나 달라붙었어도 겨우 2년 치를 건드려봤을 뿐이라잖습니까.”
“그러니까. 일 처리 효율이 너무 쓰레긴데?”
심 사장은 턱을 쓰다듬었다.
“우리 사무실 식구들이 한꺼번에 달라붙어 처리하면 오늘 내로 끝내는 것도 가능할 것 같고.”
“미쳤습니까?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허풍을……!”
동남쪽 스컹크의 항의를 싹둑 자르며 JH식구들은 대수롭지 않게 수긍했다.
“오늘 내로 끝내면 오랜만에 한우정 회식 갑니까?”
“갑시다.”
“오!”
“그럼 나도 합류할까요? 후딱 해치우고 조기 퇴근하죠. 어떻습니까?”
뭐라고? 조기 퇴그으으은?
동남쪽 스컹크는 기도 안 찬다는 듯이 연신 콧방귀를 뀌었다.
그건 다른 일본인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똑같은 얼굴로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절대로 불가능! 죽어도 불가능!”
“아무리 다그쳐도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
“말도 안 되는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하지만 JH사무실 식구들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소매를 걷어붙였다.
“하여간에 엄살은. 이까짓 것 처리하는 데 뭐 얼마나 걸린다고.”
“일본 애들 하는 거 가만히 지켜보니까 딱히 별것도 아니던데요.”
“본사로 파견 나간 우리 식구들까지 전부 달라붙었으면 반나절이면 끝났을 일인데. 쓰읍.”
일본인들의 불신 가득한 눈빛 속에서.
JH사무실 식구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늘어지게 기지개를 켰다.
“오랜만에 시동 좀 걸어볼까요?”
“쉬엄쉬엄합시다. 조기 퇴근까지 시간도 넉넉한데 아깝게 귀한 보약 낭비할 필요 있나요.”
울상이 된 일본인들이 좀비처럼 터벅터벅 걸어가 장부로 가득 채운 서류 상자 더미 앞에 섰을 때였다.
JH사무실 식구들은 일본인들의 입에 보약을 한 팩씩 물려주며 씩 웃었다.
“그쪽은 보약이나 마시면서 저기서 쉬고 있죠?”
“일을 너무 더럽게 못 해서. 끼어들어 봤자 방해만 됩니다.”
일본인들은 불신의 눈을 한 채, 피식피식 터지는 비웃음을 애써 삼켰다.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어질 텐데?’
‘장부를 직접 작성한 우리가 잘 알지, 장부 처음 훑어보는 너희들이 더 잘 알까.’
‘우리도 며칠 동안 전전긍긍 쩔쩔매던 일이야. 네놈들이라고 별수 있겠어?’
‘말로 하는 건 쉽고, 지켜보는 건 더 쉽지. 하지만 막상 직접 하려면 지옥을 보게 될걸?’
일본인들은 다 마신 보약 팩을 휴지통에 대충 던져 넣었다.
팔짱까지 척 끼고서, 조롱과 멸시가 담긴 눈으로 JH사무실 식구들을 바라보았다.
‘언제쯤 제발 도와 달라고 비는가 어디 한번 지켜보자고!’
산더미 같은 15년 치 일본 부동산 회계 관리 장부 상자 앞에서.
JH식구들은 우렁차게 외쳤다.
“과로사로 죽는 한이 있어도 오늘의 업무는 오늘 끝내자!”
“정시 출근, 정시 퇴근을 사수하기 위하여!”
“잠은 죽어서 자도 충분하다! 회사는 놀이터가 아니라 일터다!”
“아자, 아자, JH 파이팅! 한우정 회식 파이팅!”
장부 상자를 보는 사무실 식구들의 눈빛은 먹이를 앞둔 호랑이의 그것과도 같았다.
* * *
“맙소사……!”
일본인들은 눈을 부릅떴다.
입은 떡 벌어지고, 턱은 툭 떨어졌다.
“아니, 대체 사람이 어떻게 이런 속도로 일을 해치울 수 있지?”
착착착착.
타다다다닥.
달각달각.
파라락. 파라락.
JH식구들이 달라붙자 순식간에 장부 한 상자가 뚝딱 비워졌다.
정말로 이건 말이 안 되는 속도였다.
일본인들은 숨을 들이마셨다.
“무슨 일을 이렇게 기계적으로……!”
“내가 지금 헛것을 보고 있나?”
“이 사람들은 밥 먹고 장부만 정리했나.”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일본인들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JH사무실 식구들이 정리해둔 간편 장부를 뒤적였다.
“장부 정리가 엄청나게 깔끔해. 군더더기 하나 없어.”
“이 정도로 수준 높은 보고서를 즉석에서 뽑아낸다고?”
“일본에 대해, 부동산에 대해, 일본 장부에 대해 뭣도 모르는 사람들이 이걸 제대로 분류하다니.”
“누가 보면 우리 나까무라 부동산에서 20년은 굴러먹던 베테랑 회계사들인 줄 알겠네.”
일본인들은 말문이 턱 막혀서 헛웃음을 지었다.
일본 기업 전문 회계사에게 1년 치 장부를 맡겨두어도 몇 달은 족히 걸릴 일이었는데.
아무 도움 없이 이렇게 빠르게 장부 정리를 해치울 줄이야.
심지어 결과까지 완벽했다.
“대단하군.”
일본인들은 차곡차곡 정리되는 최종 보고서를 읽고서 넋을 놓았다.
동남쪽 스컹크도 함께 보고서를 읽어보고는 너무 놀란 나머지 입을 떡 벌린 채 도로 다물 줄 몰랐다.
“이게 도련님이 거느린 수하들의 일 처리 수준.”
완벽하게 압축된 최종 보고서와 깔끔하게 정리된 도표.
순식간에 해치우는 일 처리 속도와 톱니바퀴 맞물리듯 합을 맞춰 돌아가는 수행 능력까지.
지켜보면 볼수록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진짜 여기 있는 인간들, 죄다 미친 것 같습니다.”
“이렇게 일하면서 앓는 소리 한 번을 안 내요. 독종도 이런 독종들이 없습니다.”
“이 정도로 지독하게 일하는 작자들은 처음 봅니다. 뒷골목 악바리들도 한 수 접어줘야겠는데요?”
“심지어 이 정도로 유능한 괴물 수하들이 이들 외에도 더 있다는 게 무서울 지경입니다.”
태성그룹 본사 계열사로 대부분의 직원을 파견근무 보냈다고 했다.
“그럼 대체 이만한 괴물들을 얼마나 더 많이 거느리고 있다는 거야?”
정혁 도련님은 심복이라는 심 사장에게 그들을 이렇게 소개했다.
-장부 정리시킬 일꾼들 데려갈게요.
일꾼.
심복은커녕 수하 자리조차 넘볼 인재가 못 된다는 뜻이었다.
동남쪽 스컹크는 심 사장과 JH 사무실 식구들을 돌아보았다.
확실히 다들 보통 인재가 아니었다.
사무실 식구들은 오랜만에 마주한 일거리 앞에서 열의를 불태우며 콧김을 뿜어댔다.
“쉽네.”
“간단하네.”
“할 만하네.”
“조기 퇴근과 회식, 가즈아!”
동남쪽 스컹크와 일본인들은 저도 모르게 사무실 벽시계를 바라봤다.
“어쩌면 진짜로 조기 퇴근이 가능할지도…….”
“이게 말이 됩니까? 대체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일을 잘합니까.”
“이러니 우리한테 빡대가리가 작성한, 뒷골목 건달패 외상 장부, 주먹구구식으로 작성한 조잡한 장부라고 비웃을 수밖에요.”
나오는 건 그저 감탄뿐이었다.
그때 심 사장이 손을 탁탁 털면서 일어났다.
“끝.”
JH식구들도 마무리 작업에 들어갔다.
이게 이렇게까지 쉽게 끝날 일인가 싶어서 일본인들이 단체로 어안이 벙벙해졌을 때였다.
“자, 봤죠? 나머지도 이렇게만 하면 됩니다. 어떻습니까, 참 쉽죠?”
“…….”
동남쪽 스컹크를 비롯해 일본인들의 얼굴이 핼쑥해졌다.
무리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솟았지만, 차마 양심 없이 불가능하단 소리는 꺼낼 수 없었다.
“사, 살려주십시오!”
딸랑.
사무실 문이 열렸다.
심 사장이 사무실을 찾아온 손님을 보고 크게 반색했다.
“부사장님, 오셨습니까? 미국에서의 일은 어쩌고요?”
“정혁 도련님께서 부르시는데 그깟 일이 대수겠습니까? 만사를 제치고 달려와야죠.”
밀매왕은 활짝 웃었다.
한명호 중정 요원도 서류 상자를 가득 쌓은 손수레를 돌돌돌 끌며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