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351)
재벌집 만렙 아들-351화(351/416)
351. 가보자고
나는 동남쪽 스컹크가 직접 가져온 편지를 보고 작게 혀를 찼다.
“아직 정신 못 차렸구만?”
유려하고 화려한 어휘로 장황하게 늘어놓은 말의 요지는 이렇다.
<이쪽의 허물을 덮겠다면 그쪽의 상속세와 증여세도 각각 5% 정도는 줄여줄 수 있다.>
<만나서 얘기할까. 그럼 얼굴을 봐서 세금을 좀 더 깎아주지.>
이쪽의 정체를 탐색하면서도 여전히 고압적인 태도를 고수하고 있었다.
“귀찮은 똥파리를 쫓아낸다는 투였습니다.”
동남쪽 스컹크는 투덜거렸다.
“아직 아무 문제 없다 이거죠. 저 편지를 누가 가져온 줄 아십니까?”
“도쿄지검 특수부, 아니면 일본국세청.”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걸 왜 모르겠어.
“그 양반들 협박이 다 그렇죠 뭐.”
우리 같은 음지인들에겐 공권력이 대재앙이었다.
권력자들은 그걸 잘 알고 있었다.
“나까무라 부동산의 행보가 수상하다며 여차하면 세무조사를 하겠다더군요.”
내 그럴 줄 알았지.
동남쪽 스컹크가 비행기를 잡아타고 즉시 한국으로 달려온 이유였다.
“부동산은 실물이 있어서 일본 기업에 들어간 사채보다 잡아내기가 더 쉽다나 어쨌다나.”
그러라고 일부러 인장 찍어 보냈다.
동남쪽 스컹크가 사색이 된 까닭이었다.
“서로 그렇게 치부를 드러내며 진흙탕 싸움을 해 봤자 잃는 것만 많지, 얻는 게 뭐 있겠냐더군요.”
얻는 게 왜 없어.
‘이참에 가명과 차명의 사채들을 싹 다 세탁해서 합법적인 돈줄로 바꿀 생각인데.’
그뿐만이 아니다.
‘저쪽에서 똥줄이 탈수록 내가 내야 하는 세금과 압박이 팍팍 줄어들겠지. 그만큼 내 입지는 커지고, 위협은 줄어들게 될 텐데.’
한마디로 남는 장사란 소리!
“그럴 바야에 한 발씩 양보해서 적당한 선에서 손 털자던데요.”
“적당한 선이 5% 삭감이래요?”
이걸 누구 코에 붙이라고.
외국인 가산세와 기타 잡세에 대한 얘기는 쏙 뺀 건 안 보이시나?
“게이트를 터트리는 데 드는 돈, 인력, 시간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더군요.”
딱히. 별로?
이미 대통령이 잔뜩 뿌려뒀던 거 내가 이번에 회수하면 그만이라서.
미국에 잡혔던 한국 로비스트들이 깔아놓았던 밑밥이 워낙 많아.
그런 데다 정동진 어르신이 꼼꼼하게 뇌물 추적을 잘해 놨고.
나는 잘 차린 밥상에 밥숟가락 하나 얹어 놓기만 하면 끝이더라고.
“미국 하원들이 코라이 게이트 때 워낙 고생을 많이 해서, 아마 동아시아발 게이트라면 치를 떨 거라던데요?”
그럴 리가.
오히려 코라이 게이트 때문에 이번 일은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텐데?
한국과 미국 정부가 조용히 손잡고 덮긴 했지만, 언론을 탔던 이상 그들은 공을 세워 오점을 씻고 싶을 테니까.
이럴 때 외국의 게이트 하나 물고 늘어지면 여론 돌리기에 딱 좋지.
“헛짓에 힘 쏟는 동안 세금 강제 징수에 들어가면 진짜로 형사처벌을 면키 어려울 것이라면서요.”
“그러라고 하세요.”
그까짓 제안, 차라리 안 받고 말지.
하지만 동남쪽 스컹크는 난색을 표했다.
“도련님, 사무실이 털리고 우리 애들이 잡혀가면…….”
“나까무라 부동산 사무실은 비워버려요.”
“예?”
“부동산은 문 닫고 임시 휴업 내걸죠 뭐.”
“예? 월급 받아먹는 처지에 그래서야 씁니까?”
“임시 휴업하랬지, 누가 휴가 준댔어요?”
“그럼요?”
“본업이 뭐예요?”
부동산 관리는 부업 아니던가?
“그야 파친코 가게랑…….”
“정동진 어르신이 파친코 가게나 굴리라고 일본으로 보내셨군요?”
“일본 기업에 투자한 사채 관리입니다.”
빙고!
바로 그거지.
“일본 기업에 투자한 사채, 이참에 몽땅 회수하세요.”
“예?”
“원금은 물론 그동안 누적된 이자까지 한꺼번에 받아내야죠.”
“아깝지 않으십니까?”
아까울 게 뭐 있겠어?
“요즘 일본 기업들이 승승장구하고 있잖습니까. 세계 시장에서, 미국 시장에서 얼마나 잘 나가고 있는데요.”
이 시절은 일본 기업들의 황금기였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를 필요가 있나 싶습니다만.”
“갈라야 할 때는 갈라야죠.”
나는 딱 잘라 말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해도 밥 주는 주인도 몰라보고 달려들면?”
“죽을죄죠.”
동남쪽 스컹크는 씩 웃었다.
“죽을죄를 묻는 것이라면 자신 있습니다.”
동남쪽 스컹크는 가슴을 쭉 폈다.
“약속드렸잖습니까. 제 목숨값 이상으로 확실하게 일본에서 분탕질 치겠다고.”
바로 그거지!
“도련님이 짠 대마불사의 그물에서 왜 일본 기업만 쏙 빠졌나 했더니,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엮어 놓겠습니다.”
이거 아주 든든하구만!
정혁이는 몽블랑 만년필을 들어 일필휘지로 내갈겼다.
자민당 당수가 보낸 편지처럼 유려하고 장황하게 써 갈기지도 않았다.
<협상 결렬 -定->
긴말은 필요 없었다.
‘이제 곧 제2차 석유 파동이 터지게 생겼기에 분탕도 적당히 치려고 했는데.’
일본은 석유 파동에 가장 크게 타격을 입는 나라 중 하나였다.
이 시절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만큼 석유 의존도가 높은 산업들이 많았거든.
이거 감당할 수 있으려나.
어쩔 수 없지.
어디 한번 가보자고!
* * *
일본경제단체연합회.
1946년에 설립하여 수많은 일본의 주요 기업들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비영리 단체다.
일본의 경제 정책에 관한 대표적인 비즈니스 그룹 중 하나로 손꼽힌다.
“뭐라고?”
일본경제단체연합회에 속한 굵직한 기업들이 발칵 뒤집혔다.
“원금과 이자를 당장 이번 주까지 내놓으라고?”
“정씨 집안에서 사채를 회수해? 그걸 전부 다?”
“그 돈을 다 언제 마련하라고!”
“지금 우리더러 줄도산을 하라는 건가?”
원성이 자자했다.
정씨 집안에서 초강수를 두었기 때문이었다.
일본경제단체연합회 회원들이 모이기만 하면 머리를 맞대고 성토했다.
“우리가 지금 이런 데에 발목 잡혀 있을 때가 아닌데 말이야!”
“지금 우리는 세계 시장을 휘어잡기 위해 피똥을 싸고 있거늘!”
“그거 다 말뿐인 협박이야. 아무리 멍청해도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진 못하지!”
그렇게 큰소리쳤었건만.
동남쪽 스컹크는 폐공장 작업실에서 모 기업 회장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돈 갚으라니까 뭔 개소리가 이렇게 길어? 내가 당신 부하직원으로 보여?”
“이, 이, 이, 이러는 법이 어디 있나?”
“여, 여, 여, 여기 있지.”
동남쪽 스컹크는 히죽 웃었다.
“왜? 우리 주인어른 돌아가셨을 때는 와서 개소리 찍찍 잘만 하던데. 외국인 사채 동결 조치법?”
“그, 그건 결국 부결되지 않았나.”
“그래서 당신 소원대로 사채 처분해 주겠다잖아. 불만 있어?”
“처분할 때 처분하더라도 기한을 넉넉히 주고…….”
“나더러 그쪽 사정을 봐달라고?”
“우리 회사 대주주 아니신가. 그러니까 조금만…….”
“뒤통수를 이렇게 거하게 쳐놓고?”
동남쪽 스컹크는 불량스럽게 고개를 까딱거렸다.
“당신 회사 대주주 이제 안 한다잖아. 그러니까 내 돈 내놔.”
“그, 그건……!”
“계약서 들이밀어 줄까?”
동남쪽 스컹크는 계약서 대신 면상을 바짝 들이밀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자는 불고 있어.”
주먹 하나밖에 되지 않는 거리에서 동남쪽 스컹크는 눈을 마주쳤다.
“죽고 싶지?”
“히이익!”
광기가 넘실대는 지독한 살기에 회장은 비명 같은 숨을 들이마셨다.
“회장님이랍시고 외국에 재산을 참 많이도 빼돌리셨던데. 돈 없다는 소리가 영 믿겨야 말이지.”
살기만큼이나 향수 냄새도 독해서 질식할 것만 같았다.
“돈을 빌렸으면 갚아야지. 안 그래?”
“다, 당장 은행 대출이 안 나와서…….”
“그거야 내 알 바 아니고.”
동남쪽 스컹크는 차가운 눈으로 회장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신체 포기 각서까지 썼던데.”
그땐 돈이 워낙 궁해서.
가진 건 없는데, 투자금이 너무 절실해서 그랬다.
오래전 일이었다.
“몸을 포기할래, 공장을 포기할래?”
“고, 공장을 포, 포기하겠습니다!”
쿠당탕탕!
회장은 요란하게 바닥을 나뒹굴었다.
동남쪽 스컹크는 품에서 구겨진 종이를 꺼냈다.
“도장 찍어.”
주먹으로 박박 문질러 펴면서.
동남쪽 스컹크는 씩 웃었다.
“우리 도련님은 말보다는 문서를 더 믿으시거든.”
회장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서명을 하고, 도장을 찍었다.
알짜 계열사 몇 개와 알토란 같은 공장들을 넘기게 된 대목을 착잡한 눈으로 내려다보던 회장에게.
동남쪽 스컹크는 무심하게 덧붙였다.
“공장 되찾고 싶어?”
“예.”
“회수 기한 연장해 줘?”
“예!”
동남쪽 스컹크는 받아낸 차용증을 곱게 접어 품에 넣었다.
대신 다른 차용증을 꺼냈다.
“새로운 거래를 제안하지.”
* * *
어느새 두 달이 흘렀다.
그동안 일본 자민당 당수는 몹시 불안한 시간을 보냈었다.
처음에는 테러가 터지지는 않을까 신경을 곤두세웠고.
혹시라도 국회에 뇌물 장부 폭탄이 통째로 공개되지 않을까 전전긍긍했었다.
그러기도 잠시.
두 달 동안 반격 없이 잠잠하자, 자민당 당수는 최근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개운한 나날들을 보냈다.
‘나까무라 부동산 사무실이 임시 휴업 팻말을 걸어놓고 문 닫은 것도 확인했고, 국회의사당이나 집에도 더는 이상한 협박 편지가 날아오지도 않고.’
어느새 쏙 빠졌던 살도 올라와 도로 뱃살이 두둑해졌고, 얼굴에는 개기름이 흘렀다.
일본 총리실에 찾아와 차 한 잔을 마시면서도 그는 여유만만했다.
“뭐야?”
일본 총리는 얼굴을 와락 구겼다.
“이것들이 작당을 하고 정치자금 헌납을 싹 다 끊었어?”
“그뿐만이 아닙니다. 글쎄 국책사업까지 거부하지 뭡니까?”
“뭐야?”
일본 총리는 자민당 당수의 말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정경유착의 역제안까지 사양하면서?”
“이상하지요? 그건 미치지 않고서야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일본 총리는 참을 수 없어서 발을 쿵 굴렀다.
“이것들이 단체로 농약을 나눠 마셨나!”
“그러니까 말입니다. 아주 괘씸한 놈들입니다. 총리님께서 한자리에 불러다 경고를…….”
“총리님, 조금 진정하시고.”
총리실 비서실장의 만류도 소용없었다.
“일본 100대 기업이라는 놈들이 뜬금없이 정부를 향해 단체 농성을 벌이는 꼴인데,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벌떡!
일본 총리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유가 뭐래? 개지랄을 떠는 데엔 이유가 있을 것 아니야!”
자민당 당수는 모른 척 입을 다물고 차만 호로록 마셨다.
일본 총리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총리실 비서실장.
그는 난감한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사채를 갚느라고 대주주가 바뀌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게 뭔 개소리야?”
“일본 100대 기업들 중 상당히 많은 기업들이 사채 회수 독촉을 받았다는군요.”
“사업하는 사람 중에 사채 안 쓰는 사람도 있나?”
“태평양 전쟁 이후 큰돈을 빌려서 기업을 이만큼 키웠으니, 그만큼 사채 원금과 이자가 적립되었고…….”
“원금에 이자? 고작 그거 때문에?”
일본 총리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건 자민당 당수도 마찬가지였다.
총리실 비서실장만 쩔쩔맸다.
“우리 일본은 패전의 어려움이 많았잖습니까. 기업은 정상적인 방법으로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워서…….”
“내 앞에서 일본경제사 강의라도 할 셈인가? 요점만 말해, 요점만!”
“사채를 갚기 위해 회사 지분을 넘겨주었다더군요.”
“그래서?”
“그 지분이 많아서 문제라고 합니다.”
일본 총리와 자민당 당수는 동시에 피식 웃었다.
“하여간에 장사치들 엄살은.”
“회사의 대주주가 바뀌었더랍니다.”
“…….”
일본 총리와 자민당 당수의 웃음이 뚝 멎었다.
이게 다 무슨 소리야?
“대체 누가 그런 황당한…….”
“정동진의 후계자랍니다.”
“……!”
정동진 소리에 일본 총리와 자민당 당수의 입이 딱 벌어졌다.
총리실 비서실장은 조금 더 힘주어 말했다.
“기업에 사채를 대고, 이자놀이를 하고, 공장과 땅을 회수해 되파는 정동진과 달리 그 후계자는 전부 회사 지분으로 받아 챙겨 갔답니다.”
‘얼마나?’라는 물음 대신 침묵만 흘렀다.
‘회사의 대주주가 바뀌었다’ 소리가 나올 정도라면 말 다 했으니까.
“받아낸 회사 지분을 하나로 모으고 있다는 것 같습니다.”
일본 총리의 표정은 심각했다.
자민당 당수는 힐끔 눈치를 봤다.
‘이거 정치자금 후원이 끊겼다고 하소연하러 왔다가 괜한 불똥만 튀게 생겼군.’
그때였다.
딱따구리처럼 따다다다닥 두드리는 다급한 노크 소리와 함께 허락 없이 집무실 문이 벌컥 열렸다.
“이란에서 일어난 혁명이 중동 전역으로 번져 반정부 시위가 확산되고 있다고 합니다!”
일본 외무성 차관이 숨을 몰아쉬며 외쳤다.
“이란이 혁명으로 인한 석유 생산 파업에 들어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