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358)
재벌집 만렙 아들-358화(358/416)
358. 성탄절은 가족과 함께
나는 거실 유리창 앞에 서서 창밖을 바라봤다.
정원 벤치에 나란히 앉아 있는 아버지와 동남쪽 스컹크의 뒷모습이 사진처럼 눈에 담겼다.
시린 바람이 아버지의 머릿결을 흔들었고, 눈 부신 햇살이 아버지의 머리 위에 쏟아졌다.
아버지는 소년처럼 웃으며 동남쪽 스컹크를 부둥켜안았다.
동남쪽 스컹크는 어린애처럼 몰래 눈물을 훔쳤다.
‘우리 아버지가 6살 때 정씨 집안에 들어갔다고 하던가.’
이후 아버지는 동남쪽 스컹크와 의형제처럼 자랐다고 들었다.
아버지가 혈서를 쓰고 정씨 집안에서 뛰쳐나오자, 충성 맹세까지 바쳤던 동남쪽 스컹크는 일본에 유배되듯 귀국을 허락받지 못했다.
그렇게 어림잡아 10년 이상 떨어져 있었으니.
‘과거를 털어버릴 시간이 필요하겠지.’
나는 유리창 너머로 아버지의 웃음과 동남쪽 스컹크의 눈물을 지켜봤다.
아버지가 동남쪽 스컹크의 어깨를 두드려주는 것을 끝으로.
동남쪽 스컹크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허리를 젖혔다.
아버지와 같은 얼굴로, 서로를 마주 보면서, 서로의 어깨를 두드려준다.
둘 다 후련해하는 얼굴이었다.
‘그래, 이게 맞지.’
솔직히 동남쪽 스컹크라는 사람, 탐나지 않았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전생에 동남쪽 스컹크가 얼마나 대단한 양반이 되었는지 내가 모르는 것도 아니고.
인재 욕심이라면 나도 누구 못지않게 많아서.
‘하지만 동남쪽 스컹크는 아버지의 사람으로 남겨두고 싶으니까.’
동남쪽 스컹크가 평생을 다 바쳐 따랐던 사람은 내가 아닌 우리 아버지다.
충성을 맹세한 것도 정동진 어르신이 아니라 우리 아버지였다.
전생과 달리 그가 먼저 정동신 어르신께 독립을 요청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이미 어느 정도 마음을 정했다.
‘기뻐 보이네.’
소년처럼 짓궂은 웃음이었다.
과거의 어느 날로 돌아간 사람처럼, 동남쪽 스컹크는 즐거워하며 주먹으로 우리 아버지의 가슴을 툭 쳤다.
‘그건 우리 아버지도 마찬가지인 것 같고.’
평소엔 늘 포커페이스.
좀처럼 웃지 않는 아버지가 격의 없이, 허물없이, 가식 없이, 소탈하게 웃고 있다니.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아버지는 어머니 앞에서는 달콤한 얼굴로, 내 앞에서는 부드러운 얼굴로, 할아버지를 비롯한 태성그룹 사람들 앞에서는 믿음직한 얼굴로 웃곤 했지만.
친구에게 보여주는 웃음은 또 달랐다.
‘아버지가 좋다면 그걸로 된 거지.’
흐뭇했다.
멀리서 지켜보기만 해도 좋았다.
‘아버지를 곁에서 충심으로 보좌해야 할 비서감으로 딱이야. 마침 잘됐네.’
아버지를 보좌했던 이경석 비서는 태성건설 사장으로 발령받았다.
덕분에 태성그룹 부회장이 된 아버지는 김 비서가 붙여준 사람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내 눈에는 영 성에 차질 않았다.
‘동남쪽 스컹크가 아버지 곁을 지켜준다면 훨씬 든든하겠어.’
좋은데?
한번 밀어붙여 봐?
하지만 걸리는 부분이 있어서 문제다.
‘아직도 억하심정이 남아 있다면, 내 손으로 아버지 옆에 시한폭탄을 붙여둔 꼴이 될 텐데.’
수증기 때문에 자꾸만 흐릿해지는 유리창을 손바닥으로 쓱쓱 닦아낼 때였다.
“뭘 그렇게 봐?”
내 곁에 다가온 어머니가 같은 곳을 바라보더니 눈을 크게 떴다.
“저 남자가 혹시 스컹크란 사람인가?”
“엄마가 어떻게 알아요?”
“어머, 맞구나. 세상에.”
뜻밖에도 어머니는 반색했다.
“아빠한테 들었어. 듣던 대로 멋진 사람이네.”
멋지긴 개뿔.
“물론 우주 제일 멋진 남자는 네 아빠지만. 알지?”
어머니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네 아빠에겐 늘 안쓰럽고, 언제나 눈에 밟히는, 참 많이 미안한 형이래.”
미안해?
안쓰럽고, 눈에 밟혀?
씁쓸하고 섭섭한 게 아니라?
할머니는 분명 이렇게 말했었다.
-한국에 돌아가면 기필코 태성을 풍비박산 내겠노라 선언했다더라고.
-표면적으로야 성준이가 내팽개치고 온 일본 부동산 회사를 맡아 운영한다는 명분 때문이지만.
-실은 우리 모자(母子)와 아주 껄끄러운 사이가 될 게 틀림없으니, 동진이가 ‘열 좀 식으면 불러주마.’ 하고 내내 일본에 박아뒀던 것 같아.
그런 줄만 알았었는데.
실은 아니었다는 건가?
“네 아빠는 스컹크란 사람 덕분에 몸 성히 빠져나올 수 있었대.”
뭐?
“최근에 알게 된 일이라는데. 네 아빠를 고이 놓아주는 조건으로, 그 사람이 제 인생을 대신 저당 잡혔다는 거야.”
이런.
“아무튼 그런 이유로 스컹크란 사람은 광신도마냥 목숨 걸고 충성하며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했다나 봐.”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이었다.
외할아버지가 스컹크에 대해 들려줬던 말이 생각났다.
-동진이 덕에 가족을 구할 수 있었다지?
-이후 광신도마냥 목숨 걸고 정씨 집안에 충성하더라고.
설마 그 가족이…… 우리 아버지였던 건가?
어머니는 쓰게 웃었다.
“뒷골목을 아우르는 이 나라 최고의 정보 조직을 완성하기 위해서 혼자 밤낮없이 굴렀을 거라고.”
잠깐.
웨이러 미닛!
‘이 나라 최고의 정보 조직?’
문득 떠오르는 조직이 하나 있었다.
‘남산 찰거머리의 월영(月影)!’
남산 찰거머리는 월영을 이용해 정치권과 야합했다.
녀석이 운영하는 최고급 술집과 살롱을 제공하며 정재계 정보를 쓸어 담았고.
그렇게 놈은 지하금융계의 다섯 거물 중 한 명이 되었다.
“전역한 후에, 그러니까 한 5년 전에. 스컹크란 형을 몰래 찾아갔었대.”
금시초문이었다.
“꼭 찾아야 할 여자가 있으니, 제발 도와달라고 매달렸다더라.”
아버지는 어머니를 찾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뒤졌다.
오죽하면 사이가 좋지 않은 김 비서님께 무릎을 꿇고 도와달라 간청했을까.
“그 일로 스컹크란 사람이 죽을 뻔했나 봐.”
나는 깜짝 놀라 유리창을 돌아보았다.
도로 뿌옇게 흐려지는 유리창을 어머니가 손바닥으로 닦아내었다.
닦아낸 젖은 유리창 너머로 웃고 있는 두 남자의 뒷모습이 눈에 박혔다.
“피투성이로 지하실에 거꾸로 매달려 다 죽어가던 그 사람을 구해준 게 우리 아빠, 그러니까 네 외할아버지였대.”
맙소사.
그게 그렇게 된 거였나?
그러고 보니 외할아버지도 비슷한 말을 했었다.
-스컹크? 그놈은 나한테도 목숨 빚을 진 적이 있어서.
-그러니 내 그놈을 믿고 부동산 회사를 맡겼지.
어머니는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셨다.
“그 일로 일본으로 쫓겨나서 죽을 때까지 한국 땅을 밟는 것을 허락받지 못했다지 뭐야.”
젠장.
정동진 어르신의 얄미운 웃음이 떠올라서 속이 뒤틀렸다.
그 양반, 일부러 말 안 한 게 분명하다!
-중정에서 절 빼준 은혜까지 모를 정도로 철면피는 아닙니다.
-제가 성준이의 뒤통수를 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터지려는 것을 꾹 참았다.
그런데 웬걸?
한숨은 어머니가 대신 쉬고 있었다.
“이젠 알겠지? 네 아빠가 왜 저 스컹크 형이란 사람에게 미안해하는지.”
“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저것 따지던 게 무의미해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방긋 웃었다.
“우리 아빠의 또 다른 가족이었나 보네요.”
“어릴 때부터 한솥밥 먹으면서 믿고 의지하던 하나뿐인 형인데, 그럼 가족이지.”
어머니도 빙그레 웃었다.
나는 힐끔 창밖을 바라보았다.
“성탄절은 원래 가족과 함께 보내는 거랬어요.”
“그럼.”
“우리 집에 찾아온 손님은 그냥 보내면 안 되는 거랬죠?”
“물론이지.”
“엄마, 나랑 밥 한 상 거하게 차려요. 맛있는 거 대접해 드리고 싶어요.”
“그렇지? 마침 식사 준비 다 됐다고 너 부르러 나온 거였거든.”
어머니는 내 머리를 마구 헝클어 놓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심각한 표정으로 돌변하셨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어.”
“뭔데요?”
“옥분 할머니가 철구 씨 잡으러 뛰쳐나가서 간을 내가 맞췄거든.”
“……!”
심각한 문제다!
내가 과거로 회귀하고 처음 우리 어머니 음식을 먹었을 때, 내 기억이 아름답게 추억 보정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엄마의 집밥? 먹을 게 못 되더라고.
모든 음식이 저마다 독특한 맛으로 과하게 자기 주장을 하는데.
식재료 노동 파업 투쟁이 일어난 줄!
“스파게티에 설탕을 넣었더니.”
스파게티에 설탕이 웬 말인가!
“좀 많이 달더라고. 어쩔 수 없이 물을 왕창 부었더니 모양새가 좀 그래.”
“모양새가 어떤데요?”
“음, 한강 라면?”
망했나?
“그거랑 씨름하다 보니까 미트볼이랑 함박스테이크까지 좀 탔어.”
“얼마나 탔는데요?”
“음, 초코쿠키?”
아이고, 어머니!
“아, 그래도 그건 괜찮아. 응급처치로 내가 소스를 좀 부었더니, 제법 그럴싸해졌거든.”
“토마토 소스랑 데미글라스 소스 중 어떤 걸로 부었는데요?”
“응? 양조간장이랑 초고추장 쳤는데?”
나는 재빨리 외쳤다.
“엄마, 나 짜장면 먹고 싶어요!”
고마우신 분께 첫 끼를 대접하는 자린데, 어머니 음식을 내어드릴 순 없지.
우리 아버지한테 남은 억하심정을 논하기 전에, 그쪽에서 먼저 억하심정을 따지고 들겠어!
“탕수육, 양장피, 팔보채, 난자완스, 라조기, 유산슬, 깐풍기에 볶음밥도 시켜요!”
나는 동전지갑을 팡팡 쳤다.
“손님맞이엔 뭐니 뭐니 해도 일품 중화요리가 최고거든요!”
어머니가 치켜든 내 손바닥에 하이 파이브를 올렸다.
짜악!
“난 짬뽕!”
* * *
밥을 먹는 내내 식탁에서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전대 거물 4인방은 물론 태성그룹 경호원들과 심 사장, 동남쪽 스컹크와 어머니, 아버지까지 함께하는 식사 자리였다.
유종태가 엄지를 치켜들었다.
“역시 군만두는 서비스로 온 군만두가 최고라니까요!”
내 이럴 줄 알고 군만두는 안 시켰지, 우후훗!
심 사장님은 보약 팩 대신 고량주를 만지작거리며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이걸 마셔, 말아?”
“왜요? 낮술로는 도수가 꽤 높아서 좀 부담돼요?”
“보약 마실 때 술 마셔도 되는지 몰라서요.”
심 사장님은 입맛을 쩝쩝 다시면서 고량주를 슬쩍 식탁에 내려놓았다.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인데, 보약을 포기할 순 없죠.”
“열심히 일한 당신, 쉬어라! 성탄절은 가족과 함께!”
“JH는 한 식구!”
심 사장은 씩 웃었다.
“식구 별겁니까? 같은 밥상에서 밥 나눠 먹으니까 식구(食口)죠.”
심 사장이 스승님께 고량주를 따라주며 군침을 삼켰다.
“음식은 입에 맞습니까?”
“아무렴! 꽁술에 비싼 안주인데. 내 오늘 입 호강이 제대로야!”
“뭐가 제일 입에 맞으십니까?”
“흐흐흐, ‘전부 다!’라고 하면 또 시켜줄 텐가?”
말죽거리 말대가리가 재빨리 잔을 내밀었다.
“술 내기 어떠냐?”
“하여간에 저 자식은 어떻게든 건수를 만들어서 도박할 생각뿐이라니까. 쯧, 꽁술에 내기는 무슨!”
스윽.
나는 식탁 밑으로 스승님 손에 지하실에서 꿍쳐 온 술 한 병을 쥐여 주었다.
스승님은 눈을 크게 떴다.
“1926 맥캘란 파인 앤 레어?”
역시 매의 눈!
21세기에 경매가 약 23억 원에 낙찰된 술이다.
한 잔당 약 5,100만 원꼴!
꿀꺽!
스승님은 군침을 삼키며 허리 뒤춤에 술병을 슥 찔러 챙겼다.
그러니 고량주를 마시면서도 연신 싱글벙글이다.
하여간에 돈도 많으신 양반이 꽁술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하신다니까.
“많이 먹어라.”
아버지는 어머니와 내 앞접시에 이런저런 음식들을 한 점씩 바쁘게 날라 주었다.
스윽.
까치산 방 여사가 모른 척 제 앞접시를 종로 금이빨에게 밀어 넣었다.
종로 금이빨은 아무렇지도 않게 앞접시에 올려놓은 탕수육을 쏙 집어 먹었다.
빠악!
까치산 방 여사는 참지 않았다.
종로 금이빨의 뒤통수를 후려치는 손길이 매서웠다.
“으이구, 인간아!”
“아,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리는데!”
하지만 종로 금이빨이 군만두를 집어 들자 까치산 방 여사의 얼굴이 활짝 폈다.
부끄러운 듯이 몸을 배배 꼬는데, 아뿔싸!
까치산 방 여사의 앞접시가 아닌, 동남쪽 스컹크의 짜장면 그릇에 쏙 넣어주는 게 아닌가.
동남쪽 스컹크는 짜장면을 먹다 말고 움찔했다.
종로 금이빨은 분해서 파르르 떠는 까치산 방 여사의 짬뽕 그릇에 난자완스를 퐁당 빠뜨렸다.
“이 인간이 진짜!”
빠악!
두 번째 뒤통수가 떨어졌음은 물론이었다.
종로 금이빨은 튼튼한 목으로 버텨내며 씩 웃었다.
“그래, 성준 도련님 밑에서 일할 생각이라고?”
다들 젓가락이 허공에서 멈췄다.
“김 비서처럼?”
“김 비서님 밑에서 비서 일을 배우는 건 다른 일부터 해결한 이후가 될 겁니다.”
“다른 일?”
동남쪽 스컹크는 아버지를 힐끔 보았다.
아버지는 말없이 내 앞접시에 팔보채를 놓아주셨을 뿐이었다.
“그림자 라인을 부활시킬까 합니다.”
다들 놀라서 숨을 들이마셨다.
“정씨 집안에서 심혈을 기울여 구축한 정보 라인이 아닙니까.”
동남쪽 스컹크는 군만두를 짜장 소스에 찍어 냉큼 베어 물었다.
“이대로 버려두기엔 너무 아까운 정보망입니다. 그동안 들인 돈이며, 시간이며, 인력이며, 노력이 다 얼마인데요.”
웃고 떠들며 마시고 먹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진중해졌다.
“밀사가 그림자 라인을 장악하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썼지만 결국 실패했다.”
“네가 떠나면서 핵심 정보 요원들도 같이 물밑으로 잠적했어.”
“점조직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부활시키기 쉽지 않을걸?”
탁.
동남쪽 스컹크는 품을 뒤져 어린애 손바닥만 한 수첩을 꺼냈다.
낡고 닳아서 너덜너덜, 꼬깃꼬깃한 수첩이었다.
‘저건 뭔데 저렇게 예사롭지 않은 황금빛이 번쩍거려?’
동남쪽 스컹크는 황금빛이 번쩍이는 수첩을 내 쪽으로 쭉 밀었다.
“제가 준비한 성탄절 선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