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359)
재벌집 만렙 아들-359화(359/416)
359. 정동진의 유산
동남쪽 스컹크가 내 몫으로 준비한 성탄절 선물.
황금빛이 번쩍이는 수첩을 펼쳐 보았다.
‘하……!’
정씨 집안이 구축한 그림자 라인이 점조직으로 구성되어 있다더니.
‘그림자 라인의 조직원들의 인명록이잖아.’
구체적인 신상과 연락처, 안가 및 접선 장소, 암구호와 암호 해독 등에 관한 핵심 사항만 간략하게 적혀 있었다.
탁.
나는 도로 수첩을 덮었다.
“이걸 왜 저한테 주세요?”
“수장께서 아셔야 할, 정씨 집안의 힘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고개를 모로 꺾었다.
“저더러 직접 그림자 라인을 부활시키라는 뜻인가요?”
“수장께 그런 귀찮은 수고를 안겨드릴 수는 없지요.”
동남쪽 스컹크는 고개를 저었다.
“제 손으로 망친 조직이니, 제가 수습하는 것이 도리겠지요. 이 일은 저한테 맡겨주십시오.”
“자신 있어요?”
“계획도 있습니다.”
동남쪽 스컹크는 자신만만하게 주먹으로 제 가슴을 쿵 쳤다.
“제 선에서 처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명령만 하십시오.”
탁.
아버지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그건 외삼촌, 아니, 네 진외종조부이신 정동진 어르신의 유언이었다.”
“네?”
놀란 건 나 혼자만이 아니었다.
다들 동그래진 눈으로 숨을 들이마셨다.
“반드시 네게 그림자 라인을 물려줘야 한다고 하셨지.”
정동진 어르신이?
“안 그러면 최일태 의원 손에 넘어가게 생겼다면서.”
최일태 의원?
예상 밖의 인물이 갑자기 튀어나오니 조금 당혹스러웠다.
“그건 최씨 일가가 아니라 정혁이, 네가 물려받아야 하는 정씨 집안의 유산이라더군.”
아버지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쓰고 안 쓰고는 정혁이 네 마음이니까 그저 조커처럼 들고 있어도 된다는데.”
아버지는 날 똑바로 바라보았다.
“정혁이 네게 직접 물어보라 하셨다.”
“뭘 물어보래요?”
“남산 찰거머리가 부리던 정보 조직을 가지고 싶냐고.”
“……!”
나도 모르게 입을 떡 벌리고 말았다.
‘아버지가, 아니, 정동진 어르신이 남산 찰거머리를 어떻게 알아?’
혼란스러웠다.
동공에서 지진이 나는 것을 막을 길이 없었다.
‘남산 찰거머리가 이미 이 시절부터 뒷세계에서 몰래 움직이고 있던 건가?’
아니지. 그럴 리가 없는데?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지금 이 상황은 설명이 되지 않…… 젠장!
나는 이마를 탁 쳤다.
‘저승사자!’
당시 저승사자는 크게 노해 길길이 날뛰었다.
-지켜볼수록 괘씸한 것이 내 가만히 두고 보기가 어렵구나. 벼락 맞아 죽으면 그게 바로 천벌이지!
-됐어. 내버려 둬도 조만간 자연사 아니면 병사야.
-저놈 때문에 꼬였던 네 천벌 받은 전생, 화끈하게 제대로 보여주마.
저승사자는 도포 자락을 떨치곤 씩씩대며 정동진 어르신께 걸어갔었건만.
이게 웬걸?
마침 할머니의 드잡이질에 밀려 저승사자는 뻘쭘하게 뒤로 밀려나고 말았다.
그렇게 일이 흐지부지 마무리되고 말았을 텐데.
따악.
나는 손가락을 부딪쳤다.
‘어이, 수호신.’
[아, 왜!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저승사자는 햄스터처럼 두 볼 가득 음식을 담고 오물거렸다.
입가 가득 짜장소스와 기름이 번들번들해서는.
‘너 혹시 정동진 어르신께 천벌 내렸냐?’
[갑자기 왜 천벌을……!]‘왜 말을 하다가 말아?’
[…….]‘눈알은 왜 그렇게 굴리고?’
[…….]‘이 식은땀은 또 뭔데?’
스르륵.
저승사자가 모른 척 연기처럼 바닥으로 꺼지려 할 때였다.
‘동작 그만. 이대로 튀면 한 달간 텔레비전 압수.’
[으악, 그건 너무 심하잖아!]‘너 정동진 어르신께 뭐 했어?’
[아니, 난 그냥……했을…… 뿐인데…….]‘초파리처럼 앵앵대지 말고 똑바로 말해라.’
[그놈 때문에 제대로 꼬였던, 천벌 받은 네 전생을 보여줬다고 했다. 됐냐?]맙소사.
[너도 꿈으로 보여주는 건 괜찮다며?]‘내가 언제 내 전생 보여주랬어? 오늘내일하는 사람한테는 저승사자가 나오는 꿈만으로도 겁이 덜컥 났을걸?’
[……!]저승사자가 쩔쩔매며 눈을 도로록 굴렸다.
[내가 헛다리 짚었냐?]‘그쯤 되면 천기누설 아닌가?’
[……망했네?]그런 듯?
쿵!
저승사자는 바로 대가리를 박았다.
허리에 뒷짐까지 제대로 지고, 우렁차게 외쳤다.
[일주일간 텔레비전 자진 반납! 한 번만 봐주라!]내가 못 산다, 정말.
이걸 쥐 잡듯이 잡아 팰 수도 없고!
아버지가 동남쪽 스컹크를 힐끔 보았다.
“돌아가시기 전에 내게 스컹크를 부탁하셨다.”
사람들의 눈이 동남쪽 스컹크에게 쏠렸다.
“정혁아, 정말 고맙다. 형을 놓아줘서.”
“감사합니다, 도련님. 이 은혜는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동남쪽 스컹크는 각도 확실하게 고개를 푹 숙였다.
“제 목숨이 다할 때까지 도련님께 충성하겠습니다.”
“말로만?”
나는 동전지갑을 열었다.
두 장을 쏙 뽑아서 동남쪽 스컹크 앞에 펼쳤다.
“여, 연판장……. 드디어 연판장이……!”
아니, 이게 뭐라고 그렇게 감격스러워해?
심 사장은 먹던 군만두를 툭 떨어뜨렸다.
“그거 노예 계약서 아니었습니까?”
그 노예 계약서, 댁도 쓰셨습니다만?
거물 4인방도 불안한 얼굴로 저희들끼리 수군댔다.
“그런데 왜 스컹크만 두 장이야?”
“우리한테는 한 장만 받아 가셨으면서?”
“이거 차별 아닌가?”
나는 딱 잘라 말했다.
“한 장은 제 몫이고, 한 장은 우리 아빠 몫이에요.”
“아하.”
그제야 다들 안심한 얼굴로 젓가락을 들었다.
언제 잔뜩 얼어붙었나 싶을 만큼 도로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흘렀다.
“스컹크 저 새끼, 자발적 노예 계약이 벌써 몇 번째야?”
“이것은 습관인가, 팔자인가?”
“오호호, 그래도 전 왠지 스컹크 마음을 알 것 같은데요?”
“왜? 대가리에 총 맞지 않고서야 제 목줄을 제 목에 스스로 걸 일은 없을 것 같은데.”
“저 연판장을 바꿔 말하면 그거잖아요.”
까치산 방 여사가 단춧구멍같이 작은 눈을 찡긋했다.
“도련님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권리.”
“아하!”
다들 그제야 이마를 탁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똑똑한 새끼.”
“그럼 스컹크 저 자식 혼자만 정혁 도련님과 성준 도련님의 보호를 전부 다 받을 수 있는 건가?”
“와, 이 정도면 거의 계략범 아니에요?”
스컹크가 기뻐 보이는 얼굴로 연판장 두 개에 서명 날인을 마쳤다.
도로 내미는 손이 행복해 보였다.
‘과연 황금빛!’
전대 거물 4인방의 연판장처럼 동남쪽 스컹크의 연판장도 잡티 한 점 없는 환한 황금빛이었다.
“이것도 받아라.”
아버지는 품에서 열쇠와 쪽지 하나를 꺼내 내 앞으로 슥 밀어 넣었다.
“네 진외종조부님께서 네 앞으로 남기신 것이다.”
눈부신 황금빛이었다.
‘이건 또 뭔데 황금빛이야?’
나는 달랑 두어 개 들어 있는 열쇠고리를 슬쩍 흔들어 봤다.
짤랑짤랑 부딪힐 때마다 황금빛 폭탄이 번쩍번쩍 터져댔다.
‘어디에 쓰는 열쇠일까?’
황금빛 쪽지도 펼쳐봤다.
은행과 암호가 쭈르륵 기록되어 있었다.
“정혁이 네게 정씨 일가의 모든 것을 줄 것이라고 하셨다.”
조선은행, 대한은행, 고려은행, 신라은행, 백제은행.
전부 다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거대 은행들이었다.
* * *
짤랑.
나는 손끝으로 열쇠를 튕겨 보았다.
톡.
이번엔 낡은 수첩을 건드려 보았다.
그럴 때마다 눈부신 황금빛이 작은 축포처럼 팟팟 터졌다.
‘남산 찰거머리가 부리던 정보 조직이라…….’
남산 찰거머리를 지하금융계 다섯 거물 중 하나로 만들어준 ‘월영’.
정재계 뒷소문에 있어서만큼은 국정원 이상이라는 말이 돌 만큼 유명했었다.
‘정씨 집안의 정보 조직을 최일태가 중간에 날름 가로채서 남산 찰거머리에게 넘겨주었다는 건데.’
나는 미간을 와락 구겼다.
‘짜증 나는군.’
그러고 보니 최일태 옆에 남산 찰거머리가 붙어 있었지.
도박장에서 똑똑히 보았다.
‘대체 둘이 무슨 관계야? 최일태가 왜 남산 찰거머리를 끼고도는 거지?’
뭐가 아쉬워서?
그는 제6, 7, 8, 9대 국회의원으로, 군사 정변 이후 김준표와 함께 민주공화당을 창당한 거물 정치인이다.
흔히 3김이라 불리는 거물 정치인만은 못했지만, 철새처럼 이리저리 옮기면서 끝까지 주류 정치 인생을 이어나갔던 양반이랄까.
‘12월에 열렸던 총선에서 낙선했을 텐데.’
전생에서도 그러했다.
그는 귀신처럼 권력의 냄새를 맡아 여당에만 붙어 있던 철새 정치인.
이번에도 여당에 붙어 있다가 된서리를 맞았다.
그의 정치 인생에서 몇 안 되는, 뼈아픈 패전의 흑역사였다.
‘그것참 쌤통이네. 내 이럴 줄 알았지, 우후훗!’
입학식 날, 대통령에게 경고했었다.
-부가가치세는 방만한 국가 예산 운영의 상징으로 비난받게 될 거예요.
눈에 보이지 않는 증세.
소비자에게 조세 부담을 떠넘겨 국고를 늘리려는 꼼수였다.
-유럽에선 19%나 받는데, 대한민국에서는 그 반인 10%밖에 안 받는다고, 막연히 괜찮을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결국 외국에서 돈 뜯어내는 것보다 국민들에게 돈 뜯어내는 게 더 쉽다고 판단해 추진한 일이 아닌가.
-격렬한 조세 저항을 불러올 거예요. 감당하실 수 있겠어요?
건설주 파동에 이어 제2차 석유파동까지 터진 마당이었다.
생필품 품귀 현상이 이어지고, 고물가 행진이 계속되자, 국민들의 분노는 정치권을 향했다.
그 결과가 바로 이렇다.
‘12월 총선에서 부가가치세 철폐를 내세운 야당에 밀려 여당이 참패하면서 대통령의 입지가 크게 약화되고 말았지.’
나는 씩 웃었다.
‘쟁쟁한 법조계 집안 출신인 4선 의원의 체면이 영 말이 아니겠어.’
* * *
와장창!
최일태 의원이 휘두른 골프채에 아들 부부의 집안 살림은 남아나질 않았다.
“내가 총선을 앞두고 문제 일으키지 말라고 했지!”
그의 며느리는 부동산 투기에 심취해 현무아파트 특혜 분양사건으로 검찰에 끌려갔었다.
최일태 의원은 눈을 부라렸다.
“태성건설이 건설주 파동을 주도했다는 둥 쓸데없이 입을 놀리니까 회장 사모한테 머리채를 잡힌 거 아니야!”
정관계 고위 인사들이 모인 곳에서 그런 물의를 일으키다니.
심지어 취재진까지 잔뜩 몰린 자리였다.
며느리를 노려보는 최일태의 눈이 섬뜩하게 빛났다.
“태성은 청와대의 주인을 업었어!”
며느리의 안색이 확 달라졌다.
몰랐던 게 틀림없다.
최일태 의원의 이마에 혈관이 빠직 솟아올랐다.
“너 때문에 내가 대통령 각하께 불려 가 쓴소리를 들었다!”
청와대 경호실장이 신고 있던 슬리퍼를 벗어 그의 뺨을 때렸다.
다시없을 치욕이었다.
아들을 돌아보는 눈은 이미 희번덕하게 돌아가 있었다.
“솔직하게 불어. 너 내 돈 어디로 빼돌렸어?”
“우광건설에 투자를 했는데……, 잘 안됐어요.”
우광건설은 이번에 부도나서 들고 있던 주식이 전부 휴지 조각이 되었다.
“손해 얼마나 봤어?”
“……21억이요.”
“내 정치자금이었다!”
선산 팔고, 물려받은 땅 팔고, 뇌물로 받아먹은 문화재 팔아서 꿍쳐둔 돈!
그뿐만이 아니었다.
“검찰청에서 잘려? 차라리 비리검사, 정치검사로 잘렸으면 쪽팔리지도 않아! 뭐? 성매매 알선?”
한동안 시끄럽게 신문과 방송에서 떠들어 댔다.
성매매를 알선한 아들과 제 얼굴이 나란히 박힌 신문을 볼 때마다 치가 떨렸다.
“네놈이 검사지, 포주야?”
“억! 아파요, 아버지!”
“하필이면 총선 직전에!”
최일태 의원의 골프채 매타작에 곡소리가 절로 터졌다.
며느리는 비명을 지르고, 아들은 몸을 둥글게 말았다.
탁!
최일태 의원은 피 묻은 골프채를 내던졌다.
넥타이를 끄르고, 손수건을 꺼내 피 튄 얼굴을 닦아냈다.
그럼에도 여전히 가슴팍은 거칠게 들썩거렸다.
“네놈들 때문에 내가 낙선했다. 당 대표가 코앞이었건만!”
그가 이번에 5선 의원만 되었다면.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권력의 정점, 여당 대표도 꿈은 아니었다.
“네놈들 때문에 내가……!”
“이제 와서 매타작한다고 결과 달라질 거 있어요?”
서재 문가에 기대어 삐딱하게 선 손자의 눈이 음험하게 빛났다.
한 눈은 삼백안, 다른 눈은 사백안인 열다섯 살 손자였다.
“그 시간과 노력을 딴 데 쓰셔야죠.”
“딴 데? 어디에?”
최일태 의원은 신경질을 숨기지 않았다.
“총선에서 떨어진 패배자를 누가 어디서 써준단 말이냐?”
“이번에 떨어졌다고 다음에 또 떨어지란 법 있어요?”
“내 금고를 털어간 저 새끼 때문에! 뇌물로 공천권을 사기도 어렵게 되었어!”
최일태 의원의 분노가 아들 부부에게 떨어질 찰나, 손자는 혀를 찼다.
“할아버지도 참. 지금 지나간 일과 날린 돈에 매달릴 때가 아니에요. 앞으로의 일과 눈먼 돈에 집중하셔야죠.”
눈먼 돈?
“정씨 집안 대빵이 급사로 뒈졌다는데, 이대로 멍청하게 손가락만 빨고 있으실 거예요?”
한 눈은 삼백안, 다른 눈은 사백안.
손자의 짝짝이 눈엔 탐욕과 살기가 번뜩거렸다.
“그 많은 돈을 다 회수하고 가진 못했을 거 아니에요?”
오호라!
최일태 의원의 눈에도 탐욕과 살기가 번뜩거리기 시작했다.
“흑사회 소속 간부라던 그놈이요. 그놈까지 뒈졌다면서요?”
“밀사!”
정동진의 수발을 들며 정보를 차단하던 놈!
“그놈이 그림자 뭐시기를 얻겠다고 용을 쓸 때, 할아버지가 돈 대주면서 받아놓은 거 있잖아요. 왜 그걸 아깝게 썩혀요?”
“그래, 그게 있었지.”
벌떡!
최일태 의원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네 말이 맞다. 정씨 집안의 유산을 뜯어먹을 다시없을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