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361)
재벌집 만렙 아들-361화(361/416)
361. 잡았다, 요놈! (2)
분명히 고대하던 예린이와의 성탄절 소꿉놀이 시간인데.
어쩌다가 이렇게 돼버렸지?
“장미야, 그런 말은 쓰면 못써.”
어린이용 앞치마를 두른 예린이가 허리에 손을 얹은 채, 하얀 호랑이 인형을 나무랐다.
“세상에. 아줌마가 뭐니? 엄마가 널 그렇게 가르치든?”
예린이가 고재영을 가리키며 호칭을 지정해줬다.
“따라 해 봐, 큰엄마.”
“큰엄마?”
고재영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본인을 가리켰다.
“나? 내가 큰엄마야?”
“언니가 정실부인이잖아요.”
“처음부터 정혁이 부인 하기로 한 건 너잖아?”
고양이같이 샤프하게 빠졌던 고재영의 눈꼬리가 동그래졌다.
“나는 당연히 시어머니 할 줄 알았는데. 애미야, 국이 짜다!”
“저는 애첩이에요, 언니. 헤헤헤.”
“애처어어업?”
고재영이 나를 돌아봤다.
동그래졌던 눈매가 가느스름하게 접힌 후였다.
“야, 차정혁.”
올 것이 왔구만!
나는 천장을 바라보며 체념했다.
“나도 알아. 아무리 소꿉놀이라지만 이래서야 파렴치한 소리를 면치 못…….”
“우리 여보는 능력도 좋네?”
……여보?
“부인이 둘이라니. 멋져.”
잠깐. 웨이러 미닛!
“재밌겠다. 나 할래, 네 정실부인.”
고재영이 신이 나서 사르르 눈웃음을 지었다.
“나 이 집구석 완전 마음에 들어!”
마음에 들기는!
완전 콩가루 집안이 되게 생겼는데!
“고재영, 너 지금 제정신이야?”
내가 이런 소리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는데.
“너 취향에 문제 있냐?”
“무슨 소리야. 내 취향은 꽤 고급이거든?”
고재영이 말총머리를 쓸어 어깨 뒤로 넘기며 웃어 보였다.
“내가 배고프다고 아무나 주워 먹을 애로 보여?”
그러고 보니 전생의 고재영도 비슷한 말을 했었다.
-고재영, 네 눈웃음에 홀딱 반했대.
-뭐? 누가? 네가?
-아니. 청월그룹 재벌 3세가.
고재영은 불같이 화냈다.
-나 아무나 주워 먹는 스타일 아니거든?
-아무나가 아닐 텐데.
그럼 내가 그놈 뒤도 안 털어보고 주선하려는 걸까 봐?
-청월그룹 2대 총수의 큰아들이야. 이 나이에 벌써 계열사 부사장 자리에 올랐으면 능력이야 말 다 한 거고.
청월그룹이라면 우리나라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굴지 재벌기업이었다.
-오만하다는 것만 빼면 한국대 출신에, 여자관계 깔끔하고, 매너 괜찮고, 외모도 상당히 잘생긴 편이야. 이런 남자 정말 흔치 않아.
-됐거든? 내 취향은 상당히 고급이라서.
고재영은 털을 세운 고양이처럼 나를 노려보았다.
-내가 언제 너한테 남자 소개시켜 달랬어?
고양이처럼 크고 샤프한 눈에는 원망과 섭섭함이 가득했다.
그 눈을 보는 순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내가 뭔가 잘못 건드렸다는 것을.
-나쁜 뜻으로 한 말은 아니었어.
고재영의 어깨를 두어 번 툭툭 두드렸다.
-기분 상하게 했다면 미안. 내 말은 못 들은 것으로 해.
-잘 들어, 차정혁.
탁.
고재영은 제 어깨를 건든 내 손을 쳐냈다.
-앞으로 나한테 남자를 소개시켜 주려거든 이것만은 알아둬.
-뭔데?
-첫째, 난 남자 외모 안 봐.
고재영은 턱을 들어 날렵한 콧대를 치켜세웠다.
도도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화상 자국이 있든, 칼자국이 있든, 손가락이니 신장이니 뭐 하나 없어도 상관 안 해.
그 정도면 거의 장애인급 아니냐?
-둘째, 난 남자 조건도 안 봐. 고아든, 국졸이든, 뒷골목에서 사채를 굴리든 말든. 개의치 않는다고.
고재영은 팔짱을 낀 채 나와 눈을 똑바로 맞췄다.
-셋째, 대신 난 남자 성격이랑 낭만만 봐.
낭만이라.
-의리남이 취향이야?
-순정남이 취향이야.
-바람 안 피우는 놈? 그거라면 인정.
-반대야. 바람이라면 좀 피워줬으면 좋겠는데.
-그게 어딜 봐서 순정남인데?
애초에 바람둥이랑 순정남은 같이 묶어서 논할 수 있는 단어가 아니라고.
-그래야 나도 한번 봐주지.
-하아아아……. 고재영, 잘 들어.
나는 고재영의 어깨를 꽉 잡았다.
-넌 남자 취향이 진짜 쓰레기야.
내가 웬만하면 남의 취향 가지고 이래라 저래라 하는 타입은 아닌데.
친구로서 진심으로 걱정되기 시작했다.
-넌 앞으로 남자 함부로 만나지 마라.
-……응.
고재영이 처음으로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에 드는 놈이다 싶으면 일단 나한테 먼저 데려와서 검사받아.
-응.
-남자는 남자가 더 잘 보는 거 알지?
-응.
-내가 ‘이 새끼 쓰레기다.’ 그러면 그놈은 진짜 아닌 거야. 가차 없이 버려. 알았어?
-응.
고양이같이 날카로운 눈매가 초승달처럼 접혔다.
애굣살에 눈물점이 유난히 도드라지는 게, 아주 여우 같은 눈웃음이었다.
이러니까 눈웃음에 홀딱 반했다고 들러붙는 놈들이 생기는 거 아냐.
-그렇게 남자 검사하다가 내가 시집 못 가면 네가 책임질 거야?
-미쳤냐? 내가 널 왜 책임져?
얘가 큰일 날 소리를 하고 있어.
-나한테 여자는 세상에서 한 명뿐이야.
-역시 그렇지?
어째서인지 씁쓸해 보이는 미소였다.
고재영이 하이힐 굽으로 내 발등을 콱 찍었다.
-아, 씨. 고재영, 아프잖아!
-넌 왜 쓸데없이 순정남이야. 짜증 나게.
-왜 나한테 화풀이야? 네 남자 취향이 쓰레기인 게 내 탓은 아니잖아?
-차정혁, 나쁜 놈! 차정혁, 못된 놈! 차정혁, 망할 놈!
씩씩대던 고재영은 등을 돌려 뛰쳐나갔었다.
-차정혁, 바보, 등신, 얼간이, 멍청이, 둔탱이!
끝까지 제 남자 취향은 고급스럽다고 박박 우기더니.
고재영은 결국 결혼 한 번 못 해 보고, 젊은 나이에 비참하게 죽었다.
아직도 눈만 감으면 그녀의 마지막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폭우가 쏟아지는 겨울날, 쓰레기 소각장에 버려졌던 널 찾았을 때.
내 피가 얼마나 싸늘하게 식었는지 넌 모르겠지.
고재영은 그렇게 내 악몽이 되었다.
‘그랬던 고재영이 또 쓰레기 같은 취향을 논하고 있네. 뭐? 부인이 둘이라니 멋져?’
설마 취향이란 게 불변의 영역이었나?
벌써부터 이러면 이번 생의 고재영도 미래가 참 걱정이다.
그런데 고재영은 야무지게 손가락을 꼽았다.
“아무래도 나는 남자 외모도 보고, 집안도 보고, 성격도 보고, 능력도 보고, 그런가 봐.”
어라? 말이 완전히 다른데?
“어차피 남자는 잘생기면 얼굴값, 못생기면 꼴값 떤댔어. 그럴 바엔 백지수표가 낫지.”
뭔 소리야?
아니지.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아무리 소꿉놀이라고 해도 이건 아니지. 내 부인이 둘이라니?”
“얘도 괜찮고, 나도 괜찮은데, 뭐가 문제야?”
“내가 안 괜찮아, 내가!”
나는 머리를 벅벅 털었다.
“누굴 쓰레기로 알아?”
고재영과 예린이가 동시에 꺄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대체 어느 대목에서 웃음벨을 건든 거지?
어린애들이란!
“예린이처럼 귀여운 애첩이랑 같이 사는 거라면 난 두 손 들고 환영할래.”
“나도 언니랑 같이 사는 거 좋아!”
다리가 사이좋게 달랑거렸다.
꼭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리는 것처럼.
[삐약삐약!]언제나처럼 투명한 주작이 예린이 어깨에 앉았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해요, 애첩님.”
“저도 잘 부탁해요, 정실부인님.”
“성탄절 선물도 고마워. 엄청 마음에 들어.”
고재영은 아까 받은 커다란 분홍 토끼 인형을 꼭 껴안았다.
고재영은 현재 분홍색이라면 환장하는 분홍 공주님의 시기를 겪고 있었다.
“마음에 든다니 정말 다행이에요. 언니네 아기는 아빠를 닮아서 참 잘생겼어요.”
“내 아기?”
“우리 장미는 엄마 닮았거든요.”
예린이가 미리 챙겨 온 인형을 흔들어 보였다.
무복을 입고 있는 하얀 호랑이 인형이었다.
“우리 애 이름은 백장미예요. 장미야, ‘큰엄마. 안녕하세요.’ 인사하라니까.”
예린이가 백호 인형을 꾸벅 인사시켰다.
“우리 장미는 장차 백호신을 물려받을 액막이 무녀예요. 그래서 엄마 옆에서 신당 일을 도와야 해요.”
“근데 왜 얘는 성이 백씨야?”
고재영의 눈이 가늘어졌다.
“설마 우리 애첩, 바람피웠어?”
“아니야! 우리 장미는 엄마 성을 따랐을 뿐이야!”
“정혁이 애기면 차장미 해야지.”
“그럼 아빠가 죽어서 안 돼.”
“뭐? 정혁이가 왜 죽어?”
“그런 게 있어. 아무튼 우리 애는 액막이 애기 무녀니까 엄마를 도와줘야 해.”
이루 말할 수 없는 묘한 기분이었다.
습관적으로 과거를 더듬었다.
삼청동 한옥 저택에서 만났던 내 딸 이름이 뭐였더라?
“아빠 목숨을 살리려면 평생 모른 척해야 하는데.”
“굳이?”
“그게 역천의 대가거든.”
“무슨 사연이 이렇게 구구절절해?”
석 달 가까이 우린 툇마루에 나란히 앉아서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았었는데.
서로 통성명조차 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 애에게 ‘손님’, 그 애는 내게 ‘애기 무녀님’이면 족했으니까.
‘젠장.’
엄마를 닮아 예쁘던 그 애가 자꾸만 눈에 아른거렸다.
“안녕, 장미야. 너는 엄마를 닮아서 피부가 정말 하얗고 예쁘구나.”
“그야 전 하얀 호랑이를 모시는 아이니까요.”
고재영과 예린이는 동시에 꺄르르 웃었다.
고재영이 분홍 토끼를 척척 걷게 하여 백호 인형 앞에서 손을 흔들었다.
“안녕하세요, 작은엄마. 안녕, 장미야.”
“아니야. ‘안녕, 장미 누나.’라고 해야지. 그래도 엄연히 위아래가 있는데. 알았지, 강우야?”
“응? 우리 애 이름은 토순이인데?”
“아니야. 걔는 강우야. 차강우.”
나는 순간 온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차강우?’
겨울밤 내복 차림으로 길거리를 헤매며 울고 있던 아이.
부모의 시신을 수습한 후에, 내 호적에 올려 키웠던 아들의 이름이었다.
* * *
삼청관.
대한민국 3대 고급 요정 중 첫손에 꼽히는 곳이다.
삼청동은 대한민국 정치의 1번지였다.
청와대에서도 가깝고, 국무총리 공관, 헌법재판소장 공관, 외교부 장관 공관 등이 입지했다.
더구나 국군보안사령부도 지근거리인 데다, 국군병원을 비롯해 몇몇 군부대들도 위치했다.
따라서 삼청관에는 굵직한 인사들이 많이들 드나들곤 했다.
“다들 준비됐나?”
“예!”
최석태 지검장의 명에 따라 3차장 휘하 특수부 검사들이 동원되었다.
“오늘 우리는 사채왕 정동진의 비밀 조직을 완전히 뿌리 뽑을 것이다.”
“예!”
“다시는 지하금융계 악의 축들이 대한민국의 경제를 흔들어대지 못하도록!”
부장검사의 목소리에 점점 더 힘이 실린다.
“뇌물을 상납하고, 불법적인 청탁을 자행하며, 총선에 개입하여 이 나라의 질서를 어지럽히지 못하도록!”
부장검사는 휘하 검사들의 눈을 한 명씩 마주했다.
“우리 특수부가 이놈들을 일망타진하여 정의의 이름을 바로 세울 것이다!”
“예!”
그렇게 삼청관을 불시에 급습했다.
입수한 정보에 따라 자물쇠 번호를 눌렀다.
딸각.
통쇠로 된 별채 지하실 문을 걷어차고 우르르 들이닥쳤다.
“검찰이다! 지금 이 시간부로…….”
“검찰?”
그런데 이게 웬걸?
막상 들이닥쳐 보니 중정 요원들이 바글바글했다.
벽에 붙은 커다란 종이에는 육군보안사령관을 비롯해 군내 사조직인 오성회 소속 장교들의 사진이 서열별로 붙어 있었다.
정치인들의 사진과 이름도 한쪽에 따로 정리되었다.
복잡한 관계도와 빼곡하게 적힌 글자들.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정동진의 비밀 기지에서 왜 중정이 튀어나와?’
서울지검 특수부 검사들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중정부장이 삐딱한 눈으로 옆을 돌아보았다.
“다짜고짜 검찰이 중정 비밀 지부를 털겠다고 들이닥쳤다라…….”
중정부장의 고개가 모로 꺾였다.
“누가 보냈어? 육군보안사령관이야, 청와대 경호실장이야?”
중정은 대통령의 막강한 칼로서, 검찰 이상의 절대 권력을 행사하던 조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