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364)
재벌집 만렙 아들-364화(364/416)
364. 혹시 태성의 브레인인가?
신문과 방송은 최일태 의원 사건으로 떠들썩했다.
저승사자는 브라운관 텔레비전을 껴안고 꺼이꺼이 울었다.
[말도 안 돼! 또 결방이라니!]저승사자가 애청하는 일일연속극이 결방되기를 벌써 세 번째!
저승사자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저, 저, 저 천벌 받아 똥물에 튀겨 죽어도 싼 놈 때문에 내 일일연속극이이이이!]급기야 저승사자는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이날이 오기만을 내 얼마나 기다렸는데!]저승사자는 널따란 도포 자락에 얼굴을 파묻고 훌쩍거렸다.
녀석은 일주일간이나 텔레비전 시청을 금지당했다.
쌓았던 기대가 와르르 무너졌기 때문에 훌쩍임은 몹시도 서러웠다.
[저깟 놈이 다 뭐라고! 왜 이리 유난이야?]뭐 한둘이 아니니까.
나는 텔레비전을 힐끔 바라보았다.
최근 요 며칠 뉴스에는 연일 최씨 일가 이름이 오르내렸다.
[끌려가는 놈들마다 피눈물로 쌓은 업보가 많구나!]업보라…….
안 그래도 요즘 내가 그것 때문에 심란해 죽겠다.
말이 나온 김에 물었다.
‘이봐, 수호신.’
[어. 왜?]‘지난번 소꿉놀이 기억하지?’
[…….]저승사자가 모른 척 스르르 연기처럼 꺼지려고 했다.
‘넌 무슨 말만 하면 자꾸 튄대? 너 또 이대로 튀면 텔레비전 일주일 금지다.’
[아, 또, 왜!]저승사자는 땅으로 꺼지다 말고 불쑥 솟아올랐다.
[이번엔 나도 실수 안 했다! 저놈들한테 천벌도 안 줬는데?]억울한 눈이었다.
[아니면 천벌을 안 준 게 문제냐?]‘강우 말이야.’
[……에라이.]저승사자가 조개처럼 입을 딱 다물었다.
‘예린이는 왜 고재영의 아이를 두고 강우라고 한 거지?’
[…….]‘태어나자마자 납치를 당했다는 설정은 또 뭐고?’
[…….]저승사자의 눈알이 떼구르르 굴렀다.
‘아니지?’
당황한 얼굴에, 뭐 마려운 강아지 같은 자세.
‘왜 아니라고 말을 못 해?’
[그야 천기누설이니까.]‘그럼 진짜라는 소리네?’
[……야, 너는 왜 말을 그렇게 받냐?]저승사자가 버럭 외쳤다.
[어린애 소꿉놀이는 소꿉놀이일 뿐, 맹신하지 말자!]‘그럼 예린이 딸 백장미도 소꿉놀이 설정일 뿐이냐?’
[…….]‘내가 삼청동 한옥 저택에서 걔 무녀복 가슴에 달고 있는 장미 꽃무늬 브로치를 봤는데!’
저승사자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좋아. 그럼 이것만 말해 봐. 저 소꿉놀이는 과거야, 미래야?’
[어, 음…….]‘과거면 눈을 깜빡이고, 미래면 눈을 계속 감는다.’
저승사자는 눈을 찢어질 듯 부릅떴다.
죽어도 눈을 깜빡이거나 감지 않겠다는 무언의 시위였다.
나는 팔짱을 낀 채 양반다리로 털썩 앉았다.
‘넌 아무 말도 안 했으니까, 이건 천기누설도 아니야. 맞지?’
[…….]저승사자가 눈에 더욱 힘을 줬다.
1분이 지나고, 2분이 지나고, 3분이 다 되어가는데도.
눈에 핏발이 서고, 눈물이 그렁그렁한데도 저승사자는 끝내 눈을 깜빡이거나 감지 않았다.
‘됐다.’
말을 말자.
그렇게까지 말하기 싫다면야 어쩔 수 없지.
‘그럼 이번 생엔 강우를 포기하는 수밖에.’
[뭐?]저승사자가 화들짝 놀라서 펄쩍 뛰었다.
[염라대왕 앞에서 그토록 간절하게 함께하길 빌었던 아이잖아?]그랬었지.
[천륜을 잇게 해 달라며? 그게 네 미련이자, 한이라며?]그랬지.
[넌 네 아들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지하금융계의 패권 다툼도 포기했었어!]그게 뭐?
[바람 불면 날아갈까, 비 오면 젖을까, 햇살 뜨거우면 탈까, 네 목숨보다 더 아끼던 애를…… 포기하겠다고?]‘어쩔 수 없잖아.’
쓰게 웃었다.
‘강우 하나 보자고 고재영의 인생을 망칠 순 없어.’
[뭔 소리야?]‘내게 여자는 세상에서 한 명뿐이야. 전생에도 그랬고, 이번 생에도 그래.’
어쩌면 다음 생에서도.
하늘이 허락만 해 준다면 난 다시 예린이 널 찾겠지.
전국 방방곡곡을 다 뒤져서라도 끝내 찾아낼 거야.
천벌을 받아 번번이 하늘의 훼방을 받던 그때에도 널 찾아냈는데, 다음 생이라고 못 찾겠어?
‘예린이한테도, 우리 딸에게도 못 할 짓이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난 예린이와 장미에게 갚지 못한 목숨 빚이 있어.’
[그건 전생의 일이다. 지금에 와서는 예린이도, 네 딸도 그런 것은 몰라.]‘하지만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내가 알고, 네가 알고, 염라대왕님도 알고 계시지.’
천망회회 소이불실(天網恢恢 疏而不失).
하늘의 그물은 크고 넓어 성긴 것 같아도 결코 그 그물에서 빠져나가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내 욕심은 여기까지인 것으로 하자.’
지난 생에서 난 최선을 다해 강우를 키웠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바쳐 그 애를 아끼고 사랑해 줬다.
그 애는 나의 행복이자, 평안이었고, 자랑이며, 보물이었다.
그랬기에 마음을 독하게 먹을 수 있었다.
‘이번 생에선 나를 위해 헌신했던 내 여자와 내 딸에게 헌신하려고. 내 최선을 다해서.’
난 받은 것 이상으로 갚는 사람이다.
호의는 호의로, 은혜는 은혜로.
‘강우는 가슴으로 키운, 목숨보다 소중한 내 아들이야. 그건 내가 다시 죽는다 해도 변치 않아.’
지금도 눈을 감으면 이렇게 강우의 얼굴이 아른거린다.
한겨울 길바닥에서 내복 바람으로 헤메던 아이의 우는 얼굴도.
놀이공원 솜사탕을 쥐여주고 목말을 태우면 활짝 웃던 얼굴도.
더러운 폐공장 한구석에 피투성이로 거꾸로 매달려 있던 겁에 질린 얼굴도.
술 취한 녀석이 쫄딱 젖어서는 ‘아버지, 미안합니다.’ 하고 내게 매달려 통곡하던 얼굴도.
‘그러니 괜찮아. 괜찮을 거야.’
나는 유리창 너머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하고 맑았다.
우리 강우의 웃음처럼.
‘내가 죽어서 저승에 가게 되면 사과해야겠지. 정말 미안하다고. 하지만 그게 이번 생의 내 최선이었다고.’
뜻을 정하고 났더니 속이 후련해졌다.
며칠 동안 어지럽게 심란했던 마음이 깨끗하게 가라앉았다.
‘고재영도 걱정할 것 없어. 걔한텐 내가 진짜 괜찮은 남자로 골라 붙여줄 생각이니까.’
저승사자는 주먹으로 제 가슴팍을 퍽퍽 쳤다.
[전생에 고재영이 왜 그렇게 비참하게 죽었는지 알면 넌 그런 소리 못 한다!]내가 왜 몰라.
‘나 때문에 죽었지.’
그 애의 시체를 쓰레기 매립지를 뒤져 찾아냈던 게 난데.
그 죽음에 책임을 묻기 위해 부산을 쑥대밭으로 만든 전쟁을 벌였다.
‘그러니 이번 생에선 더욱더 나랑 얽히지 말아야지.’
그 애가 나 때문에 죽는 것도 한 번이면 족하다.
[어휴, 속 터져! 이러니 천벌이란 게 참…….]천벌? 갑자기?
‘그거 무슨 뜻이냐?’
[몰라!]‘왜 말을 하다 말아?’
[천기누설이라 그렇다, 왜! 차라리 내 배를 째시든가!]이런. 내가 또 협박을 해야 할 때인가?
‘텔레비전 시청 한 달간 압수해?’
[으아아앙, 그냥 배를 째라고!]저승사자는 뿌애앵 울음을 터뜨리면서 도포 자락이 휘날리도록 뛰쳐나갔다.
연기처럼 바닥으로 꺼지려는 저승사자를 붙잡기 위해서.
딱.
나는 손가락을 튕겼다.
‘어이, 수호신!’
어쭈, 무시한다 이거냐?
‘좋은 말 할 때 나와라.’
딱.
잠잠했다.
처음이었다.
저승사자가 내 호출에 불응한 것은.
‘참고로 오늘 저녁 메뉴는 옥분 할머니표 햄버거 세트야.’
[햄버거 세트? 소고기버거냐, 치킨버거냐? 난 수정과 대신 콜라!]내 이럴 줄 알았지!
‘내 천벌이 뭐? 그게 고재영이랑 무슨 상관인데?’
[그걸 이제 와서 알아서 뭐 하려고? 강우 포기한다며? 고재영이랑 악연 이을 생각 없다며?]저승사자는 주둥이가 댓 발 나와서 툴툴댔다.
[그럼 지나간 과거는 들춰볼 것 없어. 평생 미련 두지 말고 살아라.]저승사자는 그 말을 끝으로 도로 연기처럼 꺼졌다.
‘저 자식이……!’
제법 튀는 요령이 늘었네?
튈려면 텔레비전이나 끄고 튀든가! 전기세 아깝게!
-검찰은 최일태 의원의 살인 교사 사건을 은폐하는 일에 도움을 준 것으로 지목된 서울중앙지검의 최석태 지검장과 서울북부지방법원의 최정태 부장판사를 소환해…….
뒤는 더 들을 것도 없었다.
며칠째 똑같은 소리를 들었더니 지겨워 죽겠다.
나는 텔레비전을 껐다.
* * *
청와대 비서실장도 텔레비전을 껐다.
대통령은 피식 웃었다.
“재국이가 머리를 참 잘 썼어.”
“중정부장께서 이번에 참 큰일을 해 주셨습니다.”
청와대 비서실장도 고개를 끄덕여 동조했다.
“최일태 의원과 법조계 비리를 묶어서 수면 위로 올렸으니, 한동안 국민들의 관심은 그쪽으로 집중될 겁니다.”
“그래야지.”
대통령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총선 참패 이후 곤란하던 참이었는데 말이야.”
야당 의원들이 꺼내 든 부가세 철폐 공약이 너무 잘 먹혀들어서 문제였다.
여당이 과반수 의석 확보에 실패하여 요즘 대통령의 심기가 말이 아니었다.
그러던 차에 중정부장이 아주 훌륭한 제물을 던져주었다.
언론은 신이 나서 제물을 뜯어 먹기에 나섰고 말이다.
똑똑똑.
“들어와.”
“부르셨습니까?”
“그래, 재국아. 고생했다.”
대통령이 평소와 달리 의자에서 일어나 중정부장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 모습을 본 청와대 경호실장은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눈에 보이는 치하와 편애에 심기가 크게 뒤틀렸기 때문이다.
“이번 정치 공작 말이야. 아주 마음에 들어.”
“과찬이십니다.”
“그래, 중정이 이렇게 나와줘야지.”
중정, 정식 명칭은 중앙정보부.
국내외 첩보 업무를 담당하며, 남파 간첩 및 좌익 사범을 색출하거나, 대외 대북의 정보를 수집하는 기관이었다.
하지만 대통령은 중정의 쓸모 중 으뜸을 ‘정치공작’에 두었다.
그의 절대권력과 장기집권을 위하여.
“지금처럼만 해. 지금의 중정, 아주 좋아. 하하하.”
대통령이 웃음을 터뜨리며 중정부장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러자 청와대 경호실장의 입매가 뒤틀려 씰룩대었다.
대통령은 중정부장의 어깨를 감싸 안고 응접실 소파로 이끌었다.
“안 그래도 최일태 패거리가 너무 나대긴 했지.”
대통령은 다리를 꼬아 앉으며 소파 팔걸이에 팔을 얹었다.
“부가가치세를 창설하면 세수를 쉽게 늘릴 수 있을 거라며 선동하던 새끼가 바로 그 새끼야, 최일태.”
대통령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내 한번 제대로 불러서 밟아줄까 했다만.”
“무릎 꿇려 슬리퍼로 뺨을 갈긴 것으로는 분이 안 풀리셨나 보군요.”
“여당이 반토막이 났다. 그 새끼 때문에. 당 대표에 욕심을 부리더라니, 쯧.”
대통령은 혀를 찼다.
“이참에 최일태한테 붙었던 놈들 싹 다 숙청해.”
“예, 각하.”
대통령이 당 대표로 내정한 인물은 따로 있었다.
최일태가 쓸데없이 선동하며 분란을 일으키는 바람에 애로사항이 많다고 하소연 했었다.
“최일태 때문에 밀려났던 애들 다시 불러올리고.”
“공청과 재보궐 선거를 준비하라는 뜻이군요.”
“원래 빈자리는 내 사람으로 채우는 거 아니던가?”
“명단 만들어 올리겠습니다. 각하께서 고르시면 뒤는 제가 밀어주겠습니다.”
“좋아.”
이 녀석은 말귀를 참 잘 알아듣는단 말이지.
대통령이 다시 한번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괜히 검찰에 두들겨 맞은 중정 요원들만 고생이었어.”
“가문의 영광으로 알 겁니다. 각하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고생을 감수하겠다며 자원한 놈들이 아닙니까.”
“흠.”
딱. 딱. 딱. 딱.
대통령이 리드미컬하게 손가락을 두드렸다.
생각에 잠길 때면 나오는 버릇이었다.
“이 작전, 언제부터 계획했나?”
“대선 이후입니다.”
벌써 반년 전에.
대통령의 눈이 조금 커졌다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때라면 총선은 아직 시작도 안 했을 때인데?”
“총선에서 잡음이 생길 것을 예측한 인재가 있었습니다.”
호오.
대통령이 중정부장을 향해 몸을 슬쩍 기울였다.
“그런 인재가 있었나?”
“각하께서도 아는 자입니다.”
누구지?
대통령의 손가락이 다시 리드미컬하게 두들기다가 뚝 멎었다.
-역시 대통령님은 세금을 안 무서워하시네요.
-부가가치세 신설은 격렬한 조세 저항을 불러올 거예요. 감당하실 수 있겠어요?
이미 3월에 이 사태를 예견한 자가 있었지 않은가.
“혹시 태성의 브레인인가?”
“예, 각하.”
“그래, 내 역시 그럴 줄 알았지!”
대통령이 무릎을 탁 쳤다.
“자세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