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368)
재벌집 만렙 아들-368화(368/416)
368. 오히려 좋다니까!
띵동띵동띵동띵동띵동띵동!
흔치 않게 요란한 초인종 소리였다.
요즘 종종 당하고 있는 초인종 벨튀답지 않게 말이다.
벌컥!
현관문 열리는 소리도 심상치 않았다.
어지간히 다급했던 모양인지 현관문 닫히는 소리가 들리는 것과 동시에 성큼성큼 내딛는 발소리가 뒤따랐다.
거실을 잠시 배회하던 발소리가 바로 이곳 주방으로 향했다.
“도련니이이이임!”
“부사장님?”
밀매왕이 반색하며 와다다 달려왔다.
아니, 미국에 있어야 할 사람이 이 시간에 여긴 웬일이야?
“대형사고 쳐서 튀어 온 건 아니겠죠?”
“하하하, 하나는 좋은 소식을 직접 전하기 위해서, 다른 하나는 중대한 사안을 재결받기 위해서 온 겁니다.”
좋은 소식에 중대한 사안?
어디 보자.
지금 이 시절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는 큰 이슈가 있던가?
그것도 미국 본사에서 지분 정리 타이밍을 주시하던 밀매왕이 하던 일도 내팽개치고 달려올 만큼 큰 문제라면.
“미국 정유회사들이 물밑에서 움직이고 있나 보죠?”
“도련님, 지금 딱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처럼 요러고 계신 거 아십니까?”
닥쳐 봐요.
내가 지금 뭘 놓쳤는지 떠올리느라 바쁘니까요.
“저 고사리 같은 손에, 요 말랑한 찹쌀떡 볼따구에, 이 진지한 표정이라니.”
나 지금 궁서체라니까요?
“지금은 나쁜 소식만 안 들려도 다행인 시국이에요. 제2차 석유 파동이 터졌잖아요.”
오죽했으면 열심히 따던 콩나물 대가리까지 내팽개쳤겠냐고요.
“당연히 미국 주식시장은 크게 출렁거렸을 거고, 미국 기업들의 주가는 일제히 폭락했을 거예요. 문제는 우리 JH투자가 그 전에 미리 지분을 정리하고 현금을…… 으갸악!”
“읏차차!”
나는 어어, 하는 사이에 번쩍 들어 올려졌다.
“어이쿠, 우리 도련님이 그동안 이만큼이나 크셨어!”
당연한 소리를!
“쑥쑥 크려고 매일 고기와 우유를 얼마나 들이붓고 있는데요.”
“이제야 조금 어린애다운 얼굴을 보여 주시는군요.”
밀매왕이 날 머리 위로 들어 올린 채 눈을 마주 보았다.
“도련님께서 궁금해하시는 일부터 보고드리는 게 도리란 거 압니다.”
밀매왕의 눈동자에 비친 나는 사업가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간략하게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도련님 말씀이 다 맞습니다.”
다행이었다.
“미국 주식시장이 요동치는 것도 맞고, 기업 주가가 일제히 폭락한 것도 맞고, 그 전에 우리 JH투자가 미리 지분을 정리하고 현금을 확보한 것도 맞습니다.”
좋은 소식이다.
그제야 나는 미간을 풀어낼 수 있었다.
“사실은 미국 기업 지분을 털어내는 데 제동이 걸렸다거나, 정유회사 지분은 완전히 정리하지 못했다거나, 미국 은행에서는…… 으갸악!”
“또, 또, 또. 이 상태로 끝까지 보고받으실 거예요?”
“으아아앗?”
밀매왕은 나를 번쩍 들어 올린 채 위아래로 빙글빙글 돌렸다.
아, 이러면 진짜 곤란해지는데.
“으헤헤헤헤!”
젠장, 어린애 몸뚱이란!
왜 이렇게 재밌냐!
나는 그만 어린애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속수무책이었다.
“꺄하하하!”
와, 씨, 밀매왕! 왜 이렇게 재밌게 띄워주냐!
내장이 간질간질하고, 하늘을 휙휙 나는 이 기분!
늘 짜릿해, 새로워, 재밌어!
“한 번 더?”
“에헤헤, 한 번 더!”
“좋습니다. 한 번 더 가즈아!”
“으헤헤헷!”
나이 드신 양반이 힘도 좋으시지.
어쩜 이렇게 번쩍번쩍 잘 돌리시는지!
털썩.
밀매왕이 바닥에 내려놓자, 나는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뒤늦게 현타가 몰려왔다.
젠장, 재밌어도 너무 재밌잖아!
“요령이 좋으시군요.”
“하하하, 한 번 더 돌려드려요?”
“감사하지만 사양할게요. 정신건강에 너무 해로워요.”
“……그렇게 좋다고 웃어놓고?”
“그러니까요.”
밀매왕은 그만 너털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사업도 좋고, 돈도 좋고, 회사 걱정도 좋지요. 그래도 전 아직까진 도련님께 좋은 소식이란 ‘무슨 선물을 사 왔어요?’였으면 좋겠습니다.”
따뜻하면서도 안쓰러움이 깃든 눈빛이었다.
문득 애늙은이 같은 소리를 하며 내 눈치를 보던 강우가 떠올랐다.
어린애면 어린애답게 조금 더 투정을 부려도 좋다며 강우를 안고 얼러주던 때라면 나도 있었다.
“그래서 무슨 선물을 사 왔는데요?”
나는 밀매왕의 허리를 껴안으며 방긋 웃었다.
나를 내려다보는 밀매왕의 눈빛이 더 자애로워졌다.
“먹는 거예요, 쓰는 거예요, 입는 거예요?”
“이런. 안타깝게도 전부 다 틀리셨습니다.”
“그럼 역시 은닉재산인가요?”
부산의 패자 밀매왕이라면 알겠지.
마침 해외에 나갔겠다, 회수한 현금도 짭짤하겠다, 은닉재산 빼돌리기에 딱 좋은 때잖아?
“금괴나 보석류인가요, 채권류인가요, 그도 아니면 부동산?”
나는 한쪽 눈을 찡긋해 보이면서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말아 보였다.
“참고로 전 현찰도 아주 좋아해요. 문서만큼이나 확실하거든요.”
“하하하! 정말로 못 말리겠군요.”
밀매왕은 참을 수 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지만.
나는 반대로 웃음기를 싹 거둬냈다.
“선물이랍시고 고재영과의 약혼, 뭐 이런 헛소리를 꺼내는 거면 가만 안 둬요.”
“이래도?”
밀매왕은 날 한 팔로 번쩍 안아 든 채, 다른 손으로 양복 안주머니를 주섬주섬 뒤졌다.
내가 현찰만큼이나 좋아하는, 문서가 톡 튀어나왔다.
‘으헉, 이 황금빛은 대체 뭔데?’
지금껏 본 적 없는 광채였다.
나는 부나방의 심정이 이런 것인가 하면서 홀린 듯이 속수무책으로 황금빛에 빨려 들어갔다.
‘미치겠다.’
워렌 버퍼의 버크셔 헤서웨어사 지분 인수 계약 건도 이만큼은 못 했다.
대통령이 약속한 광양 종합제철소 허가권도 이렇지는 않았다.
심지어 공룡 매물이라고 하는 유공 인수도 이만한 황금빛을 발하진 못했다.
“전(前) 중정부장 김형원이 빼돌린 돈으로 유전을 하나 사놨다던 말을 기억하십니까?”
“……!”
황당했다.
“그거 로비스트들이 장난처럼 꺼냈던 말 아니었어요?”
사우디 유전이 어디 한두 푼 하는 물건도 아니고.
“고작 1억 달러밖에 안 든 물건이라면서요?”
1억 달러를 몽땅 쏟아부어도 유전 끝자락 땅 한 뙈기를 못 산다.
“탐사 중이라면서요?”
“예. 첫 번째 시추에서 원유가 나와 개발 적합성 검사를 받아봤지요.”
아니, 시추까지 끝냈다고?
그건 확실한 유전을 발굴했다는 소리였다.
그러니 나도 입이 떡 벌어질 수밖에.
“개발 적합성 검사까지 넣었어요? 그래서 결과는요?”
“대박 났습니다.”
진짜로?
장난하는 거 아니고?
“사기 당했던 게 아니라고요?”
“운이 좋았습니다.”
밀매왕은 입이 찢어질 듯 헤벌쭉 웃었다.
“원유와 가스가 아주 그냥 펑펑 나온답니다.”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이게 된다고?
운이 좋아도 너무 좋은데?
“위치가 어디쯤 되는데요?”
“리야드 남쪽입니다.”
“……!”
뒤통수를 강타하는 충격이었다.
리야드 남쪽이라고 하면 당연한 듯 떠오르는 유전이 있어서.
‘설마… 아니겠지?’
에이, 아무리 운이 좋아도 그렇지.
그곳일 리 있겠어?
‘1980년대 후반에 입 떡 벌어지게 잭팟 터진 그 유전……. 그게 김형원한테 얻어걸릴 확률이 뭐 얼마나 된다고.’
1933년 5월 미국의 정유회사가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와 양해 각서를 체결하고 원유 채굴권을 얻어냈다.
그 이후 죽어라 원유 탐사에 들어갔는데도, 아직 발견하지 못한 곳이었다.
‘그러고 보니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도 아직 아람코를 완전히 인수하지 못한 때인가?’
나는 눈을 번쩍 떴다.
“정유회사 지분, 그건 어떻게 됐어요?”
“제가 도련님께 재결을 받아야 한다는 중대한 사안이 바로 그겁니다.”
밀매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유회사 지분은 완전히 정리하지 못했으니, 미국 기업 지분을 털어내는 데 제동이 걸린 셈이죠.”
오히려 좋아!
“도련님 말씀대로 제2차 석유파동이 터졌으니, 제일 먼저 주가가 폭락할 곳이 정유회사란 것을 뻔히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정유회사 지분을 완전히 정리하지 않았다는 말이죠? 김형원이 가져온 유전 때문에.”
“예,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정확합니다.”
밀매왕은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조건을 달고 지분 인수 협상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생각하고 보니…….”
“사우디아라비아의 원유 채굴권을 가지고 있는 정유기업이었단 말이죠?”
미국 대표적인 정유회사였던 스탠다드 오일.
세계 석유시장의 90%를 독점했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에너지 회사를 보유한 석유왕 록펠러가 세운 회사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유전에 빨대를 꽂았었다.
“아람코 지분과 정유회사 지분을 바꾸는 조건을 내걸면 어떤가 고민이 됐었나 봐요?”
“그걸 어떻게……!”
록펠러 가문의 정유회사 중 7대 정유 메이저라는 회사들.
밀매왕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사실은 협상에 난항이 많았습니다.”
그럴 터였다.
“처음엔 미국 은행과 지분 매각 협상을 하려고 했지만, 보유 지분 규모가 제법 되는지라 정유회사에서 직접 접촉해 왔더라고요.”
그렇겠지.
버크셔 헤서웨어사의 워렌 버퍼도 고작 2% 지분에도 눈이 뒤집혔을 정도였다.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메이저 정유회사라서 그런지, 아주 양아치가 따로 없잖습니까. 아니, 글쎄 우리더러 헐값에 지분을 넘기지 않으면 재미없어질 거라며 협박을 다 하데요?”
흥미로운 보고였다.
“그런데 이게 그냥 하는 협박이 아니더란 말이죠? 미국 정부가 움직이니까, 이거 보통 일이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부산의 패자라는 밀매왕이다 보니 웬만한 압력과 협박에는 끄떡도 없었을 텐데.
밀매왕은 피곤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미국의 정경유착도 만만치 않더라고요. 정유회사 등쌀에 CIA와 IRS까지 나설 일입니까?”
미국 중앙정보국과 미국 국세청까지 동원했다니.
미국 내 정유회사들의 파워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만했다.
“우리가 가진 정유회사 지분과 아람코의 지분을 맞바꾸자고 해요.”
“예?”
밀매왕은 눈을 크게 떴다.
“아니, 그건 헐값에 팔아버리는 게 아니라 똥값에 팔라는 소리잖습니까?”
밀매왕은 격하게 고개를 저었다.
“지난 오일쇼크 때 서방 정유회사들은 이미 사우디 정부에 눈 뜨고 코 베였습니다.”
원유 채굴권을 넘겨준 양해 각서를 쓸 당시만 해도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와 50%씩 나눠 가졌던 아람코 지분이었건만.
미국이 아랍이 아닌 이스라엘 편을 들자, 사우디아라비아는 서방의 정유회사를 내쫓고 자원민족주의를 주창했다.
그렇게 지난 오일쇼크 때 사우디아라비아는 아람코 지분 10%를 강탈하듯 가져갔다.
‘1980년이면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아람코를 완전히 인수해버리고 말지.’
“지금 정유회사들은 적자가 쌓이고 있는 실정이죠?”
“예, 맞습니다.”
“그러니 미국 정유회사 입장에서는 무척 낭패한 상황이겠네요.”
나는 손가락을 꼽았다.
“사우디 정부는 유전을 틀어쥐고 안 내주지, 석유수출국기구의 압력은 점점 더 거세지지, 거기에 제2차 오일쇼크까지 터진 마당이잖아요.”
“그렇죠.”
“원유 가격이 치솟으니, 사우디 정부는 물론 선진국 정부까지 덩달아 정유회사에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을 테고요.”
“예.”
한국 정부의 석유 공급값 동결 결정에, 미국 걸프사가 펄쩍 뛰다 결국 손절을 결정했듯이.
“이사회가 도끼눈을 뜨고서 경영진 숙청의 칼을 갈고 있겠네요?”
“맞습니다. 미국 기업 이사회는 우리나라 이사회와 전혀 다르게 움직이니까요.”
미국 기업의 이사회는 철저하게 주주들의 이익을 위해서 움직인다.
오죽하면 창업주가 경영을 잘 못한다고 쫓겨날까.
애폴의 창업주인 스티븐 잭스도 같은 이유로 내쳐진 바 있었다.
“경영 실적이 악화되었으니, 살아남고 싶은 경영진들은 어떻게든 우호 지분을 확보하고 싶어서 혈안이 되었을 거예요.”
“그러니 죽자고 달려들어서 죽어라 뺏겠다고 이 지랄인 거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죽어라 하고 그냥 줘 버리자고요.”
나는 씩 웃었다.
“그놈들이 그렇게 바라는 지분? 지금 받아가 봤자 헐값이 똥값 될 일밖에 안 남은 물건이에요. 반면 이쪽은 달라요.”
나는 검지로 내 가슴을 콕 찔렀다.
“우리는 지금부터 사우디아라비아와 우호관계를 형성해야 할 입장이란 말이죠?”
김형원이 가져온 유전을 먹느냐 마느냐 하는 기로였다.
“안 그래도 서방 정유회사를 내쫓고 유전을 독점하려는 사우디 정부예요. 우리 유전을 가만히 두고 보겠어요?”
그래서였다.
“원래 청탁엔 뇌물을 수반해야 하는 법.”
가장 좋은 뇌물은 무엇인가.
바로 상대가 원하는 물건이었다.
사우디 정부는 서방 정유회사들에게서 아람코 지분을 모조리 되찾아오고 싶어 한다.
“원래라면 우리가 웃돈을 얹어주더라도 반드시 가져와야 하는 게 아람코 지분인데, 헐값에 넘겨준다면 아이고, 땡큐, 감사합니다, 해야죠.”
그래서 오히려 좋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