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370)
재벌집 만렙 아들-370화(370/416)
370. 그새 또 무지막지하게
할아버지는 헤벌쭉 웃으며 나를 덥석 안아 들었다.
“금쪽같은 내 새끼!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내 보물!”
언제나처럼 빙글빙글 돌며 너털웃음을 터뜨리셨다.
“요 귀여운 것, 내 작은 아기 강아지.”
할아버지는 날 꽉 끌어안고 내 뺨에 뺨을 부비셨다.
“할아버지, 수염, 수여어엄!”
“아이쿠, 그렇지, 수염!”
할아버지는 즉시 얼굴을 떼며 멋쩍은 웃음을 흘렸다.
“우리 애기 찹쌀떡에 기스 나면 곤란한데.”
“지금 연말이라서 한창 바쁘실 때 아니에요? 이 시간에 갑자기 어쩐 일이세요?”
나야 방학이라 한가하다고 해도.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아니니까.
“성준이한테 들었다. 각하께서 약속하고, 청와대 경호실장과 중정부장이 빚을 갚겠다고 했다지?”
그제야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대충 감이 왔다.
그래서 대뜸 들어오자마자 유공 소리를 내셨구만?
“대통령 각하께서 이번 일로 몹시 흡족해하시는 모양이다.”
이건 최일태 일가를 여론의 제물로 던져둔 일이겠고.
“대통령 각하께서 송년의 밤에 오신다는구나.”
대대적으로 군기 잡기에 나서겠다는 뜻이었다.
여당의 참패와 제2차 석유파동으로 인해 경제가 크게 출렁거리자, 민심이 아주 들썩거리고 있거든.
이럴 때일수록 내부 단속에 힘써야 하는 법이다.
“이번에 유공을 내어주십사 청해 볼 생각이다.”
할아버지는 날 달랑 들어서 성큼성큼 걸어갔다.
거실 소파에 털썩 앉아 날 허벅지 위에 앉히셨다.
그제야 눈높이가 비슷해졌다.
“문제는 유공의 지분 50%를 가진 미국 걸프사를 어떻게 설득하느냐, 인수자금을 어떻게 마련하는가 하는 점인데.”
띵동, 띵동, 띵동!
할아버지는 대문 쪽을 힐끔 바라보며 고개를 까딱했다.
“그 문제를 상의한다고 몇 놈을 더 이리로 불렀다.”
할아버지 말이 끝나기 무섭게 현관문이 벌컥 열렸다.
“오랜만입니다, 회장님, 부회장님, 도련님.”
“오는 동안 김 비서에게 얘기 전해 들었습니다.”
“유공 인수라니.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지금 석유파동 때문에 정유회사 적자가 상당히 크다는데,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까요?”
태성전자 민 사장, 태성호텔 황 사장, 태성에너지 윤 사장, 태성화학 강 사장이었다.
띵동, 띵동!
벌컥.
“올 것이 왔군요.”
심 사장까지 부르셨을 줄은 몰랐네?
심 사장은 다크서클이 턱 끝까지 내려온 푸석한 얼굴을 쓸어내렸다.
“안 그래도 각오하고 있었습니다.”
쿵.
한눈에 봐도 묵직해 보이는 여행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완전히 닫히지 않는 가방 지퍼 사이로 서류가 삐죽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 * *
태성전자 민 사장이 무겁게 입을 뗐다.
“대통령 각하의 친서를 들이밀면 정부가 가진 유공의 지분을 헐값에 받아낼 수 있긴 할 겁니다.”
태성호텔 황 사장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어쩌면 석유파동이라는 위기에 힘입어 거저 넘겨받을 수도 있습니다.”
태성에너지 윤 사장은 뾰족하게 받아쳤다.
“마냥 낙관적으로 내다볼 사안은 아닌 것 같습니다. 유공만큼 덩치 큰 공사를 넘기면서 떡값 안 받아먹을 놈들이 아니잖습니까?”
태성화학 강 사장은 조심스럽게 말을 보탰다.
“그래도 대통령께서 직접 약속하신 일입니다. 광양의 종합제철소를 건립하는 것에도 침 바르지 말라고 친서를 써주시지 않았습니까?”
“그건 그렇지만…….”
“떡값 좀 나눠 먹이는 것보다 더 중한 문제라면 역시 걸프사 아니겠습니까?”
“으음.”
하나같이 곤란한 표정이 되었다.
할아버지가 소파 팔걸이를 탁 쳤다.
“지금 걸프사가 얼마쯤 부를 것 같나?”
“정부가 소유한 지분을 제하고, 걸프사 50%만 따져봤을 때 2억 달러에서 4억 달러 정도 부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2억 달러가 뉘 집 개 이름이야?”
할아버지는 혀를 내둘렀다.
“2억 달러를 만들려면 태성의 계열사를 몇 개나 팔아야 할까?”
농담처럼 툭 던진 말이었으나, 이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그걸 농담으로 받질 못했다.
그만큼 다들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포항철강을 건설할 때 유용한 대일 청구권 자금이 1억 달러였습니다.”
“포항철강의 작년 총매출액이 1억 달러였고요.”
“부회장님이 따내신 사우디아라비아 쥬베일 산업항 인근 도시 건설 수주액이 1억 달러였지요.”
“매출 대비 순수익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따져 봐도…….”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작은 한숨이 뒤따랐다.
탕!
할아버지가 비장한 얼굴로 소파 팔걸이를 내려쳤다.
“2억 달러는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야.”
“예, 회장님.”
“1억 달러라고 해도 우리로선 까마득한 돈이다.”
“맞습니다, 회장님.”
태성전자 민 사장이 입을 열었다.
“태성반도체를 파는 건 어떻습니까?”
“태성반도체?”
“정혁 도련님께서 목표로 잡으셨던 게 세 가지였습니다. 태성반도체 키우기, 강남의 태성호텔 건설, 유공 인수.”
태성전자 민 사장이 허리를 숙이며 읍소했다.
“도련님께서 홀로 떠안으시겠다는 짐이 너무나 많고 무겁습니다.”
동시에 품에서 검은 서류철 하나를 꺼냈다.
“유공 인수에만 2억 달러입니다. 그러니 현실적으로 목표 범위를 줄이셔야 합니다.”
다들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유공 인수냐, 태성반도체냐.”
“둘 중 하나에만 집중하심이 옳은 듯싶습니다.”
“그렇게만 해도 어려운 일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뭘 포기하잔 건데요?
다들 난처한 얼굴이 되었다.
태성전자 민 사장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태성반도체는 가지고 가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태성전자의 미래를 생각해 볼 때, 태성반도체를 포기하기엔 좀 아깝긴 합니다.”
“전자제품에는 반도체가 필수적으로 내장됩니다. 시장이 아주 커요.”
“미국과 일본에서 혈안이 되어 뛰어든 신산업 아닙니까. 우리도 같이 올라타야죠.”
태성에너지 윤 사장은 버럭 외쳤다.
“그렇다면 유공을 포기해야 합니까? 다른 것도 아니고 유공을 헐값에 먹을 수 있는, 다시 없을 기회가 왔는데도?”
“하기야 정유산업을 처음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해 보면, 그만한 시설을 마련하는 데 돈이 몇 배는 더 많이 들긴 합니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2억 달러도 쌉니다.”
“석유는 이 나라의 근간을 이루는 대표적인 기간산업 아닙니까. 이만한 캐시 카우도 없지요.”
태성그룹 핵심 계열사 사장들이 저마다 다들 목소리를 높였다.
태성반도체냐, 유공이냐.
단 둘뿐인 선택지를 놓고서 첨예하게 의견이 갈렸다.
나는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그래서 결국 둘 다 포기 못 한다는 말 아니에요?”
“…….”
시끄럽게 떠들던 입들이 동시에 다물려졌다.
“부사장님.”
“예, 보스.”
심 사장 옆 말석에 앉았던 밀매왕이 즉시 대답했다.
“우리 JH투자에서 태성에 2억 달러를 투자할까 하는데. 많이 어려울까요?”
“그럴 리가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
밀매왕의 시원시원한 대답에 다들 눈을 크게 떴다.
“석유파동이 터지면서 투자사들이 전부 곡소리를 내고 있는 상황에…….”
“석유파동이 터지기 전에 투자금을 회수하란 도련님의 지시가 있으셨지요.”
밀매왕은 씩 웃었다.
“참고로 우리 JH투자는 미국 걸프사의 지분도 상당량 보유하고 있습니다.”
“상당량? 얼마나 됩니까?”
“걸프사의 이사회가 열렸을 때, 가서 큰소리 낼 수 있을 만큼은 됩니다.”
“……!”
다들 부릅뜬 눈에 입까지 떡 벌렸다.
“유공이 아니라, 걸프사 주식을요?”
“억 소리 나는 돈이 들 텐데요?”
“허허허! 보스께서 유공을 노리신다는 것을 이미 오래전에 말씀해 주셨는데.”
조심스럽게 제시한 의문은 밀매왕의 자신만만한 웃음소리에 바로 묻혔다.
“설마 저희가 여태 두 손 놓고 수수방관만 하고 있었겠습니까?”
석유파동이 터졌는데도 처분을 보류했던 정유회사 지분들.
그중에 걸프사의 지분도 당당히 한몫을 차지하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두 눈을 느리게 꿈뻑거렸다.
“허, 걸프사 지분까지……. 아니, 이걸 다 무슨 돈으로?”
이거 김형원이 빼돌린 대통령의 비자금이라고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도 없고.
나는 어쩔 수 없이 어깨를 으쓱했다.
“자세한 건 내부 기밀사항. 아시죠?”
내가 말 안 하면 어쩔 거야?
중정 서빙고 물고문실에 끌고 가서 물싸다구라도 때리시게?
“허! 설마 정씨 집안의……?”
그것으로 모든 정리는 끝났다.
‘정씨 집안’이라는 말 한마디에 다들 고개를 끄덕인 것이다.
“정동진 어르신이라면 과연…….”
“지금 그게 중요해요?”
중요한 건 따로 있다.
나는 동전지갑을 열어 곱게 접힌 종이를 꺼냈다.
“전 말보다 문서를 더 믿거든요?”
몽블랑 만년필 뚜껑도 야무지게 뾱 뽑았다.
“정씨 집안의 룰대로 연이율은 67.8%로 넣을게요.”
“태성은 장차 정혁이 네 회사가 될 게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잖아요?”
내 밥그릇은 내가 챙긴다!
“연이율이 부담스럽다면 지분으로 받아 가는 것도 괜찮아요. 지금껏 그래왔듯이.”
정동진 어르신도 태성에 사채 빌려주실 때 연이율을 받아먹는 대신 지분으로 갈음하셨다.
나는 한쪽 다리를 불량스럽게 꺼떡거렸다.
“그럼 2억 달러나 되는 돈을 담보도 없이 꿀꺽 드시게요?”
“…….”
에이, 그건 상도덕이 아니지.
“마침 태성의 핵심 계열사 사장님들도 오셨으니 문제없겠네요.”
나는 손가락을 꼽았다.
“태성전자, 태성호텔, 태성에너지, 태성화학, 태성건설.”
나는 딱 맞게 손가락이 전부 접힌 주먹을 살랑살랑 흔들어 보였다.
“2억 달러에 맞추려면 지분은 얼마까지 떼어주실 수 있는데요?”
“…….”
다들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나는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팠다.
“싫으면 마시든가요.”
“정혁이 이 녀석……!”
할아버지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낚아챈 서류를 읽어 내릴수록 입매가 푸들푸들 떨렸다.
탕!
할아버지는 손바닥을 쫙 펴서 서류를 테이블 위에 찍어 눌렀다.
“하하하, 계약서 하나는 기똥차게 잘도 쓴단 말이야? 철두철미한 것이 역시 날 쏙 빼닮았어!”
할아버지는 몽블랑 만년필마저 낚아채서 일필휘지로 내갈겼다.
“자자, 뭣들 하고 있어? 갖고 있는 계열사 지분들, 얼른 정혁이한테 넘겨줘야지.”
태성그룹 총수의 솔선수범에 힘입어 다들 말없이 바쁘게 손을 놀렸다.
‘캬, 황금빛 진짜 죽이네.’
나는 우후훗, 웃으며 서명 날인이 찍힌 서류를 도로 곱게 접어 동전지갑에 쏙 넣었다.
인제 보니 심 사장과 밀매왕도 나와 비슷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회장님, 또 말리셨군요.”
“이렇게 보니 왠지 심 사장님의 바지회장 꿈도 그리 멀지만은 않아 보인단 말이죠?”
“역시 그렇습니까? 우후훗!”
심 사장은 야망 넘치는 얼굴로 웃어 보였다.
밀매왕은 그런 심 사장을 보며 푸근한 얼굴로 엄지를 들어주었다.
“국내 정유회사 인수 자료를 추리느라 그간 고생이 많으셨겠습니다.”
“석유파동이 터질 때부터 이미 각오한 일 아닙니까?”
“역시 도련님의 최측근!”
밀매왕은 엄지를 하나 더 들며 크, 하고 웃었다.
그럴수록 심 사장은 더욱 허리를 젖히며 웃었다.
이때다 하고 밀매왕이 은근하게 속삭였다.
“그렇다면 이야기가 빠르겠군요. 심 사장님, 딱 이렇게 일본 정유회사 인수 자료도 준비하시면 될 듯합니다.”
“우후훗…… 뭐요? 일본 정유회사?”
심 사장의 웃음이 딱 멎거나 말거나.
밀매왕은 여전히 양손으로 엄지를 치켜든 채 한쪽 눈을 찡긋댔다.
“그다음엔 중국과 대만의 정유회사도 인수 검토 부탁드리겠습니다.”
“주, 중국과 대만까지?”
“우리 보스 스케일이 오죽 크셔야 말이죠.”
“…….”
심 사장은 ‘설마, 아니겠지?’ 하는 표정으로 날 돌아보았다.
나는 씩 웃으며 ‘그거 맞아요.’ 하고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밀매왕이 쐐기를 박았다.
“우리 도련님께서 아시아 최고의 정유회사 타이틀을 노리신다는군요.”
“……!”
“그럼 수고하십쇼. 우후훗!”
“으, 으아아, 처, 청심환!”
심 사장은 떨리는 손으로 품에서 보약을 꺼내 쪽쪽 빨아 먹었으나.
한번 시작된 떨림은 좀처럼 멎을 줄을 몰랐다.
밀매왕을 노려보는 심 사장의 눈초리가 뾰족했다.
“어쩔 수 없군요. 이번엔 부사장님도 제 옆에서 한 손 거드셔야겠습니다.”
“유감입니다. 저는 아람코 지분을 빼돌려 뇌물로 바쳐야 하는지라.”
“뇌물? 아람코 지분을?”
“어쩌다 보니 우리 유전도 하나 건졌습니다. 석유가 펑펑 나오는.”
“뭐라고요?”
제 미래를 예견한 듯, 심 사장은 파르르 떨리는 두 눈을 꽉 감으면서 중얼거렸다.
“잠깐 넋 놓고 숨만 쉬었을 뿐인데, 그새 일거리가 또 무지막지하게 증식해버리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