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374)
재벌집 만렙 아들-374화(374/416)
374. 선물이야, 뇌물이야?
피곤한 눈을 감고 있던 일본 총리에게 총리실 비서실장이 속삭였다.
“총리대신, 정동진의 사택에 도착했습니다.”
“음.”
그제야 일본 총리는 눈을 떴다.
새하얀 앞좌석 커버에는 ‘서울관광’이라는 글자가 파란색으로 박혀 있었다.
“쯧.”
일본 총리는 못마땅한 얼굴로 혀를 찼다.
‘모양 빠지게. 관광버스가 다 뭐야?’
백여 명에 달하는 일본 정재계 유명인사들이 한꺼번에 단체 이동하기엔 이만한 교통수단이 또 없긴 하나, 의도했던 바는 아니었다.
택시가 바글거리며 대기하는 것이 일상일 공항 앞에서 어째 지나가는 택시 그림자도 발견할 수가 없을까.
대신 운 좋게 정차 대기 중이던 관광버스를 잡아 올라탔다.
“승객 여러분, 버스가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버스가 정차할 때까지 잠시만 자리에 앉아 계세요.”
상큼발랄한 목소리의 관광버스 안내양이 차 문에 매달려 활짝 웃었다.
“오라이~ 오라이~”
단체손님을 태운 관광버스가 얌전하게 주차할 때까지.
일본 정재계 유명인사들은 말없이 창밖을 주시했다.
다들 잔뜩 긴장한 얼굴이었다.
‘드디어 정동진의 후계자를 만날 수 있게 되는 것인가.’
꽉 쥔 손아귀는 식은땀으로 축축했다.
‘그동안 정동진 후계자의 머리카락 한 올 찾지 못했다.’
일본 총리도 미간을 좁혔다.
‘일본 공안조사청이 직접 한국을 오가며 샅샅이 수색했는데 아무것도 건진 게 없다니.’
이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 수 있지?’
정동진의 뒤를 이으려면 모습을 드러내 휘하의 인정을 받는 것이 필수.
하지만 정동진의 후계자는 철저하게 모습을 감췄다.
최측근 5인방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을 뿐이었건만.
놀랍게도 그것으로 충분했다.
정동진의 세력은 순식간에 질서를 바로잡았고, 사소한 분란 한 번 없이 잠잠하게 후계 승계를 마쳤다.
‘이건 정동진이 내쳤던 옛 수하들에게마저 절대적인 충성을 얻어냈다는 뜻인데.’
오랫동안 깊은 교류를 맺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다.
정동진의 유일한 후계자는 이미 십 년 전에 죽었다고 알려진 상황.
그렇다면 정동진은 언제, 어떻게, 누구를 제 후계자로 삼았으며, 그는 대체 어떻게 이토록 빨리 정씨 일가를 휘어잡은 것일까.
‘재밌군.’
정동진 사택 앞을 지키는 문지기들이 보이지 않는다.
총리실 비서실장과 공안조사청장이 입을 열었다.
“이대로라면 정동진의 후계자 세력과 접선하긴 어려울 듯싶습니다.”
“차라리 청와대로 향하심이 어떠하십니까?”
“한국의 대통령에게 명령하십시오. ‘정동진의 후계자를 내 앞으로 데려와라.’ 한마디면 족할 겁니다.”
“한국인의 일은 한국인에게 떠넘기는 거지요. 이참에 중앙정보부의 실력을 견식 해 보심이 어떨는지요?”
일본 총리는 손을 들었다.
“청와대엔 가지 않는다. 내가 공무로 왔나?”
“국가부도를 막으…… 실례했습니다.”
일본 총리의 눈썹이 꿈틀댔기에.
최측근들은 즉시 입을 다물었다.
“그럼 정동진 후계자의 실력이나 구경해 볼까?”
그 말을 끝으로 일본 총리는 정동진의 사택 담벼락을 둘러보았다.
화강암을 정과 끌로 깨고 다듬어 깔끔하게 맞물리게 만든, 조선시대 석공 기술로 이룩한 거대한 성채였다.
“제 집터에 손님이 언제 들었는지도 몰라서야 쓰나. 그거야말로 무능이지.”
일본 총리가 거침없이 대문을 밀었다.
“언제, 누구를, 어디로, 어떻게 보내는지에 따라 내 평가가 달라질……!”
전소의 흔적을 깨끗하게 밀어버린 저택 부지 한가운데.
개량 한복 차림의 노인 한 명이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누구냐?”
“명동 송골매이올시다.”
일본 총리가 눈매를 좁힐 때, 일본의 공안조사청장이 작게 귀띔했다.
“정동진의 최측근 중 한 명입니다.”
명동 송골매는 중절모를 들어 올리며 씩 웃었다.
“보내드린 관광버스는 잘 타고 오시었소이까?”
일본 총리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청와대에서도 알지 못할 내 일정을 어떻게 알고?’
극비리에 방한한 일정이었다.
정동진 후계자에게 방문 의사를 전달했지만, 언제 어디로 어떻게 방문할지에 관해서는 아무런 정보도 건네주지 않았다.
“아까 제 주인의 능력을 가늠하고자 했던 무례는 전하지 않겠습니다. 이건 제 선물.”
“뇌물이 아니고?”
“제가 총리께 청탁할 일이 뭐 있다고요.”
명동 송골매는 씩 웃었다.
“제 구역에 손님이 언제 들었는지도 몰라서야 씁니까. 그거야말로 무능이지요.”
일본 총리가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일본 총리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군. 보아하니 뜻하지 않게 내 패를 까 보이게 된 셈이야.’
당연하게도 관광버스를 움직이려면 목적지를 발설해야 했다.
그가 택한 목적지는 정동진 저택.
‘그 한 수로 정동진의 후계자는 세 가지를 얻게 되었군.’
첫째, 손님을 맞이할 최측근을 적시에 보낼 수 있었고.
둘째, 이쪽이 본진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셋째, 일방적인 방문 알림을 같은 방식으로 되돌려줄 수 있다.
‘수완이 제법인데?’
명동 송골매는 집터 안으로 우르르 들어오고 있는 일본 정재계 유명인사들을 곁눈질로 한번 훑어보았다.
명동 송골매의 입매가 슬쩍 비틀렸다.
“제 주인께서 이르시기를, ‘오늘은 집안일로 바쁘니 그만 돌아가라.’ 하셨습니다.”
명백한 면담 거절이었다.
명동 송골매는 중절모를 고쳐 쓰며 씩 웃었다.
“유감입니다.”
“성의를 보인다면, 그래도 여전히 유감이라 하겠나?”
명백한 면담 거절에 일본 총리는 가볍게 손짓했다.
총리실 비서실장이 접이식 의자를 펼쳤다.
일본 총리는 보란 듯이 당당하게 의자에 앉아 팔짱을 꼈다.
“상속세와 증여세 감세, 일본 기업의 지분 인정.”
명동 송골매를 올려다보는 일본 총리의 입가도 여유 만만하긴 마찬가지였다.
양복 품속에서 잘 접힌 서류 한 장을 건넬까 하다가 도로 물렸다.
“이걸 물리면 아쉽지 않겠나?”
“우리 주인님 면전에서 그 말을 했다면 참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그건 정말 아쉽군요.”
명동 송골매는 아쉬운 입맛을 쩝쩝 다셨다.
“그랬다면 일본은 당장 국가부도를 면치 못했을 텐데요. 쯧.”
국가부도.
일본 총리가 제일 싫어하는 단어 중 하나가 바로 그것이었다.
“주인님께 대화할 의사가 전혀 없었다고 보고할…….”
“실례했네. 내 성의가 너무 부족했던 모양이군.”
단어를 꺼낸 효과는 즉각 발효되었다.
고압적이던 태도가 싹 바뀌었다.
일본 총리는 부드럽게 웃었다.
“일본의 수상 정도 되면 생각보다 아주 많은 것을 도와줄 수 있지.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이를테면 어떤 것을 도와줄 수 있으십니까?”
“그게 내 용건이야.”
제 패를 더는 까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국가부도를 내는 것만큼이나 회사 몇 개 말아먹는 것도 참 쉬운 일이지.”
하지만 미끼를 슬쩍 흘리는 것은 잊지 않았다.
“이만하면 자네 주인도 날 만날 이유는 충분하다고 보는데. 안 그런가?”
일본 총리가 정중하고 깍듯하게 허리를 굽혔다.
“오늘은 자네 주인이 집안일로 바쁘다고 하니, 내일 다시 찾겠다고 전해주시게.”
“전해 주십시오!”
일본 총리를 따라 총리실 비서실장을 비롯해 각 성의 고위 관료들이 크게 복창하며 허리를 굽혔다.
자민당 당 대표와 당 간부들은 물론이고, 일본경제단체연합회 회원 일동도 마찬가지였다.
“사흘. 모쪼록 그동안 대화로 원만하게 합의하기를 바라지.”
일본 총리가 허리를 반듯하게 펴면서 말했다.
“이왕 하는 합의라면, 지저분한 진흙탕 싸움보다 깔끔하게 얻을 것만 얻고 헤어지는 거래가 좋지 않겠나?”
일본 총리는 아까 품에서 꺼내기만 했던 곱게 접은 서류를 명동 송골매의 손에 쥐여 줬다.
“이건 선물입니까, 뇌물입니까?”
“뇌물.”
* * *
“도련님, 태성호텔입니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이렇게 저무는가 보다.
일 년의 마지막 날은 태성호텔에서 보내게 되었다.
이번 송년의 밤은 우리 태성호텔에서 열기로 했거든.
‘작년 송년의 밤엔 참 많은 일이 있었지.’
어머니와 내가 태성그룹 사람으로 공표되고, 우광과 태성의 혼약을 파기했다.
전대 거물들에게 초대장을 보내 태성건설 후원금을 모집했다.
구 시장을 만나 지하철 노선도로 구워삶았고, 우리 가족 세 식구가 함께 불꽃놀이도 봤다.
새삼 그때를 떠올리니 감회가 새로웠다.
“도착했습니다. 저기 부회장님께서 먼저 나와 계셨군요.”
태성호텔 정문 앞에 우리가 탄 차가 부드럽게 멈춰 섰다.
행사 준비 사항을 점검하고 있던 아버지가 이쪽으로 걸어오셨다.
차 뒷문을 직접 열고 어머니를 에스코트하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호의를 거절하지 않았다.
“고마워요, 선배. 우리가 조금 늦었나요?”
“전혀.”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란히 섰다.
그림같이 아름다운 한 쌍이었다.
나도 도련님 양복을 차려입고 함께 섰다.
내 손까지 마저 잡은 아버지가 자신만만하게 싱긋 웃었다.
“들어갈까?”
“네.”
“배고프지는 않고?”
“알아서 열심히 잘 주워 먹을 테니까, 전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니는 아버지와 나란히 서서 손님을 맞이했다.
드나드는 인사들이 죄다 텔레비전에서나 보는 사람들뿐이다.
할아버지도 양복에 꽃을 달고 할머니와 나란히 손님맞이에 한창이었다.
“아이고, 우리 정혁이! 금쪽같은 내 새끼 왔어?”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또 습관처럼 대뜸 날 안고 뱅글뱅글 돌려고 하시기에 다급하게 만류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내 새끼 내가 안고 돈다는데, 뭐라고 하면 하라지!”
할아버지는 싱글벙글해서 날 안고 돌다가 꼭 끌어안았다.
“착한 것. 오늘은 정혁이 네 부탁대로 사용인들의 자리도 마련했다.”
작년 현무호텔에서 열린 송년의 밤 행사에선 행사장 안으로 출입조차 불허되었던 사람들.
운전기사, 경호원, 수행 비서 등이었다.
그들은 작년에 로비에 내쫓겨 추위에 덜덜 떨며 배를 곯았었다.
그래서 이번엔 그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해달라 간청했다.
준비된 음식을 잔뜩 떠놓고 먹고 떠들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보니 퍽 흡족했다.
“아이고, 도련님!”
사람들이 날 발견하고 반색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간 잘 지내셨어요?”
“도련님께서 특별히 저희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해 주셨다고 들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좋은 곳에서, 좋은 공연 보면서, 좋은 시간 보내게 되었습니다.”
“도련님도 이것 좀 드셔보실랍니까? 이 꿀떡이 진짜 별미예요.”
“따뜻한 우유 한 잔 떠 올까요?”
나는 사람들이 건네는 호의를 마다하지 않았다.
건네주는 꿀떡 한 점, 우유 한 모금, 쿠키 한 개를 순순히 받아먹자, 다들 아기 동물을 구경하는 눈이 되었다.
내 앞으로 슥 들이밀어지는 선물이 낯익었다.
선물용 고급 지도였다.
‘어?’
작년에 선뜻 지도를 내어줬던 남자가 그때와 똑같은 얼굴로 웃고 있었다.
“금조그룹 장 비서님?”
“절 기억하고 계셨을 줄이야. 오랜만에 다시 뵙겠습니다, 정혁 도련님.”
금조그룹 장 비서가 한쪽 눈을 찡긋했다.
“그때 받은 지도를 어떻게 쓰셨는지 들었습니다. 영광이었습니다.”
그때 금조그룹 장 비서가 선뜻 지도를 내어준 덕분에.
우리 태성건설이 지하철 2호선 공사를 따낼 수 있었다.
“그때 못 먹은 스테이크, 지금이라도 드실래요?”
“미안하지만 이번에도 어려울 것 같군요. 호의만 감사히 받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지도값이라도 받으셔야죠. 고마워요.”
두둑한 성의를 그의 양복 주머니에 찔러주려고 하자, 그는 두 손을 들며 만류했다.
“전 심부름을 왔을 뿐입니다.”
그럼 누가 보낸 건데?
“금조그룹 조 회장님께서 보내신 겁니다.”
금조그룹 조 회장이 나한테 왜?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이건 선물이야, 뇌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