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376)
재벌집 만렙 아들-376화(376/416)
376. 대통령을 꼬실 미끼
할아버지의 눈에 야망이 번뜩거렸다.
대통령에게 확답을 받아내고 싶단 욕심이 일렁거렸다.
그 눈을 제대로 마주한 대통령은 한쪽 입꼬리만 끌어 올렸다.
“난 빈말 따윈 꺼내지 않는다.”
이것으로 충분했다.
할아버지는 불타올랐다.
“성준아! 차 부회장 어디 갔어? 얼른 찾아서 데려와!”
“예, 회장님!”
할아버지의 재촉에 태성그룹 임원들이 부리나케 달려 나갔다.
할아버지는 군침을 삼켰다.
“각하, 유공은…….”
“거기까지.”
남들 앞에서 큰 소리로 떠들 만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할아버지에게는 동네방네 자랑해도 좋을 이야기였지만, 대통령에겐 그저 귀찮은 일에 지나지 않았다.
유공 소리에 귀를 바짝 세운 재벌 회장들이 속속 모여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논할 이야기는 아니지.”
대통령은 지루한 얼굴로 손목시계를 힐끔 보았다.
“행사 시작은 아직인가?”
“안 그래도 이제 막 시작할까 하던 참이었습니다.”
사실 송년의 밤 행사 10여 분이나 남았지만, 대통령이 까라면 까는 것이다.
태성호텔 황 사장이 단상에 뛰어올라 마이크를 잡았다.
“태성호텔에서 열린 송년의 밤 행사를 찾아주신 귀빈 여러분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지금부터 송년의 밤을 시작하겠습니다.”
짝짝짝짝짝.
“송년의 밤 식순에 따라…….”
대통령의 요구에 따라 아주 많은 식순이 생략된 채 행사는 진행되었다.
저승사자가 하품을 쩍쩍 하며 돌아왔다.
[대통령 앞에서는 치정싸움 못 벌이겠지? 에이, 재밌으려다 말았네.]치정싸움이라.
‘대통령이 후원회에 그냥 왔을 리가 없지.’
유공의 일을 앞세웠지만, 글쎄.
과연 그게 목적일까?
난 아니라고 본다.
‘태성에게 유리한 판을 만들어 주려고 귀찮음을 감수해? 말도 안 되는 소리.’
굳이 지금 이 시점에 대통령이 모습을 드러낸 이유라면…….
짐작 가는 바가 있다.
대선과 총선을 치른 직후에 나올 용건이라면 뻔하지.
‘어이, 수호신. 아버지는 어디 계셔?’
[태성호텔 바(Bar)를 점검하더니 이쪽으로 내려오고 있다.]딱 좋군.
나는 동전지갑을 열었다.
몽블랑 만년필을 꺼내 흰 종이에 휙휙 써 내려갔다.
‘운이 좋았다니까?’
어떻게 타이밍이 딱 맞았다.
금조그룹 조 회장이 먼저 태성과의 공조에 관해 운을 띄울 거라곤 상상도 못 했는데.
‘안 그래도 훗날을 위해 혹시나 하고 파란색 스티커를 붙여 보냈더니. 이게 이렇게 금방 쓰일 줄은 몰랐네?’
이 일에 꼭 필요한 단 한 사람을 고르자면 단연 금조그룹 조 회장을 꼽을 수 있거든.
나는 쪽지 겉면에 숫자를 적어 넣는 것도 잊지 않았다.
스승님은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웃었다.
“또 무슨 기가 막힌 그림을 그리고 계시기에 그렇게 음흉하게 웃으십니까?”
“금조그룹 조 회장님께 두둑한 빚을 지워두려고요.”
나는 의자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나와 같은 어린애는 식 중간에 돌아다녀도 어른들이 그러려니 한다.
아버지의 이동경로를 꿰고 있으니, 엇갈릴 일도 없었다.
“아빠!”
나는 다짜고짜 아버지 손에 쪽지를 쥐여주었다.
“이게 뭐지?”
“대통령을 꼬실 미끼요.”
나는 우후훗 웃었다.
* * *
대통령은 피식 웃었다.
“5천만 원.”
대통령의 까칠한 눈빛이 좌중을 훑고 지나갔다.
“내 눈치 보지 말고 낼 수 있는 만큼, 적당히들 내.”
무언의 압박이었다.
중국집에 단체 식사하러 와서 사장님이 ‘내 눈치 보지 말고 먹고 싶은 거 시켜, 난 짜장면.’이라고 외친 꼴이었다.
대통령의 노골적인 미소가 한층 짙어졌다.
“새마을재단 운영비도 부족한데 말이지.”
국천그룹 양정문이 울며 겨자 먹기로 10억을 내놓은 이후, 재벌그룹 회장들의 주머니를 털어 결성한 대통령의 정치자금 창구였다.
연간 운영비용은 100억으로 책정했다.
올해는 대선과 총선을 동시에 치렀으니, 벌써 운영 자금이 동날 만했다.
‘내 그럴 줄 알았지!’
청와대 경호실장이 쩌렁쩌렁하게 외쳤다.
“불우이웃 돕기는 자발적으로 해야지. 그러니 강요하지 않는다! 성의껏 내, 성의껏!”
청와대 경호실장은 허리에 두 손을 얹었다.
“각하 앞에서 험한 꼴을 보여드릴 순 없으니 따로 나랑 면담의 시간을 좀 갖지! 아니면 중정으로 갈까?”
좌중이 얼어붙었다.
중정으로 끌려간 정재계 인사들이 어떤 꼴로 나오게 되는지, 그들이 모를 리 없었다.
“태성.”
“1억 기부하겠습니다.”
“어디에?”
“송년의 밤과 새마을 재단에 각각 1억씩입니다.”
대통령의 눈이 그 옆으로 향했다.
“우광.”
“멍멍!”
우광의 김대식 회장이 즉시 대통령의 부름에 응했다.
“우광건설은 기업 회생 신청을 했다지?”
“왈왈!”
“우광정유도 휘청대고.”
“왈왈!”
“없는 살림에 바닥난 쌈짓돈을 내놓으라 할 수는 없으니.”
“……왈?”
다 죽어가던 김대식 회장의 낯빛이 도로 환해지려는 찰나.
“우광정유를 내놓는 게 어떤가?”
“1억!”
우광의 김대식 회장은 다급하게 외쳤다.
“우광도 각각 1억씩 내놓겠습니다.”
“염치가 없군.”
우광의 김우광 명예회장이 즉시 앞으로 나섰다.
“제 이름으로 새마을재단에 5억 기탁하겠습니다. 나라를 위해 써주십시오.”
“아비가 낫군.”
사람들은 숨을 들이마셨다.
우광은 앗 하는 순간 7억을 뜯겼다.
“삼황.”
“7억 내놓겠습니다.”
“삼황정유가 휘청대는데도?”
“갖고 있던 걸프사 주식을 전량 내놓겠습니다. 유공의 주식도 필요하십니까? 가져가십시오.”
사람들은 그제야 대통령의 의중을 짐작할 수 있었다.
대통령은 유공과 걸프사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다.
“현무.”
“5억과 유공 주식 전부를 내겠습니다.”
“일성.”
“5억과 걸프사 주식을 내겠습니다.”
“청월.”
“저희 청월은 유공과 걸프사 주식이 없으니 5억만…….”
“청월자동차와 청월중기가 요즘 많이 어렵다지?”
청월그룹 박 회장은 파르르 떨었다.
“청월자동차와 청월중기는 대한민국 방위산업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런 조악한 전차를 출품한 주제에?”
“그건……!”
청월그룹 박 회장은 즉시 무릎을 꿇었다.
“청월중기가 준비한 군용소총이 곧 나옵니다. 한국형 헬기도 빠른 시일 내로 선보이겠습니다.”
“흐음.”
“새마을재단에 3억 더 기탁하겠습니다.”
“금조.”
금조그룹 조 회장은 즉시 외쳤다.
“7억을 내놓겠습니다.”
“중동건설의 신화를 썼다는 금조가 이렇게 쩨쩨하게 굴면 쓰나.”
“서산 간척 사업 때문에 지금 당장은 형편이…….”
“내가 그것까지 봐줘야 하나?”
대통령의 눈빛은 얼음처럼 싸늘했다.
“국가의 갯벌을 메워 금조의 땅으로 독식하겠다는 것 아닌가?”
이미 대통령이 허가한 민간 주도 간척 사업이었지만.
그것 때문에 정치자금 낼 돈이 없다고 나온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국가를 위해 헌신하여 애국하지는 못할망정 사리사욕만 채우려 들어?”
“서산 간척지 일부를……!”
“대한민국 땅이 서산 간척지뿐이야?”
대통령이 코웃음을 치자, 금조그룹 조 회장의 안색이 더욱 희게 질렸다.
“그렇다면 어떻게든 돈을 맞춰…….”
“금조자동차와 금조조선, 둘 중 어느 것으로 할까?”
“가, 각하!”
금조자동차는 훗날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자동차 기업으로 성장한다.
이미 지금도 경쟁자들을 따돌리며 독주하고 있는 중이다.
금조조선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어느 날 대통령이 뜬금없이 금조그룹 조 회장을 불러다 조선소가 필요하며 윽박질렀다.
능력껏 외국 차관 빌려 와서 조선소를 지어 놓으라고 하는데, 당할 도리가 있어야지.
결국 금조그룹 조 회장은 선박왕의 보증을 얻어 런던은행에서 차관을 끌어와 조선소를 대령해야 했다.
“새마을재단에 3억을 더 넣겠습니다!”
“금조건설 얘기까지 꺼내야 하나?”
금조건설이 중동에서 벌어들인 오일머니로 금조조선과 금조자동차의 적자를 메꾸고 있는 형편이었다.
금조그룹 조 회장이 다급하게 외쳤다.
“저희 금조는 태성과 함께 새로운 방법으로 이 나라의 근심을 타개해 볼까 합니다!”
금조그룹 조 회장은 구겨진 쪽지를 더욱 꽉 쥐었다.
난감한 기색으로 동아줄을 부여잡은 것이다.
식 중간에 돌아다닐 수 있는 건 역시 어린애의 특권이라니까?
‘전적으로 태성에 유리해 보이는 조건이었을 텐데, 용케 결심을 내렸네?’
내 눈에 황금빛이면 저쪽 눈에는 똥빛으로 보였을 터.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그래 보일 수밖에 없다.
‘두고 보면 알겠지. 이게 마냥 금조에게 불리한 조건은 아니었다는 것을.’
어차피 결과로 판가름 날 일이다.
대통령의 으름장 앞에서는 자잘한 기 싸움과 실랑이는 무의미했다.
“태성과 함께 타개책을 마련해?”
“제가 먼저 제안한 이야기입니다.”
대통령을 비롯한 모두의 시선이 아버지에게 쏠렸다.
“자세히.”
“아직 논의 단계이긴 하나, 만약 이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해낼 수 있다면 대한민국의 국격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국격을 끌어올려?”
대통령이 아예 아버지 쪽으로 몸을 돌렸다.
중정부장과 청와대 비서실장도 솔깃한 얼굴이 되었다.
청와대 경호실장과 각 부처의 장관들도 마찬가지였다.
“금조그룹 조 회장님, 지도를 잠시 빌릴 수 있겠습니까?”
“아, 그래. 가져가게.”
금조그룹 조 회장이 선물용 지도를 내밀었다.
뽕 하고 뚜껑을 열자 돌돌 말린 고급지도가 나왔다.
파란색 스티커가 새로 붙은 지도였다.
“대한민국도 이제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유치를 논할 때가 되었다고 봅니다.”
“뭐?”
대통령의 눈이 커졌다.
세계 지도자 회의에 나갈 때마다 대통령의 불만은 점점 더 커졌을 터였다.
국민소득이 낮은 개발도상국가의 대통령,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휴전국가의 대통령, 아시아 어디에 붙은지도 모르는 나라의 대통령.
그런 소리는 이제 그만 듣고 싶을 테지.
“세계만방에 한국을 알리기엔 올림픽만 한 무대가 없습니다.”
같은 이유로 대통령은 엘리트 스포츠를 육성해 왔다.
그들이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에 나가 대한민국의 이름을 알리고, 국위선양하기를 바랐다.
“한국은 내수 시장이 작아서 수출만이 살길 아닙니까.”
대통령은 소리 높여 수출주도형 경제 성장을 부르짖어 왔다.
실제로 그 결과 한국의 경제는 짧은 기간 대비 눈부시게 성장했다.
“스포츠는 세계인이 함께 즐기는 인류의 축제입니다. 스포츠로 한국을 알리고, 한국 기업을 알리고, 한국 제품을 알려서, 한국 경제를 살리고자 합니다.”
“이리로.”
아버지는 지도를 대통령께 바쳤다.
대통령은 파란색 스티커에 주목했다.
“이건 뭘 뜻하는 거지?”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치르려면 그에 맞는 경기장이 필요합니다. 후보지를 몇 군데 추려 봤습니다.”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이라.”
지도를 살펴보는 대통령의 눈에 탐욕의 불꽃이 번뜩였다.
하지만 이내 눈을 반개했다.
“경쟁 상대는 일본이야.”
일본은 1958년 제3회 도쿄아시안게임을 치렀다.
이후 재차 아시안게임을 유치하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4회 인도네시아, 5회 태국, 7회 이란, 8회 태국. 다음 아시안게임도 인도에 빼앗기게 된 것이다.
“약이 바짝 올라 기필코 다음 아시안게임은 일본이 따내겠다며 이 악물고 달려들고 있지.”
그뿐만이 아니었다.
일본은 1964년 아시아 최초 올림픽 개최지로 이름을 올린 후, 호시탐탐 그다음을 노리고 있었다.
“이번 88년 올림픽도 마찬가지야. 나고야에서 열겠다며 로비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군.”
대통령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쉽지 않은 일이다.”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일본과 한국의 경제력과 국력 차이가 워낙 큽니다.”
“개발도상국에 간신히 이름을 올린 한국에 비해 일본은 세계 2위 경제대국 반열에 올라섰습니다.”
“게다가 일본 로비스트들의 실력도 심상치 않습니다. 워낙 자본력이 짱짱하잖습니까.”
“조직위원회를 설득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겁니다.”
“한쪽으로 크게 기울어진 저울이에요.”
사람들은 한목소리로 입을 모았다.
“아무래도 일본 다음을 노리는 것이 그나마 수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대통령의 표정이 묘해졌다.
아버지는 그런 대통령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래서 포기하실 겁니까?”
그럴 리가.
“바꿔 말하면 일본이 눈이 뒤집혀 달려들 만큼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특수를 톡톡히 누렸다는 뜻이 됩니다.”
아버지는 씩 웃었다.
“이 일에 태성이 앞장서 보겠습니다.”
금조그룹 조 회장이 이를 놓칠세라 급히 뒷말을 이었다.
“금조도 함께하며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벌떡.
대통령이 가타부타 대답하는 대신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둘 다 룸으로.”
송년의 밤 행사가 어떻게 되든 말든.
재벌그룹들에게 후원금을 얼마나 뜯어낼지보다.
지금 아버지와의 대화가 더 중요하다는 뜻이었다.
“태성의 브레인은 날 실망시키는 법이 없군.”
대통령은 흡족한 얼굴로 앞장서서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