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377)
재벌집 만렙 아들-377화(377/416)
377. 최선책은 따로 있다
성큼성큼 걸어가던 대통령이 우뚝 발걸음을 멈췄다.
뒤를 돌아보는 눈매가 뾰족했다.
“김 실장.”
“예, 각하!”
청와대 비서실장이 큰 소리로 대답했다.
“새마을재단 명단은 자네가 직접 챙겨.”
“예, 알겠습니다!”
송년의 밤 후원금은 태성이 명단을 작성한다.
새마을재단은 대통령의 정치자금이니 처신 똑바로 하라는 무언의 압력이었다.
대통령이 자리를 떴다고 허투루 낼 생각은 하지 말라는 뜻이다.
“눈치 없는 것들은 경호실에 데려가 면담하고.”
“예, 각하!”
청와대 경호실장도 우렁차게 대답했다.
대통령의 눈이 각 부의 장차관들에게 향했다.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이라는데, 거기서 계속 멀뚱하게 서 있을 텐가?”
“아닙니다!”
“성의껏 내놓고 따라와.”
“예, 각하!”
곧 죽어도 그냥 따라오라는 소리는 안 한다.
각 부의 고위 관료들은 그러려니 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 아버지를 바라보는 눈은 상당히 복잡했다.
‘왠지 심 사장이 날 보는 눈빛과 비슷하달까?’
아버지가 사석의 술자리에서 제2차 석유파동 가능성에 관해 입을 열었을 때.
그들은 대통령의 요구에 맞춰 보고서를 작성하느라 피똥을 쌌다고 들었다.
기한이 상당히 촉박했거든.
대통령은 손가락을 까딱했다.
“5억 이상 내놓은 놈들은 룸 앞에서 대기해.”
울며 겨자 먹기로 삥을 뜯겼던 재벌그룹 총수들.
축 처졌던 몸에 도로 힘이 바짝 들었다.
“애국하는 마음으로 헌신했으면 국가도 그 뜻에 부응해 줘야지.”
콩고물을 물려주겠다는 뜻이었다.
이번 정부는 부정부패 척결을 기치로 내걸었지만, 뒤에서 행해지는 정경유착은 눈감아주고 있었다.
“가자.”
용건을 끝낸 대통령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홀을 떠났다.
할아버지가 연거푸 마른세수를 했다.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이라니. 지도는 또 뭐고, 금조그룹 회장에겐 또 언제 공조 제안을 한 거야?”
복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드는 순간, 어째서인지 나와 눈이 딱 마주쳤다.
할아버지가 헛웃음을 흘렸다.
“설마…… 아니지?”
“…….”
나는 눈을 데구르 굴렸다.
할아버지의 눈빛이 꼭 ‘잡았다, 요놈!’ 하고 빛나는 것 같아서.
“파란색 스티커, 아니지?”
“…….”
“금조그룹 조 회장을 들쑤신 것도, 태성이 먼저 제안한 것도.”
뭐요? 왜요? 뭐요?
사업 제안은 제가 아니라 금조그룹 조 회장님이 먼저 해왔거든요?
“선물이 들어왔기에 선물로 되돌려줬을 뿐인…… 으갸악!”
할아버지가 날 대뜸 들어 안았다.
눈높이가 나란했다.
“쪽지 보냈어?”
“…….”
확신에 찬 물음이었다.
차마 아니라고 거짓말은 못 하겠어서.
“태성의 브레인이라고 명기했는데요?”
“아이고!”
할아버지가 나를 꽉 끌어안았다.
“우리 복덩이가 또 한 건 제대로 올렸구나! 역시 내 새끼가 최고다!”
할아버지가 날 안고 뱅글뱅글 돌았다.
아차 하는 사이에 요란한 뱅글뱅글을 당하고 말다니.
안 돼, 내 몸뚱이!
좋다고 여기서 어린애 웃음을 터뜨리면 진짜로 대대로 놀림받는 흑역사가 되는 거야!
나는 입술을 꽉 물었다.
“이걸 참네?”
할아버지의 폭풍 같은 뽀뽀 세례는 덤이었다.
“잘했다.”
할아버지는 뿌듯하게 웃었다.
“성준이가 제때 나서지 않았다면 곡소리가 진동했을 게다.”
대통령의 요구 수준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었다.
불황에 주머니 사정이 어려워진 재벌그룹이건만, 인정사정 봐주지 않았거든.
“손님들을 모신 행사 주최자 입장에선 꽤나 난감하던 참이었는데.”
할아버지가 내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신통방통한 녀석. 대체 언제부터 이런 깜찍한 일은 준비했는지.”
“차 회장.”
“중정부장님.”
할아버지가 나를 슬쩍 뒤로 숨겼다.
중정부장이 고개를 한쪽으로 까딱했다.
“차 회장도 위로 올라가지.”
“아, 태성은 5억을 채우지 못해서…….”
“질문 세례로 귀찮아질 텐데.”
과연 우리 주변으로 사람들이 슬금슬금 몰려오고 있었다.
태성의 브레인이 먼저 나서서 한 제안이니, 당연히 태성그룹 총수인 할아버지도 이에 관해 미리 보고받지 않았겠나 싶을 테니까.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배려에 대한 감사는 이쪽이 해야지.”
중정부장은 씩 웃었다.
“유공은 걱정하지 말고.”
그 말을 끝으로, 중정부장은 홀을 떠났다.
위층으로 향하기 위해서였다.
따라붙은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리며 내딛는 걸음이 자신만만했다.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유치를 위한 일본의 동태 파악해서 보고 올려.”
“예, 부장님.”
“조직위원회 명단 뽑아보고.”
“예.”
“그들과 접촉한 일본의 로비스트들 명단도 같이 뽑도록.”
“예.”
중정은 국내외 첩보 업무를 담당하는 정보기관이었다.
중정부장의 앞에 청와대 경호실장이 홱 끼어들었다.
고의적으로 중정부장의 어깨를 치며 밀어내었다.
“뒤로 붙어. 지금 누구 앞에서 알짱대? 내가 먼저야!”
“각하께서 내린 지시사항은 어쩌시고?”
“저런 피라미들 개별 면담까지 내가 직접 나서야 하나? 각하의 경호가 최우선 사항이야!”
24시간 대통령 밀착 경호는 청와대 경호실장의 소관이라는 으름장이었다.
청와대 경호실장은 중정부장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나대는 것도 정도껏 해. 거슬리니까.”
“주제를 모르고 날뛰는 게 꼴사납군.”
중정부장은 피식 웃었다.
“최일태를 따르던 놈들이 저기 모여 있던데, 거기부터 가봐야 하는 거 아닌가?”
청와대 경호실장은 최일태 의원에게 뇌물을 받아먹은 죄로 대통령께 단단히 찍혔다.
그 일로 몸 사리며 자중하고 있는데, 이를 고해바친 게 바로 중정부장이었다.
“아니면 저기 새마을재단 기탁금 내놓겠단 놈들에게나 가보시지. 각하 몰래 뜯어먹을 절호의 기회일 텐데.”
“이 새끼가……!”
퍽!
청와대 경호실장이 주먹을 휘둘렀다.
사람들의 경악에 찬 비명이 울려 퍼졌다.
중정부장이 피를 퉤 뱉었다.
“네가 먼저 친 거다.”
퍽!
중정부장의 주먹이 당연한 듯 뒤따랐다.
청와대 경호실장과 중정부장이 본격적으로 뒤엉켜 싸우자, 즉시 소속 부하들이 튀어나왔다.
순식간에 패싸움으로 번졌다.
“아이고.”
할아버지는 이마를 짚었다.
안고 있던 나를 서둘러 유종태에게 넘겼다.
할머니와 어머니도 함께 등을 떠밀어 보냈다.
“고 실장, 소란이 더 번지지 않게 주변 정리해!”
“예, 회장님.”
근육질의 고 실장이 손짓하자, 태성그룹 경호원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손님들의 안전을 위해 거리를 벌리고, 의자 등이 날아오지 않도록 엄호했다.
“세상에. 이게 다 무슨 난리래요?”
“청와대 경호실장과 중정부장이 원수와 다름없는 사이라더니. 정말이었나 봐요.”
“각하도 골치가 아프시겠네요.”
사람들이 쑥덕거리면서 주변으로 물러났다.
태성그룹 경호원들이 개입해서 싸움을 말리자, 중정 요원과 청와대 경호원은 씩씩대며 양쪽으로 갈라졌다.
중정부장이 머리를 쓸어 넘겼다.
눈 밑이 찢어져서 피범벅이었다.
“각하의 경호원이라는 이름이 아깝다. 솜주먹 새끼.”
“맨날 애들 물에 담그더니 물주먹 다 됐네.”
청와대 경호실장은 코피를 훔쳤다.
입가도 찢어졌는지 드러난 이빨이 피범벅이었다.
“김재국이, 너 내가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는 것만 알아둬.”
“왜? 이번에도 각하 앞에서 무릎 꿇고 울면서 빌어보려고?”
“난 너랑 다르지. 각하 옆에 24시간 붙어 있는 건 나야.”
청와대 경호실장의 얼굴엔 독기와 악의가 가득했다.
“부산을 꽉 잡고 있다고 기고만장했냐? 좋다. 그럼 어디 한번 두고 봐라.”
청와대 경호실장은 등을 돌렸다.
콧김을 거칠게 뿜으며 신경질적으로 걸어갔다.
“넌 부산 때문에 옷 벗게 될 거다, 새끼야.”
이번엔 중정부장이 앞서가던 청와대 경호실장을 어깨로 들이받으며 제쳤다.
“사석에서 만났다면 넌 총 맞아 뒈졌어, 새끼야.”
한차례 폭풍에 휘말린 것 같았다.
홀은 난장판이 되었고, 사람들은 웅성거렸다.
태성호텔 황 사장이 단상에 올라가 상황을 수습해 보려 애썼지만, 잔뜩 동요한 사람들을 달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개판이군.”
육군보안사령관은 만족한 얼굴로 걸음을 옮겼다.
홀에 남은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수군거렸다.
우광의 김우광 명예회장과 김대식 회장 근처에도 사람들이 몰렸다.
“회장님, 특종 내보낼까요?”
우광은 로비와 언론 플레이에 일가견이 있었다.
정권의 나팔수.
그게 우광그룹 김대식이 잡은 목숨줄이었다.
김우광 명예회장이 입을 열었다.
“자네들이 나서서 취재진 입단속 제대로 시켜.”
“예?”
“중정과 청와대 경호실에 밉보일 생각인가?”
화풀이 대상이 되면 골치 아파진다.
“재수 없으면 우광신문과 우광방송에까지 똥물 튀게 생겼어.”
“예, 회장님.”
우광의 계열사 사장단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직접 나섰다.
김우광 명예회장은 중정부장과 청와대 경호실장이 떠난 자리를 가늘어진 눈으로 응시했다.
“대식아, 우광이 재도약할 천금 같은 기회가 온 것 같다.”
“둘 사이를 더 벌리란 뜻이군요?”
우광의 젊은 회장, 김대식은 단번에 말귀를 알아듣고 눈을 번뜩였다.
“중정부장과 청와대 경호실장 중 누구를 택하는 게 좋겠습니까?”
“청와대 경호실장에게 힘을 보태줘라.”
중정부장의 말 중에 ‘최일태, 각하 몰래 뜯어먹다, 각하 앞에서 무릎 꿇고 울며 빌었다’란 대목이 귀에 박혔다.
김우광 명예 회장은 턱을 쓸었다.
“각하께서는 너그러운 분이 아니야. 두 번은 없어.”
“예? 그럼 중정부장에게 힘을 실어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김우광 명예 회장은 웃었다.
“내가 총수 자리에서 물러난 이유를 기억하지?”
“아……!”
김우광 명예회장은 우광건설 뇌물 장부와 우광화학 사건으로 사퇴해야 했다.
김대식 회장은 나지막하게 신음을 토했다.
“청와대 경호실장에게 먹인 뇌물 장부를 들고 중정부장을 찾아가라는 거군요.”
김우광 명예회장의 웃음이 짙어지려는 순간, 김대식 회장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차선책으로 쓰겠습니다.”
“음?”
“최선책은 따로 있거든요.”
김우광 명예회장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하지만 김대식 회장의 얼굴에는 자신만만함이 가득했다.
“전 태성 브레인과 한배를 탈 생각입니다.”
뼈아픈 수업료를 내고서야 간신히 얻어 타게 된 배였다.
김대식 회장은 쓰게 웃었다.
“저도 언제까지 개소리나 내고 있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 * *
저승사자가 연기처럼 룸에 숨어들었다.
벽에 붙은 각 부처 장관들과 대통령의 최측근이 입도 뻥긋하지 않는 가운데.
대통령은 상석 소파에 앉아 담배를 뻑뻑 피웠다.
“앉아.”
아버지와 금조그룹 조 회장은 대통령이 권한 자리에 앉았다.
“지도.”
아버지는 테이블 위에 가져온 고급 지도 세 장을 나란히 펼쳤다.
작년 송년의 밤에서도 지하철 노선도가 그려진 지도 세 장을 펼쳐놓더니.
이번에도 어김없이 지도 세 장을 두고 논하게 생겼다.
“잠실이라.”
잠실올림픽주경기장에 파란색 스티커를 붙여놓았거든.
“이곳으로 선정한 이유는?”
“지리적 이유와 정치적인 이유, 경제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흐음.”
대통령이 크게 흥미를 드러냈다.
“지리적인 이유는?”
“접근성이 좋습니다.”
아버지는 서울시 지도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강북과 강남을 잇는 한강교가 요충지를 중심으로 건설되고 있고, 강남 개발에 힘입어 큰 도로가 들어서고 있습니다.”
“음.”
“이미 도심지 역할을 하고 있는 강북과 달리 강남은 도시 개발을 시작하고 있어서 놀고 있는 논밭이 많습니다. 도로부지 매입도 상대적으로 수월할 겁니다.”
대통령은 말없이 듣기만 했다.
하지만 눈빛과 표정은 부드러워지고, 담배를 태우던 속도도 느려지기 시작했다.
“정치적인 이유는?”
“강남 개발에 공을 들이고 계시잖습니까.”
아버지는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정부의 권유에 따라 이미 주요 관공서와 학교가 강남으로 이전했습니다. 강남아파트 개발 붐에 따른 주거지 확보도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봅니다.”
“…….”
“이주한 강남 주민들이 사용할 체육시설과 문화시설이 필요합니다. 체육관은 필요 시 공연장으로도, 연설장으로도 활용이 가능합니다.”
아버지는 파란색 스티커를 쿡쿡 찔렀다.
“또한 잠실에 대규모 체육시설이 들어선다면 스포츠 육성 정책에도 힘을 실을 수 있을 겁니다.”
“음.”
“지금까지는 국위 선양을 위한 엘리트 스포츠 육성에 공을 들이셨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음?”
대통령이 몸을 기울였다.
“더 자세히.”
“한국 경제가 발전하면서 국민들의 소득 수준도 향상되었고, 그에 따라 빈부격차와 소득불균형이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점점 더 노동운동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특히 연달아 터진 석유파동의 여파로 국민들의 불만이 점점 위험 수준에 다다랐습니다.”
“호오.”
“정부를 향한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려야 한다는 생각 안 드십니까?”
아버지는 씩 웃었다.
“스포츠는 국민들을 열광시킬 건전한 오락의 장이 될 겁니다.”
대통령이 태우던 담배를 툭 떨어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