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378)
재벌집 만렙 아들-378화(378/416)
378. 적재적소에 쏙쏙
대통령의 빈 손가락이 리드미컬하게 팔걸이를 두드렸다.
대통령이 생각에 잠길 때면 나오는 습관이었다.
“정부를 향한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릴, 국민들을 열광시킬 건전한 오락으로써 스포츠 산업 육성이라…….”
톡, 톡, 톡, 톡 소리가 불규칙하게 점점 더 빨라졌다.
“강남 주민들을 위한 체육시설과 문화시설 건립. 흐음.”
벽에 붙어 서 있던 육군보안사령관도 조용히 눈을 빛내며 아버지를 응시했다.
쏘아지는 듯한 눈빛에는 놀라움과 흥미가 잔뜩 묻어 나왔다.
대통령의 눈이 순간 번뜩 빛났다.
“문화공보부.”
호명받은 문화공보부 장관이 즉시 차렷 자세로 몸을 바로 했다.
“안 그래도 최근 서울시장이 야심 차게 잠실에 종합체육관 건립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 합니다.”
“구재철이?”
“66년 발표된 남서울 개발 계획에 포함된 안건이잖습니까.”
구재철 서울시장은 강남 개발의 선두 주자로, 대통령의 최측근 중 한 명이었다.
“서울운동장이 준공 60년이 다 되어갑니다. 시설이 너무 노후화되었죠.”
동대문운동장은 이 시절엔 서울운동장이라고 불렸다.
서울 경내의 유일한 종합운동장이었으니까.
온갖 종목의 체육대회뿐만이 아니라 각종 규탄대회, 경축행사, 관제집회 및 종교행사 등이 열렸던, 대한민국 근현대 스포츠의 메카라고나 할까?
“효창운동장도 너무 작습니다.”
효창운동장의 최대 수용인원은 3만 명으로 본다.
“강남에도 실내외 체육관을 다 갖춘 종합체육관이 들어가야 한다며 요즘 구 시장이 꽤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합니다.”
“재무부.”
“정부 예산이 여의치 않습니다. 안 그래도 석유파동 여파로 돈 들어갈 곳이 워낙 많아서 말입니다.”
예산 소리에 대통령의 손가락도 제동이 걸렸다.
톡톡톡 리드미컬하게 치던 움직임이 뚝 멎었다.
“언제나 돈이 문제지.”
돈 나오는 구멍은 정해졌는데, 돈 들어갈 데는 많아서.
대통령이 신경질적으로 담배를 비벼 끄고 새 담배를 물었다.
청와대 경호실장이 부리나케 달려와서 담뱃불을 붙였다.
“태성의 브레인, 경제적인 이유도.”
“불황을 타개할 일자리 및 소득 창출구로 큰 관급 공사만 한 것도 없습니다.”
아버지의 말에 모든 부처 장관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수 경기를 활성화시키는 데 건설만 한 산업이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서울시에서 잠실에 종합체육관을 건립할 계획을 갖고 있다니, 그럼 더욱 좋지요.”
“음?”
대통령이 고개를 슬쩍 모로 기울였다.
“균형 발전 차원에서 강남의 다른 곳에 경기장을 건설하는 게 이득 아닌가?”
“아까 말했던 지리적인 이유와 함께 갑니다. 선수들의 동선을 최소화해야죠.”
그뿐만이 아니다.
“종합체육관 건설은 큰 자본과 인력이 들어가는 일입니다. 서울시 예산만으로는 충당하기 어려울 겁니다.”
“어차피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
“강남에 종합체육관을 짓기로 한 이상 아주 크게, 이왕이면 대형 이벤트를 넉넉히 치러야 할 정도로 커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형 이벤트?”
“10만 명은 수용할 수 있어야죠.”
‘10만 명이나?’ 하는 쑥덕거림이 들려오거나 말거나.
“다른 방면의 정치적인 의미도 따져 봅시다. 이번엔 국내를 넘어 해외로.”
“해외?”
“작년 9월 태릉사격장에서 세계사격선수권대회를 열었잖습니까?”
청와대 전(前) 경호실장 박종구 대한사격연맹 회장이 유치한 세계대회였다.
“유럽의 국제사격연맹 임원들로부터 ‘올림픽을 치러도 되겠다.’는 내용의 극찬이 담긴 편지가 날아왔습니다.”
“그랬지.”
“그 까다로운 유럽 연맹 임원들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라죠? 이대로 흘려보내기엔 아깝지 않습니까?”
“음.”
대통령은 아쉬운 입맛을 슬쩍 다셨다.
“세계사적인 측면으로도, 세계 정치권력적인 측면으로도, 이번 대한민국의 올림픽 유치 시도는 꽤 눈길을 끌 겁니다.”
“어떻게?”
“자유 진영과 공산 진영의 올림픽 집단 보이콧. 그걸 이번에 우리가 끝내겠노라 설득해야죠.”
전 세계가 양 진영으로 갈려 싸움을 벌였다.
아직도 냉전은 계속되고 있었다.
“전 인류의 축제에서 스포츠로, 평화롭게, 확실하게. 눈으로 보여주는 겁니다.”
반공을 부르짖던 이 시절엔 양 진영의 스포츠 싸움은 곧 자존심 싸움, 이념적 갈등과 일맥상통했다.
“만일 자유 진영의 개도국인 대한민국이 한강의 기적을 통해 올림픽 개최국까지 된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공산 진영 국가들이 꽤 충격을 먹겠군.”
실제로 88서울올림픽은 냉전체제가 무너지는 도화선 역할을 했었다.
“우리도 이제 휴전국, 전쟁국, 최빈국 타이틀을 벗어던져야죠.”
“그래야지.”
대통령의 눈이 다시 한번 번뜩였다.
“백날 떠들어봐야 한 번 보여주는 것만 못해.”
대통령이 톡톡 담뱃재를 털었다.
마른 입가를 혀로 쓸었다.
구미가 동하는 얼굴이었다.
“외무부.”
“각하의 말처럼 북한과 비교해 눈에 띄게 월등한 남한의 저력을 과시할 절호의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외무부 장관이 즉시 대답했다.
“유럽 사격연맹의 극찬이 곧 조직위원회를 움직일 열쇠가 될 겁니다. 적어도 흥미와 관심을 끌어들이기엔 이만한 사안이 없습니다.”
“건설부.”
“경기 불황을 타개할 일자리와 강남 개발 측면에서도 아주 좋은 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통부.”
“한강교 건설로 강남과 강북의 접근성이 크게 개선되었습니다. 굳이 땅값 비싼 서울운동장의 인근을 밀어버리고 다시 짓느니, 잠실에 크게 도로 뽑아 올리는 게 더 싸게 먹힙니다.”
“문교부.”
“대한민국 체육 역사에 크게 한 획을 그을 기념비적인 업적이 될 겁니다.”
문교부에서 체육에 관한 사무를 담당하고 있었기에.
“변변한 경기장조차 없는 지금의 상태로는 세계적인 규모의 스포츠 대회를 유치하기 어렵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종합체육관 건설은 꼭 필요한 과업입니다.”
문교부 장관은 이들 중 가장 많이 흥분한 상태였다.
“아시안게임이든 올림픽이든 하나만이라도 좋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이런 대회를 치르기만 한다면 전 세계인들의 뇌리에 대한민국의 체육 위상을 똑똑히 박아줄 수 있을 겁니다.”
긍정적인 대답들이 쏟아졌다.
그럴수록 대통령의 입매가 부드럽게 올라갔다.
흡족한 얼굴이었다.
“재무부.”
예산이 여의치 않다면서 우려 섞인 목소리를 낸 바 있었던 재무부 장관.
그는 곤란함을 숨기지 못했다.
“언제나 그렇듯 예산이 문제지요. 돈 나올 구멍이 딱히 없잖습니까.”
“쯧.”
“석유파동을 함께 겪은 몬트리올 올림픽은 사상 최악의 적자를 기록했고, 결국 올림픽 이후 해당 도시가 파산했잖습니까.”
전 세계가 깜짝 놀란 이슈였다.
그러니 대통령의 미간이 와락 구겨질 수밖에.
긍정적인 대답을 쏟아내던 각 부처 장관들의 입도 조개처럼 딱 다물렸다.
금조그룹 조 회장은 숨도 못 쉬고 눈을 내리깔았다.
또 재벌그룹들에게 돈 내놓으란 소리를 할까 난감한 기색이었다.
“오히려 잘된 거 아닙니까?”
그러니 아버지의 발언에 모두의 시선이 쏠릴 수밖에.
내가 이 말을 꺼냈을 때, 아버지도 저들과 똑같은 반응을 보였던지라.
아버지는 피식 웃었다.
“덕분에 88올림픽 유치를 노리던 경쟁국들이 한발 물러서지 않았습니까?”
사상 최악의 적자를 기록해 파산한 도시를 목도했는데, 몸을 사리지 않을 리가.
더구나 요즘은 또 한 차례의 석유파동이 터진 상황이 아닌가.
다들 제 나라 주머니를 챙기기에도 급급할 터였다.
내내 조용하던 중정부장이 입을 열었다.
“호주의 시드니, 알제리의 알제, 그리스의 아테네. 이들 국가들이 최근 몬트리올 올림픽의 후폭풍을 직시하며 유치 계획을 전면 철회하고 있다는군요.”
중정은 해외 정보를 수집해 분석하는 첩보기관이었다.
“현재로선 가장 의욕적으로 올림픽 유치에 열을 올리는 건 일본의 나고야시와 대한민국의 서울. 이렇게 아시아의 두 도시가 아닐까 합니다.”
대통령이 담배를 털어대던 것도 멈추고 눈을 껌뻑거렸다.
“운 좋으면 올림픽 단독 개최지로 확정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인가?”
“경쟁 유치지가 없는 상황이라면 안 될 것도 없지요.”
각 부처의 장관들도 못 믿겠다는 얼굴로 수군댔다.
아버지는 씩 웃었다.
“게다가 일본은 이미 64년 하계올림픽, 72년 동계올림픽을 치렀습니다. 연달아 세 번이나 치르는 건 형평성 차원에서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탁.
대통령이 무릎을 쳤다.
“올림픽 유치 준비위원회 준비시켜.”
“예, 각하.”
“재무부는 어떻게든 예산안 편성해 보고.”
“예, 각하.”
“외교부도 협조해.”
“예, 각하.”
“올림픽 유치 준비위원회의 핵심 위원으로…….”
아버지를 바라보는 대통령의 눈빛이 은근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먼저 손을 들었다.
“금조그룹 조 회장님을 추천합니다.”
“엥?”
금조그룹 조 회장이 검지로 자신을 가리키며 두 눈을 느리게 꿈뻑거렸다.
“나?”
내가 아버지에게 특별히 강조한 대목이었다.
-반드시 올림픽 유치 준비위원회 위원으로 금조그룹 조 회장님을 밀어 넣으세요.
그야 그 양반이 바로 올림픽 조직위원회를 구워삶아 서울올림픽 유치 결정을 받아낸 최대 공로자거든.
-아니면 아빠가 그 귀찮은 일 다 떠맡아야 해요.
아버지는 딱 잘라 말했다.
“그런 이유로 태성과 금조의 공조를 제안한 겁니다.”
“……!”
금조그룹 조 회장은 격하게 지진이 난 눈으로 아버지를 돌아보았다.
“그런 거였나?”
“태성과 금조가 함께 잠실 종합체육관을 짓겠습니다.”
“그런 거였나!”
금조그룹 조 회장이 언제 발끈했냐는 듯 웃었다.
아버지는 쐐기를 박았다.
“만약 금조그룹 조 회장님께서 올림픽 유치에 큰 공을 세운다면 올림픽 후원사의 가장 좋은 자리에 금조의 이름을, 추진비의 세금 감면을 약속해 주십시오.”
“헉!”
금조그룹 조 회장은 숨을 들이마셨다.
올림픽 후원사의 가장 좋은 자리를 따내려면 못해도 억 단위 돈을 물려줘야 했다.
“못 할 것도 없지.”
대통령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하지만 태성은?”
“금조와 달리 태성은 운영하는 스포츠 구단이 변변치 않아서 말입니다.”
아버지는 씩 웃었다.
“그런 의미에서 올림픽위원회는 금조에게 양보하겠습니다.”
“금조는?”
대통령이 턱 끝을 올렸다.
“어때? 하겠나?”
“하겠습니다!”
금조그룹 조 회장은 크게 외쳤다.
“맡겨만 주십시오! 올림픽 유치와 잠실 종합체육관 건립에 이 한 몸 바치겠습니다!”
좋았어!
* * *
룸을 나서는 각 부처의 장관들은 식은땀을 쓸어내렸다.
“이걸 다 화요일까지 보고서로 제출해야…… 후우.”
“또 주말 철야 확정이로군요.”
“별수 있습니까. 각하께서 까라면 까야지요.”
“태성의 브레인, 그 친구 보통내기가 아닙디다.”
“그 친구 또래에서 그만한 인재는 찾아보기 어렵지 않나 싶은데요.”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석유파동 때도 그렇고, 이번 올림픽 유치 건도 그렇고.”
“시야가 크게 트였더군요. 각하께서 그리 총애하는 게 이해가 된다 싶달까요?”
“솔직히 이 정도면 청와대 경제자문위원회에서 한자리 내어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다들 청와대 경제수석을 돌아보았다.
“어떻게 생각합니까?”
“아주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솔직히 엄청 탐납니다.”
청와대 경제수석이 부드럽게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정식으로 영입 제안 해야겠군요.”
“굳이 다음 기회를 노릴 필요 있겠습니까? 저기에 태성그룹 총수가 계신데.”
각 부처의 장관과 청와대 경제수석이 동시에 눈을 돌렸다.
구석에 앉아 있던 할아버지와 나를 향해서.
나는 흠칫했다.
‘내가 어떻게 올림픽 준비위원회를 금조그룹에게 떠맡겼는데! 그건 절대 안 되지!’
그때였다.
“헉헉! 아이고, 죽겠다. 계단은 또 왜 이렇게 많아서. 어흐~”
계단에서 뒤뚱뒤뚱 뛰어온 남자가 땀을 뻘뻘 흘렸다.
할아버지가 벌떡 일어났다.
“유공의 김병식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