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38)
재벌집 만렙 아들-38화(38/416)
< 초대장 받아내기 (1) >
아침부터 한남동 저택엔 사람이 바글바글 몰려들기 시작했다.
태성그룹 엘리트들이 저마다 두둑한 서류 뭉치를 들고 온 것이다.
덕분에 할머니는 밥을 준비한다고, 어머니는 장을 봐야겠다며 부산을 떨었다.
그러고도 일손이 부족해서 김 비서가 도우미 몇 명을 더 붙여주기까지.
우리 집은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 틈에 나는 철구 아저씨와 유종태를 대동하여 차에 올랐다.
운전석에는 유종태가, 보조석에는 철구 아저씨가, 뒷좌석은 내 몫이었다.
“도련님, 어디로 모실까요?”
“현무건설이요.”
내 목적은 분명했다.
현무건설 사장에게서 초대장을 받아오는 것.
초대장을 지하금융계의 거물들에게 보내는 것.
송년의 밤 행사 준비는 그것으로 족했다.
* * *
자동차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철구 아저씨는 주차장에서 담배 한 대를 피웠고, 유종태는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돌아왔다.
“도련님?”
“잠깐만요. 이것만 적으면 돼요.”
나는 차 뒷좌석에 엎드려서 흰 종이에다가 몽블랑 만년필로 마저 적어 내려갔다.
슥슥슥.
운전석에 앉은 유종태가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다.
“뭘 그렇게 또박또박 공들여 적고 있으십니까?”
“현무건설 사장님께 드릴 쪽지예요.”
“역시 우리 도련님! 오 사장님에게 안부 쪽지를 보내시는 거군요?”
“안부 쪽지가 아닌데요?”
“예? 그럼 무슨 그건 뭡니까?”
“······사업 제안서?”
그래, 협박 쪽지만 아니면 됐지 뭐.
“사업 제안서요?”
“사업 제안서라고?”
유종태와 철구 아저씨는 무척 궁금하단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만년필을 바삐 놀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다 됐어요!”
나는 잉크가 잘 마르도록 종이를 후후 불었다.
바짝 마른 것을 확인하고서야 곱게 접어 겉면에 숫자를 적었다.
“도련님, 왜 굳이 쪽지 겉면에 숫자를 적으십니까?”
“심부름 편하게 하라고요. 여기 적힌 숫자 순서대로 쪽지를 현무건설 사장님께 건네주면 돼요.”
“아하, 알겠습니다.”
유종태는 순순히 쪽지를 받아 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이게 뭔지 물어봐도 될까요?”
“물론이죠. 다만 내 믿음을 살 것인가, 궁금증을 해결할 것인가. 선택은 유 팀장님의 몫이에요.”
이번에 내가 유종태를 데려온 건 역시 내 수족이 될 자격이 있는가 확인하는 것도 겸해서다.
유종태는 경례를 올려붙이며 씩 웃었다.
“눈치로 여기까지 온 몸, 전 호기심보다 신용을 택하렵니다.”
나는 서류 봉투까지 마저 유종태에게 건네며 씩 웃었다.
“쪽지는 3개밖에 없어요. 쪽지의 내용을 미리 확인하고 가지 않으면 나머지 일은 전부 눈치로 처리해야 할 텐데, 어렵지 않겠어요?”
“까짓것 눈치껏 하죠 뭐! 눈치 없다고 설마 죽기야 하겠습니까?”
“눈치 없이 굴다가 쫓겨나는 건 상관없는데, 초대장을 못 받아오는 건 곤란해요.”
“크흠, 어떻게든 능력껏 받아내 보겠습니다! 저 유종태, 그 정도 일머리는 있는 놈입니다! 믿고 맡겨 주십시오!”
난 능력 있는 놈이 좋더라!
유종태가 서류 봉투에는 숫자가 쓰여 있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은근슬쩍 물었다.
“이건 숫자가 없는데, 확인해도 됩니까?”
“물론이죠. 대신 미리 확인하는 만큼 현무건설 오 사장님의 서명 날인을 확실하게 받아와야 해요?”
“목숨 걸고 성사시키겠습니다!”
사실 태성그룹 경호원인 유종태가 심부름을 해야 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번 송년의 밤에서 난장을 벌이려면 아무래도 호텔 주인이라는 확실한 아군이 필요하거든.’
하나 더.
현무건설 사장에게 태성이란 이름으로 호감을 살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잘 다녀오세요.”
나는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잠깐만요, 도련님.”
유종태가 검은 비닐봉지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왠지 저만 안으로 들여보내고 추운 데에서 기다린다고 하실 것 같아서 사왔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호빵과 따끈하게 데운 병 두유였다.
하, 역시 겨울엔 호빵과 따끈한 두유지!
유종태는 철구 아저씨에게 한쪽 눈을 찡긋해 보였다.
“그럼 제가 돌아올 때까지 우리 도련님 잘 부탁합니다. 빡 중령, 아니, 박철구 씨.”
“허······.”
“박철구 씨 거는 요거!”
유종태가 슬그머니 내민 건 건빵이었다.
“······.”
“별사탕도 찾아보면 어디 있을 겁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유종태가 성큼성큼 현무건설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딱.
‘어이, 수호신!’
[시야 공유!]좋아!
* * *
어째서인지 현무건설 사장실은 아침부터 불러 모은 임원들로 꽉 찼다.
현무건설 오 사장이 말했다.
“어젯밤 청와대 비서실장과 술자리를 가졌는데, 위에서 아파트 재개발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오, 아파트 재개발에 관심을 가진다는 건 역시 좋은 의미겠지요?”
“요즘 강남 개발붐이 크게 일었잖습니까. 정부가 노린 그대로지요.”
현무건설 임원들은 희희낙락했다.
“이건 아시안 게임 이전에 도시 미관을 정리하는 일에도 부합합니다.”
“게다가 정부가 원하는 서민들의 보금자리를 확충하는 일이기도 하지요.”
현무건설 사장은 고개를 저었다.
“그 반대다. 나쁜 의미야.”
“예?”
“당분간 용역을 동원하여 강제 철거하지 말라는 지시가 떨어졌어.”
“예? 이렇게 갑자기요?”
현무건설 임원들은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용역을 동원하지 않으면 재개발 공사를 어떻게 진행한답니까?”
“판자촌을 밀어야 아파트를 올릴 텐데요?”
“지금까지는 개발을 장려하던 정부였어요. 갑자기 왜 그런 지시가 떨어졌답니까?”
현무건설 사장은 미간을 구겼다.
“우광건설이 이번에 구로동 판자촌을 철거하면서 불까지 지른 모양이야. 인명과 재산 피해가 꽤 많이 났다는 소리가 들려.”
“예?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신문이나 방송국 뉴스에는 그에 관한 언급 한 마디가 없던데요?”
“어차피 구로동 판자촌이 어떻게 헐렸는지 사람들은 모릅니다. 그냥 우리도 강행하시죠.”
현무건설 사장은 혀를 찼다.
“각하께서는 바로 그 점을 몹시 못마땅하게 여기신다.”
“네? 왜요?”
“우광이 언론까지 틀어막았다는 걸 아신 거지.”
현무건설 오 사장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감히 일개 기업이 자기의 눈과 귀를 가릴 속셈이냐며 노성을 터뜨리셨다더군.”
“으음.”
“우광에게 받아먹은 게 있다보니 이번 한 번은 참으시는 것 같지만, 이 일을 계기로 단단히 벼르고 계신 것 같다. 이게 바로 청와대 비서실장의 귀띔이다.”
현무건설 임원진의 안색도 덩달아 변했다.
“위에서 예의 주시하고 있다면 섣불리 건들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현무까지 강제 철거를 하다가 행여 탈이라도 나면 청와대의 분노가 이쪽으로 향할 겁니다.”
“원래 불난 집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현무건설 사장은 차가운 눈으로 돌아보았다.
“그래서 몹시 곤란하게 됐다. 요즘 강남 아파트 분양이 이렇게 호황인 시장에서 우린 손가락만 빨고 있어야 한다니.”
현무건설이 손가락을 빨게 된 이유는 딱 하나였다.
“땅이 없는데, 무슨 수로 아파트를 지어 올리나?”
그랬다.
현무건설의 문제는 마땅한 아파트 부지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데 있었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어제 김 비서에게서 이번 송년의 밤 행사는 현무 호텔에서 열린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내가 운이 좋다며 쾌재를 부른 이유였다.
‘현무그룹 보고서를 읽어서 알고 있었지. 이때 현무건설은 아파트 부지를 마련하지 못해서 쩔쩔매다가 좋은 기회를 놓쳤다며 땅을 쳤다는걸.’
이때 쓴맛을 본 탓에 이후 현무건설은 틈만 나면 전국의 땅을 수집하게 됐다나 뭐라나.
확실히 지금 현무건설 오 사장은 현 상황이 몹시 못마땅해 보였다.
“내가 아파트 부지를 확보하란 소리를 몇 번이나 했는데, 여기 있는 임원들 중에 어떻게 쓸만한 아파트 부지를 찾아왔다는 놈이 한 명도 없을까?”
현무건설 임원들은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이번에 압구정 현무 아파트 대단지를 건설할 때 자금이 부족해서 보유하고 있던 아파트 부지를 죄다 팔아버렸잖습니까.”
“그때 주주는 물론 은행이나 사채업자 할 것 없이 다들 대단지 아파트 분양은 망할 거라며 미리 투자금을 회수해버린 탓에······.”
대단지 아파트 건설은 유례가 없을 만큼 엄청난 자금이 투입되는 일이었다.
더구나 그때까지만 해도 강남 개발은 이처럼 호황을 누리지는 않았다.
또한 집이라고 하면 판잣집이나 단독주택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박혀 있을 때였다.
아파트를 닭장이라고 부르면서 이런 걸 누가 돈 주고 사느냐며, 당연히 망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뚝심 있게 밀어붙였고, 그 결과 압구정 현무 아파트 분양은 붐을 일으키며 공전의 히트를 쳤지.”
한마디로 떼돈을 벌었다고 할 수 있었다.
현무건설은 압구정 현무 아파트란 브랜드 덕분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프리미엄 아파트 건설사란 이름을 얻게 되었으니 말이다.
“우린 지금 돈이 아주 많아. 그런데 말이야. 왜 우린 여태 마땅한 아파트 부지를 확보하지 못했을까?”
현무건설 임원들의 고개가 점점 더 바닥으로 향했다.
“우리도 우광처럼 재개발 예정 지역을 돌면서 합의하다 보니까 시간이 많이 걸렸던지라.”
“판자촌 사람들의 반항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들도 생활 터전이 걸린 일이다 보니······.”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이제 용역들을 불러서 강제 철거라도 해야 할 지경인데, 위에서 또 이런 지시가 내려왔으니······.”
현무건설 사장의 눈초리가 가늘어졌다.
“결국 무능하단 소리로군. 판자촌이 늦어질 것 같으면 과수원이나 논밭이라도 매수했어야 할 거 아냐?”
“거긴 대부분이 그린벨트로 묶여 있습니다.”
“건설부 공무원들이 개발 허가를 안 내줍니다.”
“그걸 사봤자 개발 허가가 안 나면 아파트는 못 올립니다.”
현무건설 오 사장은 손으로 제 가슴을 탁탁 쳤다.
“그런 문제를 해결하라고 있는 게 바로 사장이란 직책이야. 우광이 하는 로비를 현무는 못 할 것 같아? 내가 그리 무능해 보이는 모양이지?”
“그, 그런 말이 아니라······.”
“확실하게 준비된 게 있어야 내가 뇌물을 뿌리고 술이라도 먹일 거 아니냔 말이지. 어떻게 생각해?”
“······죄송합니다.”
“내가 지금 죄송하단 소리나 듣자고 아침부터 자네들을 불러 모은 것 같나?”
현무건설 사장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쓸어올렸다.
“어제 심상치 않은 소리를 들었다. 청와대 비서실에서도 그렇고 건설부에서도 슬슬 말이 나오고 있다는군. 강남 개발이 성공을 뛰어넘어 부동산 투기의 장이 되었다는 말.”
“그, 그렇다는 건······.”
“아무래도 조만간 정부에서 부동산 규제를 시행하려는 눈치야.”
잠깐. 부동산 규제라면?
‘아, 8.8 부동산 규제 조치! 이것 때문에 천마그룹이 천마 아파트 미분양 폭탄 사태에 쫄딱 망할 뻔했었지.’
건설사에게 부동산 규제 조치란 말 그대로 대재앙이나 다름없다.
“이제 곧 정부의 부동산 규제가 시작되면 그땐 우리가 팔고 싶어도 못 판다. 은행은 돈을 잠글 테고, 정부는 세무조사란 칼을 빼어 들 테고, 시장은 싸늘하게 얼어붙을 테니까.”
부동산 시장이 과열되지 않도록 브레이크를 거는 것이 정부의 목적이다.
그건 반대로 말하면 지금 부동산 시장은 그만큼 뜨겁다는 것이다.
언제나 돈은 이럴 때 벌리는 법이다.
“요즘 압구정 현무 아파트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어. 이럴 때 연달아 히트를 쳐야 우리 현무건설의 이름을 대중의 뇌리에 콱 박아넣을 텐데.”
현무건설 오 사장은 이를 갈았다.
“아파트를 지어 팔려면 딱 지금밖에 없는데, 땅 없이 무슨 수로 아파트를 올리냐고. 어? 이거 어떻게 생각해? 입이 있으면 대답 좀 해 보지?”
현무건설 임원진들은 식은땀을 뻘뻘 흘릴 수밖에 없었다.
차마 목구멍 밖으로 내보내지 못하는 소리 없는 절규가 가슴 속에서 메아리치고 있을 것이다.
표정만 봐도 대충 어떤 심정인지 뻔히 보였다.
-이렇게 우릴 닦달한다고 없는 땅이 하늘에서 뚝 떨어질 리도 없잖습니까!
-압구정 현무 아파트 분양이 이제 대히트를 쳤잖아요. 돈 들어온 게 얼마나 됐다고!
-그러길래 아파트 부지만큼은 팔지 말자고 그렇게 매달렸을 땐 들은 척도 안 하더니!
현무건설 임원들이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끙끙대거나 말거나.
“결국 네놈들은 지금껏 대체 뭘 어떻게 한 거냔 소리밖에 더 나와? 아파트 부지, 어쩔 거냐고.”
임원들은 다들 고개를 푹 숙이며 ‘나 죽었소!’ 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당장 아파트 부지를 뚝딱 마련해 올 자신이 없기 때문이겠지.
그때였다.
똑똑똑.
“뭐야!”
“사장님, 태성그룹 경호원이라는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태성그룹 경호원?”
사장실 공기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태성그룹에서 왜 날 찾아와? 사전에 약속도 없이. 내가 지금 이 마당에 남의 회사 경호원까지 상대해야겠어? 당장 돌려보내!”
“그게······.”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온 비서는 사장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쪽지를 건넸다.
<혹시 아파트 부지 필요하세요?>
겉면에 1번이란 숫자가 적힌 내 쪽지였다.
“지금 당장 들어오라고 해!”
“······.”
임원들은 황당하단 표정으로 사장을 바라보았다.
< 초대장 받아내기 (1)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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