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381)
재벌집 만렙 아들-381화(381/416)
381. 한 장이면 충분하다니까요
나는 아버지를 뒤로하고 미리 준비해 뒀던 옆 룸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내 팔을 잡았다.
“됐어. 이번 일은 아빠한테 맡겨라.”
뜻밖이었다.
나는 아버지에게 이 뒤의 일은 따로 알리지 않았다.
내가 직접 처리할 생각이었으니까.
“어떻게 하시려고요?”
“우리 쪽 입장 제시하고, 유공의 지분을 사 와야지.”
정석적인 협상 수순이란 건가.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유공 지분은 얼마나 갖고 있는데요?”
“대통령 각하와 중정부장께서 챙겨준 것에, 몇 군데 은행의 우호 지분까지 합하면…… 37% 정도 된다.”
그거 가지고 되겠어요?
저쪽은 유공의 지분 50%나 갖고 있다는데요.
이미 지분 싸움으로 지고 들어간다는 뜻이었다.
“그럼 걸프사 지분은요?”
“그 또한 같은 방법으로 모으면 한…… 4~5% 되려나?”
맙소사.
대책이 없단 소리잖아?
나는 아연해져서 아버지를 올려다보았다.
“택도 없겠는데요?”
“아빠도 알아. 그래도 별수 있나.”
맡은 바 책임을 다하겠다는 각오가 깃든 얼굴이었다.
“사내는 가끔 물러설 수 없는 싸움도 해야 하는 법이다.”
아버지의 얼굴을 보고 문득 깨달았다.
유공에 욕심을 내고 있는 건 아버지가 아닌, 나와 할아버지였다.
아버지에게 제 뜻을 밀어붙인 건 나와 대통령이었다.
“아빠는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서 설득해 볼 생각이다.”
나는 쪽지를 주며 유공을 받아 오자고 밀어붙였고.
대통령은 2억 달러 밑으로 인수해 오라고 압박했다.
‘욕심도, 뜻도, 대책도 없는 사람에게 강권한 꼴이었다니. 아버지도 참 난처하셨겠네.’
이제 와서 괜히 미안해졌다.
그래서 더 고마웠다.
아버지는 어린 아들의 말에도 ‘No!’부터 외치는 대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선뜻 ‘Okay.’라고 해 주셨거든.
그건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
“얼마까지 생각하시는데요?”
“음, 되도록이면 2억 달러 이하로 맞춰볼까 한다. 아마 쉽진 않겠지만.”
아버지가 열고 나온 VIP룸 문을 힐끔 보았다.
“그럴 돈은 있고요?”
“그에 관해서는 각하께 미리 양해를 구하고 온 참이다. 중동에서 벌어온 돈을 투입할 생각이거든.”
그 돈은 내가 특별히 대통령과 담판 지어서 면세로 후려갈겨 챙긴 비자금이었다.
“그건 아빠 몫이랬잖아요.”
태성그룹 부회장 자리에 올랐으니 위아래 옆으로 써야 할 돈이 얼마나 많은데.
넉넉히 기름칠을 하고, 품위 유지를 하고, 필요한 사람을 구워삶으려면 제법 큰 돈 필요할 때가 많아진다.
그래서 내가 일부러 챙겨준 건데.
“이럴 때 쓰려고 모아둔 비상 자금이야. 다른 데 쓰는 것보다 더 값지다고 본다.”
아버지는 빙그레 웃었다.
“아빠는 전부터 이 돈은 꼭 우리 정혁이 선물 사는 데 쓰겠다고 생각해 왔었어. 이미 오래전에 할아버지한테 각서까지 받아뒀다면서?”
아버지의 웃음이 봄날처럼 부드러웠다.
“태성그룹 다른 사람들의 견제를 받지 않는, 실질적으로 네 돈이 들어간, 네 지분, 네 회사의 대주주가 되고 싶다면서.”
잠깐. 웨이러 미닛!
아빠, 지금 설마……!
“투자회사를 통해 은행 설립에 투자하고, 은행의 투자를 받아서 대한석유공사를 인수한다. 그게 우리 정혁이 목표라고 들었다.”
내가 분명히 그렇게 말한 게 맞는데.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없긴 한데.
“아빠가 왜 몰라. 걸프사가 순순히 제 값에 넘기지 않을 거란 것도, 은행 투자만으로는 부족하리란 것도 이미 각오하고 있던 바야.”
나는 순간 멍하니 아버지를 올려다보았다.
담담하게 말하는 그 얼굴에 가슴이 조그맣게 울렁거렸다.
“네 꿈이 곧 아빠의 꿈이야.”
아버지는 빙그레 웃었다.
“아빠도 네 꿈을 이루는 데 보탬이 되고 싶구나.”
아버지가 꿈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린 건 처음이었다.
그래서 더 크게 속이 울렁거렸다.
아버지의 얼굴은 단단해 보였다.
“정혁아, 이건 어른들의 일이다. 그러니 넌 할아버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라.”
나는 아버지의 옷자락을 꽉 움켜쥐었다.
“걸프사 측에서는 물러서지 않을 거예요. 경영 악화가 상당히 심각해요.”
걸프사는 지금의 위기를 못 버텨내요.
연달아 겪은 석유파동으로 안 그래도 위험 수준이던 재정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거든요.
록펠러 계열의 정유회사에게 인수되는 것도 머지않았어요.
“아빠도 안다.”
그걸 아는 사람이?
“그럼 걸프사가 지금 눈이 뒤집혀서 돈, 돈 거리고 있는 것도 알겠네요?”
“진짜로 망하고 싶은 기업이 어디 있겠어.”
그것도 안다는 뜻이었다.
“분명 대화를 나누다 보면 서로 조금씩 양보해 합의할 점은 나올 거다.”
그렇게만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벼랑 끝에 몰린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나는 잘 알고 있다.
뒷골목 세계에서는 흔하디흔한 일이었다.
평소에는 사람 좋은 얼굴을 하던 사람들도 막장에 다다르면 눈이 뒤집힌다.
“상대는 일부러 진상 짓을 피우고 있어요. 이유는 뻔하잖아요.”
걸프사에서 저렇게 나오는 것도 협상 전략 중 하나다.
본인에게 유리한 판을 만들고 싶어서.
“가진 지분을 앞세워 힘으로 밀어붙이고 있어요. 대화는 필요 없다는 뜻이에요.”
“그건 어쩔 수 없지. 이 바닥에선 그게 룰이니까.”
“룰을 깨는 데 필요한 건 진심이 아니에요. 힘이지.”
나는 아버지를 똑바로 올려다보았다.
“아빠의 진심은 통하지 않을 거예요.”
진심도 여유가 있을 때에나 가능한 일이거든요.
“해 보지 않으면 모르지. 회사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
“상대는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는 사람이에요. 아빠는 그 사람들만큼이나 절실해요?”
“…….”
아버지는 반박하지 못했다.
“상대는 체면과 자존심을 전부 던져 버리고 막무가내로 나오기로 결정했어요. 왜? 진짜로 회사가 망하게 생겼으니까요. 아빠도 그래요?”
“아빠는…….”
“정 안 되면 무릎이라도 꿇으시려고요?”
“…….”
흠칫하는 기색에서 진심을 읽어냈다.
그게 아버지의 마지막 각오였던가.
“절 위해서라면 더 안 돼요. 그럼 제가 너무 속상하잖아요.”
“…….”
아버지는 난감한 얼굴로 뺨을 긁적였다.
“그럼 아빠가 어떻게 해야 할까?”
“저한테 맡겨 봐요.”
바통 터치라니까요.
나는 어깨 너머로 엄지를 가리켰다.
“일단 저 안에 심 사장님이 앉아 계세요.”
“그래?”
아버지의 표정은 희망으로 반짝였다.
그야 심 사장님은 경영의 귀재이자, 협상의 대가로 이름 높았으니까.
“그리고 이따 밀매왕과 명동 송골매 어르신도 합류하기로 하셨어요.”
“오!”
걱정과 염려 대신 기대감과 흥분이 작게 어리기 시작했다.
“여차하면 청와대 비서실장님과 중정부장님께도 헬프 칠 거예요.”
“아아!”
이젠 천군만마를 얻은 얼굴이 되었다.
나는 쐐기를 박았다.
“게다가 오늘을 위해 특별히 귀한 손님도 따로 불렀어요.”
“특별히 귀한 손님?”
“이분이요.”
나는 손가락에 끼운 명함을 들어 보였다.
까만 바탕에 황금빛 글자를 박아 넣은, 고급스러운 명함이었다.
아버지는 명함의 이름을 확인하자마자 입을 떡 벌렸다.
“워렌 버퍼?”
빙고.
“초대를 받았으면 초대로 돌려주는 게 도리죠.”
워렌 버퍼가 내게 명함을 주면서 5월의 주주총회에 초대했지만.
태성이 주최하는 송년의 밤이 그보다 먼저라서 나도 한번 초대해 봤다!
“걸프사 소리에 당장 달려오시겠다던데요?”
버크셔 헤서웨어사도 걸프사의 대주주라서.
나는 한쪽 눈을 찡긋했다.
“이참에 받을 거 받고, 정리할 거 정리하고, 뜯어낼 거 뜯어내고, 같이 갈 건 같이 가야죠.”
“……!”
아버지가 입을 떡 벌렸다.
묻고 싶은 게 아주 많아 보이는 얼굴이었는데.
지금은 한가하게 묻고 답할 때가 아니었다.
벌컥!
대통령이 계신 VIP룸이 참 무례하게도 열렸다.
걸프사 협상단이 못마땅한 얼굴로 우리를 노려보았다.
“어처구니가 없으려니까. 누가 갑인지 을인지도 모르고, 어디서 사람을 오라 가라야?”
쾅!
걸프사 협상단장이 신경질적으로 룸 문을 걷어찼다.
여지없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반응은 즉시 나타났다.
신경질적으로 도로 문이 벌컥 열리면서 청와대 경호실장이 튀어나왔다.
“이 빌어먹을 새끼들이 여기가 어디라고……!”
“문을 너무 부실하게 달아둔 걸 어쩌라고? 민간 기업의 협상에 정부는 끼어들지 마시지!”
“허?”
청와대 경호실장이 버럭 소리를 지르려고 할 때였다.
룸 안에서 카랑카랑한 대통령이 목소리가 찌르듯이 들려왔다.
“문 닫고 들어와!”
“운 좋은 줄 알아라, 이 싸가지 없는 새끼들아.”
청와대 경호실장이 얼굴을 구기고 눈을 부라리며 살벌하게 흘겨보았다.
“밤길 조심해. 사고는 원래 싸가지가 없으면 나는 거야.”
쾅!
청와대 경호실장도 그에 못지 않게 요란한 소리가 나도록 문을 힘껏 닫았다.
엘리베이터 앞에 배치되었던 청와대 경호원들의 눈빛이 싸늘하게 바뀌었다.
무전기를 켜며 작게 중얼거리는 기색이 심상치 않았다.
걸프사 협상단장이 팔짱을 꼈다.
“그래, 길바닥에서 얘기하자고?”
그럴 리가.
나는 방긋 웃으면서 옆 룸을 가리켰다.
“저 안이에요.”
“쯧!”
걸프사 협상단장이 거침없는 발걸음으로 앞서 걸었다.
그 뒤를 걸프사 사람들이 척척척 따랐다.
자신만만한 표정에, 비웃음이 역력한 분위기, 고압적인 태도였다.
벌컥!
문이 열리자, 엄청난 속도로 타자기를 두드리던 심 사장이 고개를 들었다.
“왔으면 앉아요.”
타다다다닥.
여전히 타자기를 두드리면서 심드렁하게 안내했다.
걸프사 협상단장은 입매를 씰룩였다.
“룸에서 따로 만나자기에 쌔끈한 아가씨들을 불러 앉힌 줄 알았더니, 이건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네?”
“술접대 받으러 오신 거 아니잖습니까?”
타다다다닥.
“그래, 그쪽에서 준비한 인수 계약서부터 구경해 볼까요?”
“계약서에 도장 찍으려면 아직 멀었지!”
털썩.
양복 바지 주머니에 양쪽 손을 찔러 넣은 걸프사 협상단장이 테이블 위에 구둣발을 턱 올려놓으며 낄낄댔다.
“10억 달러부터 구하는 게 급하지, 계약서 쓰는 게 급한가?”
“아, 그쪽은 아직 우리 도련님 안 겪어보셨구나.”
타다다닥.
심 사장님은 여전히 바쁘게 타자기를 치면서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도장 찍는 건 30초면 되는데, 계약서 작성은 30분이나 걸려서.”
심 사장은 마지막 타자까지 깔끔하게 끝내고, 타자기에서 종이를 뽑아냈다.
나는 심 사장님 옆자리에 앉으면서 입술을 삐쭉거렸다.
“한 장이면 충분하다고 말했을 텐데요.”
“기본만 적어 넣어도 18장이 나오더라고요.”
심 사장은 어색하게 웃었다.
“어떻게 5천만 달러짜리 계약서를 한 장으로 끝냅니까?”
“뭐? 5천만 달러?”
걸프사 협상단장은 황당하단 눈으로 나와 심 사장을 바라보았다.
“5억 달러를 잘못 쓴 건 아니고?”
나는 보란 듯이 손가락을 펼쳤다.
“5천만 달러. 0이 7개!”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유공의 지분 몇 프로를 5천만 달러에 사겠다는 거야?”
“50% 전부. 한정가격으로 계산했어요.”
“허?”
나는 심 사장이 작성한 유공의 지분 인수에 관한 계약서를 쓱 들이밀었다.
“참고로 지금 도장 안 찍으면 그다음엔 반값으로 후려칠 생각이에요.”
“밑도 끝도 없는 우기기라니.”
걸프사 협상단장은 기가 찬다는 얼굴로 요란하게 웃었다.
그러자 걸프사 사람들도 덩달아 우하하, 웃음을 터뜨리며 배를 잡았다.
“와, 환장하겠다. 유공의 지분 50%를 5천만 달러에 내놓으라고? 이거 순 도둑놈들 아냐?”
“심지어 그다음엔 반값으로 후려치겠대!”
“아하하, 진짜 웃겨 죽겠다! 인제 보니 한국의 유머, 엄청난데?”
“10억 달러짜리 협상 자리에 꼬맹이가 앉은 것만 봐도 웃겨!”
한참을 그렇게 비웃더니.
걸프사 협상단장은 잇몸을 드러내며 인수 계약서를 들어 올렸다.
“10억 달러! 한 푼도 못 깎아준다고 했다.”
걸프사 협상단장은 보란 듯이 계약서를 반으로 쭉 찢었다.
심 사장은 그 모습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으악! 이런 18!”
심 사장이 30분에 걸쳐 만들었다던 18장짜리 계약서는 박박 찢겨 허공에 뿌려졌다.
꽃잎처럼 하늘하늘 뿌려진 종이 쪼가리가 바닥에 나풀나풀 내려앉았다.
나는 혀를 찼다.
“그러게 한 장이면 충분하다니까요.”
내 이럴 줄 알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