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384)
재벌집 만렙 아들-384화(384/416)
384. 떼돈 버십쇼
걸프사 협상단장은 말을 잃었다.
멍하니 넋을 놓고 있는 그를 걸프사 사람들이 흔들었다.
“단장님, 이거 어떡합니까?”
“지금 정신 놓을 때가 아니에요.”
“어떻게든 빠져나갈 방법을 찾아야 할 거 아니에요.”
“그게 단장님 주특기잖아요!”
걸프사 협상단장은 부하들이 흔드는 대로 덜컥덜컥 흔들렸다.
그럴수록 걸프사 사람들의 얼굴엔 절망이 짙게 감돌기 시작했다.
“정말 방법이 없는 겁니까?”
“미국 정부의 협조를 구하고, 미국과 일본의 은행을 돌면서 어떻게든 마음을 돌리려고 애쓰면.”
“그래도 안 되는 겁니까?”
걸프사 협상단장은 눈을 질끈 감았다.
긴 한숨을 내쉰 끝에 걸프사 협상단장은 저를 붙들고 늘어진 부하들의 손을 뿌리쳤다.
“놔 봐.”
걸프사 협상단장은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고쳤다.
복잡한 얼굴이었다.
바싹 마른 입술을 혀로 축이고, 나와 심 사장의 눈치를 힐끗 보는 것이 몹시 초조해 보였다.
“그러니까 우리 걸프사가 보유하고 있는 유공의 지분 50%는…….”
“한 푼도 못 깎아줘요?”
“……그럴 리가요. 원래 가격은 협상에 따라 달리 매겨지는 법 아니겠습니까?”
진즉 이럴 것이지.
걸프사 협상단장은 난감한 얼굴로 뒷목을 매만졌다.
“딱 반값으로 모시겠습니다. 5억 달러!”
“협상 결렬.”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아까 걸프사 협상단장이 그러했듯이.
물론 심 사장도 걸프사 사람들이 했던 것처럼 나를 따라 성큼성큼…… 안 오네?
“도련님, 잠깐만요! 갈 때 가더라도 걸프사 지분에 관한 서류들은 챙겨야죠!”
그건 그렇지!
심 사장은 재빨리 테이블을 쓸어 담다시피 하여 걸프사 지분 위임장을 서류 가방에 쑤셔 넣었다.
타자기도 챙기고, 빈 종이까지 챙기느라 양팔 가득 짐이 아주 많았다.
“됐습니다. 그럼 가시죠, 도련님.”
“잠깐마아아아안!”
걸프사 협상단장이 심 사장의 팔을 잡고 매달렸다.
“걸프사가 여태 유공에 투자한 돈이 있는데. 시가대로 4억 달러만!”
“뭐 하세요, 심 사장님? 빨리 안 따라오고.”
“으아아악! 3억 5천만 달러!”
걸프사 사람들이 달려 나와 심 사장의 바짓가랑이를 붙들었다.
심 사장은 수십 개의 손에 잡혀 어어? 하는 사이에 끌려갔다.
심 사장이 도로 곱게 소파에 앉혀지는 동안, 걸프사 협상단장은 문 앞을 막아섰다.
“유공을 제값에 팔아치우지 못하면 저희는 진짜 입장이 난처해집니다.”
“내가 보기엔 아직인데요?”
나는 콧방귀를 뀌었다.
“진짜 난처해지는 입장이 어떤 건지 이번 주주총회에서 보여드려요?”
“걸프사의 주총 5월 첫째 주에 열립니다!”
“그건 정기 주총이고요.”
나는 검지로 내 가슴팍을 콕 찔렀다.
“내가 당장 임시 주총을 소집하면 어쩔 건데요?”
방법 있어?
없다.
회사는 주식 많이 들고 있는 사람이 왕이거든.
“유공의 지분 50%가 가지는 위력이야 협상단장님이 직접 겪어봤으니 아실 테고. 걸프사 지분 50%의 위력은 어느 정도나 되려나요?”
“걸프사가 이대로 넘어간다면 미국 정부가 좌시하지 않을 겁니다.”
“좌시하지 않으면 또 어쩔 건데요? 내가 불법적으로 회사 가로챘어요?”
걸프사 협상단장은 말문이 막힌 듯, 금붕어처럼 입을 뻐끔댔다.
“지금 미국도 이란발 석유파동 때문에 시장을 지키려고 칼을 꺼내 든 상황입니다.”
걸프사 협상단장은 쩔쩔매면서도 비켜서지 않았다.
“시장에서 보는 손실을 최대한 줄이고, 미국 기업을 어떻게든 살리고, 불경기를 막아보고자 못 할 짓이 없을 텐데, 세계 시총 9위인 걸프사가 남의 나라 기업에 홀랑 넘어간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걸프사 협상단장은 물러설 곳이 없는 사람처럼 버티고 섰다.
“어차피 남의 나라에 넘어갈 걸프사라면 골수까지 뽑아가며 미국 기업들에게 먹이려 들 겁니다.”
그래서 그의 결론은 이러했다.
“대주주님께서 사정을 좀 봐주십시오. 3억 달러, 어떻습니까?”
“내가 유공을 얼마에 사겠다고 했죠?”
“……5천만 달러.”
“틀렸어요. 그때 내민 계약서에 도장 안 찍으면 반값으로 후려친다고 했었죠?”
나는 방긋 웃으며 바닥을 가리켰다.
심 사장이 30분 동안 공들여 작성했다는 18장짜리 지분 인수 계약서는 쓰레기가 되어 바닥에 나뒹굴었다.
“2천 5백만 달러예요.”
걸프사 협상단장은 연거푸 마른세수를 했다.
“2억 5천만 달러!”
“안녕히 계세요. 그럼 전 이만.”
“잠깐마아아아아안!”
그는 무릎을 털썩 꿇었다.
그제야 우리의 시선이 똑같아졌다.
“유공을 헐값에 팔아치우면 걸프사가 휘청거립니다. 아시잖아요!”
내내 거만하게 굴던 양반이 무릎을 꿇고 통사정을 시작했다.
“깎으라면 깎겠습니다!”
대통령 앞에서도 겁 없이 10억 달러를 외치면서.
무릎 꿇고 통사정하기엔 애송이가 제격이라며 우리 아버지를 비웃던 남자였다.
“살려주십시오!”
그랬던 남자가 완전히 기가 꺾여 저자세로 나왔다.
심 사장은 걸프사 사람들의 손을 뿌리치고 타자기부터 챙겼다.
“비키십시오! 계약서는 써야 할 거 아닙니까?”
“아, 예.”
걸프사 사람들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눈치를 보았다.
심 사장은 보약을 꺼내 쪽쪽 빨아 먹으며 불쾌한 심사를 감추지 않았다.
“내가 비명 한 번 지르면 당신들 중정에 잡혀갔을 겁니다.”
“……죄송합니다. 상황이 워낙 다급했던지라.”
“걸프사는 매너가 아주 똥매너네.”
타다다다닥.
심 사장은 타자기를 치기 시작했다.
“도련님, 이번엔 꼭 도장 받으셔야 합니다.”
심 사장은 날 힐끔 바라보았다.
“어떻게든 10장 내로 줄여 보죠. 15분만 주십시오.”
“한 장이면 된다니까요. 육하원칙만 제대로 집어넣으면 되잖아요?”
나는 손가락을 꼽았다.
“오늘, 이 자리에서, 걸프사는, 유공의 지분 50% 전부를, 2천 5백만 달러에, 기타 조건 없이 양도한다.”
“어이구!”
심 사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타자기 속도를 더 올렸다.
엄청난 속도로 쭉쭉 뽑아내는 것이 고작 한 장으로 그칠 기세가 아니었다.
이 양반, 깐깐하기는.
“아니지! 2천 5백만 달러가 아니고 2억 5천만…… 에잇, 2억 달러!”
아직도 정신 못 차렸구만!
어떤 의미에서는 경이롭기까지 했다.
‘전생에선 걸프사가 먼저 나서서 1억 달러에 유공 지분 전체를 팔겠다는 뜻을 밝혔는데, 왜 이번엔 기를 쓰고 안 팔겠다는 거지?’
그래서 물었다.
“지금 상황이라면 적자만 잔뜩 쌓이는 유공을 헐값에 치워버리는 게 낫지 않아요?”
“쿠웨이트만의 유전 개발이 막바지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돈줄이 꽉 막혔단 말이죠.”
걸프사 협상단장은 간절한 눈으로 날 바라봤다.
“지금껏 거기에 들인 돈이 얼마인데, 잔금 몇억 달러가 부족해서 석유가 팡팡 나오는 유전을 포기할 수는 없잖습니까.”
그러고 보니 당시 걸프사가 개발하던 쿠웨이트에서 터진 유전이 어마어마하다고 알려졌었다.
쿠웨이트는 산유량으로 세계 10개국 안에 드는 석유 부국이다.
쿠웨이트가 보유하고 있는 유전이 약 700개 정도였는데.
그중에서 걸프사와 쿠웨이트 정부가 합작으로 공동 개발한 유전이 상당히 많았다.
“이대로 손을 떼면 그 유전들을 전부 쿠웨이트가 먹어 치울 겁니다. 어쩌면 록펠러의 세븐 시스터즈가 막대한 자금력과 로비스트들을 동원해서 가로챌 수도 있고요.”
걸프사 협상단장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우리 걸프사의 대주주이시면 어느 쪽이 더 이득인지 확실하게 따질 것이라 믿겠습니다.”
걸프사 협상단장은 순식간에 지분 인수 계약서를 작성해버린 심 사장을 힐끔 바라보았다.
“고작 시총 4억 달러에 불과한 유공을 갖겠다고, 무려 시총 100억 달러에 달하는 걸프사의 숨통을 틀어막을 리는 없겠지만 말입니다.”
아, 그렇군.
문득 깨달았다.
‘그러니까 지금은 살 만하다는 소리네?’
전생에 걸프사가 두 손 들고 백기투항한 건 1년 후의 일이었다.
‘지금 이 시점에서는 은행이랑 투자자가 돈 좀 회수한다고 해 봤자, 산유국에 꽂아놓은 빨대가 뽑힌 것도 아니고, 미국 정부한테 괘씸죄로 찍힌 것도 아니니까.’
한국의 대통령 앞에서도 보란 듯이 뻗대던 걸프사가 아니던가.
‘그러게 어쩌려고 미국 기업이 소련-아프간 전쟁에서 소련 편을 들었나 몰라. 겁도 없이.’
냉전의 시대.
한국에서 반공을 부르짖듯 미국도 소련을 적대시했다.
‘미국 정부는 당연히 이를 괘씸죄로 여겨, 걸프사의 숨통을 단단히 틀어막아 버리지.’
그 결과 하루 130만 배럴의 원유를 처리하고, 65억 달러 상당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던 세계 9위의 석유기업이 몇 년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고 만다.
공권력의 대재앙이랄까?
‘소련-아프간 전쟁에서 쏙 빠지면 딱히 미국 정부와 척질 일도 없겠고?’
그뿐만이 아니다.
‘이거 잘만 하면 내 사우디 유전도 식은 죽 먹기로 개발하겠는데?’
안 그래도 사우디 유전을 어떻게 개발해야 하나 골치가 아프던 차였는데.
걸프사는 중동 전역을 누비며 유전을 개발하여 여기까지 성장한 회사다.
오랫동안 군림해온 석유계의 강자답게 기술, 인맥, 자원은 물론 각종 설비와 시설까지 확실하게 갖추고 있다.
‘더불어 개발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쿠웨이트 유전까지 날름 꿀꺽할 수 있겠고?’
좋은데?
다만 걸리는 게 하나 있다면…….
‘현재 걸프사를 장악하고 있는 무능력하고 탐욕스러운 회장과 임원들이 문제지.’
몇 년 전 걸프사 회장을 비롯해 핵심 임원들이 줄줄이 잘려나갔을 때.
비어 있는 회장 자리를 맬런 가문의 망나니가 지분을 앞세워 차지했다.
당연하게도 측근 임원 자리는 자기 사람들로 채워 넣었고 말이다.
‘맬런가의 망나니가 결정권자 자리에 앉아 있는 한, 걸프사는 폭망 엔딩을 피할 수가 없겠어.’
그래서 결심했다.
“생각이 바뀌었어요.”
나는 심 사장을 돌아보았다.
“우리 유공 대신 걸프사 먹죠.”
“예?”
“안 그래도 이 일로 버크셔 헤서웨어사의 워렌 버퍼 씨를 불렀어요.”
“으허허헉!”
아니, 다들 뭘 그렇게 놀란 얼굴이야?
걸프사 사람들이라면 이해해도 심 사장, 당신까지 놀라면 안 되지!
지금껏 걸프사 지분을 모으느라 발바닥 부르트도록 바쁘게 뛰어다닌 양반……은 밀매왕이었구만!
“그럼 가실까요?”
“예? 유공의 지분 인수 계약은 어쩌고요?”
“유공 인수는 걸프사 임시 주총에서 다시 얘기하면 돼요.”
“대주주님!”
비명처럼 외치는 걸프사 협상단장을 바라보며 나는 한쪽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물론 걸프사 임시 주총에서 유공 인수보다 우선할 건 걸프사 인수겠지만요.”
“자, 잠깐만요, 대주주님!”
“지분 50%를 가지고 임시 주총을 열면 어떤 순서로 일이 진행될지는 이미 그쪽에서 설명 다 하셨잖아요?”
걸프사 협상단이 거만한 얼굴로 친히 알려준 바 있지 않나.
“임시 주총을 소집해서, 대표와 임원진 해임에 관한 안을 발의한 후에, 우리 쪽 인사를 대표 자리에 앉히고, 걸프사를 매각 및 인수 대상 기업으로 올리면 되겠네요.”
“으아아아악! 안 됩니다, 안 됩니다아!”
안 되는 게 어딨어?
“우호적 M&A도 귀찮은데, 그냥 적대적 M&A 절차로 밀어붙일까요?”
버크셔 헤서웨어사가 보유한 걸프사 주식이라면 죽었다 깨도 걸프사는 대항할 방법이 없다.
나는 심 사장이 작성하던 계약서를 타자기에서 쫙 뽑아냈다.
쓰다 만 계약서를 팔랑팔랑 흔들면서 코웃음 쳤다.
“당신 말이 맞았어요. 계약서에 도장 찍으려면 아직 멀었나 보네요.”
“안 멀었습니다! 지금 바로 계약서 작성해서 도장 찍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일없어요.”
나는 계약서를 어깨 뒤로 던졌다.
걸프사 협상단장이 좍좍 찢어 꽃종이처럼 흩날리던 것과 달리, 내가 던진 계약서는 쓰다 만 쓰레기가 되어 바닥에 팔랑팔랑 내려앉았다.
걸프사 협상단장은 똥줄이 타는 얼굴로 달려왔다.
“그럼 1억 5천만 달러!”
“떼돈 버십쇼.”
벌컥!
나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마침 문 앞에 서 있던 아버지가 놀란 얼굴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