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385)
재벌집 만렙 아들-385화(385/416)
385. 오가는 성의 속에 싹트는 호의
아버지가 손목시계를 확인하셨다.
“벌써 얘기 다 끝났어? 아직 10분도 안 됐는데?”
“파투 났어요.”
“아……!”
아버지는 이미 예상했던 일이라는 듯, 말없이 다가와 날 번쩍 안아 들었다.
“고생했다.”
안쓰러운 얼굴이었다.
아버지 곁에서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던 할아버지도 긴 한숨을 내쉬었다.
“어려운 자리가 될 것이라 각오했었다.”
할아버지는 아버지 품에 안긴 나를 슥슥 쓰다듬었다.
“걸프사가 유공 지분 50%를 갖고 있다는데 달리 방법이 있나.”
할아버지는 미안한 표정을 애써 감췄다.
“그저 무릎 꿇고 간청하거나, 피눈물을 흘리며 손해를 감수하거나. 그래도 성사시키기 어려운 일이었어.
토닥토닥 내 어깨를 두드려주는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눈을 질끈 감았다.
“할애비가 태성그룹 총수야. 거긴 내가 가야 했던 자리였다. 수모 받아도 내가 받아야 했고, 무릎을 꿇어도 내가 꿇었어야지.”
부끄러움과 자책이 뒤섞인 얼굴로.
“다 내 잘못이다. 너무 쉽게 생각했고, 너무 낙관적으로만 여겼어.”
할아버지는 단전 깊숙한 곳에서 올라오는 듯한 긴 한숨을 다시 한번 토해냈다.
“욕봤다. 정말로 이 할애비는 면목이 없구나.”
그때였다.
“이것 좀 놓으……, 켁켁! 아, 쫌 놓으라고, 이 새끼들아!”
심 사장의 빡친 외침이었다.
룸 안에서는 영어와 한국어가 뒤섞이고, 쿠당탕탕 소리와 발걸음 소리가 어지럽게 엉켰다.
그러던 것도 잠시.
“으아아악!”
심 사장이 룸에서 데구르르 굴러왔다.
낭패한 앞 구르기였다.
털썩.
심 사장은 민망한 자세로 태성호텔 바에 널브러졌다.
심 사장은 용수철처럼 벌떡 일어났다.
양복은 잔뜩 구겨졌고, 단추를 여럿 잃은 와이셔츠는 너덜거렸다.
목을 조르던 넥타이를 신경질적으로 끌어 내리면서 심 사장은 씩씩댔다.
“도장 안 찍는다고! 몇 번을 말하냐, 이 XX새끼들아!”
심 사장이 저렇게 빡친 모습은 처음이었다!
칵테일과 위스키 한잔씩 마시며 대통령의 부름에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
재벌그룹 회장님들과 청와대 고위 관료들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태성그룹 심원철이 욕을 해?”
“대체 얼마나 어려운 협상 자리였기에?”
“그럴 수밖에. 걸프사 사람들이 하던 태도를 보면 저 안에서는…….”
다들 안쓰러운 얼굴로 심 사장을 힐긋거렸다.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렸다는 것을 깨달은 심 사장.
그는 민망함으로 조금 붉어진 채, 외려 더 뻔뻔하게 양복을 탁탁 털어댔다.
그럴 때마다 앞 구르기를 하느라 구겨진 옷자락에서는 먼지가 팡팡 솟아 흩날렸다.
“걸프사는 매너가 진짜 똥매너라니까!”
바닥에 굴러떨어진 타자기를 주섬, 널브러져서 서류를 반쯤 토해낸 서류 가방을 또 주섬.
심 사장은 양팔로 짐을 잔뜩 챙긴 채, 매섭게 뒤를 노려봤다.
낭패한 얼굴로 당황해하던 걸프사 사람들은 크게 움찔했다.
“죄, 죄송합니다. 고의는 아니었습니다.”
“막무가내로 사람을 잡아끌었으면서, 뭐? 고의가 아니이이이이? 개소리하고 있네!”
심 사장은 이를 으드득 갈았다.
“죽어라 쓴 계약서를 찢어발길 때는 언제고, 인제 와서 계약서를 다시 쓰자고? 그렇게 계약서가 쓰고 싶으면 너나 쓰세요!”
심 사장은 씩씩댔다.
“들이미는 족족 내가 찢어줄라니까! 왜 애먼 날 잡고 똥개훈련을 시키려 들어? 당신들이 내 보스야?”
“똥개훈련이라니요. 계약을 하러 오셨으니 계약을 하자, 뭐 그런 건설적인 제안을…….”
“건설적인 제안 좋아하네! 일없다니까? 떼돈 많이 버십쇼!”
심 사장은 매몰차게 콧방귀를 뀌며 걸어 나왔다.
그런 심 사장을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놀란 얼굴로 바라보았다.
“우리 심원철이 단단히 빡쳤네. 대체 저 새끼들이 얼마나 긁어댔기에 이래?”
“심 사장님, 고생하셨습니다. 죄송하고 면목이 없습니다. 원래 그 자리는 제가 나갔어야 하는 자리였습니다.”
“아닙니다, 회장님, 부회장님. 부회장님께서 안 나가셔서 천만다행이었습니다. 저 새끼들 아주 개똥 같은 새끼들이에요.”
심 사장은 품에서 보약을 꺼내 쪽쪽 빨아 마셨다.
“도련님께서 결심을 굳히셨으니, 두 분도 앞으론 저쪽엔 눈길도 주지 마십시오.”
“결심을 굳히다니요?”
“그게 그러니까…….”
심 사장은 입을 열려다가 나와 눈이 딱 마주쳤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심 사장은 그제야 태성호텔 바에 모인 정재계 유명인사들이 전부 이쪽을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심 사장은 작게 헛기침을 했다.
“흠흠, 하여간 앞으로는 걸프사 놈들과 실랑이하실 일은 없을 것이다, 이런 말입니다.”
“역시 그랬군요.”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동시에 안색이 어두워졌다.
“알겠습니다. 심 사장님께선 충분히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그래, 심 사장. 욕보느라 고생했어. 어쩔 수 없는 일은 어쩔 수 없다 쳐야지. 별수 있나.”
“……예?”
심 사장이 얼빠진 소리를 낸 것도 잠시.
주변에 몰려든 사람들이 죄다 같은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것을 깨닫자, 심 사장은 손사래를 쳤다.
“다들 오해하신 것 같습니다. 실은 그게 아니라…….”
“무슨 일이야? 밖이 왜 이렇게 시끄러워!”
청와대 경호실장도 문을 벌컥 열고 밖으로 나왔다.
“각하가 안에 계시다는 것을 다들 잊었나 보지?”
청와대 경호실장은 매서운 눈길로 주변을 스윽 살폈다.
안색이 어두운 할아버지와 아버지, 난감한 얼굴을 하고 있는 심 사장.
저희들끼리 웅성대며 낭패를 감추지 못하는 걸프사 사람들까지.
청와대 경호실장은 볼을 씰룩거렸다.
“태성의 브레인,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야?”
청와대 경호실장은 엄지로 걸프사 사람들을 가리켰다.
“저 새끼들 서빙고 물고문실에 처넣으면 되겠어?”
“아, 그건…….”
“아니면 우리 애들을 붙여줄까?”
청와대 경호실장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말했잖아. 싸가지가 없으면 사고를 면키 어려울 것이라고.”
쥐도 새도 모르게 슥삭 처리하겠다는 뜻이었다.
웅성웅성. 수군수군.
정재계 유명인사들의 동요가 동심원처럼 퍼져나갔다.
미국이 어쩌고, 얼굴을 붉히는 게 어쩌고, 책임 문책이 어쩌고, 뒷감당이 어쩌고.
청와대 경호실장은 룸 문을 탕탕 두드렸다.
“조용. 안 들린다!”
그 한마디로 정적이 가라앉았다.
수십 명이 모여 있는 홀이건만, 바늘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것처럼 조용해졌다.
“태성의 브레인, 뭐 어떻게 해 줄까? 말해 봐.”
“오늘은 아무래도 그른 것 같습니다. 저희는 이만 돌아가 대책을 마련해 볼까 합니다.”
“그래?”
털썩.
동시에 걸프사 협상단장이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는 소리가 천둥처럼 크게 들려왔다.
“계약하겠습니다!”
걸프사 협상단장이 눈을 질끈 감고 비장하게 외쳤다.
“1억 달러!”
“헉!”
정재계 유명인사들이 숨을 들이마셨다.
다시 한번 작은 수군거림이 동심원처럼 퍼져나갔다.
“설마 유공의 지분 50%를 1억 달러에 팔겠다는 건 아니겠죠?”
“대통령 각하 앞에서도 10억 달러, 단 한 푼도 못 깎는다고 큰소리쳤던 사람이?”
온갖 가정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대통령 각하께 상납한 유공의 지분이 총 얼마나 된다고 했지요?”
“우리 그룹에서 내친 지분이라고 해 봐야 몇 프로 안 됩니다.”
“대통령 각하의 측근 인사들에게 맡긴 지분이 상당할 거 아닙니까?”
“그렇다고 해 봐야 40%나 되겠습니까? 시중에 풀린 지분이 있는데.”
“아, 그렇다면 5%를 판다고 해도 저쪽은 45%를 갖고 있는 셈이겠군요.”
하지만 걸프사 협상단장은 확실하게 덧붙였다.
“유공의 지분 50% 전부, 오늘, 이 자리에서, 1억 달러에 양도하겠습니다! 그러면 됩니까?”
“허억!”
정재계 유명인사들은 경악성을 토했다.
청와대 경호실장은 물론 슬쩍 밖으로 나왔던 중정부장까지 놀란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놀람과 동요가 파도처럼 출렁거렸다.
“이, 이게 다 무슨 일이야?”
“걸프사 사람들이 뭐가 아쉬워서 무릎을 꿇어?”
“헐값, 아니, 똥값에 저걸 다 넘기겠다고?”
“대체 무슨 협박을 어떻게 받았기에?”
모두가 기함하여 우리를 돌아봤다.
정확하게는 심 사장과 우리 아버지를 말이다.
간혹 할아버지에게 요란한 눈짓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태성그룹 총수라면 당연히 이 일에 관해 사전 보고를 받지 않았겠냐는 투였다.
“……!”
날 안아 든 아버지의 팔에 힘이 불끈 들어갔다.
도저히 믿기 어렵다는 얼굴에는 물음표가 백만 개쯤 떠 있었다.
나는 모른 척 고개를 돌렸다.
청와대 경호실장은 씩 웃었다.
“역시 태성의 브레인이란 말이야?”
중정부장의 얼굴도 부드럽게 풀렸다.
“자네는 기대를 저버리는 법이 없군. 각하께서 몹시 흐뭇해하시겠어.”
할아버지에게선 벅찬 희열에 들뜬 환호가 터져 나왔다.
“유, 유공의 지분 50%를 1억 달러에!”
‘이게 웬 횡재냐?’ 하고 잔뜩 신이 나서, 할아버지는 아버지의 어깨를 빠르게 두들겼다.
“진행하자. 이대로 바로 가면 되겠다!”
할아버지에게 온갖 부러움이 쏟아졌다.
“태성이 이렇게 유공을 가져가는군요.”
“차 회장, 정말 좋으시겠습니다. 안 그래도 태성엔 정유사가 없었지요?”
“시세로만 따져도 4억 달러나 되는 유공을 고작 1억 달러에 인수할 수 있게 되다니.”
“그런데 인수금 1억 달러는 충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한두 푼이 아니라서 긴급 자금조달이 어려울 테니…….”
재벌그룹 회장들이 입맛을 다시며 할아버지에게 다가왔다.
“혼자 먹기엔 벅찰 텐데, 함께 나눠 먹는 건 어떻겠습니까?”
“일단 태성이 일을 성사시켰으니 좀 더 크게 먹고, 우리는 인수금을 낸 비율대로 쪼개 먹고.”
“걸프사가 당장 1억 달러에 넘긴다는데, 이런 좋은 기회를 돈 없어서 날리면 억울하실까 봐 드리는 말입니다.”
속이 빤히 보이는 노골적인 제안이었다.
그러니 헤벌쭉 웃던 할아버지도 그만 표정을 딱딱하게 굳힐 수밖에.
“하지만 당장 오늘 내로 1억 달러를 구할 길이 요원하니…….”
할아버지가 눈을 질끈 감고 입을 열려는 순간, 심 사장이 더 빨랐다.
심 사장은 허리에 두 손을 얹고 우렁차게 외쳤다.
“아, 일없다니까요! 도장 안 찍는다고 몇 번을 말합니까!”
“허어?”
청와대 경호실장은 물론 중정부장까지 입을 떡 벌렸다.
재벌그룹 회장들은 말할 것도 없고, 각 부처의 장차관들도 억 소리를 내며 놀랐다.
다들 제정신이냐는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특히 빽 소리친 심 사장을 향해서.
“심원철이가 오늘 뭘 잘못 먹었나? 이걸 마다할 수가 있나?”
“호강에 겨워 요강을 걷어찬다더니. 다시 오지 않을 횡재를 거절해?”
“태성이 저렇게 유공을 날려먹을 줄이야.”
재벌그룹 회장들이 동시에 눈을 번뜩거렸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앞다퉈 손을 들고 외쳤다.
“태성이 마다하면 그 제안은 저희 삼황이 받겠습니다!”
“저희 청월도 관심 있습니다! 더 좋은 조건으로 모시겠습니다!”
“우리 일성에게 주십시오! 10년 내에 유공을 지금보다 두 배는 더 크게 키워내겠습니다!”
“녹산도 있습니다! 우리는 웃돈까지 넉넉히 얹어서 1억 2천만 달러!”
걸프사 협상단장은 신경질적으로 버럭 외쳤다.
“시끄러워! 당신들이랑은 거래할 생각이 아예 없으니까, 귀찮게 굴지 말고 꺼져!”
걸프사 사람들이 도미노처럼 털썩털썩 무릎을 꿇고 애원하기 시작했다.
“그럼 얼마면 됩니까, 얼마면 돼요?”
“대체 얼마면 아까 그 말을 철회하실까요?”
나는 아버지에게 얌전히 안긴 채, 걸프사 사람들을 돌아봤다.
“오가는 성의 속에 싹트는 호의.”
내 말뜻을 알아듣고, 걸프사 사람들은 환호성을 외쳤다.
“만세!”
“단장님, 뭐 하세요? 호의를 얻으려면 성의부터 보여야죠!”
걸프사 협상단장이 눈을 질끈 감고 비장하게 외쳤다.
“좋습니다, 2천 5백만 달러! 뜻대로 하십시오!”
“……!”
너무 놀란 나머지 사람들은 숨도 쉬지 못했다.
경매에 부쳐 유공을 따낼 것처럼 굴던 재벌그룹 회장들마저 멍하니 넋을 놓았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청와대 경호실장과 중정부장까지 말을 잃었다.
“10억 달러짜리가 2천 5백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