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387)
재벌집 만렙 아들-387화(387/416)
387. 존버는 승리한다
할아버지가 기함했다.
“뭐를 인수해?”
방금 걸프사라고 말씀드렸는데.
“워렌 버퍼 저 양반이 가진 지분이 고작 2%밖에 안 된다는데?”
할아버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최소 30% 지분은 끌어모아야 할 텐데, 금융권을 설득하기도 어렵거니와, 설사 운 좋게 설득한다 치더라도, 어휴, 갈 길이 까마득하다!”
할아버지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봐도 말이 안 된다. 어떻게 따져도 불가능이야.”
“회장님, 그 말도 안 되는 일을 우리 도련님께서 해내셨습니다.”
심 사장이 기다렸다는 듯이 바짝 다가와 작게 보고했다.
“걸프사 놈들이 쩔쩔매는 거 보면 모르시겠습니까? 저놈들 지금 똥줄 탔어요.”
“왜?”
“도련님께서 걸프사 지분 50%를 확보하셨노라고 협박하셨거든요.”
“뭐?”
심 사장은 뿌듯하게 웃었다.
“걸프사 협상단장이 유공의 지분을 들먹이며 협박했던 내용 그대로, 아니, 그 이상으로 되갚아주셨다니까요?”
“그, 그게 말이 되나?”
“제가 없는 말 하는 거 보셨습니까?”
“…….”
할아버지는 입을 꾹 다물었다.
태성그룹에서 오랫동안 함께해온 심 사장이 어떤 위인인지는 할아버지가 더 잘 알았다.
“이거야 원 귀신에 홀린 것도 아니고.”
할아버지는 얼떨떨한 얼굴로 턱을 쓸어내렸다.
“왜 있잖나. 도깨비방망이를 한 번 치니 금은보화가 뚝딱, 도깨비방망이를 한 번 더 치니.”
“유공과 걸프사가 뚝딱.”
할아버지의 뒷말은 심 사장이 받았다.
할아버지와 심 사장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말을 해놓고도 믿지 못할 일이로구만!”
“저기 워렌 버퍼가 여기까지 왔는데도 안 믿기십니까?”
심 사장은 몸을 바로 했다.
“버크셔 헤서웨어사의 2%까지 더하면 걸프사의 뜻과 상관없이 적대적 인수합병도 가능한 상황입니다.”
“적대적 인수합병은 기업 방어기제 때문에 거의 불가능하지 않나?”
“거의 불가능하죠.”
“오랜 시간에 걸쳐 해당 기업과 금융거래를 쌓아온 금융권이 일면식도 없는 우리에게 힘을 빌려줄 리가 없는데?”
“보통은 그렇겠죠.”
심 사장은 씩 웃었다.
“하지만 우리 도련님께선 보통이 아니잖습니까.”
자랑스러움이 듬뿍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할아버지가 몸이 잔뜩 달아서 재차 캐물으려고 할 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그게 중요해요? 저기 버퍼 씨가 오고 있는데도요?”
어느새 워렌 버퍼는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할아버지는 두 팔 벌려 격한 환영의 인사를 전했다.
“미스터 버퍼, 환영합니다!”
“환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꼬마야, 석유파동이 일어난 시점에 유전 개발 이슈로 날 꼬여내다니, 너 정말 보통이 아니구나?”
워렌 버퍼는 허공에 코를 킁킁댔다.
마치 돈 냄새를 맡는 것처럼 말이다.
“걸프사 사람들까지 몰려든 것을 보면 상당히 큰 건이로군.”
“바로 봤어요.”
나는 아버지에게 쥐여준 한 장짜리 계약서를 가리켰다.
“대통령님께서 기다리시겠어요. 아빠는 얼른 가서 유공 인수 계약서에 도장부터 받아 오셔야죠.”
“그럼 미스터 버퍼의 응대는 누가 하고?”
“심 사장님이요.”
두 사람이 동시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심 사장은 깜짝 놀라 검지로 본인을 가리켰다.
“제가요? 정혁 도련님이 아니라?”
깜짝 놀란 할아버지도 심 사장을 가리켰다.
“내가 아니라 심원철 자네가?”
“미스터 버퍼와 심 사장님은 구면이거든요. 일본에서 만나 이렇게 명함까지 받아 오셨는데요.”
“……도련님은 제가 모시겠습니다.”
“아니, 할애비인 내가 있는데 심원철이 자네가?”
심 사장은 아버지가 안고 있던 나를 홀랑 가로채 안았다.
“버퍼 씨와 구면인 건 저뿐만이 아닙니다. 정혁 도련님은 특별히 버크셔 헤서웨어사의 5월 주주총회에 초대받으셨거든요. 게다가 버퍼 씨에게 초대장을 보낸 것도….”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버지는 초대란 말에 단번에 납득한 얼굴이 되었다.
심 사장은 나를 한 팔로 든든히 안아 올린 채 작게 속삭였다.
“설마 저더러 타자기 챙겨 오라고 했던 진짜 이유가 저 양반이랑 쓸 계약서 때문에?”
“빙고.”
“아이고오!”
난 영민하고 눈치 빠른 사내가 좋더라!
“워렌 버퍼 저 양반에게선 또 무슨 계약서를 어떻게 받아내시려고요?”
“약속대로 버크셔 헤서웨어사 지분을 따따블로 받아내야죠.”
“아이고오!”
나는 한쪽 눈을 찡긋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버크셔 헤서웨어사 지분을 못 내놓겠다면 대신 다른 거라도 듬뿍 뜯어내면 그만이니까요.”
* * *
걸프사 협상단과 썼던 룸.
워렌 버퍼는 푹신한 소파에 앉아서 테이블 위에 팔을 올려 턱을 괴었다.
나를 바라보는 눈이 초롱초롱하게 반짝거렸다.
“네 아빠 아주 유명인이더라.”
“우리 아빠를 알아요?”
“솔직하게 말하자면 방금 전까진 몰랐다.”
워렌 버퍼는 송년의 밤 초대장을 내려놓았다.
태성의 브레인 이름으로 보낸 것이었다.
“태성의 브레인이라니까 다들 네 아빠만 바라보더군.”
어째 워렌 버퍼가 입장하면서 대뜸 ‘태성의 브레인!’ 소리를 꺼내더라니.
“어떻게든 날 붙잡아서 투자받을 생각에 욕심을 부리더니, 네 아빠를 찾자마자 다들 입 다물고 물러났으면 말 다 한 거지.”
워렌 버퍼의 입매가 부드럽게 휘었다.
“젊은 친구가 벌써 이 정도로 인정받고 있을 줄이야.”
“그래서 일부러 그러셨어요?”
사람들 다 있는 앞에서 걸프사 지분 2% 가져왔다질 않나, 사우디 유전 개발 소리를 하질 않나.
“걸프사 사람들의 의중을 떠보려고요?”
“쪼끄만 녀석이 눈치는 빨라가지고. 그래, 맞다.”
워렌 버퍼는 순순히 인정했다.
“걸프사 지분을 가져오라고 하니까 궁금해서 견딜 수가 있어야지.”
워렌 버퍼는 입맛을 다시며 군침을 삼켰다.
“네 아빠가 얻었다는 사우디의 유전이 어디라고?”
“리야드 남쪽이요.”
“보내준 원유 성분 분석표를 보니까 채굴한 원유의 질도 좋고, 매장량도 상당히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지?”
워렌 버퍼는 고개를 슬쩍 기울였다.
“그러니 걸프사가 눈이 뒤집혀서 협상단을 보내온 거로군. 걸프사는 얼마를 불렀지?”
“처음부터 10억 달러 부르던데요?”
심 사장은 움찔했다.
곁눈질로 날 힐끔 보는 것이 꼭 ‘그 10억 달러가 이 10억 달러는 아닌 것 같은데요?’ 하는 눈이었다.
뭐? 왜? 뭐!
내가 없는 말을 한 것도 아니고, 걸프사가 처음부터 10억 크게 부른 건 맞지!
“어쩐지. 사람들이 10억 달러, 10억 달러 거리더라니.”
워렌 버퍼는 수긍이 간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비서 톰도 같은 얼굴로 더욱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걸프사라면 충분히 혹할 만하죠. 쿠웨이트의 유전 개발 작업도 이제 막바지라면서요?”
“유전을 펑펑 채굴하기 시작하면 또 다른 유전을 찾아 확보하는 게 걸프사의 주특기니까.”
워렌 버퍼와 비서 톰은 문을 힐끔 바라봤다.
“그래서 네 아빠는 걸프사를 택한 건가?”
“계약서만 하나 쓰고 바로 이쪽으로 오실 거예요.”
“흐음, 내가 너무 늦은 건가?”
“전혀요.”
나는 동전지갑을 열었다.
“그 전에, 우리 JH투자와 먼저 조율해야 할 사안부터 처리해 볼까요?”
워렌 버퍼가 예전에 서명 날인을 마쳤던 한 장짜리 계약서를 꺼냈다.
“제가 블루 스탬프 지분 2.5%와 귀사의 지분 2%를 넘겨드렸을 때, 기억하세요?”
“시세대로 쳐서 버크셔 헤서웨어사의 지분으로 바꾸기로 했었지.”
“그때 귀사의 지분 2%를 넘기면서 달아뒀던 조건이 있잖아요.”
“조건부 회수권.”
워렌 버퍼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1년 내에 우리 회사 주가가 주당 800달러 밑으로 내려가는 경우에 한해서.”
“지금 버크셔 헤서웨어사의 주가가 얼마였죠?”
“625달러다.”
회수권 발동 조건은 충족되었다.
이게 다 제2차 오일 쇼크 때문이었다.
이미 겪어본 오일 쇼크의 끔찍한 악몽이 더욱 큰 불안감으로 증폭되어, 아직 소련-아프간 전쟁이 터지기 전인데도 미국 주식시장은 와르르 폭락했다.
“참고로 그때 제가 넘긴 지분은 약 2천1백만 달러어치예요.”
“으음!”
내가 블루 스탬프를 넘길 당시 버크셔 헤서웨어사의 주당 가격은 982달러.
그랬던 주식이 주당 625달러가 되었으니, 2천1백만 달러어치 주식을 돌려받게 된다면.
“일단 원금으로 계산하면 33,920주인데요.”
“순식간에 내가 내어줘야 할 지분이 3.49%로 뻥튀기되었군.”
“왜 이자는 안 따지세요?”
“뭐?”
이 양반이 왜 이리 놀란 눈이야?
나는 계약서 특약사항을 탁탁 짚었다.
“계약금도, 잔금도 안 받는 대신 회수할 때에만 연이율 67.8%로 책정했잖아요.”
“그, 그렇다면……!”
“45,418주. 4.68% 되겠네요.”
“……!”
버크셔 헤서웨어사 지분 2%가 4.68%로 바뀌었다.
그게 우리의 조건부 지분 회수 계약이었다.
“무려 2천1백만 달러짜리 주식을 공짜로 가져갈 절호의 기회라고 좋아하면서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을 외쳤었는데.”
비서 톰은 씁쓸하게 읊조렸다.
“진짜 오일쇼크란 하이 리스크 때문에 하이 리턴으로 뱉어내게 생겼네요?”
“원래 투자란 그런 것이니까.”
워렌 버퍼도 씁쓸한 눈으로 계약서를 다시 읽어 내렸다.
고장 한 장짜리인 계약서라 몇 번을 읽어 봤자 똑같았다.
당시에 신나서 휘갈긴 제 서명과 날인을 확인하고서, 워렌 버퍼는 피식 웃었다.
“고작 반년 만에 우리 회사를 상대로 두 배 이상의 수익을 올리다니. 이거 투자자로서 크게 한 방 먹었군.”
워렌 버퍼는 계약서를 내려놓았다.
“속은 쓰릴지언정 기분은 생각보다 괜찮은 게 신기할 지경이군.”
묘한 얼굴이었다.
“당시 내가 한껏 욕심내던 블루 스탬프는 이번에 큰 손해를 봤는데.”
한때 미국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승승장구하던 블루 스탬프는 오일쇼크를 버티지 못하고 폭락에 폭락을 거듭했다.
전생과 마찬가지로 버크셔 헤서웨어사는 섬유회사와 블루 스탬프 때문에 곡소리를 내게 되었다.
“블루 스탬프를 거저 얻겠다고 맞바꾼 우리 회사 주식으로 너는 크게 이득을 봤군.”
“그게 투자니까요.”
나는 방긋 웃었다.
“불황기에도 따는 사람이 있고, 호황기에도 잃는 사람은 있는 법이죠.”
“그래, 맞다. 흠, 그런데 이걸 어쩌지?”
워렌 버퍼는 곤란한 얼굴로 심 사장과 내 눈치를 슬쩍 봤다.
“여기 이 대목을 주목해야지.”
워렌 버퍼는 특약사항을 콕 짚었다.
“1년 후 시가로 넘기기로 했으니, 내겐 아직 반년이란 시간이 남았다.”
“오늘까진 반년 치 이자만 계산했지만, 그땐 연이율 전부를 적용해야 할 텐데요?”
“그래 봤자 625달러보다 더 떨어지기야 하려고?”
과연 그럴까요?
‘소련-아프간 전쟁이 터지면 주당 500달러까지 떨어질 텐데?’
그래서 따따블 회수!
‘하지만 지금 당장은 걸프사를 인수하는 게 더 급하니까.’
어쩔 수 없지.
그러니 눈물을 머금고 약간의 손해를 감수하는 수밖에.
그래서 난 버크셔 헤서웨어사의 지분 회수를 결정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네 말대로 불황기에도 따는 사람은 존재한다. 그러니 주식시장은 죽지 않고 순환하는 거지.”
워렌 버퍼는 엄지로 본인을 가리키며 씩 웃었다.
“나 워렌 버퍼도 시장의 호불황을 가리지 않고 투자 수익을 올려왔어.”
월가의 전설, 투자의 귀재, 장기투자의 교과서라 불리는 이 남자.
그는 몸소 ‘존버는 승리한다!’를 결과로 증명해 온 사내였다.
“뜻하지 않은 외부 충격까진 나도 어쩔 수 없지. 하지만 바닥을 쳤으니 이젠 오를 일만 남았다.”
탕!
워렌 버퍼가 두 손으로 테이블을 짚었다.
“만일 이대로 JH투자가 회수권을 발동하지 않고 반년 후까지 회수를 연장해 주겠다고 약속한다면.”
“한다면?”
“네 아빠가 들고 오라고 요청했던 걸프사 지분의 처분에 관해, 무조건 긍정적인 방향으로 검토해 보겠다고 약속하마.”
나는 눈을 번쩍 떴다.
이게 웬 떡이냐!
“이러면 너도 딱히 손해 보는 건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어때, 콜?”
워렌 버퍼는 보란 듯이 미끼를 살랑살랑 흔들어댔다.
바라 마지않던 제안이었기에 나는 기쁜 마음으로 콱 물었다.
“콜! 그럼 계약서 쓰시죠.”
나는 방긋 웃었다.
“난 말보다 문서를 더 믿거든요.”
타다다다다닥.
심 사장은 말 끝나기 무섭게 미친 듯이 타자기를 두드려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