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388)
재벌집 만렙 아들-388화(388/416)
388. 태성과 함께하겠습니다.
대통령은 흡족한 얼굴로 술잔을 빙글빙글 돌렸다.
그럴 때마다 위스키가 찰랑찰랑, 얼음이 달그락거렸다.
“유공을 고작 2천5백만 달러에…….”
상석에 앉은 대통령을 기준으로 오른쪽에는 태성그룹 총수와 부회장 이하 핵심 계열사 사장단이, 왼쪽에는 걸프사 사람들이 도열해 앉았다.
다들 진지한 얼굴이었다.
걸프사 협상단장은 마른침을 삼켰다.
“한 장짜리 계약서로 성사되기엔 너무 큰일이 아닙니까. 몇 가지 조항만 더 추가하십시다.”
“이런 계약서도 좋다며 도장을 찍겠다면서요?”
“2천5백만 달러에 유공 지분 전부를 넘긴다는 대목은 번복할 생각 없습니다. 다만…….”
걸프사 협상단장은 난감한 얼굴로 손바닥을 비볐다.
“제가 이 자리에서 결정하기엔 권한이 부족합니다. 아시잖습니까?”
“글쎄요. 걸프사 대표로 협상하러 온 책임자에게 그 정도 결정권도 없다고는 믿기 어렵습니다만?”
“10억 달러 계약이 2천5백만 달러짜리가 되었습니다. 걸프사가 금액을 양보했으면 태성에서도 조금 양보를 해달라, 이거죠.”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양보를 해달라는 겁니까?”
“걸프사가 먼저 성의를 보였으니, 태성도 걸프사의 사정을 조금 봐달라는 겁니다.”
걸프사 협상단장은 비굴하게 웃었다.
“특약사항 몇 개만 덧붙입시다. 걸프사의 고용 승계 조건이라든가…….”
“유공의 지분 인수 계약서에 걸프사의 고용 승계 조건을 왜 논합니까?”
“크흠!”
어디까지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말을 꺼내면 꺼낼수록 걸프사의 불리한 입장만 전하게 될 것을.
걸프사 협상단장은 눈치를 보았다.
“걸프사의 자산 매각이라든가, 기업 쪼개 팔기 같은 것은 유보해 주신다거나…….”
“아까부터 자꾸 유공 일에 걸프사 입장을 끼워 넣고 계시는데, 그러는 저의가 뭡니까?”
“크흠!”
애가 타서 그런다.
속이 타서 그런다.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 그런다.
걸프사를 대표로 협상에 나선 일이기에 더욱 그렇다.
“걸프사의 일은 걸프사에서 논합시다. 여기에서는 유공의 일만 논하자고요.”
“특약사항 몇 줄 적는 게 뭐 그렇게 어렵다고요. 저희가 지분 인수금을 얼마나 많이 양보했는지 아시면서…….”
“심 사장님 다시 불러옵니까?”
태성의 브레인이라 불리는 남자가 입을 열었다.
“도장 찍기 싫으면 마십시오. 찍든가 말든가, 당신이 선택해야 하는 건 그것뿐입니다.”
“…….”
차성준 부회장의 한마디에 걸프사 협상단장은 입을 꾹 다물었다.
화려한 언변과 막무가내와 무례를 오가며 제 뜻을 관철시키던 카리스마는 다 어디로 갔는지.
대통령 앞에서도 ‘안 팔아!’를 외치면서 끝까지 뻗대던 남자가 절망을 감추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대통령은 나지막하게 흘러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천하의 걸프사 협상단 대표가 찍소리도 못 내고 쩔쩔매는군.”
태성의 차성준 부회장을 바라보며, 대통령은 진한 위스키 맛을 음미했다.
미소가 절로 흘러나왔다.
“역시 태성의 브레인이야.”
“맞습니다, 각하.”
청와대 경호실장이 기다렸다는 듯이 대통령의 말을 받았다.
비어버린 대통령의 술잔에 로얄살루트를 따라주며 작게 히히덕거렸다.
“짜릿하고, 독하고, 시원하고, 통쾌한 것이, 딱 저 친구를 닮았지 뭡니까?”
“물건은 물건이다.”
대통령은 술잔을 손에 끼운 채, 손끝으로 슬쩍 태성의 브레인을 가리켰다.
“누가 봐도 말이 되지 않는 조건이었는데, 그걸 관철시켜 버리는 수완이라니.”
어디 그뿐인가?
“큰소리칠 상황이 아닌데도 판을 뒤집어엎고 큰소리를 치고 있어. 이게 어디 말이 되는 일인가?”
“확실히 보통내기는 아니지요.”
“유공 지분 30%짜리가 50%를 쥐고 있는 놈을 농락하고 있질 않나.”
그 광경을 이 두 눈으로 직접 지켜보고 있으려니까 계속 웃음이 난다.
“질 수밖에 없는 판에서 승리를 따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대통령의 눈에서는 욕심이 피어올랐다.
“저놈을 어떻게 세계 지도자 회의에 데려갈 순 없을까?”
“예?”
“내 수행인으로 어떻게 한자리 끼워볼까 하는데.”
“진심이십니까?”
대통령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태성의 브레인을 응시하는 눈은 거두질 않고, 올라간 입꼬리도 내려오질 않는다.
청와대 경호실장은 눈을 크게 뜨며 놀라워했다.
“각하께선 태성의 브레인을 그 정도로 높이 사고 계셨습니까?”
“지금 태성의 입장은 대한민국의 위상과도 그리 다르지 않다.”
달그락, 달그락.
대통령이 손목을 돌릴 때마다 호박색 위스키가 찰랑대었다.
“내가 세계 지도자 회의에 유감이 아주 많아.”
대통령의 눈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울분과 분노, 각오와 치기가 일렁거리는 눈이었다.
“어떻게든 그놈들의 뇌리 속에 제대로 된 한국을 박아 넣어주고 싶단 말이지.”
그건 대통령의 오랜 숙원이었다.
“이제 한국도 최빈국 꼬리표는 뗄 때가 되지 않았나?”
약소국, 분단국, 휴전국, 후진국, 자원과 미래가 없는 나라, 답 없는 나라의 대통령이란 취급은 이젠 그만 받고 싶었다.
대통령이 기를 쓰고 경제성장에 매달리는 이유도, 국위선양과 체면에 관해 몹시 민감하게 반응하는 까닭도 모두 이 때문이었다.
“태성의 브레인이라면 뭔가 크게 한 건 터뜨려 줄 것 같지?”
“저 친구에게 거는 기대가 무척 크셨군요.”
“자네라면 저 꼴을 보고도 기대를 안 걸 수 있어?”
대통령은 피식 웃으며 술잔을 들었다.
태성의 브레인이 밀어붙이자, 걸프사 협상단장은 피눈물을 흘리며 만년필을 집어 들었다.
파들파들 떨리는 손으로 걸프사의 자리에 서명과 날인을 마쳤다.
“상상만으로도 짜릿하군.”
대통령은 위스키를 벌컥벌컥 마셨다.
독주가 식도를 따라 내려가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짜릿한 쾌감이 배 속을 달군다.
속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대통령의 야망과 맞부딪치자.
후끈후끈하게 온몸에 열이 오르고, 가슴 가득 고양감이 끓어올랐다.
“하하하.”
대통령은 크게 웃었다.
좌우로 나눠 도열했던 태성 측 인사들과 걸프사 사람들이 유공의 지분 인수 협상이 끝났음을 알리는 악수를 나누자, 끝내 참지 못하고 시원하게 터뜨려 버린 것이다.
“좋아. 아주 좋아!”
대통령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소파에 등을 묻었다.
태성그룹 총수가 잔뜩 흥분한 얼굴로 대통령을 돌아보았다.
“각하, 끝났습니다!”
지켜보고 있었기에 말 안 해도 알고 있다.
뻔히 알면서도 저 한마디에 또 웃음이 터진다.
“벌써?”
“유공은 앞으로 태성과 함께할 겁니다!”
태성그룹 총수는 대통령을 향해 정중하게 허리를 굽혔다.
“각하께서 중재해 주지 않으셨다면 먼 길을 크게 돌아가야 했을 겁니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모든 영광을 대통령에게 돌리는 것이다.
“감사드립니다, 각하!”
태성의 브레인을 비롯해 태성그룹 핵심 계열사 사장단이 동시에 허리를 굽히며 외쳤다.
방음에 신경 쓴 룸이건만, 우렁찬 감사 외침이 쩌렁쩌렁하게 메아리쳤다.
대통령은 기꺼움을 애써 감추며 묵묵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계약서 구경 좀 할까?”
“예, 각하.”
태성그룹 총수가 직접 한 장짜리 계약서를 대통령에게 진상했다.
대통령은 곱게 접었던 흔적이 역력한 계약서를 쫙 펼쳤다.
“하.”
직접 이 두 눈으로 봐도 믿기지가 않는군.
이따위 조잡한 계약서에 정말 도장을 찍었다고?
<오늘 이 자리에서 걸프사는 유공의 지분 50% 전부를 2천 5백만 달러에 기타 조건 없이 태성에 양도한다.>
대통령은 듣도 보도 못했던 신기한 물건을 보는 것마냥 계약서를 꼼꼼하게 읽었다.
그런데 이게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덧붙인 내용이라고 해 봤자, 자금 지급에 사용할 계좌와 은행, 완납 기한 등에 관한 방법론적인 내용이 다였기에.
“어이가 없군.”
대한민국 최고의 정유회사를 넘기는 어마어마한 일을 고작 한 장짜리 계약서로 끝내다니.
계약서를 확인한 대통령의 소감은 짤막했다.
하지만 대통령의 흡족한 웃음소리는 참으로 길게 이어졌다.
“10억 달러를 2천5백만 달러로 깎는 데까지가 10분, 또 그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데까지도 10분.”
기꺼운 웃음으로, 대통령의 어깨가 작게 들썩였다.
“주주총회 한 번 열지 않고, 실랑이 한 번 벌이지 않고, 국제법 한 번 따지지 않고. 하하핫!”
걸린 게 많을수록 논할 게 많아지고.
논할 게 많을수록 다툼이 많아지고.
다툼이 많을수록 시간이 오래 걸린다.
탁.
대통령은 한 장짜리 계약서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깔끔하군.”
대통령이 들고 있던 술잔을 내밀었다.
“받아.”
“각하?”
“태성의 브레인, 수고했다.”
대통령이 제1공신이라 지목한 사람은 태성그룹 총수가 아니라 차성준 부회장이었다.
포상과 치하의 의미였다.
“감사합니다. 각하, 하지만 첫 잔은…….”
“사양하지 말고 받아. 다음 잔은 자네 아버지 차례니까.”
“……예.”
차성준 부회장은 두 손으로 공손히 술잔을 받아 들었다.
청와대 경호실장이 로얄살루트 병을 기울이며 껄껄 웃었다.
“자네한테 거는 기대가 아주 커. 지금처럼만 해, 지금처럼만!”
“예, 명심하겠습니다.”
차성준 부회장은 넘치도록 따라준 위스키를 한입에 꿀꺽꿀꺽 비워냈다.
그 모습을 태성그룹 핵심 계열사 사장단이 지켜보며 작게 감탄했다.
“역시 차성준 부회장님께서 첫 잔을 받으시는군요.”
“유공을 2천5백만 달러에 가져오는 공을 세우셨으니, 그럴 만도 하지요.”
“저는 지금 보면서도 믿기지 않습니다. 오라고 하니 급히 달려오긴 했지만, 솔직히 이게 가능한 일이긴 한가 싶은데요.”
깨끗하게 잔을 비운 차성준 부회장은 그 잔을 제 아버지인 차 회장에게 넘겼다.
대통령은 손가락을 까딱했다.
“차 회장도 한 잔 해야지.”
“저까지 챙겨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감사히 잘 받겠습니다.”
차 회장은 입맛을 다시며 두 손으로 술잔을 받았다.
청와대 경호실장은 시원하게 한 잔 따라줬다.
“아들 참 잘 키웠어. 여차하면 내가 나서려고 했는데 말이야.”
“마음만 받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거 자꾸 갚지 못한 빚만 쌓이고 있어. 내 언제고 코 삐뚤어지게 술 한잔 거하게 사지.”
“빚이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차 회장은 기쁜 마음으로 술잔을 비웠다.
대통령은 테이블 위에 내려둔 유공 지분 인수 계약서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전에 사우디 왕실에 빚을 하나 지웠다지?”
“예, 각하.”
“그 빚은 나라를 위해 쓰겠다는 그 마음, 아직 변치 않았나?”
“물론입니다, 각하.”
“좋아. 태성이 유공을 먹었으니, 중동의 석유 수급 문제는 이제 태성의 일이기도 해.”
대통령은 한 장짜리 계약서를 돌려주었다.
그러면서 은근하게 말했다.
“내정간섭보다는 민간 외교로 풀어야지. 필요한 지원이 있거든 언제든 연락해.”
“감사합니다, 각하.”
외무부 혹은 상공부의 도움을 약속한 것이다.
“만일 태성이 사우디에서 새로운 석유 공급처를 뚫는다거나, 자원 개발에 나선다고 하면.”
대통령은 손가락 하나를 들었다.
“내 1억 달러까지는 지원해 주지.”
“……!”
통 큰 지원 약속이었다.
걸핏하면 국고 타령을 하면서 외국 차관을 운운하던 대통령답지 않은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태성그룹 사람들이 모두 입을 떡 벌렸다.
“단, 기한은 3개월이다. 어떻게든 석 달 내에 쇼부 보란 소리야.”
어쩐지 통 크게 내지르더라니.
알고 보니 부도수표에 가까운 공수표였다.
“각하, 기한이 너무 촉박합니다.”
“차 회장은 자신 없나 보지?”
“제2차 석유파동 때문에 지금 중동 산유국들의 콧대가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능력껏 추진해 봐. 그 정도 수완은 되잖아?”
차 회장은 난색을 금치 못했다.
어떻게든 입을 열어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하려는데, 차성준 부회장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감사합니다, 각하.”
차성준 부회장은 태연하게 허리를 굽혔다.
평소와 똑같은 얼굴, 똑같은 목소리로 덤덤한 감사를 전했다.
“최선을 다해 각하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래, 사내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지.”
그 덤덤한 반응이 외려 대통령을 더욱 흡족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노력으로 끝나서는 곤란해. 결과로 증명해야지.”
“대신 1억 달러 지원은…….”
“눈에 보이는 결과로 증명한 순간부터.”
똑똑똑.
“뭐야?”
“가, 각하! 지금 워렌 버퍼가 취재진들 앞에서……!”
외무부 장관이 숨넘어갈 듯한 얼굴로 뛰어들어 와 비명처럼 외쳤다.
“태성의 걸프사 인수합병에 적극 협력하겠다는 의사를 공개발표했습니다!”
“뭐야?”
대통령은 벌떡 일어났다.
“또한 버크셔 헤서웨어사는 태성과 함께 쿠웨이트 유전은 물론 사우디 유전 개발에도 적극 투자할 생각이라고 밝혔습니다.”
“……!”
태성그룹 핵심 계열사 사장단은 물론이고 걸프사 사람들까지 놀라 경악성을 토했다.
대통령과 청와대 경호실장은 눈을 크게 떴다.
“태성이 걸프사를 인수해?”
“태성과 유전을 개발해?”
쨍그랑.
차 회장은 그만 손에 힘이 풀려 들고 있던 술잔을 놓쳤다.
지금 이 순간에도 오직 한 사람만이 평소처럼 태연하게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각하, 그럼 약속대로 1억 달러 지원받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