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389)
재벌집 만렙 아들-389화(389/416)
389. 실컷 자랑하고 싶어서
눈떠 보니 새해 첫날이었다.
‘어우, 피곤해!’
걸프사 인수에 관해 밑작업을 준비했더니.
집에 돌아와 씻자마자 기절하듯 잠들어 버렸다.
‘이게 다 워렌 버퍼 때문이야!’
워렌 버퍼가 취재진들 앞에서 걸프사 인수와 유전 개발 투자에 관해 공개발표를 할 줄은 몰랐지!
‘덕분에 취재진들은 물론 정재계 인사들이 개떼처럼 몰려들었으니.’
어제 송년의 밤 행사에선 유례없이 대통령이 참석함에 따라 취재진들까지 잔뜩 몰리게 되었다.
혹시나 뭐 주워 먹을 거리가 없나 쥐새끼처럼 기웃대던 취재진들에게 워렌 버퍼가 큼지막한 먹잇감을 냅다 던져준 꼴이었다.
다들 아주 신이 나서 바글바글 몰려들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더라고.
‘덕분에 걸프사 인수 준비에 더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오히려 잘됐지.’
이미 52%나 되는 우호 지분을 확보한 상태였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걸프사를 확실하게 밀어붙인다.’
걸프사가 깜짝 놀라 물밑에서 뭘 더 어떻게 손을 써보려고 해도 쉽지 않을 것이다.
워렌 버퍼라는 저명인사의 입을 통해 언론에 공개된 이상, 이미 이건 공신력 있는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질 공산이 높다.
미국 정부를 등에 업고 수작을 부리려고 해도, 공론화가 된 이상 눈치를 봐야 하기 마련이다.
시총 세계 9위나 하는 걸프사의 인수 소식에 전 세계가 주목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랑 할아버지는 괜찮으시려나 몰라. 축하주 엄청 많이 받으시던데.’
아버지와 할아버지에게도 사람들이 개떼처럼 몰려드는 건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다들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어 정보를 캐낼 생각에, 혹은 한 다리 걸칠 생각에 눈을 번뜩거리더라고.
‘그러고 보니 오늘은 새해 첫날, 할아버지 댁에서 다 같이 떡국 먹는 날이네?’
태성은 한가족!
전 계열사 임원진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거하게 떡국이나 한 그릇 먹여서 새해 인사를 전하는 자리였다.
그러다 문득 작년 새해 첫날이 떠올랐다.
‘설마 올해에도 할아버지 무릎 위에서 떡국 먹는 건 아니겠지?’
어우, 벌써부터 피곤해졌다!
똑똑똑.
“정혁아, 일어났니?”
“엄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정혁이도 새해 복 많이 받아.”
어머니는 예쁘게 머리를 올리고 화장도 곱게 했다.
귀부인이 따로 없다.
“할아버지 댁에 갈까? 아침 식사에 늦겠어.”
“아빠는요?”
“하아, 어제 그렇게 술이 떡이 되도록 마셨으니.”
어머니는 길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못마땅한 얼굴이었다.
“속상해 죽겠어.”
“엄마가 이해해 주세요. 축하주를 거절하기 어려운 자리였잖아요.”
나는 방긋 웃었다.
“그럼 우리끼리만 가는 거예요?”
“그게 아니니까 속상해 죽겠다는 거야.”
음?
“오늘만이라도 좀 늘어져 잤으면 오죽 좋아?”
어머니는 혀를 찼다.
“네 아빠 고집이 아주 똥고집이라니까?”
“오늘만 봐줘.”
아버지가 어머니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추곤 씩 웃었다.
워낙에 옷걸이부터가 근사한 양반인데 옷 고르는 취향도 세련돼서 모델이 따로 없다.
“태성그룹 전 계열사 임원진이 모이는 자리인데, 빠질 수는 없잖아.”
“어휴, 술 냄새. 두 시간도 못 자고도 뭐가 그리 좋다고 아침부터 계속 싱글벙글이에요?”
“신문 봤잖아.”
아버지는 흐뭇하게 웃으며 신문 뭉치를 들어 올렸다.
“새해 떡국 먹는 자리가 아주 즐거워질 것 같지?”
얼핏 봐도 신문 1면 기사들이 온통 태성의 이름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극적 타결! 태성이 유공을 인수한다!>
<워렌 버퍼가 태성에게 러브 콜을?>
<유공만으로는 부족하다! 내친김에 걸프사까지 노리는 태성!>
<태성, 중동 유전 개발에 뛰어드나!>
아버지는 펼쳤던 신문을 도로 곱게 접어 옆구리에 척 끼었다.
즐거운 얼굴이었다.
“이게 다 우리 정혁이가 한 일이라고 만천하에 자랑해야 하는데.”
“됐어요.”
“진짜 안 돼?”
“참아요.”
“그럼 형님과 형수님 포함 가족들에게만이라도 어떻게.”
“미쳤어요? 오늘은 아버지가 태성그룹 부회장이 되고 처음 맞는 새해 인사 자리라고요.”
나는 손사래를 쳤다.
“아빠 부회장 자격 검증 시간이거든요?”
“그딴 게 무슨 상관인데?”
아버지는 날 훌쩍 안아 들었다.
“부회장 자리도 다 우리 정혁이 앞길 닦아주겠다고 맡은 거고.”
“어휴, 아빠 술 냄새!”
“하하하, 아빠가 어제 기분이 너무 좋아서. 오늘만 봐줘.”
아버지는 날 꽉 끌어안았다.
“아빠는 우리 정혁이가 얼마나 대단한 애인지, 태성그룹 사람들 앞에서 실컷 자랑하고 싶은데.”
아버지는 몹시 아쉬워하셨다.
“우리 아들은 이런 아빠의 맘도 몰라주고, 모든 공을 다 아빠 앞으로 넘길 생각만 하고 말이지.”
아버지의 한숨에는 술기운이 폴폴 섞여 있었다.
“안 되겠다. 우리 정혁이 얼른 커야겠다. 아빠가 자랑하고 싶어서 오래 못 기다리겠어.”
아버지가 내 등을 톡톡 두드려 주셨다.
“정혁아, 오늘은 떡국 두 그릇 먹는 거다. 알았지?”
아버지도 참.
“네에.”
“그동안 아빠가 우리 정혁이 앞길 잘 닦아놓고 있을게.”
“네에.”
우리 부자는 마주 보며 방긋 웃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등을 밀며 재촉했다.
“얼른 가요. 안 그래도 형님들 제치고 당신이 부회장 됐다고 말이 많을 텐데, 지각했다고 괜한 눈총까지 더 받고 싶지 않아요.”
그렇게 우리는 아침 일찍 새해 인사 겸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평창동으로 향했다.
* * *
종로 평창동에 위치한 할아버지의 자택.
주차 대수 50대짜리 주차장이 고급 세단으로 꽉 찼다.
탁.
아버지가 차에서 내리자, 양복을 차려입은 중년의 신사들이 앞다투어 인사했다.
“부회장님, 오셨습니까?”
“부회장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태성의 50개 계열사 사장들과 임원들이 저택으로 향하던 걸음을 멈추고 반색했다.
옆구리에 신문을 끼고 있는 임원들이 심심치 않게 섞여 있었다.
“부회장님, 이게 다 무슨 소립니까?”
“우리 태성이 정말 대한석유공사를 인수하는 겁니까?”
“그런데 이게 가능하긴 합니까? 유공이 덩치가 오죽 커야 말이지요.”
유공의 기업 평가액은 약 4억 달러.
태성으로서도 쉽게 인수를 결정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었다.
“신문만 보면 유공의 인수가 거의 확정되었다는데, 지금까지 이에 관한 말이 아예 나돌지를 않았잖습니까.”
다들 관심이 지대했다.
그도 그럴 만했다.
상식적이지 않은 상황이었거든.
“유공을 민간에 넘긴다는 뜬소문 한 번 없었습니다.”
“걸프사가 유공의 지분 50%를 움켜쥐고 있는 이상 그건 애초에 어림도 없는 일이기도 했고요.”
“그 사실을 정부도, 걸프사도 모르진 않을 텐데.”
“대체 어쩌다 일이 이렇게 급작스럽게 흘러가게 된 겁니까?”
보통은 휘청거리는 기업의 위기설이 먼저 흘러나오고, 회생 혹은 파산 절차를 밟게 될 무렵 정부나 금융권의 중재하에 인수에 관한 협상을 타진하게 된다.
그런데 유공의 경우에는 이에 관한 많은 절차가 생략되었다.
“제2차 석유파동의 여파로 유공의 적자가 심상치 않게 쌓였다는 소문이야 파다했지만.”
“그렇다고 유공의 최대 주주인 걸프사가 파산 위기라는 징조는 보이지 않았잖습니까.”
“더구나 정부는 공사의 민간 기업 이양에 대해 시큰둥한 입장이기도 하고요.”
그때 한 무리의 사람들과 평창동 저택에 들어오는 이가 있었다.
입꼬리에 그린 듯한 웃음을 매달고 있는, 실눈의 30대 사내, 둘째 큰아버지였다.
“신문만 보면 우리 태성이 날치기 인수를 통과시켰나 싶던데요.”
“기준 도련님.”
“형님 오셨습니까?”
둘째 큰아버지는 피식 웃었다.
“요즘 세상에 날치기 인수가 가당키나 합니까? 하여간에 기자 놈들이란 뜬소문도 기정사실처럼 책임감 없이 떠들어 대곤 한다니까요.”
둘째 큰아버지는 실눈을 휘며 물었다.
“성준아, 아무래도 정정기사 준비해야겠지?”
그게 둘째 큰아버지의 결론이었다.
둘째 큰아버지를 따라온 태성식품 임원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듣자 하니 걸프사는 10억 달러를 불렀다던데요. 우리 태성에 그만한 돈이 어디 있다고요?”
“워렌 버퍼의 투자 소식과 맞물려서 일이 이상하게 번지네요. 하하하!”
아버지는 딱 잘라 말했다.
“정정기사는 준비할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전부 사실이니까요.”
“뭐?”
“신문에 나온 기사, 전부 사실이라고 했습니다.”
“……!”
태성그룹 계열사 임원들은 입을 떡 벌렸다.
상상조차 못 했다는 표정이었다.
눈꼬리가 휘도록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였던 둘째 큰아버지의 눈매가 설핏 찌푸려졌다.
“워렌 버퍼의 투자 소식까지 사실이란 건 아니겠지?”
“왜 아니겠습니까?”
아버지는 내 손을 꼭 잡고 씩 웃었다.
“태성이 유공의 인수를 날치기 통과시킨 것은 물론, 워렌 버퍼가 태성에 투자 의사를 밝힌 것까지 포함하여 전부 사실이란 뜻입니다.”
“우와악!”
태성그룹 계열사 임원들이 비명을 꽥 내질렀다.
아버지는 둘째 큰아버지에게 작게 목 인사를 해 보였다.
“길바닥에서 논할 만한 내용은 아닌 것 같군요. 자세한 내용은 안에 들어가서 하시죠.”
아버지는 나와 어머니 손을 잡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던 태성그룹 임원들이 홍해처럼 갈라지며 아버지 뒤를 바쁘게 따랐다.
둘째 큰아버지도 걸음을 빨리하여 아버지 옆에 바짝 붙어 섰다.
“인수 자금은 얼마나 예상하고 있고?”
“2천5백만 달러입니다.”
“뭐?”
“신문에 나온 그대로. 2천5백만 달러에 걸프사가 보유하고 있던 유공의 지분 50%를 가져왔습니다.”
뒤에서 들리는 기쁨의 함성엔 경악의 비명도 뒤섞여 있었다.
아버지는 씩 웃었다.
“참고로 그 외에 따로 넘겨받은 유공의 지분도 37%쯤 됩니다.”
“그렇게 막무가내로 일을 밀어붙이면 쓰나.”
둘째 큰아버지는 애써 미소 지었다.
“유공 측 반발이 꽤 심할 텐데, 감당할 자신은 있고?”
“감사히, 겸허히, 순순히 받아들이겠답니다.”
“뭐?”
“이미 어제 유공의 김병식 사장께선 인수 합병 계약서에 서명 날인을 마쳤습니다만.”
“벌써?”
아버지의 대답이 이어질 때마다 태성그룹 임원들은 “으아악!” 하고 환호성을 내질렀다.
몹시 들뜬 얼굴로 좀처럼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둘째 큰아버지의 미간에 골이 패이기 시작했다.
“정부는 공사의 민간 기업 이양을 반기지 않는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을 텐데, 어떻게 그런 일이…….”
“대통령께서 흔쾌히 가져가라 허락하신 일입니다만.”
“흔쾌히?”
“따로 넘겨받은 유공의 지분 37% 말입니다. 누가 어떻게 챙겨줬을 것 같습니까?”
아버지는 마치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앞장서서 태성그룹 임원들을 끌고 갔다.
성큼성큼 걸어가 둘째 큰아버지보다 먼저 할아버지 저택에 발을 들였다.
“대통령 각하의 명에 따라 중정부장께서 긁어모은 것에, 재벌그룹들이 내놓은 것과 몇 군데 은행의 우호 지분까지 합하니 그 정도 나오더군요.”
뒤따르는 태성그룹 임원들 사이에서 “우와아아!” 하는 환호성에 휘파람과 박수 소리가 섞여 들기 시작했다.
정말로 ‘2천5백만 달러에 태성이 유공을 먹었다!’가 당사자의 입으로 기정사실이 된 순간이었다.
“각하와는 얘기가 어디까지 진행된 거냐?”
“태성의 중동 유전 개발 지원까지 이야기 끝났습니다.”
“중동의 유전 개발 지원?”
다들 비명처럼 환호성을 지르며 날뛰던 것을 뚝 멈췄다.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아버지를 보느라 넋이 반쯤 나가 있었다.
그건 둘째 큰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말도 안 돼.”
“어제 대통령 각하께 1억 달러 지원을 확답받았습니다.”
“……!”
모두 입을 떡 벌렸다.
그건 나도 포함이었다.
‘그 짠돌이 대마왕이 1억 달러 지원을 약속했다고?’
처음 듣는 소리였다.
순간 항상 입꼬리에 달려 있던 둘째 큰아버지의 미소가 딱딱하게 굳었다.
“어떻게?”
“제가 그것까지 형님께 보고해야 합니까?”
태성그룹 부회장인 아버지다.
보고는 아버지가 아닌, 둘째 큰아버지가 우리 아버지에게 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둘째 큰아버지는 의뭉스럽게 웃었다.
“형제끼리 허심탄회하게 고민을 나눠보자는 건데, 까칠하게 굴기는.”
“그래서 어제 내내 위로 올라오는 대신 홀에 붙어 은행장과 여당 의원들을 붙잡고 로비에 열을 올리셨습니까?”
뒤에서 수군수군 말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아버지는 뒤돌아 보는 대신 앞만 보고 걸어갔다.
“그래 봤자 부회장 자리 바뀔 일은 없을 것이고.”
성큼성큼 내딛는 아버지의 발걸음은 당당하기만 했다.
망설임, 초조함, 불안함이 가득 묻어나는 둘째 큰아버지의 것과 다르게 말이다.
“형님과 조카들의 몫으로 유공의 지분을 나눠주는 일도 없을 겁니다.”
아버지는 보란 듯이 내 손을 번쩍 들어 보였다.
“이건 우리 정혁이 겁니다.”
아버지는 둘째 큰아버지를 향해 경고했다.
“주제도 모르고 넘보려 들지 말란 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