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390)
재벌집 만렙 아들-390화(390/416)
390. 이를테면 걸프사?
할아버지 댁 거실엔 6인용 잔칫상이 얼추 50개 이상 붙어 있었다.
태성그룹 50개 계열사 사장단과 임직원이 둘러앉아 떡국을 받았다.
16인용 대리석 식탁의 상석에는 할아버지가, 그 옆에 할머니를 비롯해 태성의 직계 가족이 차례대로 앉았다.
할아버지는 수저를 든 채 크게 웃었다.
“태성 가족이 함께하는 새해 첫 식사야. 많이들 들게!”
“잘 먹겠습니다, 회장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올해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할아버지는 새삼 감회가 새롭다는 얼굴로 새해 아침상을 내려다보았다.
“올해는 50개 계열사의 식구들이 한자리에 앉아 떡국을 먹게 되었군.”
작년까지만 해도 태성의 계열사는 38개였지만.
JH투자를 제외한 12개의 계열사를 뚝 떼어내 태성에 병합시켰기 때문이었다.
할아버지는 제 오른편에 앉은 아버지를 향해 웃어 보였다.
“차성준 부회장도 많이 들게.”
작년엔 부회장 자리도 공석이었다.
비어 있는 태성그룹 부회장 자리를 두고 형제들의 세력 싸움이 치열했었는데.
16인용 원목 식탁에 나란히 앉아 있는 큰아버지들의 얼굴엔 씁쓸함이 감돌았다.
할아버지는 이번엔 왼편에 앉은 할머니를 돌아보았다.
“자네도 그간 고생했어. 올해도 건강하게. 알지?”
“그럼요.”
할머니는 흐뭇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새침하게 웃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할머니는 계모라고 눈치를 보느라, 새해 첫날 아침상 받는 자리엔 모습을 비추지 못했었다.
할머니는 나를 돌아보며 활짝 웃었다.
“우리 정혁이 장가갈 때까지 매년 같이 떡국 먹어야죠. 정혁아, 많이 먹어라.”
“할머니, 그래서 말인데요.”
“응.”
“저 그냥 내려주시면 안 될까요?”
할머니 무릎 위에서 떡국을 받아먹게 되었다.
이유는 단 하나.
“작년에는 할아버지 무릎 위에서 떡국 먹었으면, 올해는 이 할미 차례지.”
여기 태성그룹 계열사 임원진이 전부 내려다보이는 상석 중의 상석이라고요!
할머니는 가슴을 쭉 펴고 활짝 웃었다.
“나 이런 자리 꼭 가져보고 싶었어!”
어떤 자리요?
“봐라, 지금 이 구도. 꼭 대부가 된 것 같잖니. 우후훗!”
대부업이라면 친정에서 차고 넘칠 정도로 하셨을 텐데요?
하지만 할머니는 그리움이 깃든,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동진이 그 녀석도 딱 이런 구도의 식사자리를 참 좋아했었는데.”
지금은 돌아가시고 없는 정동진 어르신 생각이 나는 모양이다.
문득 할머님께는 하나 남았던 피붙이 남동생도 죽고 없는 새해 첫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할머니의 손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주었다.
내 손가락에는 정동진 어르신이 내게 남겨주신, 정씨 집안의 가보인 동백꽃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할머니, 이따 시간 괜찮으시면 우리 집에 놀러 오실래요?”
“오! 할미랑 같이 화투 쳐주려고?”
그까짓 것 못 쳐줄 것도 없지만.
“정씨 집안 오인방이 새해 인사 온다고 했거든요.”
“응?”
“정동진 어르신이 좋아했던 것과 똑같은 구도로 식사자리 마련해 볼게요. 저녁 같이 먹어요.”
“오!”
할머니가 기대에 부푼 얼굴로 날 내려다보았다.
“그럼 나도 밥상머리 뒤집어엎는다?”
음?
할머니는 몹시 음흉하게 “우후훗!” 하고 웃었다.
“우리 동진이 성질머리 알잖니. 내가 그게 얼마나 부러웠는데.”
“…….”
“잠깐. 너희 집 식탁은 이태리제 대리석 식탁이었나?”
할머니는 작년에 큰맘 먹고 바꿨다던 16인용 원목 식탁을 톡톡 두드리며 웃었다.
“너희 집 식탁도 이걸로 바꿔줄까? 이 정도면 할미 잘 들어엎을 자신 있는데.”
“하지 마!”
할아버지가 뒷목을 잡았다.
“당신이 이리 과격하니 새해 첫날 같이 떡국 먹잔 소리가 안 나왔던 거 아냐!”
“아니, 우리 집 밥상머리 엎겠다는 것도 아닌데, 잔소리는!”
할머니는 몹시 불만 어린 표정으로 볼을 부풀렸다.
그때 얌전하게 물을 마시던 태성가 둘째 며느리가 새침하게 물었다.
“아버님, 그나저나 유공은 어떻게 되는 거죠?”
허허 웃던 할아버지가 웃음을 그쳤다.
떡국을 먹던 태성그룹 임원들도 숟가락질을 멈추고 조용히 이쪽을 돌아보았다.
태성의 둘째 며느리는 모른 척 말을 이었다.
“그렇잖아요. 신문과 방송에서 새벽부터 요란하게 떠들어대고 있는데, 이에 관한 논의는 전무한 실정이잖아요.”
태성의 큰며느리도 슬쩍 말을 보탰다.
“이대로 유공을 따로 운영하실 작정은 아니시겠죠?”
“전후 사정이야 어쨌건 그래도 태성이 인수하는 모양새인데, 유공도 태성의 지붕 아래로 들어와야 하는 것 아닐까요?”
첫째 큰아버지도 눈을 번뜩였다.
“계열사 흡수 통합을 하실 겁니까? 그렇게 되면 임원진 구성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유공의 임원들을 쳐내고 제 측근 수족들로 채워 넣겠다는 소리였다.
“유공의 직원만 5천 명이에요. 구조조정은 안 하실 겁니까?”
둘째 큰아버지도 같은 의미로 욕심을 드러냈다.
“태성의 이름을 달았는데, 계속 유공의 임원진들로 회사를 유지시킬 건 아니잖습니까?”
그러자 껄껄 웃으며 떡국을 먹던 계열사 임원들은 조용해졌다.
나는 속으로 작게 한숨을 쉬었다.
‘유공 이야기가 안 나올 수가 없지. 이게 웬 떡이냐 싶을 테니까.’
계열사 임원들 중에 몇 명이 눈치껏 슬쩍 말을 보탰다.
“태성자동차와 연계하면 시너지가 상당할 겁니다.”
첫째 큰아버지가 맡고 있는 태성자동차의 계열사로 넣어 달라는 소리다.
“유공의 핵심은 주유소 아닙니까. 이건 태성유통과 연관이 아주 깊습니다.”
태성유통과 태성식품은 둘째 큰아버지의 소관이었다.
첫째 큰아버지가 죽는소리를 내었다.
“석유파동 때문에 태성자동차가 위험하다는 거 아시죠? 이럴 때일수록 확실한 돌파구, 명확한 타개책이 필요합니다.”
석유파동 때문에 서방 선진국들의 자동차 산업이 도미노처럼 줄도산을 맞고 있는 실정이다.
“우광자동차와 우광중장비를 합병하여 덩치를 키운 탓에 진짜 죽기 딱 직전입니다. 아버지, 도와주세요.”
둘째 큰아버지도 지지 않고 달려들긴 마찬가지였다.
“올라버린 기름값 때문에 길바닥에 돈 뿌리느라 허리가 휘는 건 우리 태성유통도 마찬가집니다.”
기름값이 오르면서 물류 수송에 드는 비용이 많아졌다.
“더구나 우광과의 협력 관계가 누구 덕분에 끊어진 탓에 해외 수출로도 망가진 터라, 태성유통은 진짜로 캐시 카우가 절실한 상황입니다.”
탕!
고모가 눈을 부릅뜨면서 물잔을 내려놓았다.
“작작들 좀 탐내요. 유공을 인수하는 데 힘 보탠 것은 쥐뿔도 없는 주제에, 지금 무슨 소리들을 하는 거예요?”
두 며느리들은 방긋 웃으며 조곤조곤 말했다.
“어머, 아가씨. 그렇게 말씀하시면 섭섭해요. 우리도 유공 인수를 위해 물밑에서 얼마나 공을 들였는데요.”
“친정까지 동원해서 태성에게 유리한 여론을 조성한 데다, 정재계 유명인사들을 만나 설득하고 다니느라 얼마나 바빴다고요.”
아버지가 표정을 굳히고 입을 열려고 할 때, 고모가 손을 들어 막았다.
“그래서 대통령 각하께 유공의 지분을 받아 온 사람이 누구예요?”
고모의 뾰족한 목소리는 딕션도 좋게 카랑카랑하게 귀에 꽂혔다.
“걸프사와 직접 협상해서 유공의 지분 인수 계약서에 서명한 사람이 누구예요?”
고모가 아버지를 가리켰다.
“그거 우리 성준이거든요!”
고모가 딱 잘라 말했다.
“우리 아버지 원칙 몰라요? 공을 세운 만큼 포상한다! 양심도 없어, 정말!”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둘째 큰아버지였다.
“막말로 그건 성준이가 부회장이라서 면 세워주느라 그런 것이고.”
둘째 큰아버지는 아버지를 돌아보았다.
“어쨌거나 성준이의 이름을 내세워 결론 난 일이니 그건 성준이 공이라고 치자. 그래도 이걸 정혁이한테 넘겨주는 건 아니지!”
“뭐? 유공을 정혁이한테 준다고?”
첫째 큰아버지도 깜짝 놀라서 아버지를 돌아보았다.
며느리들은 물론이고 할머니까지 깜짝 놀라 돌아보긴 마찬가지였다.
태성그룹 임원들도 말없이 우리를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얼굴로 덤덤하게 말했다.
“이 또한 이미 아버지께서도 약속하신 일입니다만?”
“뭐? 아버지가?”
“회장님께서요?”
다들 이제는 할아버지를 돌아보았다.
할아버지는 떡국을 먹다 놀라 쿨럭쿨럭, 사레 걸린 기침을 토했다.
오만 가지 추측이 가능한 복잡한 표정을 한 채, 좀처럼 기침을 수습하지 못하신다.
아버지가 또 한 번 덤덤하게 말했다.
“정혁아.”
“네.”
나는 재빨리 동전 지갑을 열었다.
할아버지가 내게 써줬던 황금빛 각서!
아버지는 그걸 태성그룹 임원들에게 들어 보였다.
“정혁이에게 태성건설 주식 대신 다른 회사, 그중에서도 인수합병하는 회사를 내어주기로 합의하신 각서입니다.”
“설마…….”
“이 회사에 관한 모든 지분을 정혁이의 몫으로 보장하고, 태성의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 추진할 것을 약속하셨죠.”
“……!”
다들 입을 떡 벌리고 아버지가 든 각서만 보았다.
그건 할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쿨럭!”
할아버지의 기침 소리는 더욱 커졌다.
흔들리는 동공으로 날 돌아보았다.
“설마 이미 그때 여기까지 내다보고 각서를 받아둔 건……?”
나는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할아버지는 뒷목을 턱 잡았다.
“아이고야, 그래서 그때부터 벌써 유공, 유공 했었구나!”
어쩌다 보니 운 좋게 술술 풀려 버렸다.
처음 계획했을 때만 해도 유공을 인수할 속셈으로 돈세탁을 위해 JH투자를 세웠다.
투자금을 유치하기 위해 거물은행과 손잡았고, 그래도 부족한 자금은 외국 차관으로 해결할 생각이었는데.
‘정부의 부동산 규제 정책 덕을 이렇게 보네?’
건설주 파동 당시 다른 건설사들이 와르르 무너질 때.
우리 태성만 중동 건설 호외에 힘입어 독보적으로 쭉쭉 치고 올랐다.
아부다비 국제공항 건설은 물론 주베일 산업항 도시 건설 뉴스가 터진 데다, 지하철 2호선 공사와 광양의 종합 제철소 건설 호재까지 맞물리면서.
태성건설은 우광건설까지 집어삼키고 크게 성장했다.
지금은 명실공히 대한민국 건설업계 최고의 기업으로 우뚝 섰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정혁이한테 유공을 넘긴다는 소리가 나와!”
둘째 큰아버지는 버럭 외쳤다.
“쟤 이제 고작 아홉 살이야!”
“일단은 지분만 받겠습니다. 그리고 경영에 관해서도 너무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왜? 설마 네가 맡겠다는 소리는 아니겠지?”
“필요하다면 맡아야겠죠.”
그룹 전체에 관련된 일을 총괄 처리해야 할 부회장이?
“하지만 굳이 제가 맡지 않아도 딱히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왜?”
“마침 이에 관해 대통령 각하께서 조건을 거셨기 때문입니다.”
“조건?”
“그럼 설마 맨입으로 유공을 넘겨주셨겠습니까?”
내 그럴 줄 알았다!
할아버지가 깜짝 놀라 물었다.
“각하께서 내건 조건이란 게 뭐냐?”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유공 김병식 사장의 자리를 마련해 줄 것.”
알짜배기 공사 사장 자리를 맡았다는 것은 대통령의 측근 중 한 명이라는 소리다.
전관예우 차원에서도 그렇고, 방패막이 차원에서도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다.
그러니 할아버지뿐만 아니라 태성그룹 임원들도 모두 당연한 소리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둘째, 유전 개발이 가능한 채굴 기술을 확보할 것.”
“채굴 기술?”
“유전 개발을 조건으로 대통령 각하께 1억 달러를 지원받았잖습니까.”
태성그룹 임원들은 ‘아!’ 하고 크게 탄식했다.
수군거리는 걱정이 작게 뒤따랐다.
“역시 그 깐깐하신 양반께서 1억 달러를 꽁으로 내놓으실 리가 없지요.”
“쉽지 않겠는데요. 유공엔 유전 개발에 관한 채굴 기술은 없는 것으로 압니다.”
그야 대한민국에서는 석유가 나지 않으니까.
유공은 중동의 원유를 공수해 정유 및 공급하는 일을 맡아왔다.
“유전 개발이 가능할 정도면 세계적인 메이저 정유회사일 테고.”
“그런 정유회사들이 핵심 기술을 그냥 내어줄 리가 있겠습니까.”
“막대한 로열티를 지급한다고 해도 협력을 바라긴 어려울 겁니다.”
“아무래도 대통령 각하의 뜻을 받드는 건 불가능에 가깝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들 몹시 아쉬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나는 씩 웃었다.
“이를테면 걸프사 같은 곳 말이죠?”
“그래.”
아버지도 나와 같은 얼굴로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