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391)
재벌집 만렙 아들-391화(391/416)
391. 아쉬운 건 누구?
딱!
할아버지는 못마땅한 기색으로 수저를 내려놓았다.
“새해 아침부터 힘 빠지는 소리들이나 하고 있어!”
할아버지는 자식과 며느리들은 물론 태성그룹 계열사 임원들까지 한눈에 훑어보았다.
“태성이 유공을 인수했다. 이 결과에 무슨 군소리들이 이리 많아?”
할아버지는 딱 잘라 말했다.
“대통령 각하의 뜻에 따라 유공의 사장 자리엔 김병식 사장을 그대로 앉혀둘 생각이다. 여기에 이의는 받지 않겠다.”
태성그룹 임원들도 반발하지 않았다.
그건 마땅히 그래야 하는 일이었으니까.
“유공을 태성정유로 바꾸는 과정에서 구조조정과 임원진 교체 등 잡음이야 있겠지만, 그건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하는 일이니 그러려니 해야지.”
“누가 유공을 인수했다고 불만이랍니까?”
첫째 큰아버지가 불퉁한 소리를 내었다.
“유공을 정혁이에게 주겠다니까 이러는 거 아닙니까?”
“줄 만하니까 주는 거지. 그리고 내가 주겠다는데, 왜 네놈들이 이러쿵저러쿵이야?”
“아버지!”
“이건 네 아버지로서가 아니라 태성그룹 총수로서 하는 소리야.”
할아버지는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그렇게 유공이 탐났으면 대통령 각하와 네가 직접 담판 짓지 그랬냐?”
“그건…….”
“그것도 아니면 걸프사와 직접 협상에 나섰어야지!”
탕!
할아버지는 주먹으로 식탁을 내려쳤다.
“담판을 지어야 할 때에는 머리카락 하나 안 보이던 놈들이 유공을 가져왔다니까 인제야 달려들어 밥그릇 싸움이나 하려고 해?”
둘째 며느리는 조곤조곤 얘기했다.
“찬물도 위아래가 있듯이 밥그릇도 배급 순서는 있는 법이잖아요.”
“여기가 북한도 아닌데, 내 집에서 배급 순서를 따져서 뭐 하려고?”
“아들자식 다 건너뛰고 아홉 살짜리 막내손자한테 유공을 덥석 물려준다고 하는데, 그걸 어떻게 가만히 두고 봐요?”
둘째 며느리는 생긋 웃었다.
“자식뻘을 건너뛰고 손자뻘 증여라고 해도 이건 순서가 아니죠.”
“맞아요, 아버님. 정혁이 위로 인경이, 의경이, 예혁이, 지혁이, 신혁이가 줄줄이 있는데, 어떻게 콕 짚어서 정혁이한테만 유공을 몰아줄 수가 있어요?”
“정말 섭섭해요, 아버님.”
할아버지는 콧방귀를 뀌었다.
“섭섭해도 할 수 없다. 바랄 걸 바라야지!”
할아버지는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슥 돌아보았다.
“태성이란 이름을 달게 된 계열사라면 누가 어떻게 가져오든 가족이란 이름으로 나눠 받겠다, 이런 뜻이냐? 이게 유산 상속 대상인 줄 알아?”
할아버지는 입가를 닦았던 냅킨을 식탁에 내던졌다.
“그럼 다음에 성준이가 또 계열사를 늘린다면 이 꼴을 또 봐야 한단 소리냐? 착각을 해도 유분수지!”
할아버지가 태성그룹 임원들을 돌아보았다.
“공을 세워서 받은 포상까지 뜯어먹겠다고? 일없다! 성준이가 유공을 가져왔으니, 유공은 성준이 뜻대로 맡길 생각이다!”
탕!
“성준이가 걸프사를 가져와도 그건 마찬가지야! 넘볼 걸 넘봐!”
큰아버지들은 찍소리도 못 하고 입을 다물었다.
반면 두 며느리들은 입을 삐쭉 내밀었다.
“성준 도련님만 너무 챙겨주시는 거 아닌가요?”
“형들 제치고 부회장 자리를 준 것도 엄청 큰데, 정혁이한테 유공까지.”
“아버님, 정말 너무하세요.”
“너무하기는 뭐가 너무해?”
할아버지가 눈을 부라리며 돌아보았다.
“주제도 모르고 남의 공을 탐내는 놈이 있으면 내가 그놈 입에 넣어주었던 것까지 도로 빼앗아 올 테니 그런 줄이나 알아!”
“네?”
“다음에 또 이렇게 나오면 대준이는 태성자동차를, 기준이는 태성유통을 내놔야 할 거란 경고니까 똑똑히 새겨들으란 소리야!”
“……!”
떡국을 먹다 떨어진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큰아버지 내외들은 경악성을 토했다.
“말 한번 꺼내 봤기로서니, 그 대가로 태성자동차를 가져가겠다고요?”
“어떻게 이러실 수가 있어요? 지난번에 태성식품도 반납했는데, 이젠 달랑 하나 남은 태성유통까지 내놓으라고요?”
“왜? 아깝냐?”
할아버지는 코웃음 쳤다.
“네놈들 입에 물려준 그것들, 내가 뼈 빠지게 키워서 준 것들이다!”
“아버님!”
“똑똑히 들어! 네놈들이 태성자동차, 태성유통을 차지하는 데 내 자식이란 이유 말고 뭐가 더 있었냐?”
“아버지.”
“하지만 유공은 달라. 이건 성준이가 뼈 빠지게 굴러서 가져온 거야.”
할아버지는 새로 냉수를 따라 벌컥벌컥 마셨다.
“내 자식이라서가 아니라, 대통령과 걸프사 사람들과 싸워서 얻어낸 전리품이란 말이다! 그런 걸 감히 눈독 들여?”
탁!
“내가 네놈들 입에 물려주었듯이, 네놈들도 네 자식들 입에 계속 태성자동차, 태성유통을 물려주고 싶거들랑 처신 똑바로 해!”
두 아들과 며느리들을 향하는 눈엔 경멸과 한심함이 가득했다.
“내가 준 것들은 언제든 내가 거둬 갈 수 있다는 것을 왜 몰라? 이런 한심한 것들 같으니라고, 쯧. 정혁아!”
할아버지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워렌 버퍼가 준 거 내놔 봐라!”
“네, 할아버지.”
나는 동전지갑을 열어서 검은색 명함을 꺼냈다.
“이게 뭔지 알아보는 사람?”
할아버지는 검은색 명함을 높이 들어 올렸다.
“버크셔 헤서웨어사 대표, 워렌 버퍼의 명함이다!”
“……!”
다들 놀란 얼굴이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워렌 버퍼의 시크릿 블랙 카드다! 나도 지금껏 못 받아본 명함!”
“그 말은…, 설마……!”
“그래, 버크셔 헤서웨어사에서 보내는 5월 주총 초대장이다!”
“……!”
여기저기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5월 주총이라면 미국과 유럽의 내로라하는 투자자들 중에서도 선택받은 일부만 참석할 수 있다는 곳 아닙니까?”
“중동의 석유국 재단에서도 몇 명 초대받지 못한다고 들었는데요.”
“그런 곳에 태성이 초대를 받아 간다는 말입니까?”
“설마 차성준 부회장님께서 그걸 받아 오신 건 아니겠죠?”
할아버지는 눈을 부릅떴다.
“내가 아까 누구한테 직접 받았는지 다 봤으면서 왜 다들 모른 척이야?”
“서, 설마 정말로 정혁 도련님께서?”
“설마가 아니라 사실이야. 이건 우리 정혁이가 워렌 버퍼한테 직접 받아 왔어!”
“이럴 수가!”
큰아버지들과 큰어머니들이 놀란 눈으로 날 돌아보았다.
태성그룹 임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고작 이제 아홉 살 된 도련님께서 버크셔 헤서웨어사의 5월 주총에 초대받았다는 겁니까?”
“어떻게 그런 일이…….”
“이건 정말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탕!
할아버지는 식탁을 내려쳤다.
“상식 따지기 전에 결과부터 봐! 이게 누구 거라고?”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정 그렇게 따지고 싶거든 워렌 버퍼한테 가서 직접 따지든가!”
워렌 버퍼는 만나고 싶다고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여간에 보는 눈은 없는 것들이 말은 더럽게 많아서는. 쯧!”
할아버지는 내게 명함을 돌려주었다.
“사냥은 집 안에서 하는 게 아니야. 밖에 나가 먹을 것을 구해야지. 왜 새해 첫날부터 집안싸움을 하려 들어?”
떡국을 먹으러 모인 임원들의 눈도 명함에 따라 내게 모아졌다.
나는 얌전히 명함을 받아 챙겼다.
할아버지는 태성그룹 계열사 임원들을 돌아보았다.
“워렌 버퍼가 우리 태성에 투자를 약속했다.”
“얼마나 투자하겠답니까?”
“정확한 액수는 버크셔 헤서웨어사의 5월 주총에서 결정하기로 했고.”
소리 없는 경악이 퍼져 나갔다.
“버크셔 헤서웨어사의 5월 주총은 주주들에게 결과를 보고하고, 향후 기업 운영 방안을 논하는 자리가 아닙니까?”
“그런 곳에서 태성의 투자금액을 결정한다는 말입니까?”
“그건 태성에 대한 투자를 논하는 일이 버크셔 헤서웨어사 한 해의 운영 방향을 결정지을 만큼 중요한 일이라는 뜻입니다!”
“태성에 한두 푼 투자할 일이 아니란 소린데요?”
할아버지는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그러니 말이야. 그 워렌 버퍼를 데려와 태성에 투자할 마음이 들게 만든 사람이 누구라고?”
“……!”
할아버지가 날 직접 가리키기 전에, 태성그룹 사람들은 모두 나를 보았다.
그건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안 그래도 정혁이와 함께 조만간 미국에 다녀올까 했습니다.”
“미국에? 워렌 버퍼를 따로 만나러?”
“그보다 더 급한 일이 있어서 말입니다.”
아버지는 냅킨으로 입가를 닦아냈다.
“빠른 시일 내로 걸프사 인수에 관해 확실하게 마무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뭐? 걸프사 인수?”
여기저기에서 숨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 우리 태성이 천운으로 유공은 인수할 수 있었겠지만, 걸프사는 다르지요.”
“걸프사가 어디 보통 기업입니까? 현재 세계 시총 9위나 하는 거대 글로벌 정유기업입니다.”
“매일 130만 배럴의 원유를 처리하고, 65억 달러 상당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죠?”
“그런 회사를 어떻게 우리 태성이 넘봅니까?”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림도 없다는 투였다.
“유공을 10억 달러에 팔겠다는 놈들인데, 못 줘도 100억 달러는 받겠다고 나오지 않겠습니까?”
“그도 그럴 것이 가지고 있는 계열사까지 전부 쟁쟁합니다.”
“유전 개발과 정유는 물론 석유 화학 산업과 에너지 산업 전반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잖습니까.”
다 석유를 기반으로 하는, 시너지 효과가 좋은 산업들이었다.
첫째 큰아버지와 둘째 큰아버지가 유공을 탐내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걸프사 입장에서야 우리 태성에게 아쉬울 게 하나 없습니다.”
“반면 우리 태성은 걸프사에게 아주 많은 것들을 아쉬워해야 하는 처지이고요.”
“당장 어제 왔던 걸프사 협상단의 태도만 봐도 그렇잖습니까? 설득하기 쉽지 않을 겁니다.”
태성그룹 임원들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대통령 각하께서 내건 조건 때문이라면 꼭 걸프사가 아니어도 상관없지 않을까요?”
“이를테면 세븐 시스터즈라 불리는 록펠러 재단의 정유기업과 손을 잡는다거나.”
“그것도 쉽지 않을 겁니다.”
“그야 록펠러 재단의 정유기업들은 걸프사보다 더 아쉬울 게 없는 입장이니까요.”
탕탕탕!
할아버지가 손바닥으로 식탁을 내리쳤다.
“골치 아픈 소리는 이따 내 서재에서 마저 하기로 해. 떡국 다 불어 터지기 전에 얼른 먹자!”
“예, 회장님!”
다들 조용히 떡국을 먹기 시작했다.
부지런히 달그락거리는 식기 소리만 들려왔다.
할아버지는 아버지를 향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성준아, 대통령 각하께 지원받기로 했던 1억 달러는 없는 셈 쳐도 되니까 너무 부담 갖지 마라.”
“아버지, 그 일은 이미 얘기가 다 끝난 일 아닙니까.”
“어떻게 생각해 봐도 배보다 배꼽이 더 커서 그래.”
할아버지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1억 달러? 큰돈이지. 하지만 유전 개발 기술을 얻어내기엔 턱없이 부족한 푼돈이야.”
할아버지는 물끄러미 떡국을 내려다보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이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러니 대통령 각하께서 흔쾌히 1억 달러를 지원해 주겠다고 나선 것이겠지.”
할아버지는 냉수를 벌컥벌컥 마셨다.
“이건 워렌 버퍼가 나서도 안 돼. 그러니 우리도 안 되는 일은 안 되는 일로 두고, 최선을 다한 시늉만 하자.”
굳이?
나는 수저를 내려놓았다.
“가능하다면요?”
구구절절 설명과 설득을 하는 것보단 결과로 보여주는 게 더 빠르고 확실하지.
지지부진한 탁상 논쟁은 영 내 스타일이 아니라서.
“걸프사를 인수해 오면 되잖아요?”
“뭐?”
16인용 식탁에 앉아 있는 사람들 중 아버지와 나만 빼고 모두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정혁아, 그건 그렇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
“신문도 안 보셨어요?”
나는 대한일보 1면에 난 머리기사를 콕 짚어 읽었다.
“태성 앞에 걸프사 협상단이 쩔쩔! 유공을 순순히 내놓게 된 사연은?”
나는 씩 웃었다.
“아무래도 아쉬운 건 우리가 아니라 걸프사 쪽인 것 같지 않아요?”
그때 현관문을 벌컥 열고 심 사장이 헐레벌떡 뛰어들어 왔다.
“죄송합니다, 제가 좀 늦었습니다!”
“그거 신기한 일이네. 철두철미한 심원철이 지각을 할 때도 다 있고.”
태성그룹 임원들도 전부 의아한 얼굴로 뒤를 돌아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심 사장은 진절머리를 쳤다.
“거머리처럼 들러붙는 지긋지긋한 놈들을 상대하려다 보니,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됐습니다.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누가 새해 첫날부터 우리 심 사장을 이렇게 괴롭혔어?”
딩동딩동딩동!
새해 첫날부터 예고 없이 울리는 맑고 고운 초인종 소리!
심 사장은 혀를 찼다.
“걸프사 협상단이 여기까지 따라왔군요.”
“……!”
둘째 큰아버지가 떡국을 먹다 말고 수저를 툭 떨어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