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392)
재벌집 만렙 아들-392화(392/416)
392. 누추한 손님이 귀한 집에
딩동딩동딩동딩동!
초인종 소리가 아주 다급하고 간절해 보였다.
그러니 거실에 모여 떡국을 먹던 사람들이 자꾸만 현관 쪽으로 힐끔 곁눈질을 보낼 수밖에.
결국 ‘어떻게 할 거냐?’는 눈으로 할아버지에게 결정을 재촉했다.
할아버지는 황당한 얼굴이었다.
“걸프사 협상단이 새해 첫날 벽두부터 왜 우리 집에 찾아와?”
손수건으로 땀을 훔치는 심 사장을 바라보는 눈길이 따가웠다.
“용건이 뭐 있다고?”
“뭐긴 뭐겠습니까? 걸프사 사정 좀 봐달라고 저 지랄인 거죠.”
“뭘 봐줘? 걸프사의 사정을? 누가? 우리 태성이?”
“엄밀히 말하자면, 크흠!”
심 사장은 나를 힐끔 보더니, 모른 척 시치미를 뚝 떼었다.
16인용 원목 식탁에도, 태성그룹 임원들의 밥상머리 앞에도 펼쳐놓은 신문들이 여럿이었다.
“신문들은 잘 보셨습니까?”
“봤지. 지금까지 내내 이 이야기였어.”
“그렇다면 알고 계시겠군요.”
심 사장은 씩 웃었다.
“이번에 우리가 걸프사를 인수해 볼까 합니다.”
“푸흡!”
할아버지가 타는 속에 냉수를 마시다 말고 뿜었다.
“태성이 걸프사를? 그거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저 심원철이 지금껏 허튼소리 하는 거 보신 적 있습니까? 당연히 진심이지요. 이거 보이십니까?”
심 사장은 두 손 가득 무겁게 들고 온 여행 가방을 발끝으로 톡톡 건드렸다.
“어제 밤새도록 작성한 걸프사 인수 밑작업이라고 하면 이해가 빠르실까요?”
“뭐라?”
할아버지가 놀라서 부릅뜬 눈으로 여행 가방을 노려보았다.
심 사장은 ‘어쩔 수 없군.’ 하고 중얼거리며 여행 가방 지퍼를 쭈욱 잡아당겼다.
“맙소사, 이 많은 서류를 다……!”
“뭘 이 정도 가지고. 하하하!”
심 사장은 허리에 손을 척 얹으며 시원하게 웃었다.
하지만 눈가에는 짙은 다크서클이 한가득, 푸석푸석한 피부는 까칠해 보였다.
“이번에 우리 JH투자 사무실 식구들이 돌아와서 다행이지 뭡니까.”
심 사장은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어 보였다.
“우리 식구들을 안 돌려주셨으면 ‘올해는 진짜로 과로사로 뒈지겠구나!’ 싶었거든요. 하하하, 운이 좋았습니다.”
겸손한 말이었다.
이게 다 심 사장이 핵심 계열사 사장들을 앞에 두고 ‘우리 사무실 식구들을 돌려주지 않으면 나 사표 낼 거다!’ 하고 뜯어낸 귀중한 자원이었다.
과연 협상의 대가, 심 사장다웠다.
“심 사장, 이거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일이야?”
“뭐가 어떻게 돌아가기는요? 아주 잘 돌아가고 있지요.”
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
초인종 소리가 더욱 다급하고 간절해졌다.
심 사장은 지긋지긋하단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저걸 보면 모르시겠습니까?”
딩동딩동딩동!
“똥줄이 타는 쪽은 우리가 아니라 저쪽이거든요.”
“대체 저놈들이 우리한테 똥줄 탈 일이 뭐 있다고?”
할아버지를 비롯해 다들 의아하다는 얼굴로 심 사장을 돌아보았다.
“설마 협박했냐?”
“했죠.”
“뭐라고 협박했기에 저놈들이 저렇게 눈 돌아갔어?”
“수틀리면 걸프사를 조각조각 쪼개 팔아버린다고 했습니다.”
“뭐야?”
할아버지가 입을 떡 벌렸다.
그건 큰아버지들과 큰어머니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이 자리에 모인 태성그룹 임원들도 같은 얼굴로 심 사장을 보았다.
“대체 걸프사를 어떻게 쪼개 팔겠다고 그런 소리를 해?”
“바로 그걸 결정하기 위해서 미국 출장을 다녀올까 합니다. 부회장님께서 말씀 안 하셨습니까?”
“했어!”
할아버지가 냉큼 물을 따라 벌컥벌컥 마셨다.
속이 바짝바짝 타는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빠른 시일 내로 걸프사 인수에 관해 확실하게 마무리하겠다던 부회장님의 말이, 진짜였다고?”
“이럴 수가!”
태성그룹 임원들이 날벼락을 맞은 것처럼 화들짝 놀랐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게 되겠습니까?’ 하고 코웃음을 치던 사람들이었다.
“부회장님께는 걸프사를 상대할 방법이 있다는 뜻입니까?”
“대체 어떻게요?”
“걸프사의 약점이라도 쥐고 계십니까?”
탁!
할아버지는 물잔을 내려놓았다.
“지금은 임원들에게 경과보고를 할 때가 아니라, 걸프사의 입장을 들어볼 때인 것 같다. 대문 열고 손님들 모셔 와!”
“예, 회장님!”
고 실장과 김 비서가 즉시 일어나 명을 받았다.
* * *
걸프사 사람들은 저택 현관에 발을 들이자마자 깜짝 놀라 주춤했다.
“뭐지? 이 많은 사람들은?”
“모두 같은 음식을 먹고 있는데?”
“이거 우리가 타이밍을 잘못 맞춘 거 아닌가?”
걸프사 협상단장은 딱 잘라 말했다.
“지금 우리가 타이밍 따지고 있을 때야? 당장 걸프사가 해체되냐 마냐 하는 기로에 서 있는데?”
걸프사 사람들은 입술을 깨물며 우르르 거실로 들어왔다.
그러더니 가장 상석에 앉아 떡국을 먹고 있는 아버지와 나를 발견했다.
털썩.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대뜸 무릎부터 꿇었다.
“살려주십시오!”
“……!”
태성그룹 계열사 임원들은 숨을 들이마셨다.
“걸프사가 지금 살려달라고 한 거 맞지요?”
“우리 태성에게 무릎 꿇고…… 허어!”
걸프사 협상단은 우렁차게 외쳤다.
“까라면 까겠습니다!”
“구르라면 구르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걸프사를 조각내서 되파는 짓만큼은 말아주십시오!”
투욱.
큰아버지가 놀란 나머지 수저를 떨어뜨렸다.
실눈을 휘며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던 둘째 큰아버지도 눈을 부릅뜨며 입을 벌렸다.
두 큰어머니들은 숨을 들이마시며 얼음처럼 굳었다.
“저희 걸프사의 힘은 응집과 덩치에서 나옵니다!”
“걸프사를 쪼개 팔면 가격은 조금 더 받을 수 있을지언정 절대로 지금과 같은 걸프사 파워를 자랑하긴 어려울 것이란 뜻입니다!”
그 도도하고 콧대 높게 똥배짱을 부리던 걸프사 사람들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마치 방문판매 샐러리맨이 된 것처럼 자사 제품과 자사의 운영에 관해 줄줄이 어필하기 시작했다.
“저희 걸프사는 휘발유와 디젤에서 항공 및 해양 연료에 이르기까지 세계 최고의 동력 에너지 공급처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걸프사의 윤활제가 유명한 건 아시죠? 자동차 산업 및 해양, 항공 부분에서 폭넓게 쓰이는 제품들로, 엔진오일, 유압유, 그리스 및 기어오일까지 취급합니다!”
암만 생각해 봐도 이건 우리 태성이 걸프사에 보일 법한 태도였지, 그 반대는 아니었다.
그러니 이 모습을 본 태성그룹 임원들은 말문이 막혀 턱만 툭 떨어뜨렸다.
“저희 걸프사는 정유 및 석유화학 분야만이 아니라 특수 산업 분야에서도 두각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특수 화학물질, 냉각수, 브레이크액과 변속기액에 관해서라면 걸프사가 세계 최고라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주유소 운영에 관해서라면 무려 100년에 달하는 노하우를 가지고 있지요!”
“세계의 다양한 지역에 걸쳐 주유소 네트워크를 운영하여 고품질 연료와 윤활유는 물론, 편의점, 세차장, 자동차 정비 시설과 같은 추가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걸프사가 힘주어 자사를 어필하면 할수록.
태성그룹 임원들의 표정이 묘하게 바뀌었다.
“걸프사가 왜 저러는 걸까요?”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그야 내가 걸프사의 지분을 50% 이상 확보했다는 것을 아빠에게만 알려줬으니까.’
나는 호시탐탐 끼어들 기회를 엿보며 눈을 번뜩이는 큰아버지 내외들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정적이 흘렀던 것도 잠시, 태성그룹 임원들 사이에서 수군거림이 퍼져 나갔다.
“몇 년 전에 걸프사 회장을 포함해 고위 임원들이 뇌물 비리로 대거 잘려 나간 이후, 자산 포트폴리오 실적이 저조하다고 듣긴 했습니다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걸프사의 자본과 시설 규모가 어마어마한데, 고작 그것 때문에 이렇게 저자세로 나오겠습니까?”
“현재 시총으로만 따져도 세계 9위 기업이고, 인수 위험성도 거의 전무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요.”
“그런데 저 태도만 봐서는 진짜로 우리 태성이 걸프사를 인수하거나 쪼개 팔까 봐 겁을 잔뜩 먹은 것 같잖습니까?”
태성그룹 임원들의 의아함은 서로에게 향했다.
그러다 점점 한 사람에게 쏠리기 시작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라면 역시 한 사람뿐이겠죠?”
“태성의 브레인!”
아버지를 바라보는 태성그룹 임원들의 눈이 화르륵 불타올랐다.
그 불길에 걸프사 사람들이 기름을 끼얹었다.
“태성의 브레인께서 이번 사우디 유전을 얻었다는 사실, 저희도 들어 알고 있습니다!”
“저희 걸프사의 유전 탐사 및 개발 노하우라면 사우디 유전 개발에 큰 보탬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우리 걸프사는 계열사들끼리 매우 유기적인 구조로 얽혀 돌아가고 있으므로!”
“이대로 걸프사의 기술과 시설을 투자하는 편이 계열사를 쪼개어 내다 파는 것보다 훨씬 이득이라고 생각합니다!”
할아버지는 걸프사 사람들과 아버지를 번갈아 보았다.
아버지는 묵묵히 걸프사 사람들이 하는 말을 귀담아들었다.
조만간 소집할 걸프사의 임시 주총에서 귀하게 쓰일 정보라 여겼기 때문일 터.
할아버지가 내 어깨를 툭 붙잡았다.
“이거 다 네 그림이냐?”
“제 그림이면요?”
나는 방긋 웃었다.
“걸프사도 제 몫으로 챙겨주시려고요?”
“허!”
할아버지는 할머니 무릎 위에 앉아 있는 나를 홀랑 들어서 할아버지 무릎 위에 앉혔다.
“역시 금쪽같은 내 새끼! 그래, 아홉 살이면 이 정도는 되어야지! 으하핫!”
할아버지는 내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신통방통한 녀석. 대체 걸프사 놈들은 어떻게 구워삶은 것이냐?”
“구워삶기는요. 그런 거 없는데요?”
나는 콧방귀를 뀌었다.
“협박했다니까요.”
“그러니까 어떻게?”
“수틀리면 걸프사를 쪼개 판다고 으름장을 놨어요.”
심 사장한테 들었는데 또 물어보다니.
그만큼 할아버지에겐 믿기지 않는 상황이란 뜻이었다.
‘물론 나는 걸프사를 쪼개 팔 생각 따윈 없지만.’
걸프사의 위치와 명성이 하루아침에 생긴 것도 아니고.
걸프사 사람들의 어필처럼 덩치와 규모에서 오는 시너지 효과와 영향력은 무시할 게 못 된다.
“이번에 미국에 가면 임시 주총을 열어서 걸프사 운영진들을 싹 다 물갈이할까 해요.”
“뭐라고?”
할아버지가 눈을 느리게 꿈뻑거렸다.
“걸프사의 임시 주총을 네가 어떻게 열겠다는 거냐?”
“왜 못 열어요? 이래 봬도 제가 걸프사 대주주거든요?”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우호 지분까지 52% 확보했어요.”
“뭐, 뭐라고?”
“하려고만 들면 적대적 M&A까지 가능하다는 말이에요.”
“……!”
할아버지는 입을 떡 벌렸다.
떡 벌린 입에서 비명과 같은 환호성이 새어 나가기에.
나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할아버지의 입을 탁 틀어막았다.
“걸프사 사람들이 왜 저 난리인지 이해하셨죠?”
끄덕끄덕끄덕끄덕!
“지금 저한테 어떻게 된 거냐고 따져 물을 자리가 아닌 것도 아시죠?”
미친 듯이 끄덕이던 할아버지의 고개가 우뚝 멈췄다.
의아함이 가득 담긴 눈으로 날 바라보시기에.
나는 턱 끝으로 아버지를 가리켰다.
“지금 이 자리는 우리 아빠가 부회장 자격을 검증받는 자리잖아요.”
우리 아버지가 부회장 자리에 앉은 후 처음으로 맞는 새해 인사 자리거든.
할아버지는 피식 웃었다.
“이만하면 네 아빠의 자격 검증이야 차고 넘칠 것 같은데. 이미 연판장도 제법 많이 받아뒀다면서.”
“기회가 될 때마다 확실하게 눈도장 찍어야죠. 그래야 우리 아빠 행보가 편해지잖아요.”
나는 망연자실해서 넋 놓고 걸프사 협상단의 간절한 어필을 듣고 있는 두 큰아버지 내외들을 바라보았다.
“어설프게 잘하면 불만만 많아지고, 불만이 많아지면 밥그릇 싸움까지 지저분해지는 거예요.”
“아……!”
할아버지는 다시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씁쓸한 웃음이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방금 전까지만 해도 유공을 나눠 먹겠다며 달려들던 자식들의 추태를 똑똑히 목격했기 때문이다.
“정혁 도련님, 그렇게 멀리 돌아가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심 사장님이 슬쩍 몸을 기울여 속삭이듯 말했다.
“수틀리면 걸프사만 따로 빼서 JH투자 소속으로 두면 되는 거 아닙니까.”
내 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