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394)
재벌집 만렙 아들-394화(394/416)
394. 응. 문전박대
주한미국 대사란 소리에 다들 깜짝 놀라 주목했다.
“주한민국 대사가 여기까지 찾아왔다고요?”
“아니, 무슨 용건으로요?”
“사전에 연락은 하고 온 거랍니까?”
태성그룹 임원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반면 걸프사 사람들은 죽다 살아난 것처럼 반색했다.
“오! 주한미국 대사께서 우리의 부름에 응해 여기까지 와주셨군요!”
“미국이 발 빠르게 대처해 주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미국 기업의 보호는 주한미국 대사의 의무이기도 하니까요. 후후후.”
내 이럴 줄 알았지!
‘걸프사는 새해 첫날 아침부터 태성그룹 총수의 저택을 찾아올 정도로 다급했던 만큼 도움의 손길도 간절했겠지.’
걸프사 사람들이 태성그룹 임원들 앞에서 구구절절하게 걸프사의 쓸모와 위상을 읊어대며 선처를 호소하는 모습만 봐도 견적이 나온다.
그들은 기업을 지키기 위해 통사정을 해야 하는 처지였다.
당연히 제일 먼저 미국 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했을 것이다.
‘주한미국 대사관을 통하면 미국 정부에 걸프사의 곤란함을 다이렉트로 호소할 수 있을 테니까.’
미국에서 손꼽히는 거대한 정유회사가 위태롭다는 소식을 들으면 미국 정부도 이를 모른 척하기 어렵다.
그렇게 걸프사는 주한미국 대사관을 찾아 호소했을 테고, 주한미국 대사는 이에 응하기로 했을 터.
반면 태성그룹 임원들은 당황하여 어쩔 줄 몰랐다.
“이건 너무 무례한 일 아닙니까?”
“어떻게 새해 첫날 휴일 아침에 남의 집을 방문할 생각을, 그것도 방문 편지 한 장, 양해 전화 한 통도 없이!”
“이렇게 무턱대고 막무가내로 들이닥칠 만큼 태성그룹을 우습게 보는 겁니다!”
“정식으로 항의해야 합니다! 주한미국 대사고 뭐고, 우리가 상대해야 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할아버지는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시끄럽다. 다들 흥분을 가라앉혀라.”
“회장님!”
“아무리 주한미국 대사라고 해도 태성그룹 일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할아버지는 원목 식탁을 탕 내리쳤다.
“그러니 진정들 좀 해! 누가 보면 태성이 걸프사에 넘어가는 줄 알겠다!”
그제야 태성그룹 임원들은 입을 꾹 다물었다.
하지만 엉덩이가 들썩거리는 게 꼭 발등에 불 떨어진 사람처럼 안절부절못했다.
할아버지는 작게 혀를 찼다.
“쯧, 이거 아무래도 새해 첫날부터 난장판이 벌어질 모양이다.”
할아버지가 불안한 눈으로 현관문 방향을 힐끔거렸다.
다급하게 뛰어온 김 비서와 달리 주한미국 대사는 느긋한 행보를 과시했다.
그도 그럴 게, 그 사람 입장에서는 아쉬울 것도, 무서울 것도 없는 상황이었다.
통보는 했으니, 집주인의 마중을 기다리며 체면을 차리고 있겠다는 뜻이다.
발등에 불 떨어진 건 걸프사지, 주한미국 대사는 아니란 말씀.
“잘됐네요.”
나는 수저를 조용히 내려놓았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떡국 먹다 체한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다.
“잘되기는? 지금 진퇴양난의 상황이야.”
할아버지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내가 마중을 나가는 게…….”
“이대로 그냥 돌려보내시죠?”
“뭣이?”
할아버지는 입을 떡 벌렸다.
기함하며 나를 돌아보는데, ‘네가 제정신이냐?’ 하고 되묻는 눈빛이었다.
“지금 주한미국 대사를 문전 박대하란 뜻이냐?”
“네.”
할아버지는 말문이 막혔는지, 헛웃음을 흘렸다.
그건 심 사장을 비롯해 아버지와 큰아버지들, 태성그룹 임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정말로 주한미국 대사를 이대로 쫓아내시려고요?”
“뒷감당이 가능하겠습니까?”
“분명 이 일에 관해 대통령 각하께서 크게 한 소리 하실 텐데요?”
“크흠, 아까 제가 흥분해서 소리친 말은 잊어주십시오. 그저 홧김에 꺼내본 말이니 신경 쓰실 것 없습니다.”
태성그룹 임원들이 쭈뼛대면서 할아버지 눈치를 보았다.
반면 할아버지는 난처한 얼굴로 내 눈치를 보았다.
“마음 같아서는 나도 그냥 돌려보내고 싶지. 하지만 그럴 수가 없는 처지야.”
“불청객이잖아요. 집주인이 안 만나주겠다면 그만인데요?”
나는 배를 쭉 내밀었다.
“꼬우면 경찰에 신고하시든가!”
“…….”
“법대로 하라고 해요, 법대로!”
그게 한국법이든, 미국법이든, 국제법이든 상관없다.
함무라비 법전은 물론 선사시대 법전을 들이대도 결과는 같을 테니까.
하지만 할아버지는 ‘아이고!’ 소리를 내며 지끈대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그래서 나는 씩 웃었다.
“중요한 건 명분이거든요.”
“명분?”
“사전에 방문 연락도 없이 대뜸 찾아온 불청객을 집주인이 두 팔 벌려 환영해야 할 의무는 없어요. 요컨대 거절할 명분은 충분하다는 거죠.”
여전히 난처한 얼굴을 하는 할아버지였다.
어쩔 수 없지.
나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풀어서 설명해 주기로 했다.
“대통령님은 유공의 일에 미국 정부가 개입하는 것을 못마땅해하세요. 그러니 할아버지가 주한미국 대사를 이 집 안으로 들이면 오히려 의심을 사게 될 거예요.”
“뭐? 귀한 손님을 대접한 것뿐인데 왜 의심을 사?”
“걸프사와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보일 테니까요.”
할아버지를 비롯해 정치질엔 영 젬병이라는 태성그룹 사람들이었다.
다들 놀란 얼굴로 귀를 쫑긋 세웠다.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유공의 인수 가격이 터무니없이 낮았어요.”
적정가 4억 달러짜리 기업의 지분 50%를 두고 통 크게 10억 달러를 내질렀던 걸프사.
그런 걸프사가 손바닥 뒤집듯이 말을 바꿔서 2천5백만 달러라는 똥값에 손을 털었다.
대통령은 이 소식을 듣고 크게 기뻐했지만, 반대로 말하면 상식 밖의 결과에 의심을 살 여지가 몹시 높다는 뜻도 된다.
“당연히 뒤로 은밀하게 오가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잖아요.”
의심은 정치인들의 생리와도 같은 병이다.
더러운 뒷공작과 수작질이 난무하는 판이거든.
“일이 더럽게 꼬이면 억울하게 매국 기업으로 몰릴 수도 있어요.”
“허어!”
“그게 아니라면 주한미국 대사란 귀하신 분이 새해 첫날 아침부터 그간 왕래가 없던 태성그룹 총수 저택을 직접 찾아오는 수고를 들일 이유가 없잖아요?”
“맙소사!”
할아버지와 태성그룹 임원들이 동시에 입을 떡 벌렸다.
‘말도 안 된다!’, ‘그럴 수가 없다!’, ‘그건 억측이다!’, ‘설마 그러려고?’ 등의 소리가 뾰족하게 오갔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진짜로 난리가 날 일이로군. 각하의 성정으로 보건대…….”
“태성그룹은 간판도 보전하지 못하고 그날부로 풍비박산 나는 거죠.”
“……!”
“그러니 할아버지는 보란 듯이 확실하게 못 박아주세요.”
나는 손가락으로 현관문 쪽을 가리켰다.
“걸프사가 주한미국 대사관에 개입을 요청했지만, 태성은 이를 강경하게 거부했다! 어때요?”
“으음!”
할아버지의 고민이 깊어졌다.
태성그룹 사람들도 다들 목을 쭉 빼어 할아버지만 바라보았다.
그건 걸프사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집주인의 허락 없이는 미국 대사의 도움을 받을 길이 요원했으니까.
“어쩔 수 없지.”
할아버지는 결단을 내렸다.
“현관문 잠가라!”
“예, 회장님!”
태성그룹 경호를 담당하고 있는 고 실장이 크게 대답했다.
성큼성큼 걸어가는 발소리가 바닥을 쿵쿵쿵 울렸다.
“…….”
침묵이 내려앉았다.
여러 가지로 복잡한 의미가 담긴 침묵이었다.
걸프사 협상단장은 체념한 얼굴로 아버지를 올려다보았다.
“…….”
아버지는 입을 다물고 생각에 깊이 잠겨 있었다.
그러자 힐끔거리며 아버지와 걸프사 사람들을 번갈아 보던 두 큰아버지가 벌떡 일어났다.
걸프사 사람들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간 두 사람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우리끼리 보다 깊은 대화를 나눠 보실까요?”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기엔 아무래도 거실보다는 게스트룸이 낫겠죠?”
두 큰아버지의 눈짓에 큰어머니들과 소속 계열사 임원들이 눈치껏 따라붙었다.
벌떡!
걸프사 협상단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전화 한 통 쓸 수 있을까요?”
“아, 물론이죠.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요. 가시죠.”
걸프사 사람들도 벌떡 일어나 후다닥 그 뒤를 따랐다.
“…….”
남겨진 태성그룹 사람들은 떡국이 다 불어 터지거나 말거나.
유공과 걸프사, 그리고 태성과 청와대에 관해 수군수군 떠들기 시작했다.
나는 할아버지 무릎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잠깐!”
할아버지가 깜짝 놀라 내 팔을 붙잡았다.
“떡국 먹다 말고 갑자기 어디를 가려고?”
나는 할아버지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통 크게 내지른 진짜 이유를.
“주한미국 대사랑 따로 나눌 말이 있어서 그래요.”
“뭐야?”
“아무리 불청객이라고 해도 이렇게 문전 박대하면 좋은 소리 나오기 어렵잖아요?”
아버지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나 보다.
옷매무새를 정리하다가 깜짝 놀라 고개를 드시는 걸 보니.
“태성가를 찾아주신 손님은 정중하게 맞이해야죠. 매너 있게.”
나는 큰아버지 내외를 슬쩍 곁눈질했다.
“여긴 보는 눈들이 많아서요. 우리끼리 은밀한 말을 나누기엔 적당한 자리는 아니거든요.”
할아버지는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돌아보았다.
“주한미국 대사를 만나 무슨 은밀한 말을 나누려고?”
“걸프사의 윗대가리들보다 먼저 수작질을 부려 보려고요.”
“수작질?”
할아버지는 기함했다.
그래서 나는 뒷말을 덧붙였다.
“주한미국 대사는 미국 정부와 다이렉트로 연결이 되어 있잖아요?”
“그렇지.”
“걸프사 회장이 직접 미국 정부와 접촉해서 영향력을 행사하기 전에 우리가 한발 앞서서 걸프사의 손발을 묶어버려야죠.”
“……그게 된다고?”
“안 될 것도 없잖아요?”
나는 우후훗 웃었다.
“걸프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저도 할 수 있어요.”
“걸프사는 세계 시총 9위 글로벌 기업이야!”
“그 걸프사의 지분 52%를 확보한 게 우리 JH투자거든요.”
걸프사 지분 52%가 X으로 보이시나?
“이미 워렌 버퍼 씨가 걸프사에 관해 취재진 앞에서 거하게 떠든 이후예요. 대놓고 손쓰기 껄끄러워진 건 미국 정부와 걸프사란 소리고요.”
“그렇지만 걸프사는 뿌리 깊은……!”
“그러니까요. 걸프사가 대대로 구워삶은 미국의 정관계 고위 인사들을 쳐내는 밑작업이랄까요?”
“……그게 된다고?”
할아버지가 놀란 눈으로 입만 뻐끔거렸다.
“걱정하실 것 없어요.”
나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할아버지의 투박하고 거친 손등을 토닥거렸다.
“제가 알아서 확실하게 협박할게요.”
“지금 주한미국 대사한테 협박하겠다고 한 거냐?”
“못 할 것도 없잖아요.”
“아이고오!”
할아버지는 뒷목을 잡으셨다.
“설마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청계산에 파묻은 다음에 면담 시작하겠다는 소리는 아니겠지?”
“필요하다면.”
못 할 것도 없죠.
“아이고오!”
“걸프사는 JH투자의 일이잖아요. 태성에 불똥 안 튀게 확실하게 마무리할게요.”
“협상, 좋다!”
할아버지가 비명처럼 외쳤다.
“우리 상식적으로 협상부터 시작해 보자! 이 얼마나 아름다운 단어냐? 협상!”
굳이?
“우리 같은 기업가들에겐 아주 바람직하게 취급되는 단어다! 너도 장차 내 뒤를 이어, 아니, 곧 JH투자로 미국 진출하겠다며?”
그건 그렇긴 한데요.
“이왕 찍을 눈도장, 예쁘게 찍자! 대화로!”
“그러죠 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협상을 하나, 협박을 하나, 결과는 달라질 것도 없거든요.”
“결과가 달라지지 않긴 왜 안 달라져? 아 다르고 어 다른 법인데!”
“JH투자는 걸프사를 먹고, 미국 정부는 이에 협조한다. 그게 끝이에요.”
“아이고오!”
할아버지가 신신당부했다.
“내 다른 것에 관해서는 이러쿵저러쿵하지 않으마! 부디 주한미국 대사는 소중하게, 곱게, 정중하게 모셔다오. 이건 태성가 사람으로서 당부하는 거야. 알았지?”
“네에.”
나는 방긋 웃었다.
“정혁아, 잠깐만!”
할아버지가 대뜸 옆에 서 있던 심 사장의 넥타이를 잡아끌었다.
심 사장은 싱글벙글 웃고 있다가 영문도 모르고 잡혀 끌려왔다.
“켁! 회, 회장님!”
“심 사장도 데려가야지!”
심 사장이 억울한 얼굴로 할아버지를 보든 말든.
할아버지는 다급하게 외쳤다.
“심 사장이 JH투자 바지사장이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