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395)
재벌집 만렙 아들-395화(395/416)
395. 바지회장의 꿈
할아버지가 심 사장의 등을 떠밀었다.
“JH투자의 일은 JH투자에서 처리해야지! 심 사장, 안 가고 뭐 하나?”
“저 방금 왔습니다만?”
“얼굴 봤으니까 됐어! 가!”
“아직 떡국 한 숟가락도 못 얻어먹었는데요?”
“한 살 덜 먹어서 좋겠네! 가!”
나는 할아버지 손에 야무지게 잡힌 심 사장의 넥타이를 쏙 뽑아주었다.
“저만 가도 괜찮아요.”
심 사장의 마음이라면 백 번 이해한다.
주한미국 대사를 상대하려니 골치 아프기도 하겠지.
“그럼 여기 걸프사 사람들은 심 사장님께 맡길게요.”
“저 지긋지긋한 찰거머리들이요? 사양하겠습니다!”
심 사장이 손바닥 뒤집듯이 태도를 바꿨다.
“JH투자의 미래가 걸린 중요한 순간입니다.”
진지한 얼굴이었다.
“JH투자의 본격적인 미국 시장 진출의 신호탄이자, 도련님의 향후 투자 진로를 결정하는 갈림길 아닙니까.”
맞는 말이다.
세계 시총 9위인 걸프사 인수는 미국 시장뿐만 아니라 전 세계 투자자들의 이목을 잡아끌 일이었다.
“이런 때에 앞에 나서야 하는 게 바지사장의 일 아닙니까. 저 심원철이 모시겠습니다.”
심 사장은 자신만만하게 씩 웃었다.
“우리 JH투자가 버크셔 헤서웨어사보다 더 크지 말란 법 없잖습니까?”
“물론이죠.”
“제 바지회장의 꿈도 머지않았군요!”
심 사장의 두 눈엔 야망이 불타올랐다.
“이거 어쩌면 태성그룹 차 회장님보다 더 윗줄로 대우받을 수 있을지도? 우후훗!”
심 사장이 나를 돌아보았다.
“저 심원철은 그날까지 성심성의껏 최선을 다해 도련님을 모시겠습니다!”
심 사장은 재빨리 품에서 보약 팩을 꺼내 물었다.
“도련님도 한 팩 드릴까요? 이거 청심환인데요.”
“됐어요. 그까짓 것 뭐 별거라고요.”
“걸프사와 엮어서 미국 정부와 담판 짓는 일인데, 도련님은 긴장도 안 되십니까?”
“긴장할 거 있나요? 청계산에 끌고 가 파묻는 것도 아니고, 지하실에 잡아다가 포 뜨는 것도 아닌데요.”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마주 앉아서 대충 입 좀 턴 다음에 도장 찍으면 그만이잖아요.”
“크, 하여간에 우리 도련님 배짱은 알아줘야 한다니까요.”
심 사장은 야무지게 보약을 쪽쪽 빨면서 엄지를 들어 올렸다.
자부심과 뿌듯함이 담뿍 담긴 목소리였다.
“도련님께서 괜찮다면 저도 괜찮습니다.”
심 사장은 가슴을 쭉 내밀며 웃었다.
“주한미국 대사를 상대할 방책은 있으시겠죠?”
“물론이죠. 그런데 한 명 더 데려갈까 해요.”
“누구를요? 설마 부회장님을 모셔 갑니까?”
“우리 아빠는 오늘 태성그룹 사람들과 나눠야 할 말이 많거든요?”
식사가 끝나면 할아버지 서재에 모여 비공식적 임원회의 및 정보교류의 장이 열릴 텐데.
이제 막 부회장 자리에 오른 우리 아버지가 빠지면 안 되지!
“그럼 누구를 데려가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설마 김 비서?”
“여기서 김 비서가 왜 나와요?”
“그럼…….”
“우리에게는 미국에서 대활약한 부사장님이 계시잖아요.”
“아, 밀매왕.”
심 사장은 난처한 얼굴을 했다.
“밀매왕은 워렌 버퍼와 만날 약속이 있다는 것 같았습니다만.”
“언제 어디서요?”
“정확한 시간은 모르겠고, 여튼 태성호텔에서 커피 한잔하기로 했다는 얘긴 들었습니다.”
워렌 버퍼가 어제 태성호텔에서 묵었던 모양이다.
하기야 태성호텔에서 열린 송년의 밤 행사에 참여했으니, 태성호텔에서 묵는 게 편하긴 하지.
“그럼 우리도 태성호텔로 가면 되겠네요.”
나는 타박타박 앞서 걸어가며 씩 웃었다.
“심 사장님, 지난여름에 열렸던 제1차 한미군사위원회에서 미국 정부와 깔끔하게 담판 못 지었다면서요?”
“예. 그렇게 됐습니다. 한국 정부의 뜻이 워낙 완강해야 말이죠.”
대통령의 뜻에 따라 당시 협상단으로 나갔던 사람이 바로 심 사장이었다.
“주한미군 철수 문제로 국방부가 이를 갈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한미군사 합동훈련 정도로는 성에 차지 않는 모양이더라고요.”
“미국 국방부에서는요?”
“주한미군 철수는 보류. 하지만 차라리 M60전차 기술 이전을 해 줄 테니, 기관총용 대구경 도트사이트를 넘겨달라, 이거죠.”
그 결과 제1차 한미군사위원회에서 기관총용 대구경 도트사이트 수출 문제는 파투 났다.
“주한미국 대사를 만나시겠다면서 뜬금없이 한미군사위원회 일을 물으시는 건…… 아!”
심 사장이 손바닥에 주먹을 탁 쳤다.
눈빛이 반짝반짝했다.
“설마 도련님께서 이번에 주한미국 대사를 따로 만나시겠다고 하는 이유가…….”
“기관총용 대구경 도트사이트를 비싸게 팔아 치우려고요.”
“오!”
“안 그래도 주한미군 측에서 연락을 엄청 해댄다면서요.”
“정말 지긋지긋하게 사람을 들들 볶습니다! 정말 이참에 그걸 해결해 보실 작정이십니까?”
“물론이죠.”
그러니 내가 주한미국 대사가 찾아왔다는 소리에 만세를 외쳤다니까?
“이왕이면 더 비싸게 팔아 치워 보자고요.”
“예, 보스!”
* * *
“이것 참 곤란하게 되었군.”
문전 박대당한 주한미국 대사는 머리를 쓸어 넘겼다.
“태성그룹 총수가 이리 간 크게 나올 줄은 몰랐는데.”
그가 어떤 사람이던가?
무려 한국에 주둔한, 세계 최강국인 미국을 대표하는 친선대사였다.
세계 어디를 가도 이런 푸대접은 받아보지 못했다.
“태성이 걸프사를 인수한다는 게 가능하긴 한 일인가?”
주한미국 대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걸프사에서 사람이 와서 구구절절 하소연을 했지만, 도통 믿기 힘든 말뿐이었다.
“석유파동 때문에 잠깐 수익성이 주춤할 수 있어도 인수 합병을 논할 만큼의 위험성이 크다고 볼 수는 없었는데, 왜 갑자기 적대적 인수합병 소리가 나오는 건지 이유를 모르겠군.”
주한미국 대사는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바로 주한미국 대사가 새해 첫날 아침부터 태성가를 찾아오게 된 이유였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농담으로 치부할 수도 없고.”
그에게 도움을 청하는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걸프사의 협상단이었으니까.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쯧.”
주한미국 대사는 뒤를 힐끔 쳐다봤다.
단단히 닫힌 태성가 저택의 현관문이 보였다.
불청객의 방문요청을 거절하며 닫아건 문이었다.
“이거 대통령 각하께는 어떻게 보고를…… 음?”
그때 꽉 닫혔던 현관문이 벌컥 열렸다.
웬 잘생긴 꼬마가 두 손 모아 얌전하게 배꼽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주한미국 대사님?”
꼬마는 방긋 웃었다.
“걸프사 인수에 대해 논할까 하는데, 시간 괜찮으세요?”
“…….”
주한미국 대사는 너무 황당한 나머지 말문이 턱 막혔다.
걸프사 인수 문제라면 그가 새해 아침부터 태성가를 찾아오게 만든 용건이 맞긴 한데.
태성가 총수도, 태성의 브레인이라는 부회장도 아니고, 이렇게 어린 꼬마애가 언급할 줄은 몰랐다.
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하고 당황하고 있을 때.
꼬마의 뒤를 따라온 이가 정중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JH투자회사 대표, 심원철입니다.”
“JH투자회사?”
주한미국 대사는 심 사장을 위아래로 힐끔 훑어봤다.
“내가 어디서 들어본 것 같긴 한데, 도통 기억이 나질 않는군요.”
심드렁한 목소리에, 관심 없다는 얼굴이었다.
오히려 흥미는 걸프사 인수를 언급한 꼬마에게 동했다.
“꼬마야, 걸프사 인수 소리는 어디서 들었니? 태성에서 나왔니?”
그런데 이게 웬걸?
꼬마 대신 JH투자회사의 대표가 명함을 건네며 대답했다.
“우리 JH투자가 이번에 걸프사를 인수하고자 합니다.”
“……!”
주한미국 대사는 당혹스러움을 숨기지 못했다.
“태성이 아니라 JH투자회사가 걸프사를 인수한다고 했습니까?”
“물론입니다. 또한 저희 JH투자는 기관총용 대구경 도트사이트를 개발한 곳이기도 합니다.”
“……!”
주한미국 대사는 입을 떡 벌렸다.
그러더니 재빨리 심 사장 손을 덥석 잡았다.
“우리 잠깐 차 한잔할까요?”
“좋죠. 가실까요?”
심 사장은 씩 웃었다.
“태성호텔 커피숍은 어떻습니까?”
* * *
향긋한 커피 냄새에 기분이 한껏 좋아졌다.
솔직히 감회가 새로웠다.
‘작년에 여기에 앉아서 할아버지와 담판을 지었는데.’
그게 벌써 1년 전 일이었다.
시간 참 빠르다니까.
그땐 어른들 눈치 때문에 코코아나 마셔야 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크! 그래, 이 맛이야!’
식후엔 역시 아이스 아메리카노지!
떡국도 싸악 내린다니까?
다만 시절이 시절인 만큼 얼음 가득 동동 띄운 무설탕 냉커피로 주문해야 한다는 게 아쉬울 뿐이지만!
뭐, 커피 맛은 이거나 그거나 아이스 아메리카노니까.
나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빨대를 쪽쪽 빨아 마셨다.
탁.
주한미국 대사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충격받은 얼굴이었다.
“이, 이, 이게 정말입니까?”
테이블 위에는 서류가 한가득이었다.
모두 걸프사 지분에 관한 서류들이었다.
“JH투자에서 이걸 저에게 보여주는 이유가 뭡니까?”
“미국 정부가 걸프사 인수에 관해 개입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그건 못 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주한미국 대사는 딱 잘라 말했다.
“걸프사는 미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정유기업입니다. 미국 석유산업 시장에서 큰 역할을 하는 미국의 기업이란 뜻입니다.”
걸프사 지분에 관한 서류들을 도로 물렸다.
못마땅한 얼굴이었다.
“걸프사에 딸린 노동자가 몇이며, 주식 투자자가 몇입니까? 걸프사가 무너지면 미국 경제의 축이 흔들립니다.”
주한미국 대사는 고개까지 홱 돌렸다.
“미국 시장을 지키고, 미국 기업을 보호하는 일에 타협이란 없습니다.”
그는 마시던 커피도 마다하고 냉수를 벌컥벌컥 마셨다.
“그러니 부디 저를 꾀어내어 설득할 생각은 하지 않길 바랍니다. 이건 부탁이 아닌 경고입니다.”
심 사장을 노려보는 주한미국 대사의 눈이 서늘했다.
“내게 뇌물이나 협박을 들이밀어 봤자 재미없을 거란 소립니다. 알아들으셨습니까?”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쪽쪽 빨아 먹다 말고 피식 웃었다.
“대사님, JH투자도 미국 기업이거든요?”
“음?”
탁.
내 눈짓에 심 사장은 서류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올리기 시작했다.
“JH투자 미국 본사 설립에 관한 서류들이에요.”
그걸 확인한 주한미국 대사의 눈이 커졌다.
“JH투자가 미국 기업이었다고?”
“뱅크 오브 시티, JPP모건, 아메리카 뱅크, 골드만색슨, US 뱅크스, 웰스 파파 컴퍼니, 모건 스탠스, 캐피털 뱅크.”
나는 걸프사 지분권 행사에 관한 위임장 중에 미국 은행들의 몫을 콕콕콕 짚었다.
“그게 아니라면 미국 은행들이 굳이 걸프사 대신 JH투자와 함께할 리 없지 않겠어요?”
“그렇다면 일본 은행은?”
탁탁.
주한미국 대사도 걸프사 지분권 행사에 관한 일본 은행들의 위임장을 두드렸다.
“일본 은행들은 일본 기업도 아닌 JH투자의 손을 왜 들어줬지? 무슨 이유로?”
“최근 걸프사 수익률이 처참하잖아요.”
“…….”
주한미국 대사는 반박하지 못했다.
“우리 JH투자는 이래 봬도 걸프사의 대주주거든요. 회사의 이익 추구를 최우선 순위로 놓으려고요.”
나는 딱 잘라 말했다.
“회사 잘 굴리라고 뽑아놓은 경영진들이 제 할 일을 못 했으면 잘려야죠. 그게 당연한 거 아니에요?”
“크흠, 하지만 우리 미국 정부는 시장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미국 은행들에게 권고를 내릴 수는 있지.”
내 이럴 줄 알았다!
미국 정부가 나서면 미국 은행들은 뜻을 돌릴 수밖에 없거든.
이게 바로 내가 걸프사 윗대가리들이 나서기 전에 미국 정부에게 수작질을 부리려는 이유였다.
우리 쉽게 가자!
“걸프사 정도 되는 글로벌 대기업이 이렇게 계속 적자 나다가 무너지면요? 미국 시장은 괜찮겠어요?”
“…….”
“미국 정부와 미국 대사는 미국 기업의 이익뿐만 아니라, 미국 시장과 투자자의 이익도 보호해 줘야 해요. 맞죠?”
나는 검지로 내 가슴팍을 콕 찔렀다.
“우리는 걸프사의 대주주로서 경영진 해임에 관한 의결권을 행사할까 해요. 문제 있어요?”
“…….”
“여기에 미국 정부와 미국 대사가 개입할 명분과 이유가 어디에 있는데요?”
“…….”
주한미국 대사는 말문이 턱 막힌 모양인지 한참이나 말이 없더니, 이내 더듬더듬 구차한 변명을 이어갔다.
“걸프사가 저렇게 휘청이게 된 것은 몇 년 전에 회장을 비롯해 경영진을 대거 물갈이했기 때문으로, 그로 인해 미국 시장은 큰 손해를 봤지. 그와 비슷한 손해가 나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무능한 맬런가의 망나니 도련님 때문에, 고작 17.3%의 지분으로 걸프사를 말아먹든 말든 미국 정부는 상관없다는 뜻인가요?”
“…….”
주한미군 대사의 변명이 도로 쏙 들어갔다.
“우리는 미국법이 정한 정당한 절차에 의거해 걸프사의 무능하고 나태한 경영진들을 싹 다 자르고, 유능한 전문 경영진으로 교체할 거예요.”
“하지만 인수합병은…….”
“경영진 교체가 먼저예요. 전문 경영진의 판단에 따라 걸프사의 인수합병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것뿐이죠. 이 또한 미국법에 따라 정당하게, 합법적으로. 아시겠어요?”
“끄응.”
주한미국 대사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걸 굳이 나한테 미리 말하는 이유가 뭐니?”
“미국 정부가 쓸데없이 걸프사의 일에 끼어들지 않길 바라거든요.”
“그건…… 쉽지 않을 텐데.”
“은퇴 후 노후를 의탁할 한자리 필요 없으세요?”
“……!”
나는 슬쩍 당근을 흔들었다.
“이를테면 걸프사 사외이사라든가, 뭐 그런 명함은 필요 없으시냐고요.”
“……!”
주한미국 대사는 군침을 꿀꺽 삼켰다.
흠흠, 헛기침과 함께 곁눈질을 하면서 슬쩍 물었다.
“걸프사의 대주주가 법이 정한 정당한 절차와 사유에 의거해 권리를 행사하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지. 하지만 내게 이런 제안을 미리 건네는 이유는 들어봐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우리가 내세우려는 전문 경영진이 바로 JH투자 사장과 임원진이에요.”
나는 심 사장을 가리켰다.
“이래 봬도 우리 심 사장님, 경영의 귀재라 불리시는 분이거든요.”
“자, 잠깐만요!”
심 사장이 화들짝 놀라 되물었다.
“제가 뭘 잘못 들은 것 같습니다.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심 사장은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씩 웃었다.
“걸프사 회장 자리, 곧 비워질 거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