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396)
재벌집 만렙 아들-396화(396/416)
396. 이게 바로 내 전문!
주르륵.
심 사장의 입에서 커피가 흘러내렸다.
심 사장은 그걸 닦아낼 생각도 못 하고 멍하니 넋을 놓았다.
“거, 걸프사 회장 자리?”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 간다는 얼굴이었다.
심 사장은 우는 것인지, 웃는 것인지도 모를 오묘한 표정을 한 채 턱을 쓸었다.
“어, 그러니까, 제가 바지회장을 꿈꾸긴 했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스케일이 너무 크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심 사장답지 않게 얼떨떨한 목소리였다.
나는 무설탕 냉커피를 쪽 빨아 먹었다.
“그래서 싫어요?”
“그럴 리가요! 전혀요! 하나도 안 싫습니다!”
“자신 없는 것 같은데요?”
“그럴 리가요! 전혀요! 완전 자신 있습니다!”
멍했던 눈에 초점이 또렷하게 잡혔다.
풀렸던 동공이 바짝 조여지며, 다시금 야망이 이글이글 타오르기 시작했다.
“무엇을 원하십니까? 말씀만 해 보십시오!”
“걸프사를 뜯어고쳐서 적자 구조를 흑자 구조로 전환시키고 싶어요.”
“하하하! 경영 정상화!”
심 사장은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그게 제 전문 분야 아니겠습니까?”
심 사장은 경영의 귀재라 불리던 태성의 기둥이었다.
10억짜리 자본금으로 맨땅에서 시작한 태성화학을 불과 7년 만에 300억짜리 회사로 키운 남자!
“제가 이번에 걸프사 지분을 모으면서 재무제표부터 관련 실적까지 싹 다 조사하지 않았겠습니까?”
JH투자 사무실 한쪽 벽면을 꽉 채웠던 서류 상자의 산.
그게 다 걸프사와 관련된 자료들이었다.
심 사장은 그걸 무지막지한 속도로 정리하면서 걸프사의 지난 역사를 꿰뚫게 되었다.
“걸프사의 문제는 투자 대비 수익률이 처참하다는 것뿐입니다. 현재 정유산업의 메커니즘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래서 탐난다니까, 걸프사!
일단 산유국에 직접 석유 빨대를 꽂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더!
중간 유통의 바가지 마진과 공급처의 안 팔아 갑질을 가볍게 패스한다는 소리거든.
심 사장의 눈이 번쩍 빛났다.
“걸프사는 윤활제와 기타 특수 연료 산업 및 파생 에너지 산업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반면 제대로 된 석유화학 산업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죠.”
심 사장은 주먹으로 제 가슴팍을 탕탕 쳤다.
“하지만 제가 누굽니까? 태성화학을 7년 동안 굴렸던 사람 아닙니까?”
태성화학은 대통령의 중화학 공업 육성정책에 따라 태성과 우광이 각각 5억 원씩 출자해서 만든 석유화학기업이었다.
“석유화학 산업과는 전혀 관련이 없던 태성이 주방세제와 세탁세제를 시작으로 욕실용품, 화장품, 각종 플라스틱 등에서 치고 올라왔습니다.”
심 사장은 안목이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업 수완이 좋았다.
“일본과 미국 등 선진국의 기술 이전이 없이도 우리 손으로 석유화학 제품을 이만큼이나 개발하여 시장을 선점했던 태성화학입니다. 하물며 걸프사는 어떻습니까?”
심 사장의 포부가 뜨거웠다.
“이미 윤활 산업에선 세계적인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는 제품군을 보유하고 있고, 석유 및 정유와 관련된 엘리트 인재들도 다량 확보한 상태입니다.”
걸프사와 태성은 출발점부터가 아득하게 달랐다.
태성은 맨땅에서 아무것도 없이 시작했다면 걸프사는 세계 시총 9위 기업답게 자본력과 기술력, 엘리트 인력 규모가 이미 세계적인 수준이다.
“제가 걸프사의 사업 전반을 파악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분야가 바로 이쪽이었습니다. 석유산업으로의 연계성!”
빙고.
바로 그거지!
“걸프사의 자랑인 항공 연료 산업과 특수 화학 제품군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정유산업을 기반으로 조금 더 광범위하고 디테일하게 관련 산업을 확장시킬 필요성이 있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걸프사가 발달시킨 석유산업은 세계 대전에서 멈춰 있습니다. 이제는 군수품 시장이 아닌 민간 시장을 개척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심 사장이 빠르게 손가락을 꼽았다.
“유기화학, 합성수지, 재생섬유, 기초화학, 첨단소재, 생명과학, 에너지 등은 물론 전자와 배터리 산업까지. 나아가야 할 분야는 많고도 넓습니다.”
심 사장이 벌떡 일어나 허리를 굽혔다.
“걸프사 바지회장 자리, 제가 맡고 싶습니다!”
기합이 단단히 든 외침이었다.
“도련님의 뜻에 따라 목숨 걸고 확실하게 걸프사를 경영 정상화시켜 놓겠습니다! 이 일에 저만 한 적임자는 더 없으리라 자신합니다!”
심 사장은 씩 웃었다.
“구차한 변명과 설득으로 도련님의 귀한 시간을 낭비하지 않겠습니다. 대신 결과로 증명하겠습니다!”
마음에 든다!
나도 심 사장님을 보면서 씩 웃었다.
“지금 그 말, 걸프사 주총에서도 할 수 있겠죠?”
“열 번이고, 백 번이고, 원하신다면 백악관에서도 같은 내용으로 브리핑 가능합니다.”
그래, 그 정도는 되어야지!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는데.
주르륵.
어째서인지 이번엔 주한미국 대사가 마시던 커피를 줄줄 흘렸다.
“백악관에서 브리핑을 하겠다고요?”
“필요하다면.”
못 할 것도 없잖아?
내 말에 주한미국 대사는 입을 떡 벌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생각해 봐요. 미국 기업인 걸프사가 미국의 석유화학산업을 본격적으로 키우겠다는데, 미국 대통령님은 싫다고 하실까요?”
“…….”
“미국에 크게 공장 세우면 일자리 창출은 또 얼마나 많이 될 거예요?”
“…….”
주한미국 대사의 눈알이 데구르르 굴렀다.
머릿속으로 계산기 두드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릴 지경이다.
“걸프사 같은 대기업이 작은 화학 공장 하나 짓고 생색낼 것도 아니고. 석유화학 연구소도 짓고, 화학 공장도 짓고, 유통과 수송까지 진출하면.”
“…….”
“걸프사가 어느 주에 화학 공장을 짓느냐에 따라서 대통령님의 재선 결과가 달라지지 않겠어요?”
“……!”
주한미국 대사의 눈빛이 탐욕스럽게 번들거렸다.
나는 쐐기를 박았다.
“생각을 해 봐요. 미국 대통령님이라면 이런 큰 건을 물고 온 대사님을 어떻게 대할까요?”
“……!”
“걸프사의 사외이사 한자리까지 차지하고 있으면 정관계 인사들과의 교류는 얼마나 쉬울 테고.”
“……!”
“만일 정계 진출에 욕심이라도 생긴다면 이만한 발판이 또 어디 있겠어요?”
“……!”
주한미국 대사가 참지 못하고 크게 웃었다.
“하하하, 이거 정말 거부할 수 없이 멋진 제안이군요.”
주한미국 대사는 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악수를 청하기 위해서였다.
“대통령 각하께서도 이 소식을 들으면 더할 나위 없이 몹시, 매우, 아주 많이 흡족해하실 겁니다.”
당연하지!
대규모 일자리 창출과 과감한 투자를 마다하는 대통령은 없다.
그게 걸프사와 같은 글로벌 공룡 기업이라면 더욱더.
“걸프사의 대주주께서는 아주 확실한 비전을 가지고 기업의 미래를 그리고 계셨군요.”
“우리는 기업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놓는다니까요.”
나는 주한미국 대사가 내민 손을 거절하지 않았다.
손을 맞잡고 크게 위아래로 흔들었다.
“미국 정부가 걸프사에 쓸데없이 압력을 넣지 않기를 바라는 이유, 이해하시죠?”
“그럼요. 민간 기업의 일은 시장의 논리를 따라야 하는 법이죠. 미국법이 정한 정당한 절차와 사유에 따라 무능한 경영진을 교체하겠다는 건데요.”
아무렴!
“현재 걸프사 경영진들이 미국 대통령님을 움직이려고 수작질을 부리려 든다면…….”
“제가 지금 당장 백악관에 콜사인 울리겠습니다!”
주한미국 대사는 백악관과 직통으로 연결되어 있다.
못해도 걸프사 회장이 미국 대통령과의 만남을 청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접선할 수 있다는 소리!
“JH투자가 그리는 걸프사의 미래가 우리 미국 시장에 아주 긍정적인 폭풍을 불어넣을 것 같군요.”
주한미국 대사가 껄껄껄 웃었다.
“미국 시장과 미국 기업을 좀먹고 있는 그 무능한 쓰레기들이 행여 미국 대통령 각하와 행정 관료들을 꾀어내려 든다면 경고만으로는 부족하지요.”
주한미국 대사는 주먹으로 제 가슴팍을 탕탕 쳤다.
“이미 걸프사 놈들은 한차례 뇌물 수수 및 부정청탁으로 물갈이된 기업입니다. 그 교훈을 벌써 잊어먹고 다시금 뇌물이나 협박을 들이밀기만 하면 그날부로 또 다른 지옥을 보게 될 겁니다!”
이거 아주 든든하구만!
“은퇴 후 몸담을 기업이 아닙니까? 썩은 내가 팡팡 풍기는 구정물에서 놀고 싶지 않다고 한다면, 제 진심을 믿어주시겠습니까?”
나는 슬그머니 악수했던 손을 빼었다.
당혹스러워하는 주한미국 대사를 향해 씩 웃어주는 대신.
동전지갑을 열어 미리 잘 접은 서류 한 장을 꺼냈다.
“이게 뭡니까?”
“전 말보다는 문서를 더 믿거든요.”
나는 주한미국 대사의 손에 몽블랑 만년필을 쥐여 주었다.
“잘 읽어보고 서명 날인하시면 돼요.”
“…….”
내가 내민 서류를 슬쩍 본 주한미국 대사의 눈은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렸다.
“허억!”
주한미국 대사는 깜짝 놀란 얼굴로 ‘0’을 세기 시작했다.
“맙소사!”
공무원 연봉이라고 해 봐야 뻔하지.
그건 천조국 미국의 대사급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공무원!
“사, 사외이사 연봉으로 너무 과하게 많은 것 같습니다만?”
“전 능력자를 우대하거든요.”
아주 많은 돈은 없던 열의도 치솟게 만들 수 있다.
“제게 어떤 능력을 원하십니까?”
과연 주한미국 대사는 열의에 불타는 눈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돈이면 귀신도 부린다는데, 부정부패의 온상이라는 공무원을 못 부릴까.
“대사께서 총동원할 수 있는 인맥이 어느 정도인지 기대해 봐도 될까요?”
결국 연봉을 어느 만큼 가져가느냐는 본인 능력에 달렸다는 소리다.
“사외이사에게 원하는 건 경영능력이 아니에요. 기업에 도움이 되는 인맥과 연줄이죠.”
그럼 이 많은 돈을 맨입으로 먹으려고?
어림도 없지!
하지만 뜻밖에도 주한미국 대사는 오히려 더욱 크게 웃었다.
“그렇다면 저를 택한 것을 후회할 일은 없을 것이라 자신할 수 있습니다.”
“일단 거기 밑에 적힌 특약 사항이나 확인해 보고 마저 말씀하실래요?”
“허어!”
특약사항으로 내건 조건이 상당히 까다롭지?
그런데 이게 웬걸?
주한미국 대사는 아까보다 훨씬 더 여유로운 얼굴로 웃었다.
“이게 제 전문 분야인 줄은 또 어떻게 아시고.”
난처한 얼굴을 예상했는데, 외려 더 열의에 불타오르는 표정이다.
“제 입으로 이런 말을 하긴 좀 부끄럽지만, 전 능력보다 연줄이 더 대단한 축에 드는 편인지라. 하하하!”
주한미국 대사는 쑥스럽다는 듯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제가 지금껏 내내 산유국만 골라 대사직을 수행해 왔긴 합니다.”
귀가 번쩍 뜨였다.
‘이 양반, 산유국 관련 인맥이 빵빵하다는 소리네?’
그뿐만이 아니었다.
“제 집안까지 염두에 두고 이런 제안을 해오셨군요. 어쩐지 제안하신 연봉이 심상치 않더라니. 이제야 이해가 가는군요.”
주한미국 대사는 후련한 듯이 웃어버렸다.
외려 어리둥절해진 것은 나였다.
‘이 대목에서 뜬금없이 집안 소리는 왜 나와?’
이 양반 뒷조사부터 할 걸 그랬나?
주한미국 대사는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시다시피 제가 이래 봬도 집안이 아주 좋습니다. 미국 내 상류층 집안 출신이거든요.”
주한미국 대사는 명함을 꺼냈다.
‘우와, 엄청난 황금색!’
번쩍번쩍 요란한 금빛이 폭죽처럼 터지는 명함이었다.
최빈국에서 이제야 막 개도국에 진입한 휴전국가인 한국으로 발령 나왔기에, 솔직히 별 볼 일 없는 연줄을 가진 양반인 줄 알았는데.
‘이거 생각보다 거물급 인사였나?’
이 정도의 황금빛 명함을 가진 이가 몇이나 될까 가늠해 보았다.
워렌 버퍼의 명함만큼이나 밝은 황금빛이 많을 리가 없지.
나는 홀린 듯이 주한미국 대사의 명함을 받았다.
‘제임스 W. 부시?’
잠깐. 웨이러 미닛!
부시 가문?
설마 진짜로 그 부시는 아니겠지?
나는 눈을 비비고 다시 봤다.
“혹시 미국 중앙 정보국장을 지냈고, 현재 휴스턴의 퍼스트 국제은행 의장직을 지내고 있는 조셉 H. W. 부시가…….”
“예, 제 사촌 형님 되십니다.”
“……!”
그러니까 사촌 형이 훗날 미국 대통령을 지내고, 그다음엔 조카가 또 미국 대통령을 해 먹는 집안 사람이란 소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