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40)
재벌집 만렙 아들-40화(40/416)
< 전(前) 시대의 거물들 (1) >
유종태는 의기양양, 위풍당당하게 걸어왔다.
“도련님, 저 유종태가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돌아왔습니다!”
“잘했어요!”
나는 엄지를 척 들어 주었다.
유종태가 칭찬을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착 달라붙었다.
“도련님, 제가 어떻게 이 초대장을 받아왔는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아주 자세하게 알려드릴까요?”
“됐어요.”
저승사자와 시야 공유해서 다 지켜봤다.
하지만 대놓고 사실을 말할 수도 없고.
“난 유 팀장님을 믿어요. 끝!”
“도련니이이이임!”
유종태는 감격한 듯 두 손을 모으며 몸을 배배 꼬았다.
“도련님이라면 제 충심과 능력을 알아주실 줄 알았습니다! 진짜 이렇게까지 믿고 맡겨 주실 줄이야!”
어쩐지 몹시 부담스러운 눈빛이었다.
건빵을 와그작와그작 씹어먹던 철구 아저씨가 심드렁하게 툭 내뱉었다.
“염병. 심부름 하나 하고 더럽게 유세 떠네.”
“유, 유세라뇨?”
“누가 보면 중정에 끌려가서도 입 다물다가 물고문으로 익사 직전까지 갔었던 줄 알겠어.”
“······.”
유종태는 반박하고 싶은 눈치였으나, 힐끔 날 보더니 입술을 꽉 깨물었다.
내가 아까 사건의 전말을 알려주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 후였으니까.
“두고 보십시오. 언제고 차지하고 만다, 충성 넘버원 자리! 나도 목숨 걸었다 이겁니다!”
유종태의 작은 혼잣말에는 야망이 가득해 보였다.
난 야망 있는 사람이 좋더라!
* * *
초대장을 손에 넣은 내가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역시 명동이었다.
나는 명동 구석진 골목에 위치한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명동 송골매 전당포>
이거 정말 오랜만, 아니, 며칠 전에 다녀갔었군?
그런데 희한하게 여긴 매번 오랜만에 찾아오는 기분이라니까?
유종태는 이마에 손을 대고 살피는 시늉을 하면서 호오, 하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여기도 참 오랜만이군요. 한때는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는데. 첫 번째 초대장의 주인은 역시 명동 송골매 어르신입니까?”
“네.”
“제가 가서 금방 전달하고 오겠습니다!”
“아니에요.”
나는 씩 웃었다.
“이번엔 내가 직접 갈 거예요.”
스승님께는 내가 직접 초대장을 전해야지.
그때 했던 약속도 지킬 겸.
-다음에는 양과자보다 더 좋은 선물을 가지고 찾아뵐게요.
그래서 가져왔다.
스승님께서 아주 좋아하실 만한 선물!
철구 아저씨는 전당포를 바라보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허, 여기도 참 오랜만이로구만.”
다들 오랜만이라는 소리를 하네?
김 비서 밑에서 구르던 유종태는 그렇다 치고, 철구 아저씨까지 송골매 전당포를 찾았던 적이 있었을 줄이야.
뭐 전당포엔 일반인들도 멋모르고 찾아오긴 하니까.
딸랑.
“어서 오세요.”
언제나처럼 전당포 철창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스승님이셨다.
스승님은 외눈 안경을 추켜올리며 눈썹을 꿈틀거렸다.
“아니, 이게 누구신가?”
“안녕하십니까, 어르신? 그간 강녕하셨어요? 저는 태성그룹 경호부 제5 팀장 유종태입니다. 기억하십니까?”
유종태는 호들갑을 떨며 반갑게 인사했다.
“아이고, 어르신께서는 그새 더 젊어지셨네요. 목 좋은 강남 아파트를 쓸어 담아서 떼돈을 버셨다더니, 신수가 더 훤해지셨습니다.”
“어르신, 오랜만입니다. 쩝.”
철구 아저씨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하게 인사했고.
나는 두 손을 모아 공손하게 배꼽 인사를 드렸다.
“안녕하세요.”
스승님은 우리 셋 중에 날 콕 집어 물었다.
“꼬마 손님께선 이번엔 어쩐 일로 왔는가? 왠지 담보 잡힌다고 온 건 아닐 것 같고.”
“맞아요.”
“그럼 전당포에는 왜 왔어? 저 인간들을 데리고 와서 또 여기서 경매 판을 벌이려고?”
“그게 아니라, 지난번에 약속했던 대로 선물을 드리려고 왔어요.”
“선물?”
나는 전당포 철창이 내려온 카운터 위에 초대장을 공손히 내려놓았다.
초대장의 황금빛이 어찌나 번쩍거리는지, 어두침침한 전당포 철창이 환하게 밝아질 정도였다.
“이번 현무호텔에서 열리는 송년의 밤 초대장이에요.”
“뭣이?”
스승님의 눈이 번뜩 빛났다.
마치 창공에서 날다가 먹이를 발견한 매의 눈빛, 그 자체였다.
“우리처럼 음지의 인사들에게 송년의 밤 초대장이 올 리가 없는데?”
물론 그럴 것이다.
그건 대한민국 사회 지도층, 양지에서 돈과 명예와 권력을 휘두르는 이들만의 행사였으니까.
어중이떠중이는 물론 어설픈 졸부에게도 허락되지 않는 게 바로 상류 사회의 모임이었다.
“이 초대장이 내게 거저 왔을 리는 없고. 누군가 나 대신 대가를 치르고 가져왔다는 건데.”
“그래서 선물이에요.”
“오호라, 이거 고맙구나. 그런데 왜 내 귀엔 선물이란 단어 대신 뇌물이란 단어로 고쳐 들릴까?”
그야 선물은 대가 없이 마음으로 주는 거지만, 뇌물은 청탁을 바라고 주는 거니까요.
황금빛 초대장을 건네면서 바라는 바가 아예 없다고는 말 못 하겠다.
하지만 그건 스승님의 결정에 달린 일.
받아먹은 만큼 돈값을 꼭 해야 하는 뇌물 청탁과도 그 결이 조금은 다르다 할 수 있겠다.
“초대장 얻어내는 값이 만만치는 않았을 터인데. 내가 뭘 어떻게 하면 되느냐?”
“그냥 송년의 밤 행사에 참석하시면 돼요. 행사 취지에 맞게 후원을 결정하시면 더 좋고요.”
“후원?”
스승님은 고개를 갸웃했다.
“원래 송년의 밤 행사라는 게 결국 후원회 아니냐. 그런 데에 갔다간 내 주머니만 속절없이 털릴 것 같아서 딱 질색이다만.”
스승님은 초대장을 손끝으로 톡톡 두드렸다.
“왠지 여기서는 돈 냄새가 나는 것 같단 말이지? 허, 거참 영문을 모르겠네.”
역시 우리 스승님, 눈치도 빨라!
돈 되는 일이라면 정말 귀신같이 잡아낸다니까?
“맞아요. 솔직하게 말하면 제가 거기서 돈 되는 일을 건네드릴까 생각하고 있거든요.”
“오호라!”
“참고로 초대장은 선물이지만, 이건 거래 제안이에요.”
“그러면 그렇지!”
스승님은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초대장을 흔들었다.
“어째 네가 이 초대장을 직접 들고 왔는가 했다! 이제야 그 의문이 풀렸구나! 이 요망한 꼬마 손님 같으니라고.”
“여기서 돈 냄새를 맡으셨다면서요? 그래서 초대에는 응하실 거예요, 말 거예요?”
“초대에 응할지 말지는 네 거래 제안부터 듣고 나서 결정하기로 하자!”
하여간에 요만큼도 손해를 안 보려고 하시지.
그래도 나는 배시시 웃었다.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 일생일대의 거래가 될 거예요. 잠깐만 귀 좀.”
“그러자.”
스승님은 기꺼이 내게 귀를 빌려주었다.
속닥속닥 내 말이 이어질 때마다 스승님은 헉, 소리를 내었다.
그렇게 몇 번이나 헉, 소리를 들었을까.
“으하하핫!”
마침내 스승님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니까 결국 나더러 바람잡이를 하라는 소리렷다?”
내가 스승님을 직접 찾아온 이유였다.
‘원래 사람들을 광란의 도가니로 몰고 갈 때 반드시 필요한 게 바로 유능한 바람잡이거든. 그런 의미에서 스승님보다 더 확실한 바람잡이도 없지.’
스승님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매의 안목으로 돈 되는 일만 골라 쓸어 담는 투자의 귀재’란 스승님의 존재부터가 흥행 보증수표로 보일 테니까.
“거참 이게 일곱 살짜리의 거래 제안이라는 게 도통 믿기질 않는구나.”
스승님은 묘한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제안도 통이 크고, 보상도 통이 크고, 계획은 더 통이 크구나. 어디서 요런 꼬맹이가 툭 튀어나왔을까? 진짜 내 밑에서 일 배워보지 않으련?”
나더러 또 전당포를 10년이나 보라고?
어림도 없지!
“딴소리하지 마시고요. 그래서 어떻게 하실래요? 송년의 밤에 참석하실래요, 말래요? 바람 잡으실래요, 마실래요?”
“가야지! 바람 잡아야지! 이게 어떤 기회인데, 당연히 잡아야지!”
날카롭게 쭉 찢어진 스승님의 눈이 반달처럼 휘었다.
“진짜로 3억당 역 하나를 내어줄 테냐?”
“태성건설이 지하철 2호선 공사를 따내면요.”
“아무렴! 내가 볼 때 우광은 절대로 지하철 2호선 공사를 못 따낸다!”
“어째 지난번이랑 말이 좀 달라지셨네요?”
지난번에 한남동 저택을 살 돈 1,800만 원이 모자라서 여기 전당포를 찾았을 때.
스승님과 김 비서는 이런 말을 나눴었다.
-내 솔직히 말하면 지하철역 인근 땅이 탐나긴 한다. 하지만 그걸 이유로 내 생돈 800만 원을 뜯어가려면 네가 아니라 우광에서 왔어야지! 안 그런가?
-어르신께서는 우리 태성보다 우광이 더 유리한 고지에 올랐다고 보시는군요?
-물론이지. 그게 사실 아닌가?
-그럴 리가요. 이번 지하철 2호선 공사는 우리 태성이 따낼 겁니다.
-힘들지 않을까? 이번엔 우광이 한발 빨라. 고위직 관계자들을 제대로 구워삶았다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
스승님은 그때만큼이나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거야 우광건설 뇌물 장부가 태성의 손에 들어가기 전 이야기이고.”
뇌물 장부 이야기에 철구 아저씨가 멍하니 두 눈을 꿈뻑거렸다.
“내가 그 장부가 어떤 건지, 그게 누구의 손에 있는지, 그걸로 어떻게 협박하고 있는지 다 알고 있는데, 아직도 멍청하게 우광의 승리를 점치고 있으리라 여긴 건 아니겠지?”
스승님의 말이 길어질수록 철구 아저씨의 눈은 더 동그랗게 변했다.
소처럼 느리게 꿈뻑거리는 건 덤이었다.
“게다가 이번에 태성건설 차 사장이랑 무능한 임원진들이 전부 모가지가 잘려서 쫓겨났다며?”
하여간에 정보는 또 어찌나 빠르신지.
어제 벌어진 일을 어떻게 벌써 알고 계시나 몰라.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초대장을 가리켰다.
“다들 눈 뒤집고 익명의 협박 편지 주인을 찾겠다고 난리였을 텐데, 입 꾹 다물어주신 게 고마워서 싸게 드리는 제안이에요.”
“싸게?”
“초대장의 다른 주인들에게는 훨씬 비싼 값으로 받아낼 생각이거든요.”
“뭐? 그쪽은 얼마나 비싸게 받아내려고?”
“그냥 쪼끔 더 얹어서요. 5억당 역 하나!”
“으하하하! 좋지! 그거 아주 좋다! 난 3억인데, 그놈들은 5억이구나! 아무렴, 그래야지!”
스승님은 무릎을 탁 쳤다.
“그놈들이 배 아파하는 꼴을 보려면 내 반드시 이 일을 성사시켜야겠다!”
그래, 이래야 우리 스승님이지.
본인이 이득을 보는 것도 좋아하지만, 동종업계 경쟁자들을 후려치는 건 더 좋아하시는 분이거든.
스승님은 신이 나서 두 팔을 걷어붙였다.
“그놈들이 어디 사는지는 알고 있느냐? 모른다면 내가 주소를 적어줄 용의도 있다만?”
“제가 그런 것도 모르고서 초대장을 배달하겠다고 나섰을 것 같아요?”
“역시! 너라면 알 줄 알았다. 하여간에 신통한 꼬마 손님이라니까?”
여기서 꾸물대지 말고 당장 가서 초대장을 배달하라고 난리다.
그래서 나는 은근슬쩍 청탁했다.
“이왕 바람을 잡아주실 거라면 서비스 하나만 더 해 주시면 안 돼요?”
“서비스? 커험! 1원 한 장이라도 드는 일이라면 미리 거절한······.”
“아까 말하신 그분들한테 전화 한 통씩 넣어서 잔뜩 약 올려줬으면 하는 건데요?”
“뭣이?”
공중전화 한 통에 10원 하는 시절인데.
스승님이 전화를 세 통이나 돌려주실까?
어쩔 수 없이 동전 지갑을 열어 전화비를 내놓으려고 했는데.
“그거라면 나한테 맡겨라! 이거 아주 재밌겠구나! 으하하핫!”
“······.”
짠돌이 스승님께서 신이 나서 흔쾌히 승낙했다.
행동력은 또 얼마나 빠른지.
그 자리에서 당장 전화를 돌렸다.
“어이, 말죽거리 말대가리! 나 명동 송골매다! 듣고 놀라지나 마라. 방금 나한테 송년의 밤 초대장이 왔지롱!”
딸깍.
“······.”
“······.”
이것이야말로 용건만 간단히!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따르릉! 따르릉!
미친 듯이 울려대는 전화기를 보며 스승님은 낄낄 웃었다.
“약 올라 죽겠지? 어우, 십 년 묵은 체증이 확 내려가네!”
스승님은 즐겁게 웃으며 손바닥을 짝짝 쳤다.
“자, 그럼 어디 3억당 역 하나를 넘긴다는 계약서를······ 응?”
딸랑.
“······.”
꼬마 손님 일행은 이미 튀고 없었다.
< 전(前) 시대의 거물들 (1)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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