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400)
재벌집 만렙 아들-400화(400/416)
400. 하룻강아지는 누구?
걸프사 회장은 지금 이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돌아가라고?”
백악관에서 축객령을 내린 것이다.
“정말 대통령께서 그리 전하셨다는 말인가?”
“예.”
싸늘하기 그지없는 답변이었다.
평소 백악관 비서실에서 보일 수 있는 태도가 아니었다.
“날 이렇게 푸대접한다면 곧 돌아올 재선에서 쓴물을 마실 수도 있을 텐데?”
“그 말을 그대로 전해도 되겠습니까?”
“야!”
걸프사 회장은 못마땅한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내가 민주당에 얼마나 많은 후원을 했는데! 나를 이리 야박하게 대접하면 안 되지!”
“그것도 전해드릴까요?”
“후우!”
걸프사 회장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단답형으로 돌아오는 대답 속에서 중요한 정보는 하나도 캐치할 수 없는 상황.
그는 이런 구도가 퍽 낯설었다.
“대통령께 은밀히 따로 뵙잔다고 전해 주시게.”
“글쎄요.”
백악관 비서실은 싸늘하게 코웃음을 쳤다.
“안 그래도 신년이라 가뜩이나 돌아보셔야 할 행사가 많으신 분입니다. 일개 기업인까지 따로 시간을 내서 만날 만큼 한가한 때가 아니란 뜻입니다.”
“그래서 내겐 시간을 낼 수 없다, 이 말인가?”
“용건이 끝났으면 이만 돌아가주시겠습니까?”
명백한 거절이었다.
걸프사 회장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했다.
“자네 이름과 직책 불러 봐.”
뒤탈이 있을 거란 서슬 퍼런 압박이었다.
하지만 백악관 비서실은 개의치 않았다.
“보이시는 대로.”
“대답하는 것조차 귀찮다?”
“안녕히 가십시오.”
걸프사 회장은 씩씩대며 등을 돌렸다.
“내 오늘의 수모는 똑똑히 기억해두지.”
그의 비서가 당혹스러운 얼굴로 즉시 뒤따랐다.
“회장님, 대통령께서 이대로 계속 안 만나주신다면…….”
“부대통령은 뒀다 뭐에 써? 그쪽으로 가자.”
“저기, 회장님. 실은…….”
비서가 우물쭈물하더니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제가 아까 부대통령께도 접견 신청을 해 봤지만, 딱 잘라 거부당했습니다.”
“뭐야?”
걸프사 회장은 도끼눈을 뜨고 비서를 돌아보았다.
“이유가 뭐야?”
“바쁘답니다.”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내가 왔다고 하면 지방 출장에 나갔다가도 전용기를 띄워 달려온다는 연락부터 했건만!”
어떻게 태도가 이렇게 손바닥 뒤집듯이 달라질 수가 있지?
걸프사 회장은 도무지 지금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민주당 의원들을 좀 만나봐야겠다.”
“그게…….”
“왜? 그쪽도 못 만나주겠다던가?”
“예.”
“환장하겠군.”
걸프사 회장은 찌릿찌릿 울려대는 편두통에 이를 꽉 물었다.
“그럼 공화당 상하원 의원들이라도 좋아. 자리 한번 마련해 봐!”
“그것이…….”
“설마 공화당마저 거부한 것은 아니겠지?”
“몇 명의 의원들은 반색했습니다만, 그들은 그리 힘 있는 의원들이 아닌지라. 크흠.”
“그러니까 쭉정이들만 응했다? 이것들이 미쳤나?”
“아무래도 누군가 뒤에서 손을 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손을 써? 누가?”
걸프사 회장은 눈을 부릅떴다.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누가 뒤에서 손을 쓰든 말든, 내가 그런 것에 휘둘릴 입장이야?”
“…….”
비서는 쉬이 대답하지 못했다.
“나 걸프사 대주주이자, 회장이야! 어딜 가도 환영받는 글로벌 정유기업의 거물!”
“…….”
“그런 나를 이렇게 푸대접한다는 게 말이 되냐 이거야!”
걸프사 회장은 비서의 머뭇거림에서 눈치를 챘다.
“누가 뒤에서 움직였는지 알고 있구나!”
“확실한 건 아니지만…….”
“누구야? 의심이라도 상관없다. 누군지만 말해!”
“그러니까 JH투자 말입니다.”
“JH투자? 그런 듣도 보도 못했던 회사 따위!”
“듣도 보도 못했던 회사가 아닙니다. 일본 부동산 시장을 흔들었던 굵직한 투자회사란 말입니다.”
비서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전보에 따르면 걸프사의 지분을 50% 이상 확보했다는군요.”
대한석유공사의 지분을 비싼 값에 팔아치우라고 보내놨던 인수협상단.
그들이 보낸 전보에 걸프사는 발칵 뒤집혔다.
“월가도 한때 JH투자에 관해 상당히 시끄러웠던 것을 기억하십니까? JH투자가 일본 은행에 대규모 단기차입금을 제공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우리 걸프사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던 일본 은행들이 JH투자의 손을 들어주기로 했다며?”
걸프사 회장은 바드득 이를 갈았다.
“JH투자가 보유한 걸프사 지분? 기껏 해 봐야 7% 남짓한 주제에!”
“그래도 걸프사의 대주주라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JH투자에서 걸프사 임시 주총을 열겠다는 소집장을 보내왔고…….”
“그놈의 주총! 그놈의 소집장!”
쿵!
화가 난 걸프사 회장은 크게 발을 굴렀다.
“아직 임시 주총이 열리기까지 시간이 남아 있어! 자넨 내가 왜 이곳 백악관에 찾아와서 이 치욕을 감수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걸프사 회장의 서슬이 퍼랬다.
“내가 가진 지분이 17.3%나 돼!”
고작 8%도 안 되는 JH투자와 비교하면 무려 두 배가 넘는 지분이다.
“거기에 미국 은행들이 보유한 지분이 15.5%야! 다 합하면 32.8%다.”
“하지만 뱅크 오브 시티, 아메리카 뱅크, 골드만색슨 등의 미국 은행들이 원금 및 이자 회수를 독촉하고 있습니다. 이게 무엇을 뜻하겠습니까?”
“그걸 막자고 내가 여기 백악관에 달려온 거 아니야!”
빠드득!
“은행은 미국 정부와 척을 지면서까지 JH투자 편 못 들어. 그러니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대통령과 부통령에게 확답을 받아내야 한다!”
“회장님.”
“뇌물을 받아먹은 만큼 든든한 뒷배가 되어줘야 할 것 아닌가. 그게 상도덕이지!”
가는 게 있으면 응당 오는 것도 있어야 하는 법!
걸프사 회장은 의미심장한 눈으로 비서를 돌아봤다.
“뇌물 장부를 언론에 뿌리는 꼴을 보고 싶지 않다면 날 만나야 할 것이라고 전해.”
“회, 회장님. 그런 식으로 나온다면 정권의 눈 밖에 나기 십상…….”
“지금 눈 밖에 나고 말고가 중요한가? 내가 회장 자리에서 쫓겨나게 생겼는데?”
이미 임시 주총에서 대표 해임안까지 올라온 상황이다.
그는 물러설 수 없는 코너에 몰려 있었다.
“이렇게 해서라도 미국 은행들이 보유한 지분 15.5%를 끌어올 수만 있다면 남는 장사야!”
걸프사 회장은 몸을 홱 돌렸다.
쿵쿵 땅을 울리며 걷는 걸음이 꼭 투우장에 나선 성난 황소 같았다.
“민주당 의원들, 공화당 의원들 할 것 없이, 내 돈 받아먹은 인간들에게 전해라! 내 편을 들어주지 않겠다면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라고.”
“회, 회장님! 그렇게 들이받으면 적이 너무 많아집니다!”
“상관없다! 코라이 게이트 터진 지 얼마나 됐어? 뇌물 장부 공개되면 그놈들 전부 옷 벗어야 돼!”
이미 코라이 게이트의 뇌물 수수 혐의로 미국 상하원 의원들과 고위 행정관료들은 크게 곤욕을 치른 후였다.
한국 정부가 나서서 문제를 제기한 놈을 제거해 겨우 수습한 일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그 여파는 쉬이 가라앉지 않아서 부패 정치인들을 보는 미국 시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일이 그렇게 커지면 회장님께서도 뇌물 수수 혐의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비서는 화들짝 놀라 만류했다.
“이미 전임 회장님과 계열사 사장님들이 같은 죄목으로 법정에 끌려가셨잖습니까?”
“이판사판이야! 난 죽어도 절대로 혼자 못 죽어!”
걸프사 회장의 일그러진 얼굴에 웃음이 겹쳤다.
악의와 독기가 넘실대는 웃음이었다.
“USA 투데이, 월 스트리트 저널, 워싱턴 포스트, 뉴욕 타임즈, LA타임즈, 시카고 트리뷴, 뉴욕 데일리를 가리지 않고 뇌물 장부를 뿌려버리겠다고 협박해!”
큭큭큭, 낮게 흐르는 웃음에 걸프사 회장의 어깨가 들썩거렸다.
“내 돈을 배 터지게 받아먹었으면 이런 상황도 각오했겠지. 최측근들까지 싹 다 잘리는 꼴 보기 싫으면 미국 은행들에 확실하게 압력 넣어줘야 할 거야!”
그렇게 걸프사 회장이 휘파람을 불었다.
“백악관에 전해. JH투자에 IRS(Internal Revenue Service: 미국 국세청) 좀 보내달라고.”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기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휘파람에 즐거운 웃음소리가 섞였다.
“감히 걸프사의 경영진 해임을 안건으로 임시 주총을 소집해? 건방진 새끼들!”
걸프사 회장은 자신만만했다.
“있는 죄 없는 죄 그득그득 얹어서 감옥살이 제대로 시켜주마.”
걸프사 회장의 눈이 섬뜩하게 빛났다.
“Fools rush in where angels fear to tread!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백악관 저쪽 복도 끝에서 커다란 덩치의 경호팀장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상처와 굳은살이 가득한 두툼한 손으로 잔뜩 구겨진 신문을 움켜쥐고 말이다.
“큰일 났습니다, 회장님!”
“무슨 일로 이렇게 호들갑이야?”
“시, 신문과 방송에 우리 걸프사가……!”
“신문과 방송에? 왜?”
이건 또 무슨 소리야?
걸프사 회장은 손을 내밀었다.
경호팀장은 재빨리 신문을 건넸다.
신문 1면에 걸프사 소식이 대문짝만하게 실려 있었다.
<걸프사, 몰래 소련에 군자금을 대고 있었음이 밝혀져!>
걸프사 회장은 경악성을 내질렀다.
“쥐도 새도 모르는 일이었는데. 대체 누가……!”
걸프사 회장의 눈이 또르륵 굴러갔다.
크게 당황하던 비서와 눈이 마주쳤다.
“너야?”
“아닙니다!”
“그럼 누구야? 부회장이야?”
“그, 글쎄요.”
그때 경호팀장이 허리 뒤춤에 끼웠던 다른 신문들을 꺼내 건넸다.
걸프사 회장은 신문을 낚아채서 쫙 펼쳤다.
<걸프사, 쿠웨이트 유전 개발 실패로 회생 불가능한 적자 기록!>
<은행들이 걸프사에 원금 및 이자 회수 독촉!>
<무디스 발표. 걸프사 시총 평가 세계 9위->세계 87위!>
<65억에 달했던 자산에 압류 신청이 쏟아져! 이대로 파산하나?>
쿵!
걸프사 회장은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다시 한번 발을 굴렀다.
“대체 어떤 새끼가 먼저 선수 친 거냐!”
“회장님, 당장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막아!”
걸프사 회장은 똥줄이 타는 얼굴로 다급하게 외쳤다.
“당장 기사부터 내려! 언론 보도 무조건 틀어막아!”
“예, 회장님!”
“뭐 하고 있어? 뛰어가지 못해?”
비서와 경호팀장은 부리나케 달려 나갔다.
걸프사 회장은 “으아아아!” 외치며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렸다.
“환장하겠네!”
첩첩산중이었다.
하지만 걸프사 회장은 이를 악물고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일본 은행들!”
일본 은행들이 쥐고 있는 지분도 상당히 크다.
무려 8.3%나 된다.
“일본 총리와 자민당 당 대표에게 부탁을 해 봐야겠군.”
걸프사 회장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 * *
한편 그 시각, 일본 총리와 자민당 당 대표는 물론 걸프사 지분을 보유한 일본 은행장들은 하나의 목표를 두고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바로 불타서 텅 비어버린 정동진의 저택에 죽치고 앉아 하염없이 연락을 기다리는 것.
“이만하면 올 때가 되지 않았나?”
이곳에서 주인이 찾아오기를 기다린 지 벌써 사흘째.
집안일로 바쁘다던 정씨 가문의 새 주인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이렇게까지 나 몰라라 하다니.”
일본 총리가 접이식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도 바쁜 사람이다 이거야!”
어디 일본 총리뿐일까?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치고 안 바쁜 사람이 한 명도 없다.
다들 일본 정재계에서 한가락 한다는 유명인사들뿐이었다.
하지만 일본 총리실 비서실장과 일본경제단체연합회 회장이 양옆에서 일본 총리를 붙들어 도로 앉혔다.
“참으십시오. 지금 성질부린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여기에 왜 왔습니까? 일본 국가부도를 막아보겠다고 온 거 아닙니까!”
일본 총리는 머리를 쓸어 올리면서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국가부도도 대화할 상대가 나타나야 막든가 말든가 할 것 아니야!”
일본 총리는 억울했다.
“내 친히 뇌물까지 듬뿍 가져다 바쳤는데!”
그때였다.
끼이익.
정동진 저택의 대문이 열렸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명동 송골매였다.
“주인님께서 부르십니다. 가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