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401)
재벌집 만렙 아들-401화(401/416)
401. 비장한 각오
일본 총리는 피식 웃었다.
“정씨 일가의 새로운 수장이라는 자 말이다. 상당히 독특한 캐릭터란 말이지?”
“뭐가 그리 독특합니까?”
“보내온 차를 봐라.”
일본 총리는 앞좌석 의자를 탁탁 쳤다.
새하얀 앞좌석 커버에 ‘서울관광’이라는 글자가 파란색으로 쓰여 있다.
“또 관광버스야. 하하하.”
“역시 총리대신도 기분이 나쁘신 거군요?”
총리 비서는 일본 총리를 힐끔 바라보았다.
“총리대신께서 늘 타고 다니시는 특수 제작한 롤스로이스에 비하면 이건…, 좀 너무 푸대접이 아닙니까.”
“하하하.”
“그렇게 웃을 일이 아닙니다. 보십시오, 다들 기분이 썩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기분이 좋지 않으면 지들이 어쩔 거야?”
일본 총리는 다시 한번 앞좌석 의자를 탁탁 쳤다.
“제 딴에 생각하는 지위, 계급, 수준 따지면서 품위 찾고 싶거들랑 택시 타고 벤츠 타고 오라고 해.”
“그러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죠. 저만 해도 그러니……. 후우.”
총리 비서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목적지가 어디인지도 모르는데, 이거 버스에서 내릴 수도 없고!”
“그렇지. 바로 그게 핵심이야.”
일본 총리는 쓴웃음을 지었다.
“정씨 가문의 새로운 수장은 아주 독특한 방식으로 상대를 제압하며 판을 장악하는 자가 분명해.”
일본 총리가 엄지로 어깨 너머를 가리켰다.
“이 관광버스에 타고 있는 사람들 중에 일본에서 한가락 하지 않는 자들은 없다.”
다들 불평불만이 많은 얼굴로, 똥 씹은 표정들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놈들을 상대로 수준에도 맞지 않는 관광버스에라도 올라탈 수밖에 없도록, 입 닥치고 따라올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지.”
“그건……!”
“이게 쉬운 일일 것 같나?”
“하지만……!”
“다르게 묻지. 자네라면 나를 상대로 간 크게 이런 짓을 벌일 수는 있겠나?”
“…….”
총리 비서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게 바로 대답이었다.
“봐. 쉽지 않지?”
“…….”
“그래서 걱정이다. 상대하기 쉽지 않은 자야.”
일본 총리는 눈을 빛내며 스쳐 지나가는 창밖의 풍경을 내다보았다.
“이런 자를 상대로 어떻게 설득을 할 수 있을까.”
빠르게 뒤로 스쳐가는 가로수를 보는 눈이 낮게 가라앉았다.
끼이익.
관광버스가 멈췄다.
“승객 여러분, 버스가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버스가 정차할 때까지 잠시만 자리에 앉아 계세요.”
상큼발랄한 목소리의 관광버스 안내양이 차 문에 매달려 활짝 웃었다.
“오라이~ 오라이~”
단체손님을 태운 관광버스가 얌전하게 주차할 때까지.
일본 정재계 유명인사들은 긴장한 얼굴이었다.
“드디어 정동진의 후계자를 만날 수 있게 되는 것입니까?”
“일본 공안조사청이 직접 한국을 오가며 샅샅이 수색했는데 아무것도 건진 게 없을 정도로 정보 통제가 철저한 자입니다.”
“그런 자가 우리와 직접 만나자고 청을 하다니. 믿을 수가 없군요.”
꽉 쥔 손아귀는 식은땀으로 축축했다.
다들 조심스럽게 눈빛을 빛냈다.
은행장단이 기대에 찬 눈을 들었다.
“정동진의 후계자가 단기차입금 회수 요청을 번복할까요?”
일명 크리스마스이브의 악몽!
스미모토 은행, 아이치칸교 은행, 후지산 은행, 미쓰시비 은행, 노무라 투자은행, 산화 은행, 도쿄카이 은행, 미쓰라 은행 등 일본의 쟁쟁한 은행들이 같은 날 곡소리를 내었다.
석유파동으로 인해 해당 조건이 충족되어 원금과 이자를 당장 회수하겠다는 통보가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대출 규모는 일본 정부의 1년 치 예산마저 웃도는 액수.
일본 은행들은 감당불가, 무조건 항복을 외치며 선처를 호소할 수밖에 없었다.
<은행에 단기 투자했던 자금을 일시에 회수한다면 일본에는 멀쩡한 은행이 몇 개나 남아 있을까.>
정동진의 후계자가 보낸 협박 편지도 같은 대목을 언급했었다.
“은행이 무너지기 전에 우리 회사가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정동진의 후계자께서 제발 마음을 돌려주셔야 할 텐데요.”
일본경제연합 소속 회장들도 불안한 소리를 내기는 마찬가지였다.
같은 날, 일본 대기업 회장들도 혼비백산하여 달려왔었다.
<은행에서 맡아두고 있던 일본 대기업의 지분도 내 뜻대로 행사할까 하는데.>
<이러다 일본 기업의 경영진이 내 뜻대로 싹 다 물갈이되면 어쩌려고?>
<세계 시장 시총 순위 상위권에 위치한 일본 기업들이 갈기갈기 찢겨져 외국 기업에 팔려 나간다면 일본의 국가적 손실이 클 텐데, 이거 정말 유감이로군.>
그날의 협박 편지는 이미 일본 총리의 악몽이 되었다.
일본 총리를 수행하러 온 고위 관료들도 우려를 표했다.
“정동진의 후계자가 작정하고 도쿄의 부동산 시장을 터트리면 진짜로 난리 나는 겁니다.”
나까무라 부동산이 이번에 내놓은 도쿄 땅만 12만 평, 빌딩만 4천 채에 달한다.
<여기에 나까무라 부동산이 터지면 일본 부동산 시장은 어떻게 될까?>
거품이 낄 대로 낀 부동산 시장이 폭락하게 되면 일본 경제는 진짜로 파탄 나고 만다.
정동진의 후계자가 협박 편지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하지만 더 깊은 한숨은 자민당과 사회당 등 정계와 행정부처 장관들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미국 상원 공청회에서 터진 또 한 번의 불법 뇌물 공여 사건이 제일 문제입니다.”
미국 CNM을 통해서 전 세계에 생중계된 일.
노스콥사(社)가 일본 내의 자사기 판매를 위한 로비를 벌여 정부 관계자와 정치인들에게 거액의 뇌물을 건넸다는 사실이 공개되었다.
록히드 게이트에 이어 두 번째 대규모의 일본 뇌물 스캔들이자, 일본 사상 최대의 불법 정치자금 스캔들을 경신했다.
<노스콥 게이트는 마음에 들었나 모르겠군. 이참에 일본 고위 관료와 정치인들까지 싹 다 물갈이할까 하는데.>
협박 편지의 마지막 문구를 본 일본 총리는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었다.
<국가부도, 능력껏 막아보시죠. -定->
일본 총리는 다시금 닥쳐온 옛 기억의 절망에 휩싸여 입술을 짓씹었다.
“그건 절대로 안 된다! 어떻게든 막아봐야지!”
일본 총리는 버스에 탄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우리는 이곳에 일본의 국가부도를 막기 위해서 왔다!”
“예!”
“손해를 떠맡게 되더라도 이 나라 일본을 위하여 감수할 각오는 되어 있는가!”
“예!”
“어쩌면 우리는 몇 개의 은행과, 몇 개의 기업과, 몇 개의 요지와 몇 개의 자리를 희생해야 할지도 모른다.”
“각오하고 있습니다!”
“작게는 수십억 엔, 크게는 수조 엔까지. 하지만 우리는 무슨 대가를 어떻게 치르더라도 일본의 금융 시장과 부동산 시장을 지켜내야 한다!”
“예, 총리대신!”
다들 비장한 얼굴로 쩌렁쩌렁하게 외쳤다.
탁!
제일 먼저 일본 총리가 관광버스에서 내렸다.
높고 거대한 성채 같은 담벼락과 으리으리한 전각, 그리고 웅장한 현판이 그들을 반겼다.
<청원각>
성북구에서 최고로 쳐준다는, 대한민국 3대 요정 중 한 곳이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일본 총리는 신음을 삼켰다.
“이곳에서 일본의 명운을 건 세기의 담판을 짓게 되는군.”
일본 총리는 옷매무새를 고쳤다.
양복 안주머니에서 곱게 접은 종이를 하나 꺼냈다.
종이를 쥔 일본 총리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여차하면 이것을 내놓는 한이 있더라도…….’
비장한 얼굴이었다.
일본 총리는 종이를 한참이나 노려보다가 양복 주머니에 푹 찔러 넣었다.
각오는 그것으로 끝났다.
“가자!”
비장한 발걸음이었다.
척척척척.
그들은 차례대로 청원각 대문 문턱을 넘었다.
* * *
청원각 후원 별채 여심채.
나는 비장한 얼굴로 신중하게 연필을 놀렸다.
“하……! 쉽지 않네.”
연말이라 치러야 할 행사가 너무 많았다.
인수 기업 리스트를 검토하는 일도 그렇고, 송년의 밤은 물론 새해 첫날 태성가의 떡국 먹기와 주한미국 대사를 상대해야 했고, 또…….
“평범한 국민학교 1학년생의 겨울 방학 생활이라는 거, 쉽지 않네요.”
그렇다고 내가 방학 일기로 유공 인수, 걸프사 협상, 주한미국 대사와 워렌 버퍼와의 동맹 등을 쓸 수는 없잖아.
말죽거리 말대가리가 콧방귀를 뀌며 날 돌아보았다.
“주인님, 그러니까 방학 일기는 그날그날, 매일매일, 꼬박꼬박 쓰셔야 한댔잖습니까?”
“그냥 일기도 쓰기 귀찮은데, 꼭 그림 일기를 써야 한다잖아요.”
이것이 바로 국민학교 1학년의 비애!
“어째 그림 그리는 시간이 일기 쓰는 시간보다 더 걸리죠?”
“맞습니다, 주인님. 우리나라 교육 과정, 이렇게 문제가 심각합니다!”
종로 금이빨이 진지한 얼굴로 날 돌아봤다.
“그냥 타자기로 칠까요?”
“누가 그림 일기를 타자기로 쳐요?”
“어쨌거나 내용을 적어 넣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림이야 뭐…….”
종로 금이빨은 누런 이를 드러내며 음흉하게 웃었다.
“우리 애들 중에 문신을 아주 기가 막히게 그리는 놈들이 있습지요. 그놈들 데려올까요?”
“비켜봐요. 지금 그것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가 생겼으니까요. 도련님, 비상사태입니다.”
까치산 방 여사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아오, 5일 전 날씨가 기억이 안 나는데, 어쩌죠?”
그 문제의 해결책은 동남쪽 스컹크가 제시했다.
“신문 가져올까요?”
동남쪽 스컹크는 향수를 칙칙 뿌리면서 싸늘한 눈으로 수첩을 꺼냈다.
“물론 경제 기사와 정치면 주요 쟁점 사안을 스크랩한다고 너덜거리긴 하나, 지금은 그런 거 가릴 때가 아니지 않습니까?”
“주세요.”
그렇게 우리는 또 한 번의 고비를 넘겼다.
<날씨: 흐림.>
귀찮다!
너무 귀찮다, 이놈의 방학 숙제!
나는 혀를 찼다.
“이런 거 하는 시간에 회계 장부를 보는 게 더 쉽고, 빠르고, 효율적이겠어요.”
“우리 방학 숙제 한 놈에게 몰아주기를 걸고 내기 도박 한판 벌일까요?”
말죽거리 말대가리가 신이 나서 소매를 걷어붙였다.
“한 놈만 뒈지면 끝나는 일이잖습니까? 콜?”
때와 장소에 맞지 않는 철딱서니 없는 제안인지라.
나는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들 비장하게 한목소리로 외쳤다.
“콜.”
“나만 아니면 돼!”
“빨리 판 깔아요! 시간 없으니까!”
똑똑똑.
그때 스승님이 장지문 너머로 조심스럽게 용건을 고했다.
“주인님, 일본 총리와 그 일행이 청원각에 도착했습니다.”
스승님의 목소리가 퍽 비장했다.
“어떻게 할까요? 본채에서 장지문을 전부 터서 한꺼번에 모이라 하시겠습니까?”
이미 사람 수에 맞춰 청원각 수라간에는 음식 주문을 끝마친 상태.
상을 어디에 차리느냐만 남았다.
“이곳 별채에 일본 총리와 최측근만 따로 부르시겠습니까?”
거물 5인방이 조용해졌다.
반짝이는 눈으로 날 돌아보며 대답을 재촉한다.
말죽거리 말대가리가 물었다.
“설마 도련님께서 직접 모습을 드러내실 겁니까?”
“필요하다면요.”
못 할 것도 없지!
하지만 동남쪽 스컹크는 고개를 저으며 만류했다.
“굳이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도련님. 이런 일에 나서 봐야 도련님 체면만 상합니다.”
일본 총리의 일행인데도?
“엿 먹이는 일 아닙니까. 일본은 체면을 상당히 중요시하는 나라입니다. 이러한 원한을 잊을 놈들이 아닙니다.”
동남쪽 스컹크는 비장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앞으로 장차 일본에서 큰일을 하셔야 할 도련님이십니다. 향후 득보다 실이 많을 겁니다.”
“금융지주회사의 설립 여부가 걸린 일이에요.”
양지로 나가고 싶다면서요.
사형제들끼리 한마음 한뜻으로 바라는 일이라면서요.
안락하고 평온한 노후를 누리고 싶다면서요.
“그러니 더욱더 제가 으름장을 놓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동남쪽 스컹크는 품에서 향수를 꺼내 보란 듯이 제 몸에 칙칙칙 뿌렸다.
“도련님께서 어리다고 우습게 보는 일 없도록. 제 선에서 정리하겠습니다.”
혹시나 해서 물어봤다.
“어떻게 정리하시려고요?”
“아마 저쪽에서는 이쪽을 설득할 치밀한 계획을 준비했을 겁니다.”
동남쪽 스컹크는 스산하게 웃었다.
“하지만 그것도 처맞기 전까지의 일이지요.”
내 이럴 줄 알았지!
정동진 어르신을 만나러 갈 때도 이 인간의 입에서 툭하면 나오던 말이 ‘죽을죄죠.’더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