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402)
재벌집 만렙 아들-402화(402/416)
402.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나는 팔짱을 꼈다.
“일본 총리가 지금 한국에 찾아온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일본의 국가부도를 막기 위해서. 아닙니까?”
대답은 즉각적이었다.
정씨 집안 5인방이 재빨리 덧붙여 말했다.
“이미 부동산 시장과 은행권을 건드렸습니다.”
“주식시장을 비롯해 기타 파생 금융시장까지 죄다 뭉개놓는 것도 시간문제입니다.”
“일본 기업의 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하면 전 세계 주식시장이 요동칠 겁니다!”
“도미노처럼 시장이 무너지면 일본 경제가 크게 침몰할 수밖에 없지요.”
“일본 총리는 그것에 경각심을 갖고 사전에 이를 막기 위해 달려온 것 아니겠습니까?”
나는 피식 웃었다.
“나를 찾아오는 것보다 더 쉽고, 빠르고, 간단한 해결책은 따로 있었어요.”
쓴웃음이 절로 나왔다.
“암살.”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이다.
정씨 가문 5인방도 쓰게 웃었다.
“짐작하고 계셨군요.”
이들 역시 평생을 뒷골목에서 지겹도록 구른 사람들이다.
그러니 딱히 놀랄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물었다.
“뒤탈이 걱정돼서 나한테 빠져 있으라는 거죠?”
“도련님과 달리 저는 이미 일본에 얼굴과 신분이 노출된 정씨 집안의 사람입니다.”
동남쪽 스컹크의 온몸에서 비장한 각오가 새어 나왔다.
“개인적으로 놈들에게 꼭 갚아주고 싶었던 빚도 있어서 그렇습니다.”
개인적인 빚?
“나까무라 부동산도 그렇고, 우리 파친코 업장도 그렇고, 우리 애들을 건든 것도 그렇고. 일본 높으신 분들께 유감이 상당히 많지요.”
동남쪽 스컹크는 일본 정부의 공권력 행사에 곤욕을 치른 바 있었다.
덕분에 나까무라 부동산과 파친코는 잠정 휴업 상태!
“둘 다 제가 맡아 10년 넘게 굴리고 있던 곳입니다. 언제까지나 이렇게 방치해 둘 수도 없습니다.”
동남쪽 스컹크는 이를 갈았다.
“제가 반드시 나까무라 부동산과 파친코를 지켜내겠습니다. 또한 도련님께서 뜻하시는 금융지주회사를 위한 발판도 확실하게 챙기겠습니다!”
급기야 동남쪽 스컹크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저 스컹크를 믿어주십시오! 기필코 일본의 알짜 은행과 보험사, 증권사, 자산운용사를 야무지게 뜯어내 보이겠습니다!”
흐음.
“어차피 도련님께선 지금 일본 시장을 뭉개놓으실 생각도 없으시잖습니까?”
바로 보았다.
지금 일본을 국가부도 내기엔 너무 아깝지.
‘부동산 버블이 터지면서 일본이 장기 불황 침체기에 들어가기까지. 최소 10년 이상은 일본이 세계 시장의 돈을 갈퀴로 쓸어 담을 때다.’
버릴 때 버리더라도 등골이 휠 정도로 빨아먹은 다음에 버려야지!
“JH투자를 시작으로 일본과 미국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디딤돌! 그 돌은 제가 놓아드리고 싶습니다!”
나를 바라보는 동남쪽 스컹크는 간절해 보였다.
“결코 도련님을 실망시킬 일은 없을 것이라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좋아요.”
나는 장지문 너머를 가리켰다.
“옆방으로 부르세요. 일본 총리와 담판 짓게.”
“도련님!”
“그렇게 직접 빚을 갚고 싶다 하니, 기회는 줘야죠.”
나는 종로 금이빨이 가져왔던 타자기를 가로챘다.
타다다다닥!
열심히 타자를 두드리자, 다들 의아한 얼굴로 물어왔다.
“주인님, 지금 뭐 하십니까?”
“혹시 그림일기?”
내가 지금 그림일기나 쓰고 있을 때냐!
“나까무라 부동산, 파친코, 일본의 은행, 보험사, 증권사, 자산운용사가 걸린 일이잖아요?”
타다다다닥!
“전 말보단 문서를 더 믿는 거 아시죠?”
그런데 이게 웬걸?
스승님이 스윽 손을 들었다.
“동남쪽 스컹크 혼자 보낼 수는 없습니다. 정씨 집안의 안내자로 얼굴을 드러낸 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승님답지 않게 비장한 얼굴이었다.
“안목이나 돈 계산에 관해선 제가 제일 확실합니다. 알짜 기업으로만 쏙쏙 골라 올 테니, 저도 같이 보내주십시오.”
말죽거리 말대가리도 손을 번쩍 들어 크게 흔들었다.
“승부수 띄울 타이밍 잡는 건 제가 기가 막히게 잘할 수 있습니다. 저도 보내주십시오!”
종로 금이빨과 까치산 방 여사도 의욕을 보이긴 마찬가지였다.
“전 협박을 제일 잘합니다! 오금이 저리도록 몰아붙이겠습니다!”
“전 후려치기 전문가예요! 눈 뜨고 코 베어낼 자신 있어요!”
이거 아주 든든하구만!
하지만 말이다.
“일본 총리가 만나러 온 사람은 정동진의 후계자잖아요.”
이들이 동석하는 거야 상관이 없지.
그러나 한국까지 찾아온 일본 총리가 정씨 집안의 하수인들로 만족할 리 없다.
그쪽 입장에서는 무려 일본의 명운이 걸린 일일 테니까.
확실한 담판을 짓고자 할 것이다.
“결국 내가 나서야 끝날 일이에요.”
똑똑똑.
드르륵. 탁.
“어?”
예상치 못했던, 뜻밖의 손님이었다.
나는 크게 반색했다.
“마침 잘 오셨어요!”
나는 요령껏 타이밍 잘 잡는 사내가 좋더라!
* * *
성북구 청원각 본채엔 방마다 장지문을 터서 길게 이어 붙였다.
상마다 온갖 산해진미가 정갈하게 차려졌다.
일본에서 온 방문단은 좌우로 길게 늘어앉은 채, 식사보단 수군거리기에 바빴다.
총리 비서가 도자기 술주전자를 기울여 술을 따랐다.
“정동진의 후계자를 상대할 대비책이 하나도 없는 건 아니잖습니까?”
총리 비서는 음습하게 눈을 빛냈다.
“한국 정부를 움직여 너구리굴 앞에서 연기를 피워 올리도록 하시죠. 우리는 지레 놀라 뛰쳐나온 너구리를 포획하면 됩니다.”
탁.
일본 총리가 술잔을 내려놓고 고개를 돌렸다.
“공안조사청장.”
“예, 총리대신.”
“만일 협상이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면, 뒤는 계획했던 대로.”
“안심하십시오.”
일본 공안조사청장이 말석에 자리한 야쿠자 간부들을 슥 둘러보았다.
지난 정동진 조문객으로 들어왔던 이들이 아니었다.
야쿠자 간부라고 하기엔 너무 젊고 건장했고 영리해 보이는 자들이었다.
“뒤처리는 우리 공안조사청 요원들에게 맡겨주십시오. 흔적 없이 깨끗하게 마무리할 겁니다.”
똑똑똑.
드르륵. 탁.
“총리께서는 자리를 잠시 옮기실까요?”
명동 송골매의 정중한 부름이었다.
수군대던 소리가 딱 멎었다.
술잔을 기울이던 일본 총리의 동작도 뚝 멎긴 마찬가지였다.
“독대인가?”
“원하신다면 몇 명 동행하셔도 좋습니다.”
“좋다. 다섯을 대동하지.”
일본 총리는 벌떡 일어나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총리 비서, 공안조사청장, 일본 중앙은행총재, 일본경제연합회장, 자민당 당 대표가 따랐다.
드르륵. 탁.
청원각 후원 별채 여심채.
장지문 너머 상석에 앉은 자.
싸리나무를 엮어 길게 늘어뜨린 발과 그 너머로 엿보이는 희미한 실루엣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당신이 정동진의 후계자인가?”
일본 총리가 물었다.
“…….”
하지만 싸리나무발 너머의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손님을 맞이하는 자들은 따로 있었다.
나는 두 손을 모아 정중하게 배꼽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먼 길 오시느라 수고하셨어요. 자리에 앉으세요.”
공안조사청장은 일본 총리에게 작게 귀띔했다.
“명동 송골매를 포함해 저들이 바로 정동진의 다섯 최측근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흐음, 그럼 이 꼬맹이는 또 뭐 하는 놈이야?”
“글쎄요. 그건 저도 잘…….”
“우리를 상대하기엔 급이 안 맞는다고 하수인의 또 다른 하수인을 세운 건 아니겠지?”
“아무리 그래도 체면이 있지. 총리대신을 맞이하는 일에…….”
일본 공안조사청장이 난색을 표할 때,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제가 누구인지보다 이 회담이 어떻게 굴러가는가가 더 중요한 거 아니겠어요?”
털썩.
나는 싸리나무발을 등지고 탁자 제일 상석에 앉았다.
반면 일본 총리는 나와 싸리나무발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탁자의 반대편 끝에 좌정했다.
그런 우리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정씨 가문 하수인들이, 오른쪽에는 일본인들이 앉았다.
6 대 6.
총 열두 명이 커다란 원목 탁자를 중심으로 자리한 셈이었다.
일본 총리가 입을 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나까무라 부동산의 증여세, 줄여주지.”
스승님이 콧방귀를 뀌었다.
“그건 이미 주인님께 뇌물로 올린 제안이었지요.”
“거기에 하나 더. 사채와 맞바꾼 주식, 세무조사는 눈감아 주지.”
“그 또한 이미 주인님께 뇌물로 전한 제안이었고요.”
나는 혀를 찼다.
“뇌물을 줄 거면 차라리 화끈하게 면세해 주시든가요. 통이 상당히 작으시군요?”
“증여세와 주식이 얼마짜리인지 알면 통이 작단 소리는 못 할 텐데?”
“그렇다고 정씨 가문이 내지 못할 만큼 거액은 또 아니잖아요?”
나는 얄밉게 웃었다.
“정씨 집안은 돈이 많거든요. 생각했던 것보다 아주아주 많을걸요?”
“아무리 돈이 많아도 세금으로 다 뜯겨서 거지꼴이 되면 피눈물이 날 텐데?”
“일본법대로, 합법적으로, 한 푼도 깎지 않고, 증여세와 주식세를 청구해도 상관없어요.”
“후회하지 않겠나?”
“대신 우리도 움직이겠어요. 계약대로, 합법적으로, 한 푼도 깎지 않고 일본 은행에 단기차입금 원금과 이자 회수권을 발동할게요.”
“JH투자에서 발행한 단기차입금이 일본 정부의 1년 치 예산이 넘는다고 협박할 셈인가?”
쾅!
일본 총리는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쳤다.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을 통해 어떻게든 그 돈은 융통해 갚는다는 선택지도 존재한다!”
일본 총리는 물러서지 않았다.
“이 일은 일본에 끼치는 해악과 영향이 중대한 사안인 만큼 도쿄지검 특수부와 국세청이 공조 수사하도록 해야겠지.”
공권력을 동원해 쓸어버리겠다는 뜻이었다.
“일본 은행이 타격을 입은 것 이상으로 JH투자의 타격도 클 것이란 것만큼은 장담할 수 있다.”
“일본 기업의 경영진 교체에 관해서도 일본 정부가 개입할 건가요?”
“JH투자가 일본 기업의 대주주가 되는 과정에 불법적인 의혹이 발생했으니, 응당 그래야 하겠지.”
일본 총리는 씩 웃었다.
“은행 관련 분쟁을 조사하는 김에 도쿄지검 특수부와 국세청이 이것까지 마저 파헤치면 되겠군.”
탈탈 제대로 털어내겠다는 소리였다.
“그렇다면 나까무라 부동산이 필히 문제의 근원지로 손꼽히겠지?”
당연한 말이다.
나까무라 부동산을 담보로 두고 은행 대출금을 끌어다 썼으니까.
나는 아쉬울 것 없다는 투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털고 싶다면 터세요.”
“……진심인가?”
“물론이죠.”
협박이 통하지 않자, 일본 총리는 당혹스러움을 숨기지 못했다.
“JH투자와 나까무라 부동산을 털면 일본 금융시장과 일본 주식시장, 일본 부동산 시장이 전부 다 무너질 거라 믿고 있는 건 아니겠지?”
일본 총리는 이쪽을 슥 훑어본 이후, 싸리나무발 너머로 눈을 고정했다.
“JH투자와 나까무라 부동산이 돌려 막기를 했던 것처럼 우리도 돌려 막기를 해버리면 그만이야.”
이것이 일본 총리의 해결책이었다.
“JH투자와 나까무라 부동산을 언론의 제물로 내던지고, 타격이야 조금 받을지언정 나머지는 어떻게든 수습할 수 있다는 소리다.”
“그럼 그렇게 하시라니까요?”
“그 과정에서 부서지고 깨지는 것은 JH투자와 나까무라 부동산이 될 텐데도?”
“누가 모른대요?”
쾅!
“대체 뭘 믿고 이렇게 자신만만한 거지? 일본 최고의 변호인단을 데려와도 나를 상대하기란 어려운 일일 텐데!”
“그보다 더 쉽고, 빠르고, 간단한 해결책은 따로 있잖아요.”
나는 씩 웃었다.
“노스콥 게이트.”
“……!”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이다.
그건 일본 총리와 일본의 정관계 고위 인사들도 마찬가지일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