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408)
재벌집 만렙 아들-408화(408/416)
408. 나만 한 적임자가 없구만! (1)
심 사장은 혼란스러운 얼굴이었다.
“제게 왜 이런 시련을……!”
“이게 왜 시련이에요? 좋은 자리 골라 가지는 기회를 준 건데요.”
나는 방긋 웃었다.
“바지회장의 꿈을 이룰 수 있는 또 다른 선택지가 생겼잖아요.”
이 시절 시총 세계 순위를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는 게 일본의 금융업이다.
그런 일본의 금융사를 한데 묶어 금융지주회사를 설립하는 거고.
“잘만 만들어 놓으면 금융지주회사 회장 자리도 걸프사 회장 자리 못지않게 거창할 것 같아서요.”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참, 오늘부터 일주일간 유급 휴가였죠?”
나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두툼한 봉투를 심 사장의 양복 주머니에 푹 찔러주었다.
내가 믿는 건 말이나 행동이 아닌, 돈과 문서였기에.
넉넉한 인심으로 표현하는 내 진심이었다.
“그럼 휴가 끝날 때까지 잘 생각해 보세요.”
* * *
오늘은 심 사장이 답을 가져오기로 했던 날이다.
‘이게 뭐라고 긴장되네.’
그래서였다.
나는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주어진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도련님, 코, 킁!”
이깟 양파 따위에 내가 굴복할까 보냐!…… 라고 큰소리치기에는 매워도 너무 매웠다.
내 옆에서 눈물 콧물을 흘리고 있는 건 전대 거물 5인방도 마찬가지였다.
스승님도 휴지로 코를 팽 풀었다.
“어흑, 맵다, 매워!”
“도대체 이놈의 집구석은 양파를 얼마나 까라는 거야? 아주 한 망태기를 까라고 던져주네!”
말죽거리 말대가리가 신경질적으로 양파를 내던졌다.
“난 못 해! 아니, 더 이상은 안 해!”
“이 집 할매 손이 크긴 크더라고요. 무슨 놈의 카레를 특대형 곰솥으로 끓이는지.”
종로 금이빨이 한 소리 거들자, 까치산 방 여사가 팔꿈치로 콱 쳤다.
“쉿, 조용히 좀 해요! 불곰 할매가 듣고 짜장까지 볶겠다고 심술부리면 어쩌려고 그래요?”
동남쪽 스컹크도 눈물이 질질 흘러 벌게진 눈으로 까치산을 부러운 듯 바라보았다.
“까치산 누님은 좋겠다. 누구는 양파 까는데, 누구는 감자 깎고.”
“오호홋, 홍삼은 땅 파면 나오는 줄 알아?”
까치산 방 여사 혼자 감자를 깎을 수 있었던 게 홍삼 선물세트 때문이던가!
역시 인생사 미리 칠하는 기름칠이 최고라니까?
이 시절의 홍삼은 참으로 귀했다.
“호호호, 도련님, 그런데 정말로 오늘 사업체를 나눠 주실 작정인 거 맞아요?”
“물론이죠.”
그게 아니라면 내가 전대 거물 5인방을 집으로 부를 이유가…….
“방학숙제 도와달라는 속셈이 아니었다고요?”
물론 그런 이유도 포함이지만!
나는 모른 척 고개를 돌렸다.
“정씨 집안의 숙원 사업이 양지 진출이라면서요.”
“예!”
“오늘은 심 사장님과 함께 그에 대해서 논해 볼까 해요.”
“굳이 그럴 필요 있겠습니까?”
스승님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심원철, 그자가 우리 정씨 집안과 무슨 관계라고요.”
“심 사장님이 있고 없고에 따라, 아마 정씨 집안이 향후에 펼칠 사업의 개고생 난이도가 달라질걸요?”
“예?”
다들 눈이 동그래졌다.
“그거 믿기 힘든 말이군요.”
스승님은 고개를 갸웃했다.
“심원철이 경영의 귀재이자, 태성의 대들보라는 소리는 귀 따갑게 들어 알고는 있지만, 그 정도나 되는 인물은 아닌 듯싶습니다만?”
“그건 심 사장님의 진가를 모르고 하는 말이에요.”
“호오.”
다들 눈을 빛내며 관심을 보였다.
“그렇다면 심원철, 그 남자가 이번에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역할을 맡아주느냐에 따라…….”
“아주 많은 것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뜻이겠죠?”
띵동!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심 사장이 도착했다.
“도련님.”
나는 깜짝 놀랐다.
“몰골이 왜 이 모양이에요?”
내가 분명 푹 쉬면서 잘 생각해 보라고 일주일이나 유급 휴가를 줬는데?
거기에 넉넉하게 쓰라고 휴가비까지 듬뿍 쥐여 보냈건만.
왜 이런 꼴인가 몰라.
“다크서클 엄청 짙은데요? 이 푸석푸석한 피부는 또 뭐예요? 이 퀭한 눈깔까지?”
“평소랑 딱히 다를 것도 없습니다만?”
“…….”
나는 반박하지 못했다.
심 사장은 쓰게 웃었다.
“단지 평소에는 서류 작업하느라 며칠 밤을 철야했고, 이번엔 전전반측 고민하느라 며칠 밤을 꼴딱 새웠다는 게 다를 뿐. 어차피 날 새며 고생한 건 똑같으니까요.”
이쪽은 몸고생, 저쪽은 마음고생!
하지만 딱히 공감되진 않는 소리였다.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라고 준 유급 휴가가 아니었을 텐데요?”
“…….”
그렇게 뜨끔한 얼굴 할 것 없다.
내 잔소리는 이제부터 시작이니까.
“신년은 가족과 함께! 일주일 동안 실컷 먹고, 실컷 자고, 실컷 놀고 돌아오라고 했어요, 안 했어요?”
“하셨지요.”
“여행도 가고, 쇼핑도 하고, 사진도 찍고, 대화도 하라고 휴가비 넉넉히 챙겨 줬어요, 안 줬어요?”
“주셨지요.”
“그럼 이렇게 피곤에 찌들어서 돌아오면 안 됐죠. 휴가 막 쓸 거면 차라리 받지 마시든가요.”
“……죄송합니다.”
심 사장은 뒷머리를 긁었고, 나는 혀를 찼다.
“도대체 이까짓 게 뭐라고요.”
“이게 어디 보통 선택집니까?”
심 사장의 목소리는 비장했다.
“JH투자 사장이냐, 금융지주회사 회장이냐, 걸프사 회장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장탄식이 뒤따랐다.
“도련님의 제1심복 자리를 택하면 바지회장의 꿈이 멀어지고, 바지회장의 꿈을 택하면 도련님의 곁을 지킬 수 없고!”
심 사장은 머리통을 부여잡으며 끙끙댔다.
“명예냐, 실리냐, 그것이 문제로다!”
“……이 중에 명예랑 실리 둘 다 안 챙기는 자리가 어디 있다고요?”
“그래서 문젭니다! 선택지가 다 너무 좋거든요!”
“걱정도 팔자네요.”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심 사장은 억울한 눈으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저만 고민할 것 같습니까? 여기 있는 이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대답은 똑같을 겁니다.”
“과연 그럴까요?”
말이 나온 김에 묻기로 했다.
“송골매 어르신이라면 JH투자 사장, 금융지주회사 회장, 걸프사 회장 자리 중에 어떤 걸 택하시겠어요?”
“저라면 금융지주회사 회장 자리를 택하렵니다.”
스승님은 이게 뭐가 어렵냐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정씨 가문의 오랜 숙원 사업 아닙니까. 양지 진출해야지요.”
“보셨죠?”
간단하구만!
“…….”
하지만 심 사장의 눈은 한층 더 억울해졌다.
‘저건 특수한 경우고!’라며 되묻는 눈이었다.
그래서 다시 묻기로 했다.
“말대가리 어르신은요?”
“저야 당연히 JH투자 사장 자리를 고르죠.”
말죽거리 말대가리는 꿍꿍이속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뱀 대가리가 되지 못할 바에야 용 주둥이가 되고 싶습니다!”
이미 한번 나한테 제대로 찍혀서 전대 거물 중 막내 자리로 밀려난 말죽거리 말대가리.
그의 눈이 탐욕과 야망으로 일렁거렸다.
재기를 꿈꾸는 승부사의 눈이었다.
“주인님의 제1심복 자리, 탐납니다! 저 주십시오!”
“…….”
심 사장의 얼굴이 핼쑥해졌다.
할 말이 아주 많아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나는 모른 척 고개를 돌렸다.
“금이빨 어르신은요?”
“저는 주인님께 구명지은을 입은 몸!”
종로 금이빨은 즉시 한쪽 무릎을 꿇고 쩌렁쩌렁하게 외쳤다.
“JH투자 사장, 금융지주회사 회장, 걸프사 회장 자리 따윈 아무래도 좋습니다! 아무거나 시켜주시는 대로 따르겠습니다!”
“그래도 꼭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요?”
“대충 제비뽑기해서 걸리는 거 하죠, 뭐. 으하핫!”
“…….”
심 사장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번져가기 시작했다.
“이런 중요한 일을 저렇게 날로 결정한다고?”
“그게 중요합니까? 뭐가 됐든 주인님의 일을 돕는다는 게 중요한 거죠!”
종로 금이빨은 쩌렁쩌렁하게 경례를 올려붙였다.
“해골이 빠개질 때까지 충성하겠습니다. 전 주인님의 발닦개!”
“…….”
이번엔 심 사장만이 아니라 나도 말문을 잃었다.
이 양반이 원래 이런 타입이었나?
과묵하고 대쪽 같고 터프하던 상남자!
내가 알던 금이빨 어르신, 어디 갔어?
“저는 JH투자 사장, 금융지주회사 회장, 걸프사 회장은 됐고, 나까무라 부동산 사장 자리만 시켜주세요. 오호홋!”
이젠 내가 묻기도 전에 대답부터 튀어나왔다.
까치산 방 여사에 이어 동남쪽 스컹크도 눈치껏 입을 열었다.
“까라면 까겠습니다만, 이왕이면 저는 성준이에게 보탬이 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동남쪽 스컹크는 배를 쭉 내밀며 크게 외쳤다.
“태성이 유공을 가져간 상황이니, 걸프사 회장 자리는 제게 주셨으면 합니다!”
목적이 아주 뚜렷해 보이는 야망이었다.
“걸프사 재산과 기술력을 야무지게 빼돌려 태성정유를 키우는 발판으로 쓰렵니다!”
“봤죠?”
나는 심 사장을 돌아보았다.
“뭐가 됐든 다들 자기가 원하는 바를 확실하게 고르잖아요. 꼭 저 세 자리 중에 한 자리를 골라야 한다는 법도 없고요.”
“으아아!”
그럴수록 심 사장의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그렇게 숯불 위에 올려진 오징어처럼 몸을 꼬아대던 심 사장이 돌연 고개를 번쩍 들었다.
“도련님, 선택에 앞서 몇 가지 물어봐도 됩니까?”
“그럼요. 뭐가 궁금한데요?”
“만일 제가 바지회장을 택한다면 비어버린 JH투자 사장 자리는 어떡하실 겁니까?”
바로 그때, 말죽거리 말대가리가 손을 번쩍 들었다.
“저 말대가리가 도련님을 전력으로 보필하겠습니다!”
“으음, 그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심 사장은 딱 잘라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당연하게도 말죽거리 말대가리의 성질머리에 가만히 있을 리 있나.
대뜸 발끈했다.
“아니, 왜!”
“도련님의 속도에 맞추려면 날마다 서류 지옥을 겪어야 할 텐데,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
말죽거리 말대가리의 눈에서는 지진이 났다.
말죽거리 말대가리가 혹시나 해서 물었다.
“혹시 명동 사무실 한쪽 벽에 산처럼 쌓여 있던 상자들이…….”
“예, 서류 상자들입니다.”
“설마 그걸 다?”
“당연하죠. 참고로 그 정도면 하루 혹은 이틀 내에 처리해야 하는 양일 겁니다.”
“거짓말하지 마! 사람이 소도 아닌데, 그걸 이틀 만에 어떻게 해치워?”
발끈한 건 심 사장도 마찬가지였다.
“내 다크서클이 X으로 보이시나!”
“……!”
말죽거리 말대가리가 날 돌아보았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심 사장의 말에 힘을 실어주었다.
“하아, 역시 제1심복 자리는 날로 먹기 힘들구만.”
말죽거리 말대가리는 고개를 푹 숙였다.
심 사장은 보란 듯이 콧방귀를 팽 뀌었다.
“이거 JH투자 사장으로 나만 한 적임자가 없구만!”
“끄응.”
말죽거리 말대가리는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잠시 동안 한껏 의기양양하던 심 사장.
“하하하, 하하, 하아…….”
그는 급현타가 온 얼굴로 다시 머리통을 부여잡고 끙끙대기 시작했다.
이내 형형한 눈으로 고개를 번쩍 들었다.
“도련님, 만일 제가 JH투자 사장 자리를 택한다면 금융지주회사 회장 자리와 걸프사 회장 자리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심 사장의 물음은 조심스러웠다.
“처음 도련님께서 금융지주회사 건립의 뜻을 비추셨을 때, 그 기초를 닦는 일은 제가 맡게 될 거라고 여겼습니다.”
맞는 말이다.
나는 심 사장을 염두에 두고 금융지주회사 설립의 뜻을 구체화시켰다.
이래 봬도 심 사장, 전생에 태성증권과 태성생명, 태성카드를 묶어 만든 금융지주회사를 발족시켜서 3대 경영권 세습의 발판을 마련했던 능력자거든.
“장담컨대 그 일, 아무나 못 할 겁니다.”
알고 있다.
나도 오랫동안 사채업 및 기업 투자로 이름을 날렸지만, 금융지주회사 설립은 꿈도 꾸지 못했다.
법과 제도적인 문제는 물론 경영과 시스템 구축 측면에서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혹시 이자들을 염두에 두고 계셨습니까?”
심 사장의 눈이 전대 거물 5인방을 향했다.
특히 자신 있게 금융지주회사 회장 자리를 노렸던 스승님을 향한 눈길이 뜨거웠다.
“다들 정씨 집안의 사업을 맡아 오랫동안 탄탄하게 굴려온 인재들임은 확실하나, 금융지주회사의 회장 역할을 수행하기엔 어려움이 많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