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409)
재벌집 만렙 아들-409화(409/416)
409. 나만 한 적임자가 없구만! (2)
심 사장의 눈에 근심과 염려가 깃들었다.
“회장 자리는 일만 잘한다고 끝나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건 실무진급까지예요.”
심 사장은 펜을 꺼내 수첩에 배를 그려 보였다.
“예를 들어 보이죠. 여기 이 배를 기업이라고 칩시다.”
대충 거북선과 비슷해 보이는 모양으로.
“열심히 노를 젓는 사람들이 있어야 배가 앞으로 나아갈 것 아닙니까? 기업의 손과 발이 되어 업무를 처리하는 자들, 즉 선원들이 바로 실무진이라 할 수 있지요.”
심 사장은 노 젓는 선원들 뒤에 감독관을 한 명 그려 보였다.
“그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또 다른 능력이 필요합니다. 바로 휘하 세력을 규합, 관리, 통솔하는 능력입니다.”
심 사장은 감독관의 손에 채찍을 하나 그려주었다.
“1등 항해사가 바로 임원진입니다. 선장의 명을 받아 선원들을 지휘해 배를 한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만듭니다.”
심 사장은 전대 거물 5인방을 돌아보았다.
그들은 정씨 가문을 떠받치는 다섯 세력의 우두머리들이었다.
정동진 어르신의 지휘 아래 그들은 각자 맡은 전문 분야가 달랐다.
“그렇다면 이 배의 총책임자이자, 최고 권력자이며, 배의 운항을 결정하는 사람, 즉 선장은 바로 회장님이라 할 수 있겠죠?”
심 사장은 수첩에 해골 모자를 쓴 선장을 추가했다.
“조타를 잡은 선장에겐 또 다른 능력치가 요구됩니다.”
“그게 뭡니까?”
“항로를 계획하고, 배를 몰고, 기상을 관측하고, 위기에 대응하는 능력 등입니다.”
심 사장은 보란 듯이 방위를 그렸다.
“선장은 지도를 분석하고, 제 위치를 기준으로 하여 적절한 항로를 선택할 수 있으며.”
암초와 섬, 파도와 조류, 비바람도 추가했다.
“항로에 위치한 암초 등의 지형, 조류, 해수면 상태 등을 파악하여, 끊임없이 변화하는 해상 날씨에 적절히 대응해 정확한 지시를 내릴 수 있어야 합니다.”
심 사장은 수첩을 보란 듯이 들이밀었다.
“기업의 장단기 목표 설정은 물론 계열사 간의 유기적인 협력 방향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고.”
“…….”
“기업의 외부 환경, 즉 일본 정부와 정재계 인사들 사이에서의 관계 조정과 균형 잡기에 능해야 하며.”
“…….”
“오묘한 알력 및 이해관계를 이용하여 기회 창출하고, 사업을 확장하며, 자사의 이익을 도모하는 가운데, 굵직한 외부 사업권도 따낼 수 있어야죠.”
“…….”
전대 거물 5인방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난감한 얼굴이었다.
“할 수 있으시겠습니까? 아니, 이건 회장이라면 무조건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심 사장은 의미심장한 얼굴이었다.
“한마디로 판 잘 짜고, 협상 잘해서, 콩고물 잘 주워 먹을 능력이 있냐, 이 말입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전대 거물 5인방은 쓰게 웃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게 됐으면 전생에 피비린내 나던 후계자 싸움을 그리 질질 끌었겠어?’
전대 거물 5인방은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며 세력을 키우고 업장을 관리하는 일에 골몰했다.
덕분에 그동안 나와 남산 찰거머리가 클 수 있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음?’
문득 전대 거물 5인방은 물론 심 사장까지 물끄러미 나를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 뭐? 왜?
심 사장은 작게 감탄하며 날 가리켰다.
“왠지 우리 도련님께서 특출나게 아주 잘하시는 분야인 것 같죠?”
끄덕끄덕.
“규합, 포섭, 영입, 선동, 간파, 모략, 안배, 유도, 협상에 수작질.”
끄덕끄덕!
“거기에 뇌물, 협박, 외통수에 각 잡기, 후려치기, 탈탈 털기까지 추가.”
끄덕끄덕끄덕끄덕!
아니, 이 사람들이?
내가 언제 그렇게 흉악하게 굴었다고!
내 눈이 가늘어지기 무섭게, 심 사장은 재빨리 헛기침했다.
“그렇다면 좀 더 구체적인 사안으로 넘어가 볼까요? 송 노인.”
“어? 어!”
금융지주회사 회장 자리를 욕심내던 스승님이 화들짝 놀랐다.
“금융 시스템 및 경영 체제를 구축하는 일, 그건 어떻게 처리하실 생각입니까?”
“…….”
그건 나도 전생에 안 해 봤던 일이라서.
내가 금융지주회사 발족을 염두에 두었을 때, 가장 먼저 적임자로 심 사장을 손꼽았던 이유였다.
“설마 나까무라 부동산 굴리듯이 되는대로 처리할 작정은 아니었겠죠?”
“…….”
전대 거물 5인방은 이번에도 대답하지 못했다.
쏘아보는 심사장의 눈길이 불처럼 뜨거웠다.
“사채업이나 제3금융권의 부채를 회수하듯 회사를 굴려선 안 됩니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합법적인 일본의 제1금융권으로 거듭나는 것이 목표예요.”
“…….”
“따라서 신식의 선진 금융시스템을 도입하고, 금융당국의 감사 아래 석유파동으로 인한 주가 변동성과 주가조작에 대응할 수 있는 방어시스템부터 구축해야겠죠.”
“…….”
스승님은 슬쩍 눈을 피하며 끄응 앓는 소리만 내었다.
“같은 금융업에서도 전혀 다른 성질의 영역이라 할 수 있는 은행업과 증권업, 보험업, 자산운용에 관해 제대로 교육받은 전문가들을 어디서 어떻게 영입하여, 어떻게 관리하며, 어떤 목적을 달성한 것인지…….”
심 사장의 설명이 길어질수록 다들 난감한 얼굴로 눈을 돌렸다.
마침내 심 사장은 낮게 탄식했다.
“환장하겠군.”
“대단하시군.”
스승님은 두 손을 들었다.
그러자 심 사장은 두 주먹을 들었다.
“역시 금융지주회사 회장으로 나만 한 적임자가 없을 줄 알았어!”
그렇게 또 한껏 의기양양하던 심 사장이었으나.
“하하하, 하하, 하아…… 망할.”
심 사장은 다시 한번 현타가 온 얼굴로 머리통을 부여잡았다.
문제는 또 있었다.
심 사장은 조심스럽게 나를 돌아봤다.
“금융지주회사는 그렇다고 쳐도, 걸프사 회장 자리는 또 어떻게 하실 겁니까?”
심 사장의 미간에 골이 팼다.
“걸프사는 현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아줘야 할 때입니다.”
알고 있다.
“태성이 유공을 인수하면서 새로 정유사업에 진출하지 않았습니까?”
“대통령님께서도 큰 관심을 보이며 주목하고 있죠.”
“태성정유의 미래가 걸프사에 달렸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어떤 식으로 걸프사와 협력 관계를 구축하느냐에 따라 태성정유의 성장 속도와 영향력이 달라지겠죠.”
“이미 부회장님께서 한국 정부에 1억 달러 지원까지 약속받은 상황이며, 언론마저 우리 태성정유의 일거수일투족에 주목해 연일 집중 조명하고 있습니다.”
유공은 대한민국 최고의 정유기업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어쩌다 얻게 된 도련님의 사우디 유전 개발과 이번에 따낸 제7광구 개발권도.”
“다 걸프사의 기술력과 인재, 시설 및 자금이 뒷받침되어야 이룰 수 있다는 거죠?”
“역시 도련님! 척하면 착 받아먹으시는군요!”
심 사장은 도로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흐리게 웃었다.
“도련님, 걸프사가 추진하던 쿠웨이트 유전 문제는 어찌하실 작정이십니까?”
“사우디아라비아와의 동맹으로.”
이미 심 사장이 내놓은 해결안이었다.
나 또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여차하면 아랍에미리트까지 한데 묶어서 삼자동맹을 구축할 생각이에요.”
“아랍에미리트까지요?”
“아니면 이란과 이라크까지 묶어버릴까요?”
“그, 그래도 됩니까?”
“안 될 이유 있어요?”
“……!”
심 사장의 놀란 눈도 잠시.
그의 미간 주름이 한층 더 깊어졌다.
“걸프사의 구조조정 및 투자 포트폴리오 변경 문제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지금의 걸프사는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건 전생의 걸프사가 어떻게 몰락의 길을 걸어서, 어디에 흡수되었는지만 봐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체질 개선이 시급하다는 소리!
“걸프사의 또 다른 신사업으로 석유화학산업의 진출을 계획하고 계시다면, 이 문제는 누구와 어떻게 풀어가실 생각이십니까?”
심 사장의 눈이 다시 한번 특정 인물에게 꽂혔다.
“설마 태성정유의 기반이 되고 싶다 했던 저 친구를 염두에 두신 건 아니겠지요?”
동남쪽 스컹크가 움찔했다.
심 사장의 눈매가 좁아졌다.
“걸프사의 회장이 된다면 석유화학 공장을 어디에 세울지, 선거자금을 얼마나 누구에게 후원할지, 미국 정부와의 협력은 어떻게 얻어낼지 결정하는 일이 급선무일 겁니다.”
“……!”
“걸프사 주총을 열어서 현 경영진들을 몰아내고, 주주들을 설득하고, 배당금을 조정하며, 자산을 정리하고, 기업 경영 방향성을 제시해야 할 텐데.”
“…….”
“새로운 전문 경영인으로서 내세울 수 있는 비전과 커리어는 충분합니까?”
“…….”
동남쪽 스컹크가 슬그머니 눈을 깔았다.
고개까지 푹 숙이면서.
심 사장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길게 탄식했다.
“하, 이거 또 결국 걸프사 회장으로 나만 한 적임자가 없다니까!”
전대 거물 5인방이 끄덕끄덕 열심히 고개를 움직였다.
그 누구도 반박은 물론 이견조차 내지 못할 정도로 압도적인 상황.
심 사장이 푸석푸석한 피부를 쓸어내리며 나를 돌아보았다.
“제가 몸이 세 개라면 또 몰라도, 한 몸으로 어찌 이 많은 일을 다 처리할 수 있겠습니까? 그건 도련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를 향한 쓴소리였다.
“제가 일신의 부귀공명이나 꾀하자고 며칠간 잠도 못 자면서 고민했던 줄 아십니까?”
섭섭한 눈이었다.
“제가 없으면 그 많은 일들, 다 누가 처리하셔야 하는데요?”
“그야 물론 제가 해야겠죠.”
그게 당연한 일이다.
내가 벌인 사업이니까.
“어이구, 이것 보십시오! 내가 속이 터져서……!”
“심 사장님.”
나는 제 가슴을 탕탕 때리려던 심 사장의 손을 잡았다.
푹 쉬라고 유급 휴가를 일주일이나 주었는데도, 어째 이 손가락에서는 만년필 잉크 자국이 사라지질 않냐!
이 미련한 남자 같으니라고!
“아무렴 제가 심 사장님의 꿈 하나 못 이뤄드리겠어요?”
나는 심 사장의 손등을 토닥토닥 두드렸다.
“걱정하지 말고 원하는 자리 아무거나 하나 골라잡아 봐요. 까짓것 뒤는 제가 맡죠.”
심 사장의 눈이 풍랑에 떠도는 종이배처럼 거세게 출렁거렸다.
나는 씩 웃으며 엄지로 나를 가리켰다.
“저 그 정도 능력은 되거든요.”
“…….”
심 사장은 말없이 나를 내려다보았다.
한참이나. 계속해서.
정씨 집안의 전대 거물 5인방도 숨죽여 그의 선택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다.
심 사장은 몇 번이나 입술만 달싹거리다가.
급기야 그답지 않게 약간의 울먹거림이 섞인 결단을 내렸다.
“저는 도련님의 곁에 남겠습니다.”
그렇다는 말은…….
“도련님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도련님의 가장 충직한 손발이 되어서, 도련님과 함께하는 미래를 꿈꾸고 싶습니다.”
심 사장의 오랜 꿈은 바지회장인 줄 알았는데.
그는 끝내 JH투자 사장으로 남길 택했다.
나는 방긋 웃었다.
“후회하지 않겠어요?”
“후회 없습니다.”
심 사장은 후련한 듯 웃었다.
“처음 영입 제안을 받았을 때에도 도련님께선 세 가지 선택지를 주셨었죠.”
태성화학, 태성정유, JH투자.
“그때에도, 지금도, 제 선택은 같습니다. 한번 JH는 영원한 JH!”
“좋아요!”
그거 아주 마음에 든다!
“도련님, 그럼 금융지주회사 회장은……?”
“심 사장님께서 맡아주시면 되겠네요.”
“……예?”
왜 그렇게 놀란 얼굴이야?
“JH투자에서 선택한 새로운 전문경영인, 심 사장님이 딱이잖아요?”
“으악!”
“금융지주회사 건립의 기반을 다질 확실한 시스템 구축, 부탁드릴게요. 믿고 맡기는 심 사장님!”
“그럼 JH사장 자리는 어떡하고요?”
“임시 공석으로 처리해야죠, 뭐.”
“……!”
심 사장은 입을 떡 벌렸다.
그러더니 경악으로 희게 질린 얼굴로 더듬더듬 뒷말을 덧붙였다.
“설마 걸프사까지 저한테 맡기시려는 건……?”
“당연하죠!”
“……!”
아니, 이거 왜 이러시나. 아마추어같이.
“이미 워렌 버퍼 씨 앞에서 심 사장님을 걸프사의 차기 회장 내정자라고 소개했는데, 인제 와서 발 빼시려고요?”
“허억!”
심 사장이 턱을 툭 떨어뜨렸다.
눈을 질끈 감고 새파랗게 질린 심 사장에게 나는 쐐기를 박았다.
“남아일언중천금.”
사내가 되어서 한 입으로 두말하면 안 되지.
“그럼 걸프사 회장 자리에서 구를 때, 금융지주회사 회장 자리는 또 어쩌고요?”
“임시 공석이 있는데 뭐가 문제예요?”
“어허헉!”
심 사장은 털썩 주저앉았다.
“보, 보약……!”
그건 자신 있게 약속할 수 있다.
“언제 어디서나 최고급으로 지원해 드릴게요!”
이 또한 남아일언중천금으로!
나는 한쪽 눈을 찡긋했다.
“바지회장의 꿈, 제가 확실하게 이뤄드릴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