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41)
재벌집 만렙 아들-41화(41/416)
< 전(前) 시대의 거물들 (2) >
우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동차에 올랐다.
“유 팀장님, 출발!”
“다들 안전벨트 맸죠? 도련님, 그럼 출발합니다!”
부르릉.
보조석에 앉은 철구 아저씨가 낄낄 웃었다.
“송골매 그 양반, 어울리지도 않게 연달아 감탄을 터트리다니. 꼬맹아, 대체 뭐라고 속닥댄 거냐?”
“어허, 도련님의 믿음을 살 건지, 궁금증을 풀 건지. 빡대가리 빡 중령, 아니, 박철구 씨 선택하시죠?”
“······.”
“참고로 전 호기심보다 신용을 택했습니다.”
유종태는 의기양양하게 씩 웃었다.
“하긴 저도 신기하긴 하대요. 매번 볼 때마다 혀만 차시는 어르신이 오늘은 무릎까지 탁 치더라니까요? 오죽하면 눈 비비고 다시 봤겠습니까.”
“그 양반, 허구한 날 똘똘한 제자 한 명 어디 하늘에서 뚝 안 떨어지나, 그렇게 한탄을 하더니.”
“그 깐깐한 어르신이 진즉 우리 도련님한테 눈독을 들이고 있었을 줄이야.”
“꼬맹이한테 자기 밑으로 들어와서 일 배우지 않겠냐는 소리를 했을 땐 내 귀를 의심했다니까?”
“아무렴요! 그 어르신에겐 김 비서님은 되어야지 쓸만하단 말이 나올걸요? 그런데 우리 도련님께는··· 크, 역시, 역시, 역시죠!”
그러고 보니 나도 스승님을 처음 만났을 때 똥 눈깔이란 소리를 들었다.
머리 쓰는 것에 비해 눈썰미가 후져서 영 안 되겠다면서 말이다.
덕분에 전당포에서만 10년이나 굴렀다고!
“심지어 흔쾌히 바람잡이를 자청하는 꼴도 보고 말이지.”
“그 짠돌이 어르신이 돈도 안 받고 서비스하는 것도 처음 봅니다.”
철구 아저씨와 유종태는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 역시 우리 꼬맹이가 최고다!”
“크흐흡, 역시 우리 도련님이 최고십니다!”
철구 아저씨와 유종태는 동시에 웃음을 뚝 멈췄다.
그러더니 무척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너 왜 나랑 똑같은 말 하냐?”
“저도 당황스럽습니다만?”
둘은 동시에 헛웃음을 지으며 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철구 아저씨는 휙휙 지나가는 창밖을 보면서 말했다.
“어이, 꼬맹아. 그 양반이 전화 걸어서 약 올리는 거나 강 건너 불구경하듯 마저 보면 좋았을 텐데, 왜 그 재밌는 걸 마다하고 냅다 튄 거냐?”
“불구경하다가 불똥 튀는 건 사양이거든요.”
스승님 성격이라면 말죽거리 말대가리한테 전화를 끊자마자 바로 계약서 쓰자는 얘기가 나오고도 남았다.
‘뇌물 장부가 족쇄가 되듯 은밀한 뒷거래가 오갈 땐 증거를 남기면 안 되지.’
나는 뒷거래를 할 때 흔적을 남기는 걸 몹시 꺼리는 스타일이라서.
그게 족쇄가 되어서 숨통을 조여오는 건 절대로 사양이다.
“도련님, 어디로 모실까요?”
“종로로 가주세요.”
철구 아저씨와 유종태는 동시에 뒤를 돌아보았다.
“말죽거리부터 안 가?”
“말죽거리부터 가지 않고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거긴 지금 찾아가 봐야 한겨울에 찬물 세례나 받고 문전 박대 당할걸요?”
말죽거리 말대가리가 어디 보통 성질머리던가.
과연 남산 찰거머리의 스승답다고나 할까?
그자는 우리 스승님과 앙숙으로 통했다.
게다가 지금은 스승님이 전화를 걸어서 실컷 약을 올린 직후.
아마 이를 박박 갈면서 심부름꾼에게 화풀이한답시고 단단히 벼르고 있을 터였다.
“꼬맹아, 그런데 넌 왜 이렇게 열심히 초대장을 얻어와서 돌리는 거냐?”
“할아버지가 송년의 밤에 우리 엄마랑 저를 데려오라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넌 초대된 손님이지, 행사의 주최자가 아닌데.”
“우리 엄마랑 내가 그 많은 사람들 앞에 소개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아빠한텐 약혼자가 있잖아요. 그쪽에서 가만히 있겠어요?”
“아······.”
“우리 엄마한테 손가락질 하는 사람이 많을 거예요. 양가의 혼사를 망쳐놨다고.”
철구 아저씨의 눈이 묘하게 깊어졌다.
“우리 엄마한테 사람들의 싸늘한 시선이 모이지 않도록, 대신 태성의 지하철 공사에 모든 사람이 주목하도록 화려하게 시선을 끌고 싶어서 그래요.”
나는 방긋 웃었다.
“태성건설은 요즘 돈이 없잖아요. 겸사겸사 이번에 돈도 후원받으면 다들 우리 태성이 지하철 공사를 따낼 거라고 보겠죠?”
물론 내가 초대한 거물들에게서 돈을 왕창 뜯어낼 생각이다.
지하철역이 들어갈 정보를 넘기는 대가로.
이건 우리에게도, 그쪽에게도 이득이 되는 윈윈의 거래다.
“꼬맹아, 넌 너무 생각이 많아. 어른들의 일에 네가 그렇게 애쓸 필요 없어.”
철구 아저씨는 내 머리를 파바박 쓰다듬었다.
“네 할아버지랑 아버지가 어련히 알아서 해결하실까. 좀 믿어라, 꼬맹아. 알았냐?”
“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우리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믿는다.
판을 깔아주면 누구보다 화려하게 태성을 띄워주실 분인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열성적으로 태성에게 후원금을 내놓을 사람들이 필요하다.
스승님은 흔쾌히 찬성하셨고, 여기에 깽판을 놓을 사람은 역시 말대가리뿐이다.
‘말대가리는 반골 기질이 강해. 이득보다는 심술이 먼저지. 스승님이 하는 꼴을 가만히 두고 보지 못하고 어깃장을 놓을 거야. 그럼 자칫 태성은 손가락질만 받다 낭패를 볼 수도 있어.’
말대가리는 스승님이 간다면 어떻게든 따라나서야 직성이 풀리는 위인!
초대장을 빼앗아서라도 송년의 밤에 쳐들어올 인간이다.
그놈이 난장판을 부리면 나와 어머니는 물론 할아버지와 아버지도 곤란해 질 수 있다.
‘할아버지가 부모님의 결혼을 확실하게 밀어주기로 하셨으니, 나 역시 확실하게 이번 지하철 공사를 서포트해 줘야지. 건설 자금 후원 모집은 물론 이슈 몰이까지.’
말대가리는 초장에 제압해 둘 필요가 있다고 결론을 내렸기에.
난 지금부터 그놈과의 심리전을 시작할 참이다.
‘방해꾼을 부를 것이었으면 애초에 초대장도 준비하지 않았다! 놈을 설득하는 대신 차라리 이 기회에 그놈의 목줄을 틀어쥐어야겠다!’
말죽거리 말대가리와 남산 찰거머리.
그 재수 없는 사제(師弟)랑 오랜 세월 사사건건 부딪치며 살았더니, 이름만 들어도 절로 이가 갈릴 지경이다.
저들 사제가 공모해서 우리 스승님을 해쳤던 일만 생각하면······.
으드득.
‘스승님께는 내 기꺼이 돈줄이 되어드릴 수 있어도, 말대가리한테는 1원 한 푼도 못 내준다!’
스승님께는 당근을 썼지만, 말대가리한테는 채찍을 쓰겠다!
‘이참에 말대가리 주머니를 탈탈 털어 보자고!’
털자고 들면 못 털 것도 없지!
난 돈 걸린 일에 관해서라면 웬만해선 절대 안 지거든.
“그분은 맨 나중으로 미루죠.”
안 그래도 초대장을 돌려야 할 손님이 많다.
말대가리의 평정심을 흐트러뜨린 후에 공략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이번 계획의 시작이다.
* * *
그 시각, 말죽거리 말대가리는 사무실에 있었다.
사무실 벽에는 박제된 말머리가 걸려 있고, 그 옆에는 뚝섬 서울경마장 사진을 넣은 액자가, 그 밑에는 한지에 궁서체로 휘갈긴 사훈(社訓)이 적혀 있었다.
<언제고 반드시 경마장까지 진출하고 말리라!>
평소에도 하루 열 번씩 바라보며 원대한 포부를 되새기는 편액(扁額).
말대가리는 오늘도 습관처럼 경마장 사진과 사훈을 곱씹으며 씩씩댔다.
“송골매, 이 새끼가 감히 날 놀려?”
말대가리란 별명처럼 그는 깡말랐고, 하관은 길쭉했다.
“뭐? 송년의 밤 초대장이 왔지롱? 어우, 약 올라!”
말채찍으로 제 손바닥을 찰싹찰싹 때리면서 말대가리는 사무실을 왔다 갔다 했다.
하우스 매니저가 말대가리의 눈치를 살폈다.
“어떻게 할까요? 다시 명동에 전화 넣을까요?”
“됐어! 어차피 송골매 새끼는 내 전화 안 받잖아!”
말대가리가 머리끝까지 화가 난 이유였다.
“나를 제치고 명동 송골매한테 먼저 초대장을 전하다니!”
말대가리는 이를 빠드득 갈았다.
“그 빌어먹을 심부름꾼한테는 대뜸 찬물 한 바가지부터 끼얹어서 쫓아버려!”
“예, 알겠습니다.”
실컷 성질을 부리던 말대가리는 말가죽 소파에 털썩 드러누웠다.
벌써 한참이나 지났는데.
누가 찾아왔다는 말이 없다.
따르릉.
말대가리는 재빨리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나 종로 금이빨이다. 말대가리, 너도 송년의 밤 행사에 참석할 거냐?
“뭐?”
말대가리는 미간을 빡 구겼다.
“너도 초대장 받았냐?”
-명동 송골매도 받았는데, 내가 못 받을 이유가 있나?
괴상한 웃음이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종로 금이빨이 위아래 죄다 옥수수처럼 곱게 박아놓은 누런 금니를 드러내면서 입꼬리가 찢어지도록 웃고 있다는 걸, 말대가리는 단번에 눈치챘다.
-우리가 정재계 고위 인사들만 참석한다는 상류 모임에 초대받는 날이 올 줄이야. 이거 오래 살고 볼 노릇이다. 그럼 그때 보자. 오랜만에 술 한잔해야지.
딸깍.
“이럴 수가! 내가 명동 송골매한테도 모자라서 종로 금이빨한테까지 밀린 거야?”
말대가리는 콧김을 뿜었다.
“금이빨이야 워낙 달러랑 금괴를 많이 취급하니까. 그걸로 돈세탁을 하는 놈이니 만나는 고객들 대부분이 그쪽의 높으신 양반들이겠지.”
입안이 꺼끌꺼끌하고, 입맛이 씁쓸했다.
“그러니까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안면 있는 금이빨부터 찾아간 모양인데······ 쳇!”
솔직히 말하면 금이빨보다야 현금은 내가 더 많지 않나?
“날 찾아온 심부름꾼한테 찬물 한 바가지에 왕소금 한 바가지 더 추가!”
말대가리는 도로 벌러덩 말가죽 소파에 드러누워서 경마지를 들었다.
“그다음은 나겠지. 그건 분명해. 그건 팩트, 그 자체라고!”
똑딱똑딱.
벌써 한 시간이 또 지났는데도 여전히 깜깜무소식이다.
이거 열받는다.
따르릉!
“여보세요!”
-나 까치산이야.
까치산 방 여사였다.
-송년의 밤 때문에 전화했어. 자기는 현금 부족할 일이 없잖아? 알다시피 나는 부동산에 묶인 게 많다 보니 갑자기 현금 줄이 꽉 막혀버렸네?
까치산 방 여사는 주로 부동산과 아파트 분양 시장을 휩쓸며 복부인과 복덕방을 상대했다.
일명 떴다방!
부동산을 탈세, 투기 목적으로 돈세탁하는 일도 도맡아 했다.
요즘에 강남 개발 열풍이 휘몰아쳐서 까치산 방 여사는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강남에 목 좋은 땅이랑 잘 빠진 아파트가 몇 채 나왔는데, 싸게 줄게. 어때? 급매로 처분하자. 응?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발이나 닦고 자든가! 후원회는 얼어 죽을!
쾅!
말대가리는 전화기를 부술 듯이 냅다 끊었다.
“까치산 방 여사도 초대장을 받았는데, 나만 쏙 뺐단 말이야?”
방 여사의 특기는 부동산을 비싸게 팔아치우는 것.
취미는 복부인들과 계를 만들어서 곗돈을 빼먹는 거였다.
그러니 저쪽도 현금이 모자랄 일 없다는 거 뻔히 알고 있는데, 누굴 은행 금고 취급하고 있어!
“그래, 까치산 방 여사의 주요 고객들은 복부인과 재벌집 사모님들이니까. 그쪽도 팔이 안으로 굽으······ 내가 방 여사한테까지 밀린다고?”
이 중에 내가 현금은 제일 많을 텐데.
나만 저놈들만큼 인맥이 없단 거지?
“확실히 내가 정재계 고위층 인사들과 만날 땐 멱살을 잡고 드잡이질할 때뿐이로구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다들 돈 급할 땐 날 찾아와서 무릎걸음으로 쩔쩔매던 새끼들이······!
째깍째깍.
시간은 또 속절없이 흘러갔다.
“야, 오늘 나 찾는 놈이 오면 없다고 전해! 난 부재중이라서 초대장을 못 받은 거다! 알았냐?”
“예.”
“나 올 때까지 심심풀이로 도박이나 하라고 투전 좀 쥐여줘라! 꾼들 불러다가 옆에 붙이고!”
“예!”
말대가리는 비열하게 웃었다.
“그놈 주머니는 물론 멘탈까지 탈탈 털어서 빈털터리 만신창이를 만들어서 쫓아내!”
* * *
차에서 내린 철구 아저씨는 표정을 굳혔다.
“이 피비린내는 뭐냐?”
“투계(鬪鷄), 투견(鬪犬), 투우(鬪牛), 투전(鬪牋). 일명 하우스 도박.”
말대가리는 말죽거리 외곽 은밀한 곳에 하우스를 지어놓고 사설도박장을 운영하는 자였다.
“그게 말대가리의 주요 사업이거든요.”
“뭐? 그놈 투기장을 운영하는 놈이었어?”
말대가리가 접수하지 못한 도박장은 오직 한국마사회가 주관하는 경마장밖에 없었다.
< 전(前) 시대의 거물들 (2)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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