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412)
재벌집 만렙 아들-412화(412/416)
412. 왠지 기대하게 되는
동남쪽 스컹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더러 금융지주회사의 부회장님 자리를 맡아달라 하셨습니까?”
“안 될 것 있나요?”
“안 될 말입니다.”
동남쪽 스컹크가 가리킨 건 스승님이었다.
“서열로 보나, 연륜으로 보나, 안목으로 보나. 저기에 큰형님이 계신데, 제가 어찌 감히……!”
“난 되었다!”
기겁한 얼굴을 한 스승님이 버럭 외쳤다.
“누구더러 과로사하라고 등 떠밀려 들어!”
“…….”
누구도 부정하거나 반박하지 못하는 말이었다.
“이 나이에 이보다 더 구르면 골병들어 뒈져!”
“보완할 방법이 있습니다.”
심 사장이 품을 뒤져 주섬주섬 꺼내려 하자, 스승님은 다급하게 손사래를 쳤다.
“보약이라면 넣어둬, 넣어두시게!”
“혈관에 피 대신 보약이 흐르지 않으면 버티기 어려울 텐데요?”
“보약에 의한 생명 연장의 꿈이라면 반대일세! 난 자연사가 로망인 사람이야!”
“이런.”
심 사장이 몹시 아쉬워하며 반쯤 꺼냈던 보약 팩을 도로 집어넣었다.
“도련님의 최측근으로서 달성 불가능해 보이는, 무진장 패기만만 야심만만 분에 넘치는 로망이로군요.”
심 사장은 엄지를 치켜들었다.
“좋습니다. 송 은행장의 호상을 응원하겠습니다!”
“…….”
누가 봐도 순도 100%의 진심이 듬뿍 담긴 부러운 얼굴!
심 사장의 진심을 마주한 스승님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주인님, 저 또한 금융지주회사 부회장으로서 스컹크 이상의 적임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큰형님…….”
“이 중에 너 일 잘하는 거 모르는 사람 없다. 우리 중 젊고 능력 있기로는 네가 으뜸이야.”
스승님은 딱 잘라 말했다.
“주인님 말씀 중에 옳지 않은 말은 단 하나도 없었다. 스컹크야, 꿈을 크게 가져라.”
“하지만 다른 형님들과 누님도 계신데…….”
“회사 굴리는 거 우습게 보지 마라. 어디 회사를 나이순으로 굴린다더냐?”
스승님이 가리키는 것은 나였다.
“보면 알잖느냐. 타고난 그릇이 달라!”
다들 반박하는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바로 수긍해버렸다.
아니, 뭐? 왜? 뭐!
“정씨 집안의 양지 진출 초석을 다지는 일이다. 이번에 어그러지면 다음은 없다!”
스승님의 눈이 엄해졌다.
단호하기는 서릿발보다 더 차갑고, 날카롭기는 칼날보다 더 매섭다.
“지금 당장 부족한 점이야 보고 겪고 배우면서 보완하면 그만이다. 그건 기술과 경험의 문제니까. 하지만 마음가짐은 달라.”
“…….”
“마음 단단히 먹고 너 자신을 믿어라. 능력이 부족한 놈이 분수에 맞지 않는 과욕을 부리는 것 이상으로, 능력이 충분한 놈이 되도 않는 겸양 떠는 것도 꼴불견이야.”
“…….”
“중요한 순간에 지레 겁부터 집어먹고 내빼는 얼간이가 되려 하느냐? 그렇다면 내 그것만큼은 용서할 수 없다! 난 널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어!”
“죄송합니다.”
동남쪽 스컹크는 고개를 푹 숙였다.
하지만 스승님은 봐주지 않았다.
“돌아가신 주인어른께서 왜 너를 성준 도련님 곁에 붙여주셨더냐? 똘똘해서? 재주가 좋아서? 손속에 가차 없어서? 도련님의 또래라서? 틀렸다.”
익히 알고 있는 눈이었다.
제자들을 꾸짖는 눈.
스승님이 저런 눈을 할 때면 누구도 꼼짝 못 했다.
“너의 충성심과 독기, 능력과 배짱을 높이 샀기 때문이었다.”
스승님은 콧방귀를 뀌었다.
“성준 도련님의 수발을 들었던 게 너 혼자뿐이라 생각하느냐? 천만에.”
스승님은 본인을 가리켰다.
“성준 도련님을 데려왔을 때부터 떠나기 전까지 교육을 담당했던 이가 바로 나였다.”
또한 차례대로 전대 거물들을 가리켰다.
“우리들 중에 성준 도련님을 모시지 않았던 자가 어디에 있다고?”
그들은 모두 정동진 어르신이 후계자를 위해 마련한 안배이자, 힘이었다.
“네가 지금껏 정씨 집안에서 배우고 익힌 것이 고작 도련님 수발드는 일뿐이더냐?”
“아닙니다.”
“더러운 뒤처리나 하라고 아래로는 손에 피 묻히는 일부터 위로는 업장 관리일까지 하나하나 다 가르쳤던 게 아니야.”
“맞습니다.”
“도련님과 함께 더 높은 곳에 서서, 더 먼 곳을 보고, 더 큰 일을 처리하라고 굵직하게 가르쳐 놨건만. 쯧!”
동남쪽 스컹크를 내려다보는 스승님의 눈이 차갑고 비정해졌다.
그 옛날, 전생에서 나도 한번 겪어 보았던 눈이었다.
“내 너를 잘못 보아도 한참 잘못 보고 있었구나.”
실망한 눈이었다.
“실망을 끼쳐드려 송구합니다.”
동남쪽 스컹크는 즉시 허리를 굽히고 크게 외쳤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반드시 기대 이상의 성과를 가져와 보겠습니다.”
동남쪽 스컹크는 호기롭게 장담했다.
“제가 왜 스컹크란 이름을 받았으며, 정씨 가문의 교육이란 어떤 것인지, 우리가 어디까지 해낼 수 있는지, 몸소 증명해 보이면 되겠습니까?”
“그렇다는군요.”
스승님은 나를 향해 허리를 굽혀 정중하게 읍소했다.
“제법 쓸만한 녀석입니다. 그건 제가 보증하겠습니다. 뜻하시는 일에 귀히 써주십시오.”
“귀히 써주십시오!”
전대 거물들이 한목소리로 외쳤다.
“주인님, 이런 저라도 괜찮으시다면 어떤 일이든 기꺼이 맡겠습니다!”
동남쪽 스컹크가 제일 깊이 허리를 숙이며 외쳤다.
“현재는 비록 금융사를 맡아왔던 커리어도 부족하고, 남들 앞에 내세울 학벌도 변변치 않으며, 경영에 관한 경험이라 해 봤자 그리 대단한 것도 없으나.”
고개를 든 동남쪽 스컹크의 눈은 의욕적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반드시 열심히 배우고 익혀서 어디에서 무슨 일을 맡겨도 믿고 쓸 수 있는, 주인님의 든든한 수족이 되겠습니다!”
나는 씩 웃었다.
“좋아요. 잘 부탁드릴게요.”
궁금했다.
‘음지에서 활약했던 이 남자가 양지에 나와서 어디까지 어떻게 클 수 있을까?’
왠지 기대하게 되는 눈빛이었거든.
* * *
이미 해가 뉘엿뉘엿 지느라 창밖이 어둑어둑했다.
거실 바닥에 자료들을 한가득 펼쳐두고 지금껏 바쁘게 논의를 거듭하던 사람들이 나를 돌아보았다.
심 사장은 다크서클이 깊은 눈매를 손바닥으로 꾹꾹 누르며 물었다.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십니까?”
“그냥, 이것저것이요.”
오늘따라 유독 옛 생각이 많이 나서.
나는 고개를 들었다.
지금은 과거를 반추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미래를 위해 준비해야 할 때였다.
“할 만해요?”
“버거워도 해내야지요.”
다들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퍽 피곤한 얼굴이었는데도 누구 하나 앓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이게 어디 보통 일입니까?”
“그럼요. 정말로 이대로 금융지주회사가 출범하면 일본 금융계에 한 획을 긋는 일이 될 겁니다.
“전 세계가 주목하고, 투자 거물들이 눈독 들일 회사의 탄생이다 이 말입니다. 으하핫!”
“오호홋, 솔직히 금융지주회사에 나까무라 부동산까지 낄 줄은 몰랐네요?”
동산과 부동산은 극과 극이라 생각할 테니까.
하지만 심 사장은 콧방귀를 뀌었다.
“버크셔 헤서웨어사의 본신도 섬유회사였고, 지금도 계열사로 제조업과 서비스업을 거느리고 있는데, 부동산 회사가 껴 있는 게 뭐가 문제랍니까?”
“그럼요. 맞습니다!”
“더구나 나까무라 부동산은 은행의 초장기 담보 대출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아닙니까?”
심 사장은 우후훗 웃었다.
“나까무라 부동산 담보 대출과 JH투자의 단기차입금 채권이 맞물려 있습니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18%의 이자율 차이로 돈 들어오는 구조!
“JH투자는 금융지주그룹의 지분을 가장 많이 보유한 백기사가 될 겁니다.”
“이거 아주 든든한데요? 오호홋!”
까치산 방 여사가 야망이 철철 넘치는 웃음을 터뜨리며 손바닥을 비벼댔다.
“일본 총리는 이 일을 어떻게 건드릴까요?”
모두의 눈빛이 동시에 번뜩였다.
초미의 관심사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렇잖아요? 아무리 최고통수권자라는 일본 총리도 여론의 앞에서는 눈치를 봐야 해요. 멀쩡한 은행을 갑자기 뚝 떼어주는 건 큰 반발을 불러일으킬 무리수란 말이죠?”
벌컥!
그때 대문 초인종도 안 울렸는데 현관문이 열렸다.
유종태가 전보지를 손에 쥔 채 달려왔다.
“도련님, 큰일 났습니다!”
“왜요? 뭐가 문제예요?”
“조금 전 일본이 발칵 뒤집혔다는 모양입니다.”
“일본이?”
유종태가 구두도 대충 벗어 던지고 달려왔다.
나한테 전보지를 전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임무라도 되는 것처럼.
“도련님, 이것 좀 보세요.”
전보지를 펼쳐 들자, 그만 웃음이 나왔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다.
“석유파동으로 인한 에너지 효율 개선 사업과 산업 구조조정, 금융 시스템 개선에 관한 신년사 선언.”
일본 총리가 슬슬 칼을 빼 들기 위해 시동을 걸었다는 소리였다.
“조만간 미국 CNM을 통해서 전 세계 생중계로 보도될 겁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이렇게 한가하게 노닥거릴 시간 없습니다.”
심 사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금 당장 명동의 JH투자 사무실로 가시죠.”
“갑자기?”
“이 정도 서류 가지고 되겠습니까?”
“…….”
다들 심 사장이 양손 가득 무겁게 들고 온 여행용 가방 가득 구겨 넣은 서류들을 바라보았다.
“이렇게나 많은데?”
“이건 우리 사무실에선 10분이면 처리할 요약본에 불과합니다.”
“……!”
다들 못 믿겠다는 눈으로 입을 떡 벌리거나 말거나.
심 사장은 재빨리 바닥에 펼쳤던 서류들을 수습하여 여행 가방을 챙겼다.
“일본의 부실은행, 증권사, 보험사, 자산운용사를 인수 합병하기 위해서 가닥을 잡고 정리해야 할 사안들이 아주 많습니다.”
“아직 어떤 회사가 넘어올지도 모르는데 말입니까?”
“회사 넘어온 다음에 시작하면 늦습니다. 우리가 일찍 움직여야 부실채권을 최대한 줄이고, 자산 가치가 높은 상태로 인수할 거 아닙니까!”
“좋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여차하면 나까무라 부동산을 날려가며 폭탄을 터트려야 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릅니다.”
“에엑? 아니, 왜 하필 나까무라 부동산인데욧!”
“그게 도화선이 되어서 일본의 금융구조개혁을 일으키겠다고 나올 수도 있으니까요.”
“으아악! 그건 절대 안 돼요!”
“그러니까 그에 관한 철저한 대비와 방책을 마련해야 할 거 아닙니까?”
“가요! 얼른 가자니까욧!”
또 남았다.
“도련님, 카드사 신설은…….”
“그건 지금 당장 급한 일이 아니니 시간적 여유를 두고 조금 천천히 시작하기로 하죠.”
“예, 양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죽거리 말대가리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휴우, 난 또 카드사까지 당장 시작하자는 줄 알고…….”
“도련님, 그럼 넉넉잡아서 보름 후 어떻습니까?”
“에엑!”
말죽거리 말대가리가 웬 미친 소리를 하냐는 듯 보거나 말거나.
나는 팔짱을 낀 채 미간을 구겼다.
“보름? 너무 여유 만만하신 거 아니에요?”
“그럼 열흘 후로 하시죠.”
“좋아요.”
우리의 대화를 듣고 다들 입을 떡 벌렸다.
“내가 방금 무슨 소리를 들은 거지?”
“지금 당장 급하지 않으니 넉넉잡아서 처리한다는 카드사 설립 기한이…….”
“고작 열흘 뒤?”
“무슨 일처리를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이 해요? 이 회사, 정말 괜찮은 거 맞아요?”
짝짝짝!
심 사장이 손뼉을 쳤다.
주목을 이끌어내기 위해서였다.
“처리해야 할 일은 아주 많은데, 시간은 부족합니다! 그러니 지금 당장 JH투자 사무실로 이동해야 합니다!”
“예!”
“전화 돌리세요. 금융지주회사에 투입할 인원들 추려서 지금 당장 부르십시오.”
“예!”
정씨 집안 5인방이 큰 소리로 외쳤다.
말죽거리 말대가리는 콜을 외칠 타이밍을 어찌나 기가 막히게 잡았는지.
심 사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전화기를 선점하고 다이얼을 돌리고 있었다.
“도련님.”
유종태가 내 손에 꽃종이를 붙여 만든 손편지를 몰래 쥐여 주었다.
한쪽 눈을 찡긋거리면서 능글능글하게 웃었다.
“혹시나 하고 자동차에 시동 안 꺼뒀습니다.”
난 눈치 빠르고 수완 좋은 사내가 좋더라!
“어떻게 할까요? 명동 JH투자 사무실로 모실까요, 아니면 삼청동으로 모실까요?”
예린이가 보내온 편지였다.
<오빠 오늘 나랑 가치 눈사람 만들지 아늘래?>
깜찍한 데이트 신청이었다.